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브로커 티내는 명태균

얼마나 우스우면…대통령까지 협박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김건희 여사 ‘공천 관련 의혹’ 논란의 중심에 선 명태균은 경남지역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일종의 정치 컨설턴트 역할을 하며, 여러 정치인들과 접점을 넓혀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각종 인터뷰를 통해 논란을 점점 더 키우고 있는 상황서 정치권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역 정가에서 유명인사로 알려진 그는 누구일까?

최근 명태균의 과거 행적과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며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역 정가서 ‘정치 브로커’로 여겨졌던 명씨는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데 이어 연일 언론에 폭로성 발언을 쏟아내며 여권의 긴장감을 키우는 모양새다. 그가 여권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드러내며 폭로를 이어가는 가운데,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하는 상황이 반복 중이다.

연일 폭로
핵심 키맨

지난 1970년 경남 창원서 태어난 명씨는 한때 역술인 등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창원 일대서 여론조사 업체 등을 운영했으며 정치 컨설팅도 해왔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종합광고 대행 및 신문, 소프트웨어 개발, 인쇄출판 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주)좋은날을 운영했던 기업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과거 창원대학교에 1억원의 발전기금을 출연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주)좋은날은 지난 2003년에 설립됐으나,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창원대학교 발전기금 외에도 명씨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경남본부서 청년 창업자의 경영을 돕는 선배기업인 멘토단으로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그는 지역 정가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 2018년 ‘미래한국연구소’를 창립하고 (주)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와 함께 여론조사 관련 업무를 진행하면서 정치권 관여 폭을 넓혀왔다. 


유명인사였던 명씨의 호칭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그를 ‘정치 컨설턴트’라고 불렀고, 다른 이들은 ‘브로커’ 또는 ‘사기꾼’이라고 칭했다.

명씨가 전국적 인지도를 누리게 된 것은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매체 <뉴스토마토>의 집중 보도를 통해서다. 해당 매체는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바탕으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지난 2022년 6월 보궐선거 공천과 지난 4·10 총선 지역구 이동에 개입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김 전 의원이 경남 창원에 낸 변호사 사무실 주소지가 명씨가 사실상 운영해 온 여론조사 업체와 같았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지난 2020년 1월 창원시 진해구에 법무법인 ‘선택’을 설립하고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4월, 21대 총선서 창원 진해 지역구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경선서 탈락했다. ‘선택’의 부동산등기부등본을 확인하면 같은 해 7월 주소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한 빌딩 3층으로 돼있다. 이 주소는 당시 명씨가 운영하던 미래한국연구소와 동일하다. 

당시 미래한국연구소의 소장 명함은 김 전 의원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모씨로 돼있다. 김씨는 명씨가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인터넷신문·인터넷방송·여론조사 업체인 <시사경남> 보도국장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명씨는 인터넷 매체인 <시사경남>의 CEO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론조사가 주된 무기로 여론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비롯해 정치 현안에도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정가서 상당한 유명인사
정치 현안에 해박하다는 평가


지난 9월19일 <뉴스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창원을 비롯해 경남 일대서 정치하는 사람들 중 명씨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은 명씨에 대해 “무속인은 아니고 지극히 정상”이라며 “독특한 시각으로 정치를 새롭게 분석하는 희한한 촌놈”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명씨를 처음 만났다는 신 의원은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정치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고 느꼈다”며 “선거 기획 능력이나 그런 것이 탁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몰랐던 정치의 흐름을 많이 설명해줬다”고 교류해 왔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레귤러하게 공부하지 않아 약간 울퉁불퉁한 경향은 있지만, 오히려 레귤러 출신들이 갖지 못한 창의력이 있어 보였다”며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눈이 있고, 발상이 좀 더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명씨의 과거 이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201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창원시 공무원에게 로비를 통해 승진시켜주겠다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이 외에도 무자격 상태로 여론조사를 실시 및 보도한 혐의, 불법 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수차례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가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가 해당 기간 총 4차례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조위)의 고발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도 지난 6일 공개됐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여조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조위는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래한국연구소에 여론조사 기준 위반 행위로 총 4차례 고발 처분과 1차례 과태료 처분, 3회 경고 처분을 했다. 

위반 행위는 대부분 ‘표본 대표성 미확보’와 ‘미신고’였다. 연구소는 지난 2019년 경남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관련해 선거 후보자의 의뢰로 비공표용 조사 9건을 임의 구축한 전화번호 DB로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나 여조위가 고발 조치했다. 법원은 연구소 대표와 연구소에 각각 300만원 벌금을 선고했다. 

연구소는 21대 총선과 관련해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표본 대표성 미확보와 편향된 질문지 사용 등이 포착돼 여조위로부터 두 차례 고발당했다.

두 사안을 병합 심리한 법원은 연구소 대표에게 벌금 500만원, 연구소에 벌금 300만원을 결정했다. 연구소는 제8회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5월에도 자체 보유 휴대전화 DB로 조사를 실시하고, 특정 전화번호를 중복으로 사용해 고발됐고 벌금형이 내려졌다. 

다양한 호칭
숨겨진 이력

명씨는 5년 전 사기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9월30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은 지난 2019년 7월10일 사기,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받는 그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명씨가 지난 2016년 4~5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창원시 6급 공무원 A씨에게 로비를 통해 2017년 상반기 5급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했다.

같은 해 5월부터 10월까지 피해자와 골프 라운딩을 하거나 식사 자리서 피해자가 ‘시청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며 직급은 무엇인지’ ‘근무 성적이 어떤지’ 등에 대해 물어보고 창원시장의 친구, 비서실 공무원 등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명씨는 ‘승진 부탁을 누구에게 하려면 인사 명목이 있어야 한다’며 A씨로부터 금전을 요구했고, A씨는 같은 해 11월22일 그의 차량서 현금 3000만원을 건넸다. 이후 12월26일, 다른 공무원에게도 승진 로비 명목으로 225만원 상당의 여성용 골프용품 세트를 받았다.

또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난 2021년 국민의힘 경선 당시 대의원을 포함한 당원 전화번호 약 57만건이 명씨에 의해 유출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지난 10일, 명씨가 국민의힘 당원 56만8000여명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이들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여론조사에 활용된 국민의힘 당원 목록에는 책임당원과 대의원 분류, 성별과 지역, 휴대전화 안심번호 등이 포함됐다. 본 경선 기간(2021년 10월9일~11월4일)에 조사가 실시됐다는 점과 공신력이 의심스러운 외부 기관으로 당원 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당시 미래한국연구소는 국민의힘 최종 후보 4명(원희룡, 홍준표, 유승민, 윤석열)의 본선 경쟁력 및 각 후보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대 1 가상대결 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당시 윤석열 후보의 압도적인 우위로 나타났다.


이에 같은 날 국민의힘은 명씨에게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당원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을 자체 조사하기로 밝혔다. 국민의힘 서민수 사무총장은 노 의원이 제기한 ‘당원명부 유출’ 의혹에 대해 “어떻게(명부가) 흘러갔는지 우리가 차근차근 지금부터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도된 명씨의 언론 인터뷰는 여권을 뒤흔들었다. 그는 지난 6일 진행된 JTBC와의 인터뷰서 “(언론엔)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며 “입 열면 진짜 뒤집힌다” “내가 (감옥에)들어가면 한 달 만에 이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선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서울 서초동 자택에 대여섯번 방문해 국무총리 인사 추천 등 여러 정치적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거물급 인맥
영향력 과시

또 이날 밤 보도된 채널A 인터뷰에선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검사에게 묻겠다고 했다.

보도 이후 논란이 커지자 명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에게 연락해 “(하야, 탄핵 발언은)농담삼아 한 이야기”라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데 대해 재차 일축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통해 명씨를 만나게 됐다”며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뒤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 2021년 7월 초 자택을 찾아온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가 명태균을 데리고 와 처음으로 보게 됐다”고 언론 공지를 통해 밝혔다. 

이어 “얼마 후 역시 자택을 방문한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를 데려와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된 것이고, 윤 대통령이 당시 두 정치인을 자택서 만난 것은 그들이 보안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명씨가 대통령과 별도의 친분이 있어 자택에 오게 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경선 막바지쯤 명씨가 윤 대통령의 지역 유세장에 찾아온 것을 본 국민의힘 정치인이 그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했고,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많은 분들로부터 대선 관련 조언을 듣고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본청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뛰는 천공 위에 나는 명태균이냐”고 비꽜다. 

박 원내대표는 “요즘 김건희는 정권 실세, 명태균은 비선 실세라는 말이 돌아다닌다”면서 “용산 대통령실은 켕기는 게 있는지 침묵으로만 일관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2년 김영선 전 의원의 재보선 공천이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제공한 대가라는 증언이 나왔다”며 “사실이라면 현직 대통령 부부가 공천 장사를 했다는 것이고, 명씨가 윤 대통령에게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비선 실세라는 말 돌아다녀”
“입도 뻥끗 못 한 상황 한심”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명씨를 두고 “제2의 최순실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서 “명태균씨 또는 제2의 명태균, 제3의 명태균이 김건희씨를 통하거나 윤 대통령에게 바로 인사 개입, 인사 농단을 했다거나 정책 관련 개입을 했다면 이게 바로 제2의 최순실”이라며 “이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를 밝히기 위해서 저희 당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날 원외 당협위원장과의 비공개 자유토론서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전해 듣고 “행동할 때가 됐다”며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선택을 해야 한다면 민심을 따를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당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정감사 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일방적인 얘기들이 알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렇게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씨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보면 발언자들의 내용이 서로 충돌되는 지점도 있다”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승민 전 의원도 입장을 밝혔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수 정치인들이 명태균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사람과 어울려 약점이 잡히고 이 난리가 났는데 누구 하나 입도 뻥끗 못하는 상황이 한심하고 수치스럽다”고 한탄했다. 

그는 “불법 공천 개입이든 불법 정치자금이든, 명씨와 관련된 모든 의혹들을 검찰은 철저히 수사하고 법대로 심판해야 한다”며 “만약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면 검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며, 특검을 피할 명분이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이트 우려
정치권 술렁

명씨가 연일 윤 대통령 부부 및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을 드러내는 주장을 이어가면서 여권 내부에서는 파장이 커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특히 그 발언의 진위 여부에 따라 이번 사건이 게이트급으로까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yuncastl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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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