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용인시, 군부대 이전 사업 ‘말 바꾸기’로 갈등 증폭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3.11 08:38:47
  • 호수 1522호
  • 댓글 0개

용인동부경찰서 불송치 결정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군부대 이전 사업을 주도한 A사가 투자자로부터 사기 혐의로 피소됐다. A사 대표가 투자금 일부를 사적으로 유용해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앞서 A사는 용인시로부터 업무에 관한 권한을 받았다며 2015년도부터 16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2월28일 용인동부경찰서는 고소사실에 대한 조사 결과 불송치를 결정하면서 A사와 투자자 측의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제3야전군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 출신의 백군기 전 용인시장은 이른바, ‘포곡항공대’ 이전 사업을 지난 2018년 지방선거서 당선된 뒤 공약 실천으로 내세웠다. 백 전 시장 공약에 따르면, 용인시는 육군항공대 이전을 2022년까지 완료하고, 항공대 부지에 2025년까지 관광 신도시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말 바꾸기

포곡항공대 이전 사안은 12년 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현수막 정치로 내거는 단골 공약이었다. 포곡·모현·유림동 지역은 1975년 부대 창설 이래 헬기 소음 등으로 몸살을 앓아왔기에 이전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반면, 주민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지역주민들을 선동하는 정치적 사업”이라고 한탄했다.

백 전 시장이 재직 기간 중 말을 바꾸면서 주민들의 원성이 커졌다. 2022년 백 전 시장은 4차례 정도 용인시청서 항공대 이전에 대한 간담회를 열었다. 당시 백 전 시장은 “국방부협의회서 3~4곳 이전 예상 부지를 검토한 적이 있다”면서도 “항공대를 이전할 부지 선정에 주민들과 충분한 합의를 이뤄야 하는 조건이기에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문제”라고 시인했다.

2021년부터 2022년 4월까지 A씨는 용인시를 대신해 이전 대체부지에 주민들을 상대로 주변영향평가 보고 및 주민의견 청취 간담회를 5회에 걸쳐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되면서 현수막이 걸렸고, 주민들의 집단 민원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 전 시장은 ‘과거에 운용 불가 판단을 받은 인근 지역의 탄약고 기지로 용인 포곡항공대를 이전하면 민원 없이 이전이 가능하다’는 취지로 주장했음에도 끝내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군부대 이전은 많은 민원과 주민들의 갈등 때문에 군부대서 군부대로 이전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걸었던 셈이다.

포곡항공대 이전 사업은 수년 전부터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지난 2015년 용인시가 A사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처인구 포곡읍의 용인 육군항공대 이전 사업 및 항공대 부지(이전 적지)를 포함 한 인근 부지 개발사업과 관련 A사는 “용인시 방침에 따라 모든 사업비를 부담하여 민간사업자로서의 책무를 이행하기로 한다”는 각서를 용인시에 제출하였다.

이에 용인시는 “합의각서 승인 건의서 작성 전까지 이전지 민원을 해결해야 하나 만일 민원이 해결되지 않을 시는 진행 중인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공모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용인시는 투자유치사항을 수시 보고 및 이행 각서 등을 제출할 것을 A사에 요구함에 따라 A사는 용인시 기본방침대로 민간사업자로서의 책무를 이행할 것과 본 사업에 소요되는 모든 사업비를 책임 조달하되 이 사업으로 얻어지는 토지를 용인시로부터 양여받아 개발사업을 추진한다. 이어 용인시는 “이행 각서대로 만전을 기할 것과 전체 사업비는 A사가 부담하고 A사에 대해서는 사업이 구체화 되는 시점에서 재정적, 법률적, 행정적 검증을 할 예정이니 차질 없이 준비할 것과 만일 이전지 민원을 해소하지 못할 시는 추진 중인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공모방식으로 민간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적혀있다.

A사 대표이사 정씨는 해당 공문 등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주며 사업 참여 투자 계약을 체결했다. 실제로 B 종합건설은 A사와 계약체결을 통해 5억원을 투자했다.

계약서에 따르면, 2014년 9월18일 용인시는 행정을 지원하고 사단법인 용인시 포곡 관광발전협의회는 민자 유치 방안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용인시와 포곡발전협이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A사는 포곡발전협의회로부터 사업 추진 업무에 관한 전반적인 권한을 2014년 10월17일 이양받았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용인시는 “포곡항공대 이전 사업은 사업 방식 결정을 위해 국방부와 기획재정부 간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단계로 A사가 제출한 사업 시행자 지정은 검토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이에 투자자 측은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2021년 투자 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도 백 전 시장이 공약을 이행할 것처럼 발표했기에 믿었다”며 “A사의 입출금 내역을 들여다보니, 정 대표의 급여와 지인의 경·조사비, 직원 월급 등으로 지출됐다”라고 덧붙였다.

투자사 측의 인터뷰에 대해 A사 측은 “투자선수금 내역서는 2015년부터 10여 년 동안에 걸쳐 유치한 단기 투자금을 포함한 내역으로 단기 투자금 3억원은 약정에 따라 이미 반환됐다”며 “군사시설 용역 및 도시개발계획, 민원 등, 각종 기술 용역비 등이 120억원이 넘어 당해 연도의 지출 내역의 일부이며 급료 등은 A사의 주총 및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 운영세칙에 따라 지급됐다”고 관련 증빙 서류를 제시했다.

용인시장 후보들의 ‘단골 공약’
번복 사태로 투자 피해 수십억

이에 지난해 말 투자자 측은 A사를 상대로 특정경제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용인동부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불송치 무혐의 결정한 상태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A사는 7개의 회사로부터 총 16억8000만원을 투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용인시는 정 대표가 출범한 시민단체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해당 시민단체는 포곡항공대 이전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1월25일 출범했다.

정 대표는 출범식서 “이전 후보지를 찾아 국방부의 작전성 검토까지 받아 놓고 이전 후보지서 주민간담회까지 실시하고도 추진하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며 “이전 후보지를 정하지 않았다는 용인시 발표와 달리 이전 후보지는 내정된 상태다. 용인시는 주민간담회 결과를 국방부에 송부하는 등의 절차를 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용인시는 “사실과 명백히 다른 허위 주장”이라고 공식 반박했다.

시는 또 “항공대 이전은 일반 사업과 달리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며, 이전 추진에 따른 각종 민원 해결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깊은 검토와 결론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일부 개발업자들을 중심으로 투자를 부추기는 사례도 발생했는데 나중에 사실관계를 안 투자자들이 투자를 유인한 사람을 경찰에 고소한 적도 있는 만큼 사실과 다른 주장에 현혹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항공대를 이전한 지역은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규제를 받게 되고, 반대 민원이 표출될 가능성이 있기에 주변 지방자치단체가 협조를 해줘야 한다. 주변 영향평가와 관련한 용역도 시행해야 하고, 이전에 따른 소음이나 진동, 보상 등에 관한 민원도 해결해야 하는 등의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포곡항공대 이전은 후보 지역주민과의 공감대를 형성해 민원 대책을 수립해야 하고, 공법 규제·수익성 검토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사항으로, 현재까지 이전 후보지로 검토되는 곳은 없으므로 후보지가 내정됐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말했다.

이어 “포곡읍서 항공대 이전을 원하는 목소리가 나온지 오래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나, 군에서 군사 전략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평가를 받는 군부대를 이전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이해관계에 대한 조율도 필요하기 때문에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만일 사업 시행자를 사칭하며 투자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정 대표는 지난해 11월25일 상공회의소에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2017년도에 국방부의 작전성 겸토결과 통보에 따라 용인시는 이미 이전 대체부지 00리 주변에 대한 주변영향평가 기초조사 용역을 실시하여 2020년 9월 민원대책을 수립하여 국방부에 제출하였고 이전 대체부지에 대한 주민간담회도 실시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후보지가 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에 불과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A사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모 투자사는 A사의 비공개 문서를 이용해 투자를 받으려다가 발각돼 시정 통보를 받고 A사가 민원을 해소하지 못해 사업이 장기 지체되고 있다”며 “A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해배상 등, 청구 소를 제기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A사는 이전지 민원해소에 대한 책임과 주체이다. 다만, 사업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에 대해선 용인시와 국방부 간의 협의가 지연돼 사업이 지체되고 있는 것으로 모 투자사의 청구 소를 기각한다고 판결한 바 있듯이 법원도 A사를 이 사건 사업의 민간사업자로서의 책무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A사는 이미 2015년도부터 용인시 업무 기본방침 통보에 따라 사업비를 투입해 이 사건 사업 승인 절차에 필요한 문건을 용인시에 제공해 왔고, A사가 투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용인시가 민간사업자를 공모방식으로 선정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A사의 지위에는 변함이 없다”고 반박하며 “오락가락하는 용인시의 행정으로 인하여 사업이 지연되고 있을 뿐 아니라, 투자자와의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smk1@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