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딸 죽고…’ 노상원 위험한 생각, 왜?

“북한 간첩이 죽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 내용이 공개되고 있다. ‘수거’ ‘사살’ 등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이 즐비하다. 일부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및 정보사 간부들과 논의한 내용이다. 군 수뇌부 여럿은 김 전 장관에게 노 전 사령관의 ‘위험한 생각’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다급해진 노 전 사령관을 컨트롤하는 데 실패했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3 불법 계엄 당일까지 매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이때부터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하루빨리 계엄을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왜 조급해졌을까?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직전 자신의 딸을 잃으면서 망상에 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계엄 비선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 및 정보사 간부들과 회동하며 자신의 수첩에 계엄에 대한 구상을 적어왔다. 이들은 계엄 날짜에 대해 2025년 초가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대통령 복귀가 유력하던 트럼프 측과 부정선거 관련 논의 후 계엄을 선포할 계획이었다는 주장이다.

정보사 간부들은 이 같은 계획이 그저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의 ‘망상’이었다고 지적한다. 현실화 가능성이 ‘0’에 가깝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 후 추진을 시도하려 했다고 해도 외교부와 대통령실 참모들의 반대가 극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1월 초, 딸의 소식을 접하고 급해졌다.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은 딸의 죽음을 알게 되자 세상에 대해 분노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의 딸 A씨는 지난해 11월 초, 서울 서초구 방배동 모처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씨가 숨진 지 10일이 지났고 ‘자연사’했다고 결론 냈다. A씨가 살던 건물에는 노 전 사령관의 아내 B씨도 거주했다. B씨는 A씨의 죽음에 대해 굉장히 의연하게 대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C씨는 “용래(노 전 사령관의 개명 전 이름) 딸이 집에서 잘 나가지 않고 30대인데도 친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장례가 간단하고 빠르게 끝났다. 세상을 등진 지 10일 후에야 발견됐다는 얘길 듣고 이해를 못 했다. 그만큼 용래가 아내와 수년간 자주 싸웠는데 가족들 간의 사이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딸들도 그런 가정환경 트라우마로 인해 벗어나고 싶어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망 후 급해져…김과 계엄 당일까지 매일 만나
“하루빨리 선포” 노 의견, 김 통해 윤에 전달?

C씨는 “성범죄로 불명예 전역했을 때도 군 조직에 대한 불만과 배신이 컸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했을 정도인데 딸의 죽음을 들었을 때는 어땠겠냐”며 “‘북한 간첩이 내 딸을 죽인 것’이라며 충격에 빠졌고 진정하라고 했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후 김 전 장관에게 계엄 계획을 앞당기고, 부정선거의 진실을 알아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노 전 사령관은 딸의 죽음 이후 김 전 장관과 국방부 장관 공관에서 계엄 당일까지 매일 미팅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 전 사령관의 의견은 김 전 장관을 통해 윤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윤 대통령은 동의했고 결국 지난해 12월3일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계엄을 선포했다. 비상식적 상황을 인식한 일부 군 간부들이 수뇌부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으면서 계엄은 6시간 만에 실패했다.

윤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 김 전 장관 등은 지난해 초부터 계엄을 준비했으나 제대로 된 회의를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등이 반대한 게 컸다. 준비부터 부실했던 셈이다.


그러나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계엄이 한 달 이상 지속됐다면 ‘노상원 수첩’에 적힌 ‘망상’들이 실현됐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전했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공작에 비전문가라고 해도 어떻게 해서라도 계획을 실행시키려는 사람”이라며 “같은 편 ‘폭사’ 지시까지 했는데 뭔들 못하겠냐”고 주장했다.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자신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인원을 구성해 수사2단을 이끌려 했고 계엄이 지속됐다면 김용현에게 보고 후 ‘백령도 작전’을 실행하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수거’ ‘사살’ 표현 담긴 수첩 일부 플랜 이행
국과수, 필적 감정 불가 결론…심리선 이뤄지나

<한겨레신문>이 입수한 70쪽의 노상원 수첩에는 국회가 있는 “여의도 봉쇄”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실제 지난 비상계엄의 핵심 목표는 국회였고 봉쇄 시도도 이뤄졌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여의도 봉쇄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고, 실제 비상계엄 때도 국회에 군병력이 투입됐다.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무장 군인 1605명, 경찰관 약 3790명을 동원해 국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 꽃 등을 점거하고 출입 통제와 체포, 구금, 압수수색 등을 시도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계엄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병력의 국회 출동도 수첩서 언급된다. 수첩에는 “경계병은 수방사 인력 활용(일부 여의도 정도)”이라고 적혀있다. 수방사는 실제 비상계엄 당시 국회를 통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첩 ‘수거팀 구성’ 대목에 등장하는 ▲수거 대상 명부 작성 ▲행사 부대 지정 ▲사복 근무 ▲경찰들 활용 방안 등은 실제 시행되거나 시도됐다.

명부는 실제 작성돼 김 전 장관이 여 전 사령관에게 건넸다. 이를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 등 복수의 인물이 전달받았다. 국회와 선관위 등에는 사복 차림으로 첩보·정보 수집 등을 하는 군부대인 ‘편의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경찰 활용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계엄 당일 조 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을 삼청동 안전 가옥(안가)으로 불러 계엄 관련 지시를 내렸다. 윤 대통령이 직접 건넨 1장짜리 A4 용지에는 장악 대상 기관 10곳이 적시됐다.

수첩에는 계엄을 지휘할 합동참모본부 지휘소를 경기도 과천에 구성하는 방안도 적혀있다. 여기엔 “박씨는 지휘소 구성”이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이는 지난 12·3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건의 다른 부분에도 ‘박안수’의 역할은 “계룡대: 수집 장소, 전투조직 지원”이라고 적혀있다.

과대망상?

수첩에는 김 전 장관에게서 주요 인사 체포 명령을 받았던 여 전 사령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그의 역할은 “행사 인원 지정, 수거 명부 작성”으로 돼있다. 이 중 수거 명부에는 최소 14명 이상이 작성됐다.


한편 경찰 국가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을 보내 필적 감정을 의뢰했으나 ‘감정 불능’ 판정을 내렸다. 노 전 사령관은 검찰에서도 수첩에 대해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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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