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유죄 지금은 무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1.11 10:35:47
  • 호수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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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갈릴’ 윤석열 운명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공천 관련 녹취가 공개된 이후 여야는 법리 논쟁을 뜨겁게 이어가고 있다. 까다로운 법리가 날카롭게 오가는 가운데 사법부의 판단을 마음대로 단장취의 하는 정치권의 나쁜 버릇이 또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022년 6월 재보궐선거 공천 개입 의혹 물증”이라면서 윤 대통령이 취임 전날인 2022년 5월9일 명태균씨와 통화한 음성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명씨에게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고 했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했다. 

취임 하루 전…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재보선서 경남 창원 의창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공천이 확정된 날은 윤 대통령의 취임일인 5월10일이었다.

민주당은 녹취를 근거로 “윤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윤(친 윤석열)계 유상범 의원 등 국민의힘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은 “녹취록 속 윤 대통령의 발언은 공직선거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핵심 근거는 “통화한 날은 취임 전날이므로, 윤 대통령은 당시 당선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과 제85조 제1항은 공무원이 선거 결과 혹은 선거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제86조에는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있다.


법문은 ‘공무원’이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대통령 당선인도 공직선거법 제9조 제1항서 말하는 공무원이냐”는 논점을 놓고 각자의 주장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당선인은 공무원이 아니다”라고 강조하지만, 민주당은 “당선인은 사실상의 공무원이므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

뚜렷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김 전 의원의 공천이 확정된 날이 윤 대통령의 취임일이라는 사실관계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일에도 공천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는 사실관계가 밝혀진다거나, 공천 과정에 대한 해석 여하에 따라 결론이 바뀔 수 있다.

민주당, 윤-명 통화 녹취 공개
이어지는 선거법·통비법 논쟁

형법 제25조는 “범죄 실행에 착수해서 행위를 종료하지 못했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미수범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임기제 공무원 신분을 확정지은 날 실행 행위의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녹취서 “당에 이야기했는데 말이 많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에 이야기한 행위’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취임 전날과 취임일이라는 그 하루 차이를 법률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여야는 치열한 논쟁을 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민주당의 음성 녹취 공개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유 의원은 지난 5일 “해당 녹취는 김 전 의원의 운전기사가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저촉된다”며 “형사소송법 등에서 규정한 경우 외에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는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조국혁신당 김형연 법률특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해당 녹음은 명씨 스스로 녹음한 윤 대통령과의 통화를 제3자에게 재생하자 다시 녹음한 것”이라며 “그 녹음을 또 다른 사람이 공개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논쟁은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각종 재판서의 증거능력과 관련돼있다. 이미 녹음된 것을 재생할 때 이를 다시 녹음하는 것도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서 녹음을 금지하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지,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민주당은 지난 4일 명태균 게이트 진상조사단 제1차 회의서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구속 기소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사재판 판결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 중 일부는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회장 임명 및 연임을 해줬다는 혐의 ▲한나라당 김소남 전 의원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총선 비례대표 7번을 공천해 준 혐의였고, 상당 부분 유죄로 인정됐다.

이 사안들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취임 전 진행된 뇌물 혐의였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재판부는 경선 통과 이후 뇌물에 사전수뢰죄를 인정하는 결과를 내놨다”며 “대통령 취임 전후가 아닌 경선 통과 전후에는 공무원으로서의 성격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MB 판례 내세워 공세
“둘은 당선 과정 달라”

하지만 민주당은 중대한 판단 한 가지를 말하지 않았다. 제1심이 판단한 ‘공무원이 될 자’를 적용할 수 있는 시점은 2007년 7월이었다. 그 이후의 뇌물수수 혐의는 이 전 대통령이 각종 여론조사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는 등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시점서 진행된 거래였기 때문에 유죄로 인정됐다.

항소심과 대법원은 ‘공무원이 될 자’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시점만 8월20일 한나라당 경선 승리 이후로 늦췄다. 당시 이 전 대통령의 가장 큰 경쟁자는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아니라 당내 경선 맞상대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이어 사전 수뢰액 중 4억원을 추가해 무죄로 판단했을 뿐, 큰 틀의 결론을 유지했다. 

윤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선서 치열한 대결을 했기 때문에 누가 당선될지 쉽게 예측하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를 상대로 24만7000여표(약 0.73%) 차이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 이 전 대통령 관련 판결을 윤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는 양측에 “여기는 형사법정이 아니다”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양측은 탄핵 사유를 놓고 마치 형사재판 변론을 하듯이 유·무죄 논쟁을 펼쳤다. 탄핵심판은 탄핵 사유가 헌법·법률 위반 행위인지 판단한 후 파면해야 할 만큼 중대한지 다시 판단하는 이중재판 구조로 진행된다.

설령 헌법·법률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파면해야 할 만큼 중대하지 않으면 기각한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위기서 벗어났던 근거였다.

헌재는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국정 개입 허용은 위임받은 권한의 사적 남용이고,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은 기업의 사적 자치 영역에 간섭한 재산권 및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행위”라는 1차 판단에 이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의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는 2차 판단까지 마친 후 박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파면 기준

헌재는 대통령을 파면하는 기준으로 ▲국민의 신임 배반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행위라는 까다로운 기준을 세웠다. 정치권은 헌재의 탄핵 인용 기준과 당시 탄핵심판의 흐름을 성찰하지 못했는지, 8년 전처럼 유·무죄 논박 위주의 탄핵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마음대로 법률과 판례를 단장취의 하는 버릇도 여전하다. 탄핵하고 싶거나, 혹은 막고 싶다면, 헌재의 메시지를 다시 성찰해 진지하게 진행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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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