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김두관 솟아날 구멍

바위로 날아든 달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당 대표직에 도전장을 내민 김두관 후보가 고민에 빠졌다. 여의도 안팎에서는 “예상한 결과”라며 입 모아 말했지만 생각보다 묵직한 타격에 다소 당혹스러운 모양새다. 야심 차게 나선 이상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전당대회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어떻게든 반전을 꾀해야만 한다.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가 끝나면서 정치권의 시선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8·18 전당대회로 옮겨졌다.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으로 끝날 전당대회라는 우려와 달리 두 명의 후보가 막판에 뛰어들면서 흥미로운 구도가 그려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이재명 후보가 크게 앞서면서 김두관 후보의 입지가 급격히 쪼그라드는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28일 기준, 민주당 권리당원 온라인 투표 누적 득표 결과 이 후보가 90.41%를 얻은 반면 김 후보는 8.36%에 그쳤다.

예상은 했지만…

“단 1%의 다른 목소리가 있더라도 대변하겠다”며 출사표를 던진 김 후보지만 실제 눈앞에 찍힌 한 자리 지지율은 쓰릴 수밖에 없다.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저마다 분석에 나섰다.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이재명 때리기’에 몰두한 전략이 오히려 독이 됐다며 입 모아 말한다.

‘민주주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췄다지만 “유례가 없는 제왕적 당 대표, 1인 정당화로 민주주의 파괴의 병을 키웠다”는 출마 선언문처럼 이 후보를 견제하는 방식만으로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없을 것이란 해석이다.


반면 이 후보는 출마 선언식에서 ‘미래 비전’ ‘먹사니즘’ ‘기후위기와 에너지’ 등 대선에서나 볼법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로 인해 비명(비 이재명)계 공격수를 자처하게 된 김 후보가 이 후보의 그림자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주목을 받았다는 평도 나온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민주당을 총선 승리로 이끈 건 이 후보인 게 대전제인 상황에서 ‘1인 정당’을 공격 소재로 삼아도 소용없다”며 “개딸(개혁의 딸) 입장에서는 풍악을 울리던 잔칫집에 문을 박차고 들어와 찬물을 끼얹은 셈”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18일 진행된 첫 토론회서도 김 후보는 이 후보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마련한 토론회서 김 후보는 대선 패배 원인, 민주 진영의 분열, 중도층 확장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김 후보는 “민주당이 차기 대선서 집권하려면 민주진보진영이 고정 지지율 35%에서 적어도 15% 이상의 지지를 더 확보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며 “민주당의 민주성이 훼손되면 절대 중도층의 마음을 살 수 없다”고 힘줘 말했다.

모두가 ‘친명’ 외치는데 혼자서…
“당에 떠도는 전체주의 유령” 일침

사법 리스크, 공천 파동 같은 예민한 문제도 가감 없이 꺼내 들었다. “‘당권은 김두관에게 맡기고 대선을 착실하게 준비하시는 게 어떠냐’는 의견도 있다”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지 않고 방어에 나섰다. 중도층 확장 우려에 대해 “여당이 집권한 2년 차가 지난 시점에서 야당이 여당의 지지율을 넘어서는 사례가 없다”며 “그걸 갖고 마치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면 일리는 있지만 지나치게 우리 자신을 위축시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일극체제, 1인정당이라는 비판에는 “당원들의 선택”이라는 말을 거듭 강조했다. 연임 도전 이유에 대해서는 “윤석열정부의 패악에 가까운 정치 행태를 외면 방관하고 그대로 둘 거냐? 그 점에서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당 대표 출마에 도전하는 이유를 비교했을 때 이 후보는 윤정부 독주를 막기 위함이지만 김 후보는 이 후보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다. 명분 싸움에서 김 후보가 밀릴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나오는 지점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한 실점도 리스크가 됐다. 친명계(친 이재명)계 의원을 비롯한 이 후보의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집단 쓰레기’ 발언이 불러온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앞서 김 후보는 지난 22일 자신의 SNS에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쓰레기로 변한 집단은 정권을 잡을 수도 없거니와 잡아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합동연설 방식에 문제점을 제기하던 중 나온 표현이다. 지역별로 치러지는 경선서 온라인 권리당원 투표는 후보 합동연설 전날부터 시작해 연설 종료 20분 후에 마감하는데, 이를 두고 “당원을 연설도 듣기 전에 표만 찍는 기계 취급한다”고 꼬집은 것이다.

‘집단 쓰레기’ 발언이 논란으로 번지자 김 후보 측은 “후보 뜻이 와전되어 메시지 팀에서 실수로 업로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는 해당 사실을 인지한 뒤 문제의 문구를 즉각 삭제할 것을 지시했으며 메시지 팀장과 SNS 팀장을 해임했다. SNS를 통해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하기도 했다.

거듭된 사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초기 대응 당시 아랫사람에게 잘못을 떠넘기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부터 은연중 속마음이 튀어나왔다는 후문까지 돌았다.

한 자릿수 지지율 깨부술 돌파구
그 끝서 꺼낸 ‘개헌 카드’ 먹힐까?

그러던 중 김 후보가 돌연 개헌 카드를 꺼내 들면서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아직 이 후보를 높은 수준으로 견제하고 있지만, 개헌 추진 등 정치적 의제를 선도하면서 환기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지난 24일 김 후보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을 논의 테이블에 올렸다. 김 후보는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단축하고 개헌을 통해 2026년 6월에 지방선거와 대선을 동시에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며 “연말까지 임기 단축과 개헌 추진을 결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재명 당 대표 (체제)로는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과 개헌을 추진할 수 없다”며 “윤 대통령과 이 후보는 둘 중 한 명이 죽거나 둘 다 죽어야 끝나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까지’라는 구체적인 제안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김 후보가 새로운 정치적 의제를 설정함과 동시에 이 후보를 견제하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여전히 비명계 전선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게 흠으로 작용했다는 평이 나온다. 개헌 논의에 다른 의원들이 뜻을 함께하고 싶어도 “이 후보가 못하는 걸 나는 해내겠다”는 뉘앙스가 강해 선뜻 합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기자회견을 놓고 “김 후보가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고도 말했다.지구당 부활 안건에 대해서는 이 후보와 뜻을 같이했지만 종합부동산세, 금융투자소득세 등의 문제를 놓고 또다시 격돌했다. KBS서 진행한 두 번째 토론회서 이 후보는 “1가구 실거주 1주택에 대해 종합부동산세를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지만 김 후보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하는 민주당 당 대표로는 적절치 않은 주장”이라고 반박하면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사사건건 부딪칠 날이 더 많은 상황서 김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낼 반전의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30%대 지지율을 전망했던 이들 역시 예상보다 부진한 성적에 적잖게 놀란 모양새다. ‘약속 대련’ 의혹은 자취를 감췄으며 오히려 김 후보의 정치 인생에 흠이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마저 커지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일각에서는 전당대회 당일까지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강성 지지자의 따끔한 회초리를 견디면서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9:1과 8:2, 어쩌면 7:3까지. 두 사람이 받아들 성적표에 따라 해석도 천차만별로 갈릴 수밖에 없다. ‘맹탕 전당대회’라는 지적 속에서도 내심 그 결과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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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