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앞둔 마더스제약 겹악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1.14 10:51:04
  • 호수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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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불량에 갑질 논란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내년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둔 마더스제약이 살얼음판을 걷는 모양새다. 고려제약 등의 위탁을 받아 생산하고 있는 품목이 성상 부적합 우려(정제 깨짐)로 회수·폐기 조치명령을 받으면서다. 일각에선 추가 근로 강요 등 노사관계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마더스제약은 지난 2011년 회사 설립 이후 매년 연평균 36% 이상 매출 성장을 보이다가 올해 매출액 2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가동을 시작한 익산 제2공장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보해 매출과 더불어 수익성까지 올려 나간다는 계획이다. 

흔들리는 왕좌

지난 7월 마더스제약은 공동 대표주관사로 NH투자증권과 KB증권을 선정하고 본격적인 기업공개(IPO) 일정에 들어갔다. 당시 마더스제약 관계자는 “본격적인 상장 준비를 시작하기 위한 킥오프 미팅에 나섰다”며 “마더스제약 임직원, NH투자증권과 KB증권 등 2개 주관사 관계자 등 총 20여명이 참가해 상장 준비에 대한 전반적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마더스제약은 올해 국가신약과제에 선정된 건성 황반변성 치료제 등 글로벌 신약 개발을 목표로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을 전개하면서 업계서 이목을 끌었다. 상장을 통해 신약개발과 바이오의약품, 해외진출 등 글로벌 제약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수년 전부터 마더스제약은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강화를 위해 시장성이 높은 대형 품목의 퍼스트 제네릭(복제약) 확보에 나섰다. 일각에선 IPO를 앞두고 몸집을 키우는 동시에 기업가치 산정의 근간인 순이익을 늘리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허가 현황을 살펴보면 마더스제약이 위탁생산하는 ‘테넬리아(테네리글립틴)’ 제네릭은 총 26개 품목이다. 퍼스트제네릭을 차지하며 허가가 시작된 2제 복합제 ‘테넬리아엠(테네리글립틴·메트포르민)’ 제네릭까지 더하면 마더스제약산 품목은 모두 48개에 이른다.

테넬리아의 경우 마더스제약이 25개사 제품의 위탁생산을 맡아 전체 37개의 제약사 중에서도 가장 많은 제약사를 확보한 셈이다. 특히, 제뉴원사이언스가 자사 포함 11개사 제품에 대한 생산을 맡으며 추격하고 있으나, 마더스제약이 테넬리아 계열 제네릭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의욕이 과했던 걸까? 지난 1주일 사이에 마더스제약이 생산한 ‘에스오메프라졸’ 성분 의약품이 성상 부적합 등의 이유로 대거 회수·폐기됐다. 에스오메프라졸은 위벽서 위산의 분비에 관여하는 프로톤 펌프(수소이온 펌프)를 억제해 위산을 억제하는 위장약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에스오메프라졸마그네슘삼수화물 성분 17개 품목에 대한 회수·폐기 조치를 진행한다고 지난 5일 밝혔다.

식약처 ‘정제 깨짐’ 회수·폐기 조치
17개 ‘위장약’ 전량 회수 가능할까?

마더스제약이 위탁을 받아 생산하고 있는 총 17품목 관련 업체는 ▲경보제약 ▲삼익제약 ▲비보존제약 ▲케이엠에스제약 ▲고려제약 ▲정우신약 ▲마더스제약 ▲대한뉴팜 ▲코오롱제약 ▲안국약품 등 10개사다.

지난달 30일 대한뉴팜의 ‘에스오엠정 20㎎, 40㎎’을 시작으로 지난 5일까지 관련 품목들의 회수·폐기 조치명령이 이뤄졌다. 이들은 식약처의 허가를 받은 에스오메프라졸마그네슘삼수화물 20㎎, 40㎎ 용량 제품 총 154개 품목 중 약 10%에 이른다.


에스오메프라졸은 마더스제약서 생산하는 품목인데, 현재 마더스제약은 해당 성분 품목들에 대한 위수탁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마더스제약에 에스오메프라졸을 위탁 제조한 제약사 의약품의 전량 회수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이번 회수 조치와 관련해 사유가 성상 부적합 우려(정제 깨짐)로 영업자 회수라고 설명했다. 반면, 마더스제약 측은 앞으로 회수·폐기 품목들이 추가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마더스제약 관계자는 “정제가 깨진 이유는 건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식별 표시가 각인인 경우 습기가 많은 여름철은 괜찮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제품에 회사 이름 또는 영문 이니셜을 새기는 식별 표시를 하는데, 기존 각인은 펀치를 사용하다 보니 약이 깨지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문제점으로 지난 7월 허가변경을 완료했다. 코팅정제 낱알 식별 표시방법을 각인서 인쇄로 모두 변경했다”며 “현재 납품되는 자사 제품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회수·폐기된 품목들은 지난 7월 허가변경 전 과거 각인된 제품들로 파악된다. 회수 조치 후 제조업무 부실 및 수탁자 관리 부실 등의 사유로 제조사와 위탁사 모두 행정처분을 받게 될 경우, 추가적인 판매 업무정지까지 내려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상 부적합에 따른 이유로 테라젠이텍스서 생산하는 아스피린 성분 23개 품목도 회수·폐기 조치가 이뤄졌다.

이번 사태로 마더스제약의 민감한 노사 문제도 고개를 들었다. 총 45명의 마더스제약 직원들은 하나같이 업무 외 활동에 관해 불만을 토로했다.

한 직원은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회사에서 3인1조로 나눠 독서 토론한다는 이유로 아침 8시까지 조기 출근을 시킨다”며 “토론 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보통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토론을 진행하고 나면, 주말 동안 독후감을 쓸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토론 강요 등 노사관계 갈등
최대 매출액 대비 수익 감소

이들은 회사가 지급하는 명절 보너스를 월급서 차감한 만큼 받았다며 근로계약서 위반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오후 5시30분이 업무 종료지만, 야근은 1시간 뺀 오후 6시30분부터 시작해 추가 근로수당을 산정하고 있어 불만이 이어졌다. 특히, 회식 강요 등을 두고 “주말 없이 일해도 남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한편, 마더스제약은 최근 3년간 지속 중인 가파른 외형 성장을 이어가며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매출액을 달성했다. 그러나 지급수수료 등이 증가함에 따라 수익성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마더스제약은 올해 상반기 별도재무제표 기준 매출 87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779억원 대비 12.4% 증가한 수치다. 2분기만으로 보면 전년 동기 매출 410억원 대비 12.7% 증가한 462억원을 기록했다.


마더스제약은 지난 2018년 매출 431억원을 기록한 뒤 연평균 성장률 25%로 외형 성장을 지속해 지난 2022년 1066억원으로 ‘첫 매출 1000억원’을 달성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1590억원으로 직전 년도 대비 49.1%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외형 성장은 주요 품목의 고른 성장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당뇨병 치료제 테넬리아 제네릭 ‘테네글립엠정’ 등이 지난 2022년 품목허가 후 본격적인 매출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전체 매출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마더스제약 반기보고서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테니글립엠정’ 등 당뇨병 치료제 매출은 113억원으로 전년 동기 101억원 대비 11.4%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급성·만성 위염 치료제 ‘스토엠정’ 등 소화기용제 매출은 86억원으로 전년 동기 51억원 대비 70.2% 증가했다.

특히 소화기용제 2분기 매출은 6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9.5% 증가했다. 관절염약 ‘레이본정’은 전년 동기 76억원 대비 3.1% 감소한 74억원을 기록했지만 전체 매출 증가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았다.

같은 기간 회사 매출원가는 394억원으로 전년 동기 414억원 대비 5.0% 감소했으며, 매출원가율은 53.18%에서 44.97%로 8.21%p 줄어들었다.

좌불안석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63억원 대비 48.6% 감소한 33억원이었다. 이는 판매관리비 증가 영향이 컸다. 마더스제약은 상반기 판관비로 450억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302억원 대비 49.0% 증가한 수치로 회사 수익성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회사가 상반기에 지출한 지급수수료는 393억원으로 전년 동기 246억원 대비 59.9% 증가했다. 지급수수료는 일반적으로 판매대행(CSO, Contract Sales Organization) 혹은 광고대행과 관련된 만큼, 마더스제약이 마케팅 영업 강화를 통한 외형 성장에 무게추를 두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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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