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희는 결제만…” 온누리상품권의 두 얼굴

‘돈 된다’ 소문에 너도나도 허위 매장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소상공인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온누리상품권이 비가맹 서점들의 돈줄로 전락했다. 온누리상품권 비가맹 서점들은 가맹 서점이 돈이 된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허위 매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올바른 경쟁 환경을 위해 만들어진 도서정가제도 무용지물이 됐으며, 온누리상품권의 목적과 취지는 퇴색된 지 오래다. 온누리상품권은 과연 지금도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일까?

현재 온누리상품권 비가맹 서점들이 허위 매장을 만들고 있다. 일부 비가맹점들은 ‘제2의 매장(허위 매장)’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책을 판매하지 않고 결제만 대행하는 방식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 비가맹점들이 편법을 써가며 허위 매장을 내는 이유는 소비자들이 가맹점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짜 매장들

온누리상품권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된 정책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온누리상품권 비가맹 서점들이 이를 악용해 불법적인 할인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쓰이고 있다. 온라인 거래상으론 도서정가제가 엄격하게 적용되는 한편, 온누리상품권 가맹 서점서 상품권을 이용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할인율이 대폭 상승했다.

소비자들은 이를 활용해 정가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매할 수 있어 가맹 서점으로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들은 할인율이 높은 가맹 서점만 찾아다니며 책을 구매하는데, 지역주민이 아니라도 혜택만 보고 타지역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 전집(묶음 도서)의 경우, 평균가격이 40~60만원대로 높은 편이기 때문에 부모들은 온누리상품권을 활용한 할인 혜택을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지난해 명절 기간, 온누리상품권은 페이백 이벤트까지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결과, 가맹 서점들은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비가맹 서점들이 이를 악용해 허위 매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대행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온누리상품권의 비가맹 서점들은 제2의 매장(허위 매장)을 만들어 가맹점으로 등록하고 온누리상품권 결제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 운영 매장이 아닌, 결제만 가능한 ‘유령 매장’인 것이다.

예를 들어 소비자는 A 서점서 책을 고른 후, 여기서 만든 B 서점(허위 매장)서 결제만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서 소비자는 온누리상품권을 사용해 최대 10~15%의 추가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명절 기간에는 페이백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한 서점 관계자는 “온누리 결제가 가능한 곳을 찾는 고객이 많아지면서, 일부 서점서 이런 방식이 사실상 공식적인 판매 루트처럼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현재 확인된 허위 매장만 26곳에 달했다. 심지어는 전국 매출 1‧2위 매장들도 허위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온누리 가맹점 둔갑한 서점들
‘유령 매장’으로 매출 올리기

해당 매장들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린이책 전집을 구매하고 싶다”고 하자,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아님에도 “온누리상품권으로 결제가 가능하다”며 구매를 유도했다. 한 매장은 “가맹점이 아니라 여기서는 결제가 어렵다”며 “책은 이곳에서 보고, 결제는 다른 곳에서 가능하다”며 허위 매장 결제를 안내했다.

한편, 출판사도 허위 매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아주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제보자는 “출판사들도 비가맹점들이 허위 매장을 운영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를 허용해준다”고 주장했다. 해당 의혹을 받고있는 A 출판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며 “알았다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또 다른 B 출판사는 답을 주지 않았다.

온누리상품권 가맹점 등록에는 일정 요건이 필요하지만, 관리 부실로 인해 허위 매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맹점 등록은 실제 운영 여부나 재고 보유 여부 확인 없이 단순히 사업자등록증과 매장 사진 등의 서류만으로도 가능했다.

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누리 가맹점 등록 절차가 상대적으로 간단하기 때문에 편법을 이용하는 업자들이 쉽게 등록할 수 있는 구조”라며 “실제 판매가 이뤄지지 않는 가맹점들은 전수조사를 통해 가맹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20조에 따르면 ‘온누리상품권 가맹점이 부정 사용을 하거나 실질적인 거래 없이 결제만 대행하는 경우 가맹점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지만, 현재까지도 정부기관의 단속은 미미한 상태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하 소진공)은 신고가 접수된 일부 서점들에 대해 단순 유선 계도 조치만 시행했을 뿐, 실질적인 단속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가 소진공의 계도 조치 후 해당 매장에 전화해 확인하자, 여전히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하다고 안내했다. 소진공은 “1차적으로 유선 계도 조치 후 재신고가 들어오면 현장 조사를 나간다”며 “현장 조사가 이뤄지려면 명확한 증거자료 제출이 필요하며, 내부서 정한 기준에 충족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기준에 대해선 “답변 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결국 대형 출판사들이 이익 독점”
소진공, 신고에도 계도 조치 끝?

온누리상품권의 도서 품목 허용이 도서정가제와 상충된다는 점도 문제다. 온누리상품권이 서점서 결제 수단으로 사용되면서 도서정가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서적의 가격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 대형 서점과 중소 서점 간의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되고 있으나, 온누리상품권을 통한 추가 할인과 페이백이 가능해지면서 실제 시장에서는 정가 이상의 할인율이 적용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온누리 상품권 비가맹 서점에 불리하게 작용하며, 결국 온누리 상품권 가맹 서점과의 불공정 경쟁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 서점 관계자는 “온누리 가맹 서점이 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차이가 커지면서, 서점 간 형평성이 무너지고 있다”며 “결국 대형 출판사들과 일부 온누리 가맹 서점들이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온누리상품권 제도가 도서정가제와 충돌하면서 서점 업계 내부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의 도서 품목 적용 여부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서점 업계 관계자는 “도서정가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온누리상품권이 적용되면서 사실상 정가제를 우회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도서시장이 변질된다면 결국 할인 경쟁이 심화되고 비가맹 서점들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온누리상품권이 공정 경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만큼,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는 “가맹제한업종에 관해 2024년 9월 검토한 바 있으나, 서점은 사업 운영 취지에 어긋나지 않아 제한 업종으로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서점 업계에서는 온누리상품권을 활용한 불공정 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같은 방식의 편법 거래가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소상공인 위해?

온누리상품권은 소상공인의 매출 증진을 위해 도입됐지만, 현재는 특정 서점들의 편법적인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허위 매장을 통한 편법 결제, 도서정가제의 유명무실화,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까지 맞물리면서 공정한 도서시장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온누리상품권이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인지, 특정 업자들의 이익 수단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기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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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