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을사년엔 더 어둡다

2025년 새해다. 지난해 부동산시장 결산과 올해 전망 및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를 살펴보자.

지난해 부동산시장은 정책 영향 등으로 차별적 회복세가 두드러졌다.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 외 지역의 집값과 청약 흥행 양극화가 극명했고, 서울 내에서도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와 ‘마·용·성’ 등 핵심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서 집값 회복은 더딘 상황이다.

지역별 집값 양극화를 견인한 것은 수도권의 재건축 아파트였다.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선호 현상이 계속되자 건설사들은 미분양 우려가 적은 수도권 공급 위주로 늘려왔다.

지난해 수도권서 14만5560만가구, 지방은 11만3227가구가 공급됐다. 2023년 말 조사된 지난해 계획 물량 26만5439가구 중 97%가 실제 공급됐고, 87% (22만9904가구)는 분양으로 이어졌다. 최근 3년간 계획 물량 대비 실적이 평균 71% 수준임을 감안하면 비교적 높은 실행률이다. 

강남 3구
마·용·성

2023년 전국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13.64대 1이었다. ▲서울 154.5대 1 ▲수도권 21.55대 1 ▲지방 6.62대 1 등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이는 지난해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 회복 지역이 늘어나 시세차익을 노리는 ‘로또 청약’과 신축·아파트 선호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로 큰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던 강남권 ‘대어급 신축’ 아파트는 서울 평균 청약 경쟁률도 2배가량 웃돌며 강남, 서초구 2곳에만 올해 사용된 전체 청약 통장 수의 약 58%가 몰렸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의 공급이 이어지며 평균 분양가도 급등했다. 지난해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 분양가격은 5456만원으로, 2023년 말 3508만원보다 55.5%(1948만원) 증가했다. 부동산R114가 2000년부터 분양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연간 기준으로 최대 오름폭이다. 

반면 전국 기준 3.3㎡당 평균 아파트 분양가는 2023년(1800만원)보다 239만원 증가한 2039만원으로 집계됐다. 제주의 평균 분양가격은 2614만원으로 서울 다음으로 높았다. 이어 ▲부산 2356만원 ▲울산 2125만원 ▲대전 2035만원 ▲대구 2019만원 ▲경기 2006만원 순이었다.

임기 중 270만호 공급 목표를 설정한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초부터 공급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가장 먼저 1·10 대책을 통해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1기 신도시의 선도지구 사업을 발표했다. 또 비아파트 수요 진작을 위해 소형 신축주택에 대한 세 부담을 낮추고, 관련 건축과 입지 규제 등을 완화했다.

이 외에도 공공 주택 14만호 이상 공급 등을 통해 공급에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상반기 주택 공급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계속되자, 정부는 또다시 8·8 주택 공급 대책을 내놨다. 여기에는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신규 택지 공급 확대, 재건축·재개발 촉진법(특례법)을 통한 ‘사업시행계획’과 ‘관리처분계획’의 동시 수립, 정비사업의 수익성 제고를 위한 용적률 상향, 비아파트 시장 정상화를 위한 공공 신축 매입 확대, 미분양 매입 확약, 35조원 규모 PF대출 보증 등이 포함됐다.

수도권 공급 재건축 분위기 고조
지역별·중저가 양극화 현상 심각


이 같은 정책의 후속 조치로 지난해 11월 12년 만에 서울 그린벨트 해제가 발표됐다. 해제와 함께 신규 택지가 조성됐고, 서울에서는 강남 생활권인 서초구 서리풀지구(2만호), 경기도에서는 고양 대곡 역세권(9000호), 의왕 오전왕곡(1만4000호), 의정부 용현(7000호) 등 5만호를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주민 동의, 사업자 수익성 확보나 분담금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 상황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 사업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분당(1만948가구), 일산(8912가구), 평촌(5460가구), 중동(5957가구), 산본(46 20가구) 등 1기 신도시 내 13개 구역 3만6000가구가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선도지구로 선정되면 안전진단 완화·면제, 용도지역 변경, 용적률 상향, 인허가 통합심의 등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여러 혜택을 받는다. 정부는 선도지구의 2027년 착공해 오는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또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 지난해 9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을 주택담보대출(정책 대출, 전세 대출, 중도금 대출 등)을 포함한 모든 대출 상품에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대출 규제 강화의 일환으로 이른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 시행’, 수도권 주담대에 대해선 1.2%포인트(p), 지방에서는 0.75%p의 스트레스 금리를 차등 적용하기로 했다. 

여기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주담대 만기를 최장 50년서 30년으로 줄이면서 대출 한도가 크게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연초부터 꾸준히 올라 8월 넷째 주 70.5로 정점을 찍은 서울의 매수심리지수(KB부동산 발표 기준)는 스트레스 DSR 규제 적용이 시작된 9월 57.8까지 급락했다.

매수우위지수는 아파트 매매 문의량을 알 수 있는 수치로, 지수가 100을 초과할수록 ‘매수자가 많다’를, 100 미만일 경우 ‘매도자가 많다’를 의미한다.

잇단 
대책에도…

서울 아파트 월별 매매 거래량도 2023년 12월 1790건서 지난해 7월 9518건으로 7개월 연속 증가하다가, 대출 규제가 본격화된 8월부터 7609건으로 꺾이기 시작해 스트레스 DSR 적용이 시작된 지난해 9월에는 4951건으로 떨어졌다. 대출 길이 막힌 사람들이 주택을 구입하기 더 어려운 여건이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십억원에 이르는 아파트가 대다수인 강남 등 상급지에선 대출 의존도가 크지 않았던 탓에, 서울 지역 내에서도 중저가 아파트와의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1분위(하위 20% 평균) 평균은 4억9061만원, 5분위 평균(상위 20% 평균)은 26억8774만원으로 5분위 배율이 5.5배로 벌어졌다.

이는 2008년 통계 조사 이래 역대 최대 격차다. 전국의 아파트 5분위 배율은 10.93으로 역시 역대 최대 격차를 이어갔다.

집값 상승 피로감에 전세 수요는 이탈했다. 전셋값 상승과 대출 규제 등으로 일부 수요자들은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는 사례도 속출했다. ‘전세의 월세화’다. 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아파트 월세 지수는 10월 대비 1.4p 상승한 119.3을 기록해 KB부동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5년 12월 이후 가장 높다.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을 보면 지난해 11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서 월세 비중은 44.1%로 10월(41.2%)보다도 크게 상승했다. 전세 사기 여파에 전세 기피가 심화한 빌라 등 다세대 주택에선 이미 월세 거래가 전세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지난해 1~11월 전국 연립·다세대 주택 임대 거래 중 월세 거래는 6만6194건으로, 2023년보다 10.1% 늘었다. 반면 전세 거래량은 5만7604건으로 같은 기간 13.3% 줄었다.

2025년 부동산시장도 경기침체와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반기는 대통령 탄핵 정국과 대출 규제가 지속되면서 관망세가 이어질 거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다만 전반적으로 분양과 입주 물량 감소로 수도권에서는 전셋값과 매매값이 자극받을 요인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기대되는 만큼 부동산시장에 다시 자금이 몰린다면 수도권 주요 지역 중심의 수요 양극화가 심화될 거라는 분석이다.

올해도 ‘얼죽신’ 선호 지속
‘상저하중’ ‘전약후강’ 전망

국내 주요 25개 건설사는 올해 전국 158개 사업장서 총 14만6130가구(민간 아파트 기준·임대 포함)를 분양할 예정이다. 이는 2000년 이후 최저치로, 지난해(22만2173가구)보다 34% 줄어든 수준이다. 지난해 실제 분양도 계획 물량의 83.7%에 그친 것을 고려하면, 실제 물량은 이보다 더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공급 물량(-35.7%)이 가장 크게 줄어든다. 서울은 18% 감소한다. 지난해 청약 광풍이 불었던 강남권 등의 분양도 올해에는 대거 줄어든다. 지난해 강남권에서는 8개 단지 2781가구가 일반분양으로 나왔는데, 올해에는 7개 단지 2113가구로 수백가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당장 올해 전국 입주 물량도 총 26만3330가구로, 지난해 36만4058가구 대비 10만가구 이상의 큰 물량 감소가 예상된다. 분양과 입주 물량은 각각 주택 공급의 선행·후행 지표 역할을 한다. 입주 물량이 당장 시장에 공급되는 주택이라면, 분양 물량은 공사를 거쳐 2~3년 뒤 시장에 공급될 주택이다.

두 물량이 동시에 줄어드는 것은 시장 상황 악화로 몇 년 전부터 아파트를 덜 지었고, 침체가 계속된다면 앞으로도 더 지을 계획이 없다는 의미다.

경기침체 외에도 탄핵 정국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 공급 정책 동력도 떨어지면서 불안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정비사업 기간을 대폭 줄인다는 내용의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 통과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고, 현 정부가 추진하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도 전망이 어둡다.

역대 최대치로 목표를 잡은 공공주택 착공 및 인허가 목표도 국정 리더십 공백으로 정책 추진 동력이 유지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상황이 이렇자 주택 수요가 높은 서울 내에서는 전셋값과 집값이 자극받을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출 규제 지속과 탄핵 정국으로 매수 심리가 올 상반기 다소 눌릴 것으로 전망하나, 상황에 적응되면 결국 주요 지역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본격적인 공급 절벽으로 전세 가격이 불안해지면서다.

주택 수요자들이 주택을 보유하는 평균 기간을 고려했을 때 수개월 정도의 탄핵 이슈로 향후 수요를 짐작할 수 없겠다. 다만 주택 공급 상황만 보았을 땐 당장 올 상반기 중 지역을 불문하고 전셋값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출 부담에 중저가로 수요가 이동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이며, 하반기로 갈수록 공급 축소가 부각돼 이는 결국 시차를 두고 집값 상승으로 나타나게 될 전망이다. 

치솟는
전세가

한 부동산 전문가는 “2025년 부동산시장은 ‘상저하중’이 예상되는데, 특히 탄핵 정국과 1%대 경제성장률 전망으로 전반적으로 주택시장의 활발한 움직임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다만 하반기에는 공급 부족에 따른 전셋값 상승이 매매시장에 영향을 주면 수도권 일부에서는 상승 전환 가능성이 있다며 지방 부동산은 침체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올해에는 탄핵, 경기침체, 강력한 대출 규제 등 집값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인도 있지만 금리 하향 조정, 주택시장 진입 인구 증가, 공급 부족 누적 등 상승 요인이 더 커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는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 

주산연은 최근 발표한 ‘2025년 주택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집값이 3~4월까지 약세, 중반기 이후에 강세를 보이는 ‘전약후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간 상승률은 전국은 0.5% 하락, 수도권 0.8% 상승, 서울 1.7% 상승할 것으로 보았다.

2025년 부동산시장엔 큰 변화가 예고된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는 한편 서민과 청년층을 위한 금융 지원이 확대되고 주택 취득 관련 세제 혜택도 커진다. 다음은 새해 달라지는 부동산 제도들이다.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 절반 수준으로= 올해 1월부터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도상환수수료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난해 약 1.2~ 1.4% 수준이었던 5대 시중은행의 중도상환수수료가 올해엔 0.6~0.7% 수준으로 낮아진다. 해당 혜택은 올해 1월 중순 이후 신규 대출에 적용된다.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요건도 완화된다. 부부 합산 연소득 기준이 기존 1억3000만원서 2억5000만원으로 상향된다. 올해부터 3년간 출산한 가구를 대상으로 하며 대출 기간 중 추가 출산 시 금리 우대 폭도 기존 0.2% 포인트서 0.4% 포인트로 확대된다. 

올 7월부터는 스트레스 DSR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도입된다. 스트레스 DSR은 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가늠하는 제도로 시행 이후에는 대부분의 금융권 대출 한도가 줄어들 전망이다. 금융권 대출을 고려 중이라면 7월 이전에 대출을 진행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지방 주택 사면 1주택자 혜택 유지= 지방 소멸 방지를 위해 인구 감소 지역과 비수도권 주택 취득에 대한 세제 혜택이 강화된다. 공시가격 4억원 이하 주택을 신규 취득할 경우 기존 1주택자로 간주해 세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는 서울에 집을 보유한 사람이 지방에 주택을 하나 더 구입하면 2주택자가 돼 세금 혜택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올해부터 지방에 있는 집을 하나 더 사더라도 1주택자로 인정해준다. 비수도권서 전용면적 85㎡(약 25평) 이하 또는 6억원 이하 미분양 주택을 구매하는 경우도 혜택이 적용된다.

주택을 매도하거나 보유할 때 내는 세 부담도 완화된다. 양도소득세는 취득 시 공시가격 기준으로 12억원까지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제 한도가 12억원까지 확대된다. 장기 보유(15년 이상) 또는 70세 이상 고령자는 최대 80%의 세금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청년층에 분양가 80% 저리 대출= 청년 주택드림대출도 출시된다.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청년층을 위해 분양가의 최대 80%까지 낮은 금리(최저 2.2%)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다. 대상은 만 19~34세 무주택 청년으로 연소득 7000만원 이하(부부 합산 1억원 이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주택청약종합저축 소득공제 대상도 확대된다. 연소득 7000만원 이하 무주택 세대주뿐 아니라 배우자까지 청약저축 납입액의 40% 한도서 연 3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청년우대형 주택청약종합저축의 경우에도 이자소득 비과세 혜택이 배우자에게까지 확대된다. 비과세 한도는 500만원이다.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가능= 올해 6월부터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이 가능해진다. 현재는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면 사업을 시작할 수 없다. 또 기존 ‘재건축 안전진단’ 명칭이 ‘재건축 진단’으로 바뀌며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기 전까지 진단을 통과하면 된다.

규제 완화 조치로 재건축을 위한 진입 문턱이 낮아지는 동시에 재건축 기간이 최대 3년 가까이 단축될 전망이다. 아울러 재건축 등 정비사업 시 주민 의사결정 과정에 전자 방식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도록 해 의사결정도 크게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3~4월 약세
중반 후 강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이 주도하던 도심복합사업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안이 개정된다. 신탁사와 리츠(부동산 투자회사) 등이 사업자로 참여해 용적률 상향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 준주거지역의 경우 용적률이 최대 700%까지 상향된다. 다만 개발 이익의 일부는 공공주택으로 환원해야 한다.

올해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주택 공급 확대와 금융 비용 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들이 시행될 예정이며, 특히 서민·청년층·고령자 등 다양한 계층을 위한 맞춤형 혜택이 강화된 점이 특징이다.

<webmast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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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