홈플러스 망친 MBK의 저주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20 08:44:53
  • 호수 1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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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대면 탈탈…뼈도 못 추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홈플러스의 법정관리 사태가 확산된 가운데 대주주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의 책임론이 부상 중이다. 국세청 조사4국이 세무조사에 나섰고, 국회는 긴급 현안 질의를 열겠다고 나섰다. 이번 사태로 금융감독 당국이 사모펀드 운용사(PE)에 대한 검사권을 꺼낼지 관심이 모인다.

‘국세청의 특수부’로 불리는 조사4국이 김병주 MBK파트너스(이하 MBK) 회장의 역외 탈세 의혹을 들여다볼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MBK는 최근 자구 노력 없이 홈플러스 기업 회생 신청을 하면서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PEF 운용사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지 10년 만에 내린 기습적인 결정이다. 협력사들의 대금 미정산 우려와 투자자 손실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어떻게
털었나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뒤 10년간 점포 매각 등으로 빚을 갚고 배당을 받아 왔다. 인수할 때 들었던 차입금 등 투자 원금 회수에 주력하면서 홈플러스 경영은 지속적으로 악화됐다.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 신청 직전까지 투자자를 상대로 기업어음(CP) 등을 판 것으로 드러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비판까지 확산됐다.

MBK는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고가 매수 논란이 일자 부동산을 비롯한 유형자산이 풍부하다는 점을 내세웠다. 지금도 부동산을 비롯한 유형자산을 버팀목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자산가치가 인정될지 미지수다. 유형자산 회전율은 매출액을 유형자산으로 나눠 산출한다.

유형자산은 통상 업체가 직접 보유한 매장·물류센터 자산을, 사용권 자산은 임차한 매장·물류센터 자산을 각각 뜻한다. 유형자산 회전율을 통해 기업의 자산 대비 매출 창출력인 자산의 효율성을 엿볼 수 있다. 다수의 점포 부동산을 보유한 오프라인 유통업계에서는 기업의 능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꼽히기도 한다.


홈플러스의 유형자산 회전율은 이마트(별도 기준 1.97)의 절반에 불과해 유통업계 최하 수준으로 꼽힌다. 유형자산 회전율이 1을 밑돈다는 것은 자산의 규모나 중량감에 걸맞은 매출을 창출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MBK가 인수한 이후 홈플러스 유형자산 회전율은 눈에 띄게 악화했다.

MBK 인수 직후인 2016 회계연도(2016년 3월∼2017년 2월) 1.13이던 홈플러스의 유형자산 회전율은 2020년 0.73으로 떨어진 후 1을 넘어서지 못했다. 업계는 ‘코로나19’를 기점으로 급성장한 온라인 쇼핑 대세에 적응하지 못한 MBK의 경영 실패가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또 MBK가 대규모 차입금을 갚기 위해 매출이 잘 나오던 우량 점포를 차례로 매각하면서 시장 대응력이 약화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MBK의 점포 폐업 또는 매각 후 재임대(세일즈앤리스백)와 같은 자산 처분으로 홈플러스 유형자산은 2016 회계연도 5조5409억원에서 2023회계연도엔 4조3507억원으로 21.5% 감소했고 사용권 자산은 그만큼 늘었다.

단기간에 임차료가 급증하면 현금 유출이 많아진다. 그만큼 재무에 부담이 되고 중장기 성장 잠재력을 잃는 원인이 된다.

법정관리 사태 확산
김병주 회장 책임론

유통업계에서는 “온라인 시장의 성장세에 대응하지 못한 것은 대형마트 업계의 공통된 문제였다”면서도 “홈플러스의 경우 MBK가 인수한 이후 그나마 매출 상위권에 있던 점포마저 매각해 영업력이 크게 약화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낮은 자산 효율성은 점포 매각을 비롯한 자산 처분에도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MBK는 지난해부터 슈퍼마켓(SSM) 사업 부문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분리 매각하려고 시도했으나 회생 신청 직전까지도 매수 희망 업체를 찾지 못했다. MBK가 약 1조원에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쿠팡, 농협, GS리테일, 알리익스프레스 등은 자산 활용도가 낮다고 봤다.


이들은 인수 후 재무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업계는 자산 유동화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고 보고 있다.

MBK는 지난 4일 법원에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한 직후 배포한 보도자료서 “홈플러스가 4조7000억원이 넘는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회생 계획이 확정되면 금융채권자들과의 조정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자산가치가 하락한 데다 자산 효율성마저 낮아 매각해도 제값을 받기가 어렵다. 회생 절차 과정서 MBK가 기대한 만큼의 담보가치를 인정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홈플러스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현 시점서 재평가하면 3조원을 밑돌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홈플러스의 회생 절차가 마무리되려면 김 회장이 사재를 내놓거나 MBK가 자기 자본을 투입하는 등 자구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선 MBK의 경영 방식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도 나온다. 체질 개선보다는 투자금 회수를 위한 핵심 자산 매각과 고배당 등에 집중해 온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 당국은 홈플러스 관련 어음과 채권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선 가운데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에 대해 칼을 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홈플러스의 어음이 은행권서 부도 처리됐다. 지난 10일 금융결제원은 홈페이지 내 ‘당좌거래중지자’에 홈플러스를 새로 등록·공지하며 “신한·SC제일은행이 홈플러스 어음을 최종 부도 처리했다고 알려 왔다”고 밝혔다.

최근 실시간 이체 등의 발달로 당좌거래 활용도가 줄어들었지만, 일반적으로 당좌거래가 정지되면 납품 대금 지불 등에 차질을 빚어 유동성 문제로 이어진다. 입점 업체들의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빼먹기 급급
회생 불가능?

회생 절차가 개시되기 20일 이전에 발생한 회생채권에 대해 홈플러스는 “법원에 신청했던 ‘회생채권 변제 허가 신청’이 3월7일 승인됐다”며 “소상공인·영세업자·인건비성 회생채권을 우선적으로 지급하고 대기업 채권도 분할 상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금 정산 지연으로 인해 협력사가 긴급자금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도 지급할 것”이라고도 밝혔다. 홈플러스는 지난 14일까지 상세 대금 지급 계획을 수립해 각 협력업체에 전달했다.

홈플러스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납품업체들의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홈플러스가 제공한 담보가 없는 상황서 물품만 납품하고 돈을 떼일 미수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정산 주기 축소와 선입금이라는 안전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가용자금(약 6000억원)을 비롯해 3월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이 3000억원 수준이라 상거래 채권 지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생 절차 개시로 인해 금융 채무 이자 비용 등의 지출만 유예됐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투자자들도 다급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채권은 카드 대금 채권을 토대로 발행된 유동화증권(ABSTB), 기업어음(CP), 전자단기사채 등으로 모두 6000억원 규모다. 이 중 약 3000억원의 물량이 영업점을 통해 소매 판매된 것으로 추정되면서 개인 투자자에 대한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회생 신청 직전인 지난달 21일에도 70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날은 홈플러스의 단기채 신용등급 하향 리포트가 나오기 일주일 전이었다. 홈플러스가 등급 하락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자금을 조달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브리핑을 통해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직전까지 법인은 물론 개인 투자자를 상대로 CP를 팔았다”며 “사실상 사기와 다름없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012년 부도 직전까지 CP를 판매한 LIG 건설이 사법처리됐던 것처럼 MBK도 마땅히 처벌돼야 한다”고 몰아붙였다.

국세청 등판
“정기 조사?”

이 같은 비판에 홈플러스 측은 입장문을 통해 “ABSTB와 CP 등을 리테일 투자자에게 판매한 주체는 증권사들로, 홈플러스는 해당 상품 판매와는 무관하다. 회생 신청 후에야 리테일로 판매된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또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는 신용등급 하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관련 금융채권 발행도 매월 정해진 날짜에 주기적으로 이뤄졌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증권사들도 ‘불완전 판매’ 의혹을 벗기 위해 수습에 나섰다. 홈플러스 신용 위험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영증권은 홈플러스가 CP 또는 ABSTB와 같은 증권이 리테일 창구로 판매됐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없다며, MBK를 상대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금융 당국도 상황 파악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각 증권사에 공문을 보내 홈플러스 관련 CP, 카드 대금 채권, 전자단기사채를 기초로 발행된 ABSTB의 개인투자자 대상 판매 금액 제출을 요구했다.

홈플러스에서는 2만명의 직영직원과 협력업체를 포함한 10만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입점업체는 약 8000개에 이르며, 금융 부채는 2조원에 달한다. 금융사 부채와 리스 부채 등을 제외한 홈플러스의 금융 채권은 현재 추산 6000억원 수준이다.

MBK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금융감독 당국이 사모펀드 운용사(PE)에 대한 검사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PE 검사와 관련해 “(홈플러스 회생은)PE가 아니라 투자한 기업이 문제가 된 상황이라 막무가내로 검사할 수는 없지만, 업무와 재산 상황에 대해서는 검사할 수 있게 돼있다. 금감원이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내부적으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PE가 금감원의 검사 대상으로 들어온 것은 지난 2021년 자본시장법이 개정되면서다. 사모펀드 체계를 기존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에서 일반과 기관전용으로 개편하면서 기관전용 사모펀드(PEF)와 그 업무집행사원(GP)을 검사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역외 탈세 의혹 칼 빼든 정치권
돈 넣고 돈 먹는 기업사냥 결말

MBK 같은 사모펀드 운용사는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LP·유한책임사원)로부터 자금을 모아 PEF를 만들고 홈플러스 같은 기업에 투자한다. 이 같은 구조서 사모펀드 운용사는 GP가 된다. 금감원의 검사권과 함께 금융위원회가 시장 안정과 건전한 거래 질서를 위해 필요한 경우 GP의 PEF 운용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게 하는 조항도 만들어진 상태다.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PE 검사에 나선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정기적으로 제출하는 재무제표 등을 바탕으로 등록 요건이나 영업 실태 등을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조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면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에 따른 부작용’을 언급했다.

지난해 12월엔 함용일 부원장 주재로 MBK 등 12개 PEF 운용사 최고경영자 간담회가 열렸다. 당시 함 부원장은 “PEF가 감독 사각지대서 대규모 타인 자금을 운용하는 과정서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2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조사에 나서자 MBK는 정기조사라고 일축했다. MBK는 2015년, 2020년에도 세무조사를 받았으며 5년마다 정기적으로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 다만, 최근 이슈 등을 고려하면 조사4국이 폭넓게 특별(비정기) 세무조사 수준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MBK의 역외 탈세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당시 MBK파트너스가 ING생명 인수 때 역외 탈세로 400억원 이상을 추징당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광일 MBK 부회장은 “400억원은 모르겠으나 세무조사를 받아 추징당한 것은 맞다”고 답했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김 회장에 대해 “한 시민단체로부터 2조원 수익이 발생했는데도 김 회장이 미국 시민권자로 (국내에)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아서 역외 탈세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며 “국내서 돈 벌고 미국에 세금을 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는 18일,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긴급 현안 질의를 개최키로 했다. 국회 정무위는 이날 증인으로 김병주 MBK 회장과 김광일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 대표, 조주연 홈플러스 공동 대표, 금정호 신영증권 사장, 강경모 홈플러스 입점협회 부회장을 채택했다.

떨고 있는 PE
금감원 나설까

김 회장은 미국 시민권자를 일컫는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2020년 역외 탈세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았고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같은 내용의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추산한 김 회장의 자산가치는 97억달러(현재 환율로 약 14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115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 자산가로 꼽힌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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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