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3인 현미경 검증 ?멘토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10.12 18: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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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으로 가는 길? 멘토에게 물어봐!"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야 각 정당의 경선 이전부터 대선예비주자들을 검증해 온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후보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후보의 면면을 세세히 검증 중이다. 이번호에서는 열여덟 번째 순서로 그들의 '멘토'를 살펴봤다.

멘토(mentor)란 경험이 풍부하고 신뢰할 만한 친구, 상담자 겸 스승으로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조언자를 뜻한다. 어떤 멘토를 만나는가에 따라서는 한 사람의 인생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대선주자들이 얼마나 훌륭한 멘토를 만나고 있는가는 중요한 검증대상이다. 국가를 운영함에 있어 난관에 봉착했을 때 훌륭한 멘토에게 길을 묻고 멘토와 함께 의논한다면 보다 빨리 해결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경제민주화의 전도사"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멘토로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를 지목했었다. 김용환 새누리당 상임고문,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김용갑 전 의원,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 현경대 전 의원, 강창희 국회의장 등이 멤버인 7인회가 막후에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실제로 유신정권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김용환 고문은 지난 5월 24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친박 7인회'의 실체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7인회'라고 부르는데 가끔 만나 식사하고 환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야권의 저격수인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박 원내대표는 "박 후보에게 7인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면면을 보면 수구꼴통이어서 나라를 맡길 수 없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자 박 후보 측은 재빠르게 "7인회라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거리두기에 나섰다. 박 후보 측은 "당의 몇몇 원로 되시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친목모임을 갖고 가끔 만나 서로 점심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분들이 초청을 해 한두 번 오찬에 가 뵌 적이 있다"고 밝혔다. 소위 멘토그룹 운운하는 것은 잘못 알려진 내용이라는 해명이었다.


최근 공식적으로 박 후보의 멘토로 거론되는 인물은 바로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인물이다. 얼마 전까진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멘토로 더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안 후보가 정치입문을 고민하던 지난해 5월부터 3개월 정도 안 후보의 멘토 역할을 했다. 당시 안 후보가 정치 입문을 심각하게 고민하자 정치에 입문하고자 한다면 국회의원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으나, 안 후보가 이 같은 조언을 듣지 않고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하자 안 후보의 곁을 떠났다고 알려진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가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다. 김 위원장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시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사회적으로 굵직한 정책을 도입하는데도 기여를 했다. 특히 1977년 근로자 의료보험을 도입하는데 큰 힘을 보탰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며 국보위에 가담했다가 11,12대 민정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987년에는 국회 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을 맡아서 그 유명한 경제민주화 조항을 헌법에 집어넣었다. 이번 대선에서 주요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의 창시자가 김 위원장인 것이다. 김 위원장이 헌법에 집어넣은 119조2항은 "국가가 적정한 소득분배를 유지하고,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보건사회부 장관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기도 했다. 노태우 정권 때에는 이른바 '5.8 조치'로 불리는 재벌개혁 조치를 단행했다. 재벌의 비업무용 토지매각을 단행했는데 재벌들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김영삼 정권 때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구속기소되는 오점을 남긴 것이다. 무엇보다 ‘청렴’을 강조하고 있는 박 후보로서는 김 위원장의 이러한 오점은 매우 큰 부담이다. 김 위원장은 박 후보와는 2008년부터 의견을 나누며 조금씩 멘토역할을 해왔다고 알려진다. 지금은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박 후보와 경제는 물론 모든 분야의 일들을 상의하는 명실상부한 멘토로 부상했다.

 
문재인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
"안의 남자? 이제는 문의 남자!"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멘토 역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멘토로 불렸던 윤여준 민주통합당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다. 안 후보의 멘토로 불렸던 그가 최근 민주통합당 문 후보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은 정치권의 큰 화제였다. 윤 위원장은 안 후보와 '청춘콘서트'를 함께 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그 후 안 후보의 멘토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지난해 말 안 후보가 "윤 위원장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는 김제동·김여진씨 등 300명쯤 된다"고 밝히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후문이다. 이후 문 후보는 윤 위원장을 자신의 캠프에 참여시키기 위해 삼고초려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와의 정면대결에 앞서 안 후보의 벽을 넘어야 하는 문 후보로서는 한때 안 후보의 멘토로 불렸으나 관계가 소원해진 윤 위원장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대통합'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안 후보 측에도 치명타를 안길 수 있다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문 후보 측의 노력 때문에 고민을 거듭하던 윤 위원장은 결국 문 후보 캠프에 전격 합류하게 된다.

윤 위원장은 경기고등학교와 단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77년 주일 공보관을 시작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는 대통령 공보·의전·정무비서관을 지냈고 김영삼 정권 때는 대통령 공보수석비서관과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민 것은 1998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특보를 맡으면서 부터이다. 2000년에는 한나라당 총선기획단장을 거쳐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다. 2002년 대선 때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캠프에서 기획위원장을 맡아 일했는데 비록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뛰어난 선거전략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후 범보수의 제갈량, 한나라당의 전략통, 대한민국의 장자방이라는 별칭을 갖게 됐다. 윤 위원장은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여의도연구소장까지 역임했다.

2004년에는 박근혜 후보와도 인연을 맺었다. 당시 박 후보가 당대표로서 총선을 진두지휘했는데 윤 위원장은 총선전략을 수립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이다. 2006년 지방선거 때는 당시 강금실 열린우리당 서울시장후보에 맞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후보 측의 선대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이끌었다. 이처럼 범보수의 제갈량이라고 불렸던 그가 지난해 4월 야권 성향이 두드러진 안 후보가 주도하는 '청춘콘서트'에 참여한 것에 대해 매우 의아한 일이었다.

한편 문 후보는 윤 위원장 외에도 지난 9월27일 후보 직속 멘토단장에 고(故) 김근태 상임고문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통합당 의원을 선임했다. 문 후보의 멘토단을 이끌 인재근 멘토단장은 사실 문 후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일명 'GT계'(김근태계)는 참여정부에서 '여당내의 야당' 역할을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부 경제정책 및 한미FTA 등에 대해 쓴 소리를 해왔던 세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 후보의 이번 인선은 대선을 향한 반대파 끌어안기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반대파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청취함으로써 중도층을 끌어안겠다는 문 후보의 선택이다. 반대파에서 문 후보의 멘토로 참여하게 된 윤 위원장과 인 단장이 이번 대선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낼지 이목이 집중된다.


안철수 <법륜 스님>
"정치는 NO, 조언은 OK"

이번 대선에서 재밌는 점은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사실이다. 특히 박근혜, 문재인 후보의 멘토들이 원래는 모두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멘토였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은 보수와 진보진영 양측이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좌우경계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안 후보에게도 왠지 어색한 멘토가 있다. 바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다. 이 전 부총리는 안 후보의 대선출마기자회견장에 깜짝 등장하며 안 후보의 경제멘토로 떠올랐다. 하지만 진보 경제학계는 당장 이 전 부총리를 향해 '관치금융의 화신' '모피아의 대부' '신자유주의 신봉자'라는 등의 비판을 소나기처럼 쏟아냈다.

결국 안 후보는 최근 이 전 부총리와 거리두기에 나선 모양새다. 안 후보와 이 전 부총리의 조합은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묻지마 영입'의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로 남게 됐다.

한편 안 후보의 또 다른 멘토로는 법륜스님이 있다. 다만 그는 다른 후보들의 멘토들과는 달리 이번 대선에서 안 후보를 직접 돕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계 인사인 만큼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이다. 법륜스님 역시 청춘콘서트를 통해 안 후보와 인연을 맺었다. 법륜 스님은 몇 년 전 불교계 내 설문조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현존 인물로 꼽히기도 했다.


그가 이끄는 정토회는 규모가 작지만 조계종보다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의 사회활동 영역은 평화, 환경, 민족문제, 국제구호 등 여느 거대 조직도 담당하기 힘들 만큼 광범위하다. 그가 낸 다양한 책들은 100만부가 넘게 팔렸고, 매일같이 열리는 강연은 대성황이다.

법륜스님은 지난 1980년 신군부가 일으킨 '10·27 법난'의 부당성을 불교계에서 최초로 지적하다 구속되기도 했고 1983년에는 대학생불교연합회의 지도법사를 맡아 본격적인 사회민주화 운동에 합류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법륜스님은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싸우고 비판하는 방식의 운동은 모든 것을 감싸안는 불교수행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비폭력주의 사회운동은 각각 오늘날 에코붓다, 한국JTS, 좋은벗들과 평화재단, 그리고 정토회로 이어졌다.

전혀 약점이 없어 보이는 법륜스님이지만 보수진영에서는 그의 개인사와 얽힌 시국사건을 거론하며 그의 성향을 의심하고 있다. 법륜스님의 셋째형 최석진씨는 1979년 남민전 사건 관련자다. 남민전 사건은 1979년 11월 발생한 대표적인 공안사건이다. 최씨는 현재 무소유 공동체 '푸른 누리'를 운영하고 있다.

또 법륜스님이 조계종이 정한 승려가 되는 절차를 밟지 않아 승적(僧籍)을 갖고 있지 않는 것도 보수진영의 공격대상이다. 이처럼 안 후보의 멘토로 거론되면서 법륜스님이 겪은 마음고생은 수도 없이 많다.

법륜스님의 한 측근은 안 후보와 법륜스님의 관계에 대해 "서로 아끼는 사이에서 조언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금은 워낙 언론들이 말이 많아서 거리를 두고 있지만 언제든지 다시 이어질 수 있는 기본적 신뢰가 있는 사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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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