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언론인서 기업가로’ 민경중 코아스 대표

40년 전통에 혁신을 더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길로 뚜벅뚜벅 걸었다 생각했지만 뒤돌아보면 발자국은 온갖 방향으로 고루 찍혀 있었다. 가시밭길이든 꽃길이든 일단 발을 내디디고 본 결과다. 남들과 ‘다른 선택’이 남긴 족적은 조직의 변화로 이어졌다. 그가 지나온 자리에 이름이 남는 이유다. 민경중 코아스 대표를 만났다.

‘때로는 과감하게 판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민경중 코아스 대표는 2015년 펴낸 저서 <다르게 선택하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을 바꾼다’는 ‘저항을 마주한다’는 말과 궤를 같이한다. 조직의 변화를 꾀하는 사람은 성공하면 ‘혁신가’, 망하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실패 위험이 주는 부담은 ‘다른 길로 가보자’는 생각을 머뭇거리게 한다.

다른 생각
변화 추구

1987년 CBS 공채 10기로 입사한 민 대표는 2014년까지 한 회사에만 몸담았다. CBS 전국팀장, 보도국장, 심지어 노조위원장까지 요직은 다 거쳤다. 특히 ‘인터넷 신문의 혁신’으로 불리는 <노컷뉴스>를 기획‧창간하고 국내서 가장 영향력 있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한 <김현정의 뉴스쇼>를 만드는 등 굵직한 이력을 남겼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끊임없이 다름, 새로움을 추구했던 민 대표는 27년의 언론인 생활 내내 다양한 갈래의 물길을 만들었다. 어떤 물길은 강으로, 또 다른 물길은 바다로, 때론 벽에 막혀 웅덩이가 되기도 했다.

민 대표의 시도는 ‘변화’라는 흔적으로 남았다. 거대한 조직을 흔들어 수십년이 지나도 사라지질 않을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2014년 CBS를 떠난 뒤 한국외대 초빙교수, 법무법인의 고문,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전북은행 사외이사 등을 지낸 민 대표가 최근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지난 9월 사무용 가구 전문기업 코아스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언론인 출신이 홍보 등 전문 분야가 아닌 제조업체의 사장으로 가는 사례가 많지 않아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 대표가 사장으로 취임할 시기 코아스는 최악의 상황에 있었다. 1984년 한국OA시스템으로 시작한 코아스는 사무용 가구를 전문으로 제작, 판매하는 기업이다. 2000~2010년대 현재 사무용 가구업계 1위인 퍼시스와 경쟁할 만큼 잘 나갔다고 한다.

B2B(기업 사이의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 모델)를 중심으로 공공조달 시장에서 최상위권에 자리했다.

다른 선택이 조직 변화로 이어져
지금 욕먹어도 나중엔 박수 자신

하지만 공공조달 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 변화에 대한 늦은 대응 등 기업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하락세가 시작됐다. 결국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민 대표는 그런 상황서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3년간 이어진 영업손실, 굳어버린 조직문화, 사라진 비전 등 민 대표 앞에 놓인 벽은 산처럼 높았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코아스 본사서 만난 민 대표는 “60년 인생서 딱 하나 못 해 본 게 ‘사장’인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쉽지 않다. 회사가 매각·인수됐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는 뜻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모든 게)주어진 상황서 일한 적은 많지 않았다. 늘 없던 것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쪽에 익숙했다”고 덧붙였다.


대표가 된 지 이제 막 100일을 넘긴 그는 “미국은 사무용 가구를 기업경기실사지수에 포함하고 있다. 경기가 침체하면 사무용 가구를 사는 회사가 줄어들고, 반대로 호황이면 매출이 늘어나는 게 지수에 반영된다. 사무용 가구의 매출 현황이 체감경기와 밀접하게 연관돼있다는 뜻이다.

또 최근에 공유 오피스가 늘어나는 등 사무 환경이 변화하고 있는데, 다른 경쟁사들은 그에 발 빠르게 대응했으나 코아스는 좀 늦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민 대표는 B2B를 중심으로 공공 분야에 사무용 가구를 납품해 사업을 영위해 왔던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대 기업’으로 거래하다 보니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고 변화와 혁신을 이끌지 못한 부분을 문제로 봤다. 코아스가 사무용 가구업계의 ‘트렌드’ 싸움서 밀리고 있다는 게 민 대표의 분석이다.

수직적인 조직문화도 걸림돌로 꼽혔다. 코아스는 창립자인 노재근 전 회장이 40년을 이끈 회사다. 의사결정권이 소수에 집중된 형태의 기업은 조직문화가 수직적인 경우가 많다. 코아스 역시 그런 상황이었다. 임원이 결정하면 직원은 따르는 톱-다운 방식이 고착화한 상태였다.

최악 상황
사장 맡아

민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회사의 체질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는 “대표 자리를 제안한 쪽에서 나를 선택한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 CBS,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큰 조직을 관리한 경험이 있는 점, 트렌드 변화에 민감한 점이다. 이런 부분서 내부 혁신이 필요한 코아스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민 대표는 취임 이후 3개월여 동안 두 번에 걸쳐 직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사무용 가구와 AI(인공지능)의 결합에 관한 생각, 조직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방안 등을 제안해 달라고 직원들에게 요청했다. 그는 “AI 관련 의견만 28건이 접수됐다. 이전까지는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직원들이 더 놀라고 있다”며 웃었다.

앞으로 코아스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민 대표는 거침없이 풀어놨다. 그는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현장을 언급하면서 최근 모든 글로벌 회사가 지향하는 세 가지 추세에 관해 설명했다. 첫째 AI와 IoT(사물인터넷), 네트워크가 결합된 디지털 헬스 제품, 둘째 모빌리티(이동성)의 활용, 셋째 친환경 제품 생산 등이다.

민 대표는 “가구와 디지털 헬스 제품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또 제품에 바퀴나 모터가 달려서 원격 조정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성을 위해 친환경 제품이 사무용 가구에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방향 중에 친환경 제품 생산을 우선적으로 진행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 놓인 가죽 의자를 예로 들면서 사무용 가구는 물론, 가구산업 자체가 굉장히 비환경적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톱밥, 스펀지, 가죽 등이 환경 파괴의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소나 양보다 9배나 질긴 연어 가죽을 이용하고 스펀지 대신 해조류나 건초더미를 활용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민 대표는 “이렇게 만들면 당연히 단가는 올라간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의자도 종류에 따라 싸게는 몇 만원서 비싼 것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하이엔드(최고 품질) 제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셈이다. 코아스는 그동안 공공조달에 치중하면서 중저가 제품을 주로 생산했다. 선도적으로 이런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거침없이
방향 제시


민 대표의 목표는 2010년 서울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의 재연이다. 당시 코아스는 G20 정상회의에 정상용 상석 의자 ‘바흐 체어’를 공급했다. 내년 경북 경주서 열리는 ‘2025경주 APEC 정상회의’에 친환경 소재의 정상용 의자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제작을 지시한 상태다.

신사업에 대한 구상도 밝혔다. 코아스는 지난 9월 임시주주총회서 바이오 기업으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면서 ▲신약개발사업, 컨설팅업 ▲의약품 생산 및 판매업 ▲의약품 의료용 화합물 및 생약제재 제조업 ▲동물용 의약품 및 영양제 제조업 ▲동물용 의약품 영양제 및 관련 용품 도매, 소매업 등을 신규사업에 추가했다.

40년 동안 사무용 가구로만 사업을 진행해 온 코아스였기에 바이오 분야로의 진출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 대표는 코아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산업의 영역적 한계를 없애는 방향으로 회사를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말 그대로 사무용 가구업체에서는 사무용 가구만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민 대표는 “이제는 이종 산업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후지필름은 지금 필름 회사가 아니다. 제약·바이오 회사로 탈바꿈했다. 설탕, 밀가루를 수입하던 CJ는 어떤가. 반도체도 만들고 영화도 제작한다. 우리나라는 유독 제조업체, 중소기업이 이종 산업으로의 진출을 이야기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토로했다. 

그는 “많은 기업이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면서 그 안에서 혁신을 이룬다. 185년 동안 농업용 쟁기를 만들던 존디어라는 기업은 AI를 도입해 자율 트랙터를 개발했고 이미지 센싱 기술로 농약 살포 등에서 혁신을 이뤄냈다. 사무용 가구 회사도 미래형으로 가다 보면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공간 데이터’를 파는 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어 “예를 들어 의자에 앉아 대화를 나눌 경우 착석한 시간, 소요 시간, 나눈 대화 등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 데이터화되는 시대다. 외국은 아이를 따로 재우지 않나. 요람에 디지털 기기를 부착해 아이가 왜 우는지, 심장박동 수는 어떤지 부모에게 원격으로 전달되도록 하는 제품을 개발 중인 회사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며 “우리 같은 규모의 회사가 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회사의 체질 바꾸는 중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

흥미로운 대목은 민 대표가 혁신과 변화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사람’을 꼽았다는 점이다. 그는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를 자식이 물려받지 않으려 하는 세태를 우리 제조업계의 문제점으로 꼽으면서, 그렇게 되면 사람이 유출되고 산업의 기반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전통을 고수해 망하는 길보다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게 사람과 산업을 지키는 데 훨씬 낫다는 것이다.

실제 민 대표는 취임 이후 코아스서 일하는 7개 나라 100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기숙사와 식당을 리모델링했다. 또 7개 국가의 국기를 공장에 걸어뒀다. 그들이 모두 ‘코아스 가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일이었다. 민 대표는 “결국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서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민 대표는 스리랑카서 온 외국인 노동자 ‘와제두’가 눈이 온 날 바닥에 그린 그림을 보고 영상을 제작해 SNS에 올렸다. 그는 “와제두는 그날 태어나서 눈을 처음 본 것이다. 그 눈 위에 ‘Kakkada’라는 단어를 쓰고 하트를 그린 것을 봤다. Kakkada는 7월을 뜻하는 말이다. 그가 7월에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가 SNS에 올린 영상은 많은 이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그는 와제두를 찾아 선물도 주고 따뜻한 말도 건넸다. 민 대표의 노력은 ‘안정성’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함께’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생산성이 높아지고 긍정적인 방향의 대화도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 대표는 “CEO나 리더는 빠르게 결정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사람을 키워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CBS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직원이 내는 아이디어에 ‘내가 책임질 테니 해봐’라는 자세로 살아왔다. 감히 이야기하지만 구루(Guru, 스승) 같은 리더가 되고 싶다. 직원을 끌고 가는 리더가 아니라 누구라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리더를 지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루 리더십
미래에 관심

그러면서 민 대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러면서도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모든 리더가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내가 있는 동안 뭔가를 이뤄내겠다고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떠났을 때 그 사람이 있던 시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기억되길 바란다”고 환히 웃었다. 

‘인간 민경중’의 목표를 묻는 말에도 답은 한결같았다. 그는 “있을 때는 욕을 먹어도 떠난 뒤에는 박수 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또 나는 과거나 현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는 편이다. 누군가는 나를 늘 미래를 얘기했던 사람, 앞으로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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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역대 최악’ 쿠팡 개인정보 유출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회상을 반영하는 표현으로 ‘○○ 공화국’을 쓰곤 한다. OECD 국가 중 극단적 선택률 1위를 놓치지 않는 우리나라를 ‘자O 공화국’이라고 하거나 연예인에게 지나치게 높은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연예인 공화국’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최근 또 하나의 공화국이 세워졌다. 바로 ‘쿠팡 공화국’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창업자 김범석 의장이 제시한 쿠팡의 비전이자 슬로건이다. 국민의 일상에 깊숙하게 파고들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제 쿠팡은 전 국민의 생활을 차례로 잠식했다. ‘로켓배송’을 무기로 이커머스 시장을 장악했고 ‘쿠팡이츠’로 배달업계를 흔들었다. ‘쿠팡플레이’로 OTT 업계에도 진출했다. 생태계 잠식 대체재 없다 쿠팡의 위력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 더욱 뚜렷하게 증명됐다. 지난달 29~30일 쿠팡 이용자에게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발송됐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유출된 정보는 이름, 이메일 주소, 배송지 주소록, 주문 정보 등이다. 쿠팡은 결제 정보와 로그인 관련 정보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이용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한 시기가 주말이어서 혼란은 배가 됐다. 특히 배송 과정에서의 편의를 위해 적은 공동현관 비밀번호, 최근 주문 내역 등이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유출된 정보를 조합하면 가족 구성을 알 수 있는 상황이라 교묘하게 제작된 스팸 문자 등으로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수는 무려 3370만명에 달했다. 올해 기준 우리나라 인구(5168만명)의 65%에 이르는 숫자다. 여기에 개인정보 유출이 지난 6월24일, 무려 5개월여 전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또 해킹 등으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겪은 다른 업체와 달리 쿠팡 사건은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이 가중됐다. 중국 국적의 직원이 해외에서 개인정보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앞서 쿠팡은 지난달 20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 고객 계정이 4500개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새 3370만명이라고 다시 공지하면서 신뢰를 잃었다. 쿠팡의 프로덕트 커머스 부분 활성고객(구매 이력이 있는 고객)은 2470만명인데 피해 고객은 이보다 900만명 많다. 최근 3개월 간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까지 포함한 수치다. 사실상 전체 고객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소셜커머스 시작 로켓배송 도입 날개 달아 이번 쿠팡 사태의 규모는 지난 2011년 해킹으로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싸이월드·네이트 사례와 맞먹는다. 올해 4월 발생한 SK텔레콤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약 2324만명)를 상회한다. 당국의 조사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더 커진 선례를 보면 쿠팡 역시 피해 범위와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의로든 타의로든 쿠팡을 놓지 못하는 이용자가 상당하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 사태 이후 보고서를 통해 “쿠팡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할 수 없는 지위를 갖고 있다”며 “한국 소비자는 데이터 유출 이슈에 상대적으로 민감도가 낮아 고객 이탈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독점하고 있기에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에 걱정을 표하면서도 막상 탈퇴하긴 어렵다는 글이 보인다. 당장 내일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데 쿠팡이 아니면 재료를 조달할 방법이 없다는 글도 있다. 김범석 의장이 지향하던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가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에 문제가 생겼을 때 현실화한 셈이다. 쿠팡은 어떻게 한국을 지배하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쿠팡이 ‘틈새시장’을 기가 막히게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틈새를 만든 건 쿠팡이 아니라 정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대형마트를 규제하자 소비자는 전통시장을 찾는 대신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0년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은 현재 대적할 상대가 없는 ‘유통 공룡’으로 성장했다.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이 시행됐다. 정보 털려도 쓸 수밖에… 유통법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오전 10시부터 밤 12시까지만 영업 가능 ▲대형마트 월 2회 의무 휴업일 지정 ▲의무휴업일과 영업 제한 시간에는 온라인 주문 배송 서비스 금지 ▲전통상업보존구역 반경 1km 내 출점 불가 등의 내용이 담겼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발 묶인 사이 이커머스 시장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쿠팡이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그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든 ‘신의 한 수’였다. 쿠팡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투자금을 등에 업고 심야, 새벽 배송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쿠팡이 공격적으로 물류센터를 늘릴 때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금은 그 물류 센터가 지역 배송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에서 택배기사의 건강권을 위해 심야 새벽 배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는 물론 택배기사 사이에서도 민주노총의 주장에 반발이 나왔다. 소비자는 오후에 주문해도 아침이면 집 앞에 물품이 도착하는 데서 오는 편리함, 택배기사는 경제적 이익, 노동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실제 민주노총의 주장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쿠팡의 배송 시스템이 국민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다. 소비 트렌드가 완전히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쿠팡의 영향력은 더욱 거대해졌다. 저녁 식사 재료를 사기 위해 퇴근 후 마트나 슈퍼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과거 회상 장면에나 나온다.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스마트폰을 통해 물건을 주문하며 불과 몇 시간 만에 집 앞에 배송된 택배 상자를 안고 들어가는 게 일상이 됐다. 가족끼리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하는 일은 생활을 위한 게 아니라 이른바 ‘여가’가 됐다. 규제 업고 틈새 노려 방점을 찍은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커머스 시장은 배달업계와 함께 끝 모르고 성장했다. 이 시기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이나 심야 시간에 온라인 배송을 할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어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에서 자유롭던 쿠팡은 또다시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 결과 쿠팡은 2023년 창사 이후 첫 흑자를 냈다. 당시 쿠팡은 6조2000억원을 투자해 전국 30개 지역에 100여개 이상의 물류센터를 지었다. 영업손실은 2021년 1조7097억원에 달했지만 2022년 1447억원으로 줄었고 2023년에는 결국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 기준 쿠팡의 매출은 32조원에 이른다. 당시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2023년 4분기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영업이익은 6174억원이다. 매출, 영업이익 모두 전통 유통기업을 제친 1위다. 쿠팡은 흑자 전환의 비결로 고객의 충성도를 꼽았다. 이들이 쿠팡에서 씀씀이를 늘리면서 쿠팡 전체 이익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2018년 쿠팡이 도입한 ‘쿠팡 와우’ 멤버십의 증가가 영업이익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쿠팡 와우는 월 4990원(현재 7890원)을 내면 쿠팡에서 구매하는 대부분 물건을 무료로 배송받을 수 있다. 또 쿠팡플레이라는, 쿠팡이 론칭한 OTT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당시 쿠팡은 쿠팡 와우 멤버십, 즉 유료 가입자가 2021년 900만명에서 2023년 1400만명까지 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쿠팡 매출은 41조원까지 뛰어올랐다. 전체 대형마트 판매액(37조1779억원)을 뛰어넘는 수치다. 영업이익은 602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억은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는데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쿠팡 와우 멤버십에 가입한 고객은 지난해 말 기준 1500만명가량으로 추정된다. 소비트렌드 변화·코로나19로 쐐기 2023년 흑자 전환해 전체 매출 1위 눈여겨볼 대목은 쿠팡 와우의 가격이 지난해 3000원가량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고객이 이탈하기는커녕 되려 대거 늘었다는 점이다. ‘쿠팡 생태계’가 이미 공고해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충성 고객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독료 인상분보다 쿠팡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쿠팡을 카카오와 비교하기도 한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국민 메신저를 배경으로 각종 사업에 진출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중 90% 이상의 점유율을 가진 카카오톡은 카카오가 골목상권에 침투하는 데 훌륭한 ‘씨앗’ 역할을 담당했다. 쿠팡 와우 가입자를 위한 ‘로켓배송’이 심야·새벽 배송 시장을 잠식하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 것과 비슷하다. 대체재가 많지 않은 것도 닮았다. 카카오는 최근 카카오톡 업데이트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SNS처럼 바꾸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이용자들이 카카오톡 앱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방도를 찾다가 고안한 방법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용자의 반발이 거셌다. 카카오톡 앱 평점은 1점대로 떨어졌고 조롱이 줄이었다. 결국 카카오는 가장 많은 비판이 나왔던 ‘친구탭’을 원래대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후에도 카카오톡 변화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왔지만 결론적으로 이용자 이탈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톡을 대체할 만한 메신저 앱이 마땅치 않았던 게 문제였다. ‘네이트온’이 노를 저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를 주도한 홍민택 최고제품책임자(CPO)도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에 ‘트래픽, 다운로드는 줄지 않았다’고 쓰기도 했다. 당시 홍 CPO의 해명에 비판이 쏟아졌지만 글 내용만 봐서는 카카오톡 자체에 타격은 크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과징금에 주저 앉나 그러면서도 카카오의 현 상황을 봤을 때 쿠팡도 당국 조사가 진행되다 보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단 이재명 대통령이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과징금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띈다. 벌써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1347억원)을 받은 SK텔레콤의 사례를 넘어 1조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