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명태균에 맞선 강혜경

김 여사 공천 개입 풀어낼 핵심 키맨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던 강혜경씨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작심 증언을 쏟아내면서 화제로 떠올랐다. 강씨는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명태균씨의 불법 여론조사 의혹 등을 폭로한 핵심 제보자다. 최근 검찰 조사를 마친 강씨가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추후 밝혀낼 수 있을까?

김건희 여사와 명태균씨의 공천 개입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가 지난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이목을 끌었다. 강씨는 명씨가 운영했던 언론사 <시사경남>의 편집국장 출신이자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의 사무실서 회계 책임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명씨의 여론조사 실무도 맡았던 최측근이었으나 최근에는 핵심 제보자가 됐다. 

의혹 폭로
작심 증언

강씨는 이날 법사위서 국정감사 증인으로 참석해 국민의힘 책임당원이라고 밝히며 “김 전 의원이나 명태균 대표, 이분들은 절대 정치에 발을 디디면 안 될 것 같고 하는 말마다 거짓말이어서 국정감사에 출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 관련 핵심 인물이 국회에 직접 나와 증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난 대선 과정서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불법 여론조사’를 해준 대가로 김 전 의원이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 공천을 받았고, 공천 과정에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우선 강씨는 김 여사가 대선 여론조사 조작 의혹에 개입했던 정황을 공개했다. 실제로 그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23일 김 전 의원과의 통화에서 강씨는 “대통령선거할 때 우리가 자체조사를 많이 했다”며 김 여사에게 (명태균)본부장이 돈을 받아오겠다며 자신에게 (여론조사 비용)청구서를 만들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씨는 명씨가 서울로 상경해 여론조사 비용 대신 김 전 의원의 재보선 공천을 받아왔고, 김 여사가 배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김 여사와 명씨 사이에 무속으로 형성된 공감대가 있었다는 취지의 증언도 내놨다. 명씨와 김 여사가 첫 만남 이후 가까워진 계기를 아느냐고 묻는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 질문에 강씨는 “(김 여사가)명태균 대표를 봤을 때 조상 공덕으로 태어난 자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첫 대면을 했다고 들었다”고 답했다. 

이 의원이 “명씨가 김 여사 친분을 자랑하면서 ‘장님 무사’ ‘앉은뱅이 주술사’ 등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묻자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 같은 경우는 장님이지만 칼을 잘 휘두르기 때문에 장님 무사라고 했고, 김 여사는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주술사라 장님의 어깨에 올라타서 주술을 부리라는 의미로 명씨가 김 여사에게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명씨가 김 여사와 영적으로 대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논란이 됐던 김 여사의 ‘오빠’가 윤 대통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씨는 이날 2022년 재보선 당시 김 여사가 “오빠한테 전화 왔죠. 잘될 거예요”라고 명씨와 통화한 음성 녹음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가 언급한 오빠가 “윤 대통령을 지칭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실무 최측근서 제보자로 돌아서
“여론조사 비용 대신 공천 받아”


강씨는 김 여사가 김 전 의원을 시켜 명씨의 생계를 챙겼다고 말했다. 그는 “김 여사가 명씨의 자녀를 챙겨야 된다”며 “생계유지를 해줘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김 전 의원이 세비로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이 세비를 받으면 자신의 계좌를 통해서 현금을 만들어 명씨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지급됐고, 해당 비용은 9600만원에 달했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강씨가 들은 건 모두 명씨의 전언뿐”이라며 강씨와 명씨의 증언 신빙성이 낮다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명씨의 생계를 챙기라는 지시 내용은 김 여사의 육성을 직접 들은 것이냐” 혹은 “명씨로부터 전해 들은 것이냐”고 묻자 “명씨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강씨는 답했다. 

주 의원이 “대통령의 육성을 들은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묻자 “그렇다”고 답변했다. 같은 당 곽규택 의원도 “명씨의 진술 외에 (강씨의 주장에 대한)다른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씨는 같은 날 자신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명씨와 관련된 여야 정치인 27명을 지목하고 법사위에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 명단을 제출했다. 앞서 명씨는 언론 인터뷰서 자신과 거래한 유력 정치인이 국회의원 25명을 포함해 30명 이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강씨도 국정감사에서 ‘명씨와 거래했다는 후보자 또는 의원 25명을 알고 있느냐’는 질의에 “명단을 제출하겠다”고 답했고, 이 명단을 이날 공개한 것이다. 이후 명단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에는 큰 파장이 일었다. 

당사자들 대부분은 “명씨와 거래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강씨 측도 “그 명단들이 전부 다 문제인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명단에는 여권 인사와 야권 인사 3명의 이름이 포함돼있었다. 이에 명씨는 지난 22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황당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명씨는 “그분들한테 정말 죄송하고 미안하고 저도 똑같은 입장”이라며 “얼굴도 본 적 없는 분들도 여러명이 들어가 있더라”라고 밝혔다. 김 여사와 영적 대화를 나눴다는 강씨의 주장을 두고도 “대통령 영부인 되실 분한테 ‘당신은 앉은뱅이 주술사’라는 말을 해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치열한 공방
정치권 술렁

민주당은 강씨를 당 차원서 보호하는 공익제보자 1호로 선정했다. 앞서 민주당 최고위원회는 지난 4일 김건희 가족 비리 국정 농단 규명 심판본부와 함께 공익제보자 권익보호위원회 설치를 의결했다. 

강씨의 법률대리인을 맡은 노영희 변호사는 이날 “명씨가 어떤 기자분에게 전화로 ‘강혜경의 국감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이 위증죄로 고발하지 않으면 내가 공적 대화를 또 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며 “이것은 곧, 그동안 국민의힘서 문제가 돼왔던 여러 가지 고발 사주와 그 궤를 같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명씨는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의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지난 22대 총선서 김 전 의원이 원래 지역구인 경남 창원·의창을 떠나 경남 김해갑 출마를 선언한 배경에 김 여사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골자다. 

김 전 의원은 결과적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으나 이 과정서 명씨가 김 여사에게 도와달라며 연락했고 김 여사는 ‘단수면 나도 좋다. 하지만 나는 힘이 없어 (김 전 의원이)경선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답하는 등 명씨와 윤 대통령 부부가 연락을 주고받았던 관계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후 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오세훈·이준석·홍준표·김종인 등 여권 핵심 인사들과 명씨의 관계가 급부상했다. 명씨의 불법 여론조사 이력과 맞물리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최근 명씨가 지난 대선 경선 및 본선 당시 자체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도 조작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강씨는 지난 6일 한 유튜브 채널 인터뷰서 대선 직전인 2022년 초 명씨가 수십 차례 비공개 여론조사를 진행해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에게 보고했다며 통화 녹취를 공개했다. 

강씨에 따르면 명씨가 지난 2022년 2월28일부터 3월8일까지 여론 조사를 진행했다. 그는 “3000~5000개 샘플로 조사해 매일 윤 대통령 쪽에 보고한다고 명태균 대표가 저한테 전화했다”며 “(윤 대통령에게)보고해야 되니 빨리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여론조사 직후인 같은 해 3월20일쯤 명씨가 ‘정산 내역서를 뽑아놓아라’고 지시한 후 내역서를 갖고 서울로 올라갔다. 명세서상 금액은 3억6000만원 정도”라며 “명씨가 (대통령 부부를)만나러 서울에 간다고 해 그때 그 서류를 봉투에 넣어서 드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강씨는 명씨가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 대금 3억6000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직후 창원특례시 의창구 보궐선거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강씨는 “그 여론조사 비용 대가가 김영선의 공천”이라고 주장했다. 


숨겨진 뒷돈
공천은 미끼

반면 명씨는 지난 1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서 이 같은 강씨의 주장에 대해 전면 반박했다. 그는 “자체조사는 내가 필요해서 한 것이고, 비용 관련된 것은 내가 그분들한테 청구한 적도 없고 받을 생각도 없다”며 “식탁 위에 밥을 먹는 사람하고 식탁 밑에 강아지가 떨어지는 것만 보고 무엇을 알겠느냐”고 말했다. 

명씨의 반박에도 2022년 대선 당시 실시했던 여론조사 비용 일부를 같은 해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이 충당했다가 돌려받았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새로운 의혹이 추가됐다. 

<한겨레>와 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이 공개한 녹취 파일에는 명씨가 강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부터 매일 선거일까지 여론조사를 돌린다”며 “돈은 모자라면 (미래한국연구소)소장에게 얘기해서 A와 B한테 받아오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각각 영남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와 광역의회 선거에 출마한 예비후보들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최종적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명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과정서 김 전 의원이 대신 갚아준 정황도 드러났다. 총 1억2000만원 중 6000만원은 김 전 의원이 보전받은 선거 비용서 충당됐고, 나머지는 김 전 의원이 미래한국연구소에 공보물 비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전달됐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명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서 당시 여론조사를 진행한 미래한국연구소는 자신과 무관하며, 예비후보들이 건넨 돈은 미래한국연구소 김모 소장이 차용증을 작성해 빌린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강씨가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후보를 위한 여론조사 비용을 다른 이들로부터 대신 납부받은 게 총 2억2700만원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밝혔던 1억2000만원보다 약 1억원 이상 추가된 셈이다.

주장에 객관적인 근거는 없어
“진실 꼭 밝혀주실 거라 믿어”

지난 24일 강씨는 민주당 노종면 의원실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지방선거 후보자들에게서 1억2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는데, 사실을 확인해 보니 총 2억2700만원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노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대선 전 약 3개월 동안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출마 예정자 A씨로부터 9차례에 걸쳐 총 1억4500만원, 국민의힘 광역의회 출마 예정자 B씨로부터는 4차례에 걸쳐 총 8200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2억2700만원의 돈을 PNR 리서치를 통한 공표 여론조사와 미래한국연구소의 비공표 조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돈의 성격에 대해선 “출마 예정자 본인의 여론조사 등 선거마케팅 비용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해당 비용은 별도로 계좌이체를 통해 받았고 2억2700만원은 현금이었다”고 부연했다. 

실제 20대 대선 직전 3개월 동안 PNR 리서치를 통해 회당 440만원씩 약 30회의 공표 여론조사가 실시됐고, 미래한국연구소를 통해서도 약 10회에 걸쳐 원가 기준 7000만원 상당의 비공표 여론조사가 이뤄졌다. 미래한국연구소 비공표 조사 중에는 표본이 3000~6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면밀조사 9회가 포함된다. 

강씨는 지난 23일 김 전 의원과 명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약 11시간30분 동안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귀가했다. 이날 그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창원지검에 변호인과 출석하면서 취재진에게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며 “대한민국 검사님들 저는 믿고 있기 때문에 진실 꼭 밝혀주실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후 조사를 마치고 나온 강씨는 “아주 기본적인 조사만 했고 녹음 파일에 대한 조사는 시작도 안 됐다”며 “(조사할)내용이 너무 많아 몇 차례 더 와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 단계까지는 아니다”라며 “내용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강씨를 상대로 한 다섯 번째 소환이자 검찰이 지난 17일 대검과 부산지검 소속 검사 1명씩을 보강한 이후 사건 관련자들을 처음 소환한 일정이었다. 검찰은 의혹 제기 당사자인 강씨를 추후 추가 소환한 뒤 여러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씨와 김 전 의원을 불러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춰진 내막
밝혀질 진실

다만 그동안 제기된 의혹이 여러 가지인 데다 강씨를 상대로 조사할 내용도 많아 명씨 등을 소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달 강씨와 명씨, 김 전 의원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그동안 관련 증거들을 분석하는 한편 추가 압수수색을 통해 보강 자료를 수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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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