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강혜경 법률 대리인 노영희 변호사가 짚은 ‘명태균 게이트’ 핵심

“본질은 돈 아닌 사인 국정 농단”

[일요시사 정치·취재1팀] 박희영·오혁진 기자 = ‘명태균 게이트’가 모든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대통령 부부가 공천에 개입했다는 사상 초유의 의혹이 제기되면서 세간이 발칵 뒤집힌 것이다.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말을 얹으면서 진실공방으로 번졌다. 이제는 법원의 시간이라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 무는 형국이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으로 시작한 사건이 명태균씨와 그를 둘러싼 정치 자금 문제로 번지는 모양새다. 검찰도 명씨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익 제보자 강혜경씨의 법률 대리인인 노영희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사인의 국정농단’과 ‘공천 매관매직’이라고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다음은 노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최근 명태균씨가 검찰 조사에 출석해 “강혜경씨가 발생한(만든) 거짓의 산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강씨의 반응은 어땠나?

▲“대응할 가치도 없다”며 분노했다. 지금까지 강씨가 말한 것들은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 근거는 강씨가 제출한 음성 녹음을 비롯해 제3자가 제출한 음성 녹음, 제보자의 진술 및 녹취, 신용한 교수 등의 증언과 자료, 김태열 소장의 증언과 자료 등이다. 명씨와 김소연 변호사,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강씨가 진술한 내용에 부합하는 답변을 하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강씨가 쌓고 있는 ‘진실의 산’이 무엇인지, 명씨가 만들어 가는 ‘거짓의 산’이 무엇인지는 자명하기에 강씨를 비롯한 공익 제보자들은 이 상황의 끝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검찰이 있는 자료들을 왜곡하지 않고 정의롭게, 제대로 된 수사를 한다면 분명히 진실은 밝혀질 거라 믿는다.

-돈 문제를 놓고 명씨가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면서 강씨와의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강씨와 명씨,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간의 돈 문제가 아니다. 돈 문제는 부수적이고, 중요한 것은 사인의 국정 농단과 대한민국 5선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사인과 공천을 매관매직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명태균이라는 사인이 그런 매관매직의 주범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과 그 부인의 공천 개입, 그리고 사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때문이라고 본다.

-불법 여론조사에 대한 의혹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명씨는 대선후보 경선 당시 윤 대통령 부부에게 ‘불법적이고 편법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여론조사와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대통령 부부는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상황을 인식했던 것으로 보이므로 선거 부정에 대한 수사가 특검 형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명씨는 공짜 여론조사를 수도 없이 하면서 정치권서 인맥을 넓혀왔다. 대통령 부부 역시 공짜 여론조사를 받고 명씨의 역할로 경선서 승리자가 됐으며 그 후 대통령까지 당선됐기에 그 대가로 명씨가 지목하는 사람에게 공천을 줬다.

이는 대통령의 육성, 여사와 주고 받은 메시지, 김 변호사의 진술 및 당시 당 대표였던 이준석 의원과 나눴던 대화 및 문자, 카톡 등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다. 특히 그 수혜자인 김 전 의원의 육성 녹음과 이른바 ‘세비 반띵’이 결정적인 정황이다.

-명씨는 “강씨가 의붓아버지 병원비로 2000만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강씨의 입장은?

▲우선 김 전 의원은 본인 지역 사무실 운영비 등을 강씨에게 곧바로 주지 않았다. 강씨가 먼저 사비로 지출하고 추후 변제받는 방식이었다. 김 전 의원이 강씨에게 줄 돈이 쌓여 있던 상황서 강씨가 “아버지가 아파서 큰돈이 필요하니 그 돈을 돌려달라”고 말했던 것이다.


강씨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해 항상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았는데 명씨는 굳이 ‘의붓아버지’라는 단어를 써가며 강씨의 가족사를 왜곡했다. 10년 넘게 같이 일하면서 알고 지냈던 명씨가 ‘의붓아버지’ 운운했다는 사실을 강씨의 모친이 알면 아마 마음이 찢어지실 것이다.

-명씨는 예비후보로부터 현금만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명씨는 “단 1원도 받지 않았다”며 ‘계좌 추적’을 거듭 강조하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하는지?

▲신용불량자가 계좌를 이용한 거래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명씨는 계좌를 살펴봤을 때 본인이 취득한 이득을 밝혀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자금 흐름을 강조하면서 “정치자금법에만 국한해서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자기 명의로 돈을 수취한 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부정한 돈을 취득한 적이 없고, 본인은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에 빠져나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 역시 현재 구속영장 청구서에서는 선관위서 고발된 정치자금법 위반만 적시해뒀으나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생각한다. ‘검찰이 용산의 명령으로 사건을 축소한다’는 오명을 받고 싶지 않다면 제대로 된 수사를 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겠다면 특검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명씨는 SNS를 통해 “지선 예비후보가 건넨 억대 돈이 왜 강혜경·김태열 개인 통장으로 들어갔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한 강씨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방선거 예비후보가 제공한 돈은 명목과 성격이 부정하기 때문에 이를 미래한국연구소 명의로 입금해 처리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김 전 의원의 정치 계좌로 받을 수도 없었으며, 신용불량자인 명씨의 계좌로 받을 수는 더더욱 없었다.

결국 회계책임자인 강씨 명의의 통장으로 받아서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씨는 입금 후 사용처를 꼼꼼히 정리해뒀기에 검찰에 제대로 모든 것을 소명했다고 한다.

-김 전 의원 또한 강씨가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명씨는 김 전 의원으로부터 받은 돈 9000만원에 대해 “빌려준 돈을 받았다”고 해명했는데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돈을 빌렸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전 의원의 육성 녹취를 보면 스스로 모든 것을 자인하고 있다. 또 자신이 수십억원대 자산가라고 하면서도 명씨 역시 그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하지 않는가. 김 전 의원은 돈 한 푼 쓰지 않고 당선됐는데, 그렇다면 급하게 써야 하는 필요 비용은 누가 댄 것인가? 자금의 출처를 찾아가다 보면 결국 강씨가 자신의 계좌를 적극 활용해 당시 상황을 정리했음이 너무도 분명하다.

-하지만 두 사람 간의 금전거래가 공천 대가성이라는 명확한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김 전 의원을 공천해달라는 명씨의 말, 대통령의 육성 녹음, 그리고 공천관리위원회서 결과를 발표하기도 전에 관계자들이 김 전 의원의 공천을 확정한 녹음파일이 존재하는데 당사자가 부인하면 ‘인정 안 하는 것’인가?


-명씨는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해 “누구나 사람을 추천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논리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누구나 사람을 추천할 수는 있지만 ‘추천의 방식’은 인사 시스템이 정한 바에 따라야 한다. 대통령을 안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문자를 보내 아무 이유도 없이 누구를 추천하고, 대통령은 그 말을 듣고 또 그 사람을 공천하는 식이라면 인사 시스템은 이미 망가진 것이다.

법조인으로서 수십년을 살고 있는 나도 대통령에게 사사로이 추천할 수는 없고 꼭 추천을 하고 싶으면 공적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명씨가 그런 시스템을 통해 추천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고, 대통령은 “추천만 받았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명씨가 추천한 사람이 공천됐기 때문에 그런 변명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공천 개입과 비슷한 맥락으로 ‘창원국가산단 선정 개입’ 의혹이 나오자 명씨는 “정책 의견을 내는 게 잘못됐느냐”고 말하기도 했는데…

▲정책에 대한 의견은 누구든지 낼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공적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 명씨가 어떤 시스템을 이용해 정책을 냈는지 궁금하다. 그냥 친한 관계라는 것을 이용해 사적으로 모의하고 그 모의에 따라 상황을 만들어 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나라는 망한다. 특히 청와대-용산 이전이나 창원 산단 지정, 투기 과열 지정 해제 등은 나라의 중요한 정책인데 이런 정책이 친한 몇 명의 귓속말로 이뤄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강씨는 여론조사 업체 미래한국연구소의 실소유주가 명씨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무엇인가?

▲명씨는 해당 연구소를 이미 김태열 소장에게 넘겼다고 주장하나, 어떻게 넘겼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당시 미래한국연구소는 이전에 명씨가 운영하던 <시사경남>을 넘길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빚에 허덕이는 곳이었다. 또 여론조사의 불투명성과 조작, 선거 방해 행위 명목으로 이미 행정처분과 형사처분을 여러 번 받은 업체였다.

수천통의 전화 녹취를 보더라도 미래한국연구소서 행하는 모든 종류의 여론조사와 의사결정은 모두 명씨의 일방적 지시에 의해 이뤄졌으며 강씨와 김 소장 누구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특히 강씨는 김 소장으로부터 (업무)지시를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미래한국연구소의 법인 등기상 대표자가 김씨라고 해서 그가 실소유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강씨가 소유한 녹취록 중 더 언급될 부분이 있나? 강씨가 언급했던 리스트를 보면 명씨가 여야 모두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같은데?

▲강씨가 소유한 녹취록은 아직도 분석 중이다. 더 꼼꼼히 들여다봐야겠지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문제는 강씨가 가진 녹취록의 한계는 강씨에게 전화를 걸었거나 강씨가 전화를 건 사람들의 대화만이 저장돼있다는 것이다. 즉, 대면 상태서 이뤄진 중요한 지시나 진술들은 녹취 형태로 남아있지 않다.

다행스러운 것은 제3의 제보자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어, 강씨가 제공할 수 없는 녹취나 증거들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명씨는 “돈만 주면 여론조사를 어떤 방식으로든 원하는 결과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평소 말해왔다. 여야 가릴 것 없었지만 주로 여권 인사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이와 관련된 증거는 계속 나올 것으로 본다.

-명씨가 어떻게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과 알게 됐는지,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배경이 미스터리다. 나름 잘나갔던 ‘브로커(?)’라는 의혹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명씨는 김 전 의원을 매개로 여권의 거물 정치인들을 모두 알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여론조사 등을 하면서 창원서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 등과 친분이 있었다고 하지만, 김 전 의원과 엮이고 나서부터는 이를 적극 활용해 “명태균은 믿을 수 있는 거물”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게다가 김 전 의원을 통해 대통령 부부와 인연이 된 이후에는 특유의 무속적 접근으로 여사를 사로잡았고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수개월 전 사건이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불거진 후에야 검찰이 뒤늦게 수사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검찰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가?

▲처음에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의지가 없었고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역시 작게 축소해 정리하려고 했었다. 이는 김 전 의원과 강씨의 대화에도 나온다. 김 전 의원이 선관위와 검찰 관계자에게 “잘 말해뒀다”고 암시하는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김 전 의원이 이번 총선서 6선이 됐다면 이 사건은 묻혔을 것이다. 모든 비극은 본인들이 기대했던 바대로 이뤄지지 않은 우연적 변수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검찰은 현재 정치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앞으로 나올 수많은 증거에도 눈을 감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끝으로, 강씨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공익 제보자로 나섰다. 그가 이번 사건서 반드시 밝혀내고 싶어 하는 것은 뭔가?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은폐된다면 이런 일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사인의 국정 농단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있는 것에 대한 자괴감, 그들이 너무도 태연하게 잘살고 있다는 점에 대한 놀람 등 다양한 감정이 들었다.

강씨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처벌받겠다고 했다. 이미 명씨와 김 전 의원이 강씨, 김 소장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운 정황과 당시 모의했던 메모 등이 검찰에 제출됐다. 이번 제보를 계기로 더욱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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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