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 두 번째 총장 막전막후

뒤 맡길 호위 찐윤 줄섰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심우정 법무부차관·임관혁 서울고검장·신자용 대검 차장검사·이진동 대구고검장 등 모두 윤석열 사단의 일원들이 후보자로 선정됐다. 찐윤이었던 이원석 검찰총장에게 한 번 뒤통수를 맞은 윤정부가 선택할 믿을맨은 누구일까?

윤석열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이 조만간 선출된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는 기획·특수통 4명의 후보를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게 올렸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임기 막바지에 용산 대통령실과 마찰을 빚은 바 있어 차기 검찰총장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4인 후보자
이력 보니…

지난 7일 추천위는 경기 과천시 정부종합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을 추렸다. 추천위 운영 규정에 따르면, 추천위는 회의 종료 후 후보자 3명 이상을 법무부 장관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하고 법무 장관이 그중 1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하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검찰총장으로 임명된다.

이날 추천위에는 당연직 위원 배형원 법원행정처 차장, 김영훈 대한변호사협회장, 조홍식 한국법학교수회장, 이상경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송강 법무부 검찰국장과 비당연직에서는 위원장을 맡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을 비롯해 이진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안수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김세동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참여했다.

정 위원장은 당시 회의를 열며 “최근 수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고 특히 검찰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걱정들을 하고 계시는 걸 제가 잘 알고 있다”며 “그 부분에 대해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제가 덧붙여서 말씀드릴 건 없고 엄중한 상황 아래서 위원회를 한다는 것만 말씀드린다”고 언급했다.


추천위는 이날 2시간35분가량 회의를 진행하고 차기 총장 후보로 ▲심우정 법무부 차관 ▲임관혁 서울고검장 ▲신자용 대검 차장 ▲이진동 대구고검장 등 4명을 추천했다. 이들은 모두 윤석열 대통령과 근무한 인연이 있는 인물들로 일명 윤석열 사단으로 불린다.

정 위원장은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검찰총장 후보 심사 대상자들의 경력, 공직 재직 기간 동안의 성과와 능력, 인품, 리더십,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의지 등에 관해 심도 있는 심사를 거쳐 안정적으로 검찰 조직을 이끌고 국민이 바라는 검찰의 모습을 실현할 검찰총장 후보 4명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내부서도 후보자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편이다.

한 대검 간부는 “후보자로 선정된 4명 모두 이렇다 할 큰 사건을 지휘하거나 수사한 적이 있는 유능한 검사”라며 “현재는 검찰 내부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 신망이 두터운 검사들이 후보자로 추천된 것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4명의 후보자는 기획 또는 특별수사 전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심 차관은 충남 공주 출생으로 휘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2000년 검사로 임관했다. 지난 2015년 2월 그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제1부 부장검사에 발령됐을 당시 이진한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가 검찰 출입기자들의 송년회 자리서 여성 기자를 상대로 성추행을 벌인 사건을 수사한 것이 계기가 돼 주목받기 시작했다.

후보군 4명으로 압축
모두 윤 대통령 인연

이어 지난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핵심인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의 전방위적 수사 책임을, 그리고 어버이연합 등의 보조금 지원 의혹을 수사·기소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법무부 검찰국 형사기획과장·검찰과장, 기획조정실장 등 기획 분야 업무를 주로 맡아 검찰 내 대표적인 기획통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당시 형사1부장으로 두 달가량 함께 근무하며 연을 맺었다. 이후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청구를 강행할 때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었던 심 차관은 “동의하기 어렵다”며 끝까지 결재를 거부해 윤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졌다. 

이런 점을 증명하듯 심 차관은 고검장 중 최선임 직위이자 검찰총장 바로 밑의 자리인 대검찰청 차장검사에 영전되기도 했다. 지난 1월엔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사의를 표명하자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위해 사퇴했던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대신해 법무부 장관 직무 대행을 맡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이력 때문에 검찰총장의 업무와 법무부 장관의 업무 모두를 잘 알고 있어 정부와의 대립이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 고검장은 충남 논산 출생으로 보문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 대전지검 공주치정장, 서울중앙지검 특수 1·2부 부장검사, 부산지검 특수부를 거친 대표적인 특수통이다. 

그는 ‘STX 정관계 로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이명박정부의 자원 비리 의혹 사건’ ‘부산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 등 굵직한 기업·권력 비리를 수사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당시 동기들이 승진할 때 한직을 돌았다. 이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당시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으로 발탁되며 다시 주목을 받았다.

다만 지난 2021년 1월 대부분 의혹을 무혐의로 발표하고 남은 부분은 세월호 특검을 넘기면서 문정부 마지막까지 승진하지 못하다 윤정부가 들어서고 첫 검찰 인사에서 뒤늦은 검사장 승진에 성공해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했다.

기획통
특별통

법조계에선 당시 이미 그의 기수서 고검장이 나온 만큼 승진이 사실상 끝났고 그대로 퇴직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윤 대통령의 신임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셈이다. 

이후 지난해 9월 검사장 승진 1년 만에 고검장으로 승진해,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영전하고 지난 5월 인사에서 관례적으로 최선임 고검장이 임명되는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전보돼 윤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다시 확인시켜주며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신 차장검사는 전남 장흥 출생으로 전남 순천고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제3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22년 서울지검 동부지청 검사로 임관했다. 대검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법무부 검찰과장·검찰국장 등을 지냈다.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장일 때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윤 대통령과 손발을 맞추며 인연을 맺었다. 이후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부임한 지난 2017년 특수1부장을 맡아 직속 상관인 당시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함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세월호 참사 보고 시간 조작 의혹 등을 수사했다.


또 문정부의 적폐 청산 수사에 참여해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다스 실소유주 수사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그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형사사건을 총괄하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기용됐다.

이후 문정부를 겨냥한 수사를 진행하다가 한직으로 밀려났지만 윤정부 조각 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인사청문회 준비단 총괄팀장을 맡으며 재기했다. 

이 고검장은 서울 출생으로 경동고와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한 뒤 검사로 임관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장, 수원지검 2차장검사와 서울고검 감찰부장을 거쳐 대구지검장, 서울서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기업자금비리 분야 블루벨트 인증 공인전문검사로, 제일저축은행 비리, 솔로몬저축은행 비리,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 등을 맡아 수사했다. 특히 지난 2011년 대검 중앙수사부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부산저축은행 비리 의혹을 수사하며 윤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인연으로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조사1부장, 형사3부장을 역임했다. 윤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대통령실과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서울서부지검을 맡았다. 

도이치
명품백


한 대검 간부는 “용산 대통령실을 관할하는 서울서부지검장을 정권 초기부터 그에게 맡긴 건 그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가 깊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들 중 누가 검찰총장이 되더라도 최우선 과제는 검찰의 안정화다. 검찰은 지난달 20일, 김건희 여사 소환조사를 두고 내홍이 일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와 형사1부가 김 여사를 소환조사하면서도 이 총장에게 뒤늦게 보고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총장은 언론 앞에서 수사팀을 직격했으며 수사팀의 일선 검사는 사표를 제출했다. 게다가 이와 관련해 대검서 감사에 착수하자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이 대검 방침에 “나 홀로 조사에 임하겠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검찰 내홍은 이 총장이 지난 25일 열린 주례 정기보고서 이 지검장에게 “현안 사건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했고, 이 지검장은 이에 “대검과 긴밀히 소통해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답하며 진화됐지만 검찰 내부는 아직 뒤숭숭한 분위기라는 말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검찰 내부에서는 26기가 검찰 수장이 되는 게 맞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후배 기수(28기)를 총장으로 임명하면 선배 기수인 26, 27기가 대규모로 검찰을 이탈하며 검찰 조직이 더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비교적 낮은 기수가 검찰 수장에 앉을 때마다 선배 기수의 이탈은 반복됐다. 연수원 23기인 윤 대통령이 총장으로 임명됐을 때 ‘기수 파괴’라는 평가와 함께 선배 기수들의 사직이 이어졌고, 이원석 총장(27기) 임명 때도 되풀이됐다.

특히 윤 대통령의 취임 이후 27기의 전성기라고 불린 만큼 바로 윗 선배 기수는 대부분 검찰을 떠났다. 노정환 전 울산지검장(26기), 문홍성 전 전주지검장(26기), 이수권 전 광주지검장(26기) 등이 대표적이다. 

한 현직 검사는 “26기가 총장에 임명돼도 검찰 내부 인사 동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28기가 임명될 경우 나가야 할 사람이 많아진다”며 “지금 같은 상황서 내부 인원 변경이 많으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최우선 과제는 내부 안정화
후반기 ‘믿을맨’ 역할 주목

그렇기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심 차관이다. 심 차관은 26기며 실제 조직 내 신망이 두터운 만큼 조직 안정화에도 강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검찰 내부서 기획은 ‘조직, 안정’에 강점이 많고 특수는 ‘추진, 변화’에 강점이 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기획통으로 불리는 심 차관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선호하는 편이다.

대검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심 차관은 검찰 조직 생활에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이라며 “현재 검찰이 어수선한 상황을 감안하면 발표된 후보 중 가장 무난한 인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심 차관과 같은 기수인 임 고검장도 윤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만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임 고검장이 고집하는 ‘원칙주의’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문정부 당시 임 고검장은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단장으로 재수사를 진행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내며 “유가족이 기대하는 결과에 미치지 못해 실망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법률가로서 되지 않는 사건을 억지로 만들 수는 없고 법과 원칙에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런 모습이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이 총장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대통령실서도 이 같은 점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 인사에 정통한 한 법조인은 “이원석 총장에게 한 번 데였다고 생각하는 대통령실 분위기가 있다”며 “아직 김 여사가 연루된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윤 대통령의 신뢰와 상관없이 원칙을 중시하는 임 고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으로는 부담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다른 후보자의 검찰총장 임명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특히 신 차장검사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복심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는 만큼 완전한 자기 사람을 다시 검찰의 수장으로 발탁할 가능성도 있다.

법조계에선 이번 검찰총장은 윤 대통령이 얼마나 뒤를 맡길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김 여사 사건은 종결이 되지 않았으며 여소야대 상황서 검찰과 윤 대통령을 압박하는 법안 등에 잘 대처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검찰총장은 윤석열정부의 3~4년차에 정치적으로 예민한 사건을 잘 처리하면서 동시에 드라이브를 걸고 여론을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아 있는
예민한 사건

한편 윤 대통령은 지난 11일 신임 검찰총장 후보자에 심우정 법무부 차관을 지명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은 인선을 발표했다.

정 실장은 “심 후보자는 법무부·검찰의 주요 분야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며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검찰 구성원들의 신망이 두텁고, 형사 절차 및 검찰 제도에 대한 높은 식견과 법치주의 확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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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