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피 말리는 '2차대전' 진검승부 막전막후

  • 조아라 archo@ilyosisa.co.kr
  • 등록 2012.10.17 09: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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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안 와?" VS "그래도 못 가!"

[일요시사=조아라 기자] 유력한 야권인사가 허리춤에 찬 검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더니 결국 꺼내 들었다. 처음으로 서로를 향해 칼끝을 겨냥한 것. 그동안 문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타이틀로 안 후보를 간접적으로 압박해 왔다. 안 후보도 '정치쇄신'이라는 조건으로 완곡한 공격 패턴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번은 확실히 다르다. 양 후보 모두 직접 단일화를 언급하고 나선 것. 이들의 피 말리는 2차대전 진검승부를 들여다봤다.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 1차전은 지난 9월19일에 안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지지율만 보면 그렇다. 경선이 끝난 직후 야권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두 자릿 수로 안 후보를 따돌렸던 문 후보였다. 하지만 안 후보가 본격 출사표를 던지자 두 자릿 수로 안 후보에게 뒤쳐지며 그의 선전은 '1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식솔 가출에 민주당 멘붕
"문-안, 하나 되도록 최선"

이제는 전면전이다. 눈치만 보던 문 후보도 이번에는 공격 페달을 밟고 있다. 지난 9일 송호창 의원이 민주통합당을 탈당하고 안 후보 캠프에 합류하면서 이들의 경쟁은 본격화됐다.

안 후보는 자신의 아군이 된 송 의원에 대해 "참 맑은 힘이 더해졌습니다"라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송 의원은 탈당하면서까지 안 후보 측 캠프에 합류한 이유에 대해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제 아이의 미래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낡은 정치인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정권교체와 새로운 정치는 우리 시대의 소명"이라고 배경을 소개했다.

문 후보는 송 의원의 탈당과 안 캠프 합류에 대해 "아프다"는 말 한마디만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은 비상이 걸렸다. 이러한 현상은 대선을 앞두고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과정에서는 김민석 전 의원이 그랬다.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의원들과 소장파 대표주자였던 김 전 의원은 당시 정몽준 후보의 신당인 '국민통합21'로 당적을 옮겼다.

2007년 당시 문국현 후보의 창조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영춘 전 의원도 이에 속한다. 당시 의원들의 이러한 당적 이동 명분은 '야권단일화'였다.

하지만 막판 정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단일화는 실패했다. 문국현 후보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과 후보단일화를 하지 않고 결국 대선 완주를 택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철새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안았다. 한 전문가는 "관건은 송 의원의 탈당이 과연 야권을 재편하는 수준까지 이어질 것인지 여부"라고 분석했다.


문 후보 측 진성준 대변인은 매체를 통해 "송 의원의 고민을 이해한다고 해도 정치도의에는 어긋나는 일이다. 또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단일화 가교 외친 송호창 탈당, 긴장감 거세져
안철수, 이해찬의 '무소속 불가론' 정면 반박 

민주당의 거센 비난에도 송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제 진심을 이해하고 받아주시니 큰 위안이 됩니다. 모든 것을 던진 만큼 의연하게 안철수, 문재인 두 분이 하나 되도록 최선을 다해 비상하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단일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문-안 사이에서 중매를 서두르는 또 한 사람은 '제3지대'에 있는 조국 서울대 교수다. 조 교수는 지난 11일 매체를 통해 "안 후보가 단일화 전제조건으로 당혁신, 정치혁신을 내걸었다"며 "그런데 그 혁신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양쪽 다 정확히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민주당과 안 캠프가 공동으로 정치혁신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합의를 문 후보가 반드시 실천한다는 약속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매체를 통해 "정치혁신 해야 한다는 세력들이 함께 힘을 모으자는 제안은 좋은 취지"라며 "원칙으로 후보단일화하겠다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후보단일화에 대한 원론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안 후보 쪽에서는 전략적으로 판단하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단일화를 둘러싸고 양측의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문 후보와 안 후보도 공방전에 가세했다. 안 후보는 지난 7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개혁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앞세우며 7대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대선출마 기자회견에 이어 다시 한 번 쇄신을 강조한 것이다. 안 후보는 이에 덧붙여 특권과 독점적 정책을 폐기할 것을 주장했다.

이날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매체를 통해 국정감사 전략에 대해 "안 후보가 경쟁의 대상이면서 단일화 대상이기 때문에 ‘협력적’ 검증을 할 수밖에 없다"며 직접적으로 안 후보를 겨냥했다.

문 후보도 이날 안 후보의 발언을 겨눈 듯 "정당혁신, 새로운 정치는 결국 정당을 통해서만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맞받아쳤다.

"민주당에 정권 줄 것"
"무소속으로 양쪽 설득"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자신의 국정운영에 대한 안정감을 부각시키려는 복안으로 해석했다. 특히 문 후보는 "바깥에서 우리가 요구한다고 그게 그대로 다 실현되지 않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했다고 전해진다.

이때부터 양 후보 간 이상기류가 감지되면서, 문 후보는 정당을 내세우고 안 후보는 쇄신을 내세우며 전면전 워밍업에 들어갔다.

안 후보의 정책발표 다음날인 지난 8일. 한 언론사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안 후보가 문 후보를 13.5%p로 앞서며 압승을 거뒀다. 안 후보가 46.6%, 문 후보가 33.1%의 지지율을 기록한 것. 단일화 싸움에서 안 후보가 한 발 앞서 나갔다.

박 원내대표는 전날 검증을 선언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가 안 후보와 단일화 과정에 모바일투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은 것이다.

또한 "특정한 방법을 놓고 단일화를 이야기하면 마찰이 생길 것"이라며 "두 후보가 마주앉아 이야기하면 국민이 원하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 한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이는 박 원내대표가 여론조사 결과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 9일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매체를 통해 "전 세계 민주국가에서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국가를 경영한 사례는 단 한 나라도 없다"며 "무소속 대통령의 국정운영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안 후보의 무소속 정치행보를 거세게 비난했다.

박 원내대표도 "국민은 민주당에 정권을 줄 준비가 돼 있고 민주당은 그 준비로 단일화에 성공해야 한다"고 말해 안 후보를 겨냥, 정당을 내세웠다.

이에 안 후보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 대표께서 무소속 대통령은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할 수 있다"라고 짜증 섞인 투로 화답했다.

주어를 빼고 단일화 제목만 외치던 이들이 직접 상대를 거론하기 시작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일각에서는 이날 송 의원의 민주당 탈당으로 양측 경쟁이 가열되면서 더욱 공격적인 발언이 나온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안 후보도 더욱 각을 세우며 '무소속 불가론'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다.

안 후보는 "지금 상태에서 만약 여당이 대통령이 되면 밀어붙이기로 세월이 지나갈 것 같고, 만약 야당이 당선된다면 여소야대로 임기 내내 시끄러울 것"이라며 "차라리 그럴 바에야 무소속 대통령이 국회를 존중하고 양쪽을 설득해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으로의 단일화만이 승리할 수 있다"
"민의 대변해야 정당, 개혁에 도움 줄 것"

이날 문 후보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문 후보는 10일 전북도당에서 지역 당원들과 결의대회를 갖고 "단일화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낙관은 금물"이라며 "그저 단일화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당으로의 단일화만이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라며 민주당을 내세웠다.

이어 "민주당만이 반칙, 특권, 반민주의 새누리당의 저항을 이겨내고 성공하는 민주정부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래야 정치변화, 시대변화를 안정감 있게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서 "정당의 기반 없이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안 후보를 정면 공격했다.

이후 안 후보 측은 기자들에게 안 후보의 입장을 전달했다.

안 후보는 문자메시지에서 "정당 없이 대통령이 가능하냐면 다시 역으로 질문할 수 있다. 여당이 재집권하면 힘으로 날치기 통과하는 것이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야당이 집권하면 여소야대 환경에서 5년 내내 방해 받을 것"이라며

"그러면 일이 안 된다"고 했다. 안 후보는 이어 "대립의 정치하에서는 국회의원 100명이 있어도 자기 일을 하기가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정당정치를 둘러싸고 민주당과 대립이 날카로워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놨다. 안 후보는 "나도 정당정치를 믿는 사람"이라며 "정당이 없으면 직접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당이 민주주의를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믿음인데, 민의를 대변하지 않는 정당이 있으니 기존 정당이라도 민의를 대변하고 개혁하도록 도움을 주는 게 내 역할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 전문가는 매체를 통해 "향후 문 후보로선 정당기반 없이는 공동정부도, 분권형 정부도, 정치혁신도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안 후보를 압박할 공산이 크다"라고 전하며 "정치는 타이밍 싸움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 후보가 공동정부 구상안을 치고 나갈지, 아니면 안 후보 측이 '국민 공천권'을 앞세워 분권형 정부 구성안 담론도 쥐게 될지, '문·안 단일화' 승부는 이 지점에서 갈릴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여당은 힘으로 날치기
야당은 방해받을 것"

전문가들은 문·안의 싸움이 전과 달리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이들을 지켜보는 양측 지지자의 마음도 더불어 더욱 초조해지고 있다.

적에 대한 대비는 고사하고 아군끼리 총구를 겨누고 있으니 혹이나 어긋나는 것은 아닐까, 이들의 시름은 깊어만 가고 있다.

한 야권인사는 "문 후보와 안 후보는 각자의 자가당착적 판단으로 절호의 정권교체 기회를 날려버리는 일이 없도록 국민과 지지자의 시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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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