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아도 훤히 보이는 민주당 전대 뻔한 결말

‘알고도 속는’ 짜고 치는 고스톱?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독무대’로 끝날 뻔한 더불어민주당 8·18 전당대회가 3파전으로 벌어졌다. 그래도 여의도에 짙게 드리워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 그림자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반전을 기대하는 것일까? 세 후보 모두 저마다의 계획을 안은 채 이 시나리오의 엔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달 18일 치러지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전당대회를 둘러싼 흥행의 불씨가 살아났다. 후보자 등록 마감을 앞두고 속속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민주당 전 의원이자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을 가진 김두관 후보(이하 김 후보)가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했다. 그 뒤로 유력 주자인 이재명 후보와 원외 인사인 김지수 후보가 대열에 합류했다.

한 명의 결단
두 가지 반응

지난 9일 김 후보는 세종특별자치시의회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권 도전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동안 이 후보의 일극체제를 비판해 왔던 만큼 그의 출마는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이날 그는 “민주당은 역사상 유례없는 ‘제왕적 당 대표 1인 정당화’로 민주주의 파괴의 병을 키워 국민의 실망이 커지고 있다”고 운을 뗐다. 민주당 내 불거졌던 ‘어대명’ ‘또대명(또 대표는 이재명)’ 등 추대론의 주인공인 이 후보를 직격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서 흔적도 없이 실종된 지 오래”라며 “지금 이 오염원을 제거하고 소독·치료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붕괴는 명확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 김두관의 당 대표 출마는 눈에 뻔히 보이는 민주당의 붕괴를 온몸으로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의 출마 선언문을 두고 곳곳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해 4월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서 이 후보를 지지했던 마음을 한순간에 뒤집고 비명(비 이재명)계를 자처했다는 이유에서다.

김 후보는 지난해 원내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그는 “힘 있는 단결로 이재명 대표를 지키고 영남에 교두보를 만들어 총선을 이기겠다. 누가 민주주의와 이재명 대표를 지킬 수 있겠나”라며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공약으로는 영남권을 기반으로 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었지만 낙선하는 데 그쳤다.

부산·경남(PK)를 겨냥한 공약은 당의 주류인 호남과 수도권 유권자의 호응을 이끌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4·10 총선을 앞두고 작심하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그는 지난해 11월 민주당 내 공천 파동이 크게 일 조짐이 보이자 당 지도부를 겨냥해 “국민의힘보다 더 많은 다선 의원을 험지로 보내는 ‘내 살 깎기’를 시작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험지에 출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남 양산을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치열한 경쟁 끝에 국민의힘 김태호 후보에 패배했다.

친(친 이재명)·비명 프레임서 벗어나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란 평이 나왔지만 일부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는 ‘수박’이라는 불만이 나왔다. 게다가 이번 출마를 기점으로 김 후보가 본격적으로 이 후보와 각을 세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출마를 고심하던 무렵 김 후보의 선택을 만류하던 이들도 있었다. 이 후보를 상대로 출마를 선언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후보와의 통화에서 직접 출마를 말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이와 관련해 김 후보는 “‘어떻게 민주당 십자가를 지려고 하느냐’ (같이)저를 아끼는 차원서 ‘이번보다 다음에 준비해서 출마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김 후보가 마음을 굳히면서 몇 개월 동안 이어지던 ‘이재명 추대론’이 막판에 뒤집혔다. 압도적인 찬성 속 다시 한번 당 대표를 지낸 뒤 대권까지 물 흐르듯 넘어가려 했던 이 후보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김 후보의 날 선 연설문이 구구한 해석을 낳는 사이 이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사실상 대표직 연임을 위한 절차에 가까웠다.

이재명 맞수로 돌아온 김두관
잘려 나간 ‘친명’ 꼬리표, 왜?

지난 10일 이 후보는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준비한 출마 선언문을 한 자씩 읽어내려갔다. 이 후보는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제1정당, 수권 정당인 민주당의 책임”이라며 “‘절망의 오늘’을 ‘희망의 내일’로 바꿀 수 있다면 제가 가진 무엇이라도 다 내던지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 후보는 윤석열정부를 비판하는 대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와 비전을 제시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이 후보는 “단언컨대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가 돼야 한다” “기술인재 양성에 더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신기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 등의 발언도 이어갔다.

정당의 발전 방향에 대해선 “당원 중심 대중 정당으로의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며 “당원들이 더 단단하게 뭉쳐 다음 지방선거서 더 크게 이기고 다음 대선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강조했다. 이날 이 후보의 출마 선언은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한다는 평도 나왔다.

같은 날 한반도 미래경제포럼 김지수 대표까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 후보의 단독 출마로 예상됐던 민주당 전당대회는 3파전으로 확정됐다. 막차에 탑승한 김지수 후보는 미래 세대에 초점을 맞춰 “젊은 세대의 슬픔과 고민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출마 소신을 밝혔다.

그러나 당내 지지 세력이나 체급서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전당대회가 3파전으로 벌어져도 어대명 아성이 무너질 가능성은 극히 적다. 김 후보의 출마로 인해 이 후보의 입지가 흔들리진 않겠지만 작은 흠 하나도 확대해 해석되는 등 골치 아픈 상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약속대련
진검승부


대표적인 예로는 이 후보가 얻게 될 득표율이다. 2년 전 치러진 전당대회서 이 후보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 만일 이번 투표서 이 대표에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해 77.77%보다 낮은 득표율을 얻을 경우 그의 평판에 한줄기 금이 그어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후보는 잃는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평이다. “단 1%의 반대 목소리도 전당대회를 통해 대변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책무”라고 밝혔지만 20~30%의 지지율로 반전을 보여줄 경우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후기와 함께 비명계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다.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지금부터 인지도를 쌓아 다음 대선을 노리는 것도 예측 가능한 지점 중 하나다. 만일 이 후보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출마가 불가능해질 때 ‘그래도 이재명과 겨뤘던 김두관’이 유권자의 뇌리에 스칠 것이란 후문이다.

이 후보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 후보는 ‘이재명 1인 정당’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을 가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영화 <암살>을 언급하며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독립을 위한 싸움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을 위한 길이기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해당 발언을 접한 이 후보의 강성 지지자들은 “그럼 이재명 대표가 당을 팔아넘겼냐는 뜻이냐”며 격분된 반응을 보였다. 차마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지만 내심 이 대표의 추대를 기대했던 초선 의원들 사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도는 모양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김 후보의 출마에 “용기 있는 결단”이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지난 11일 평산마을을 찾은 김 후보는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날 문 전 대통령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용기 있는 결단을 했다. 민주당이 경쟁이 있어야 역동성을 살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김두관 후보의 출마가 민주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흥행 없이
노잼으로?

이에 김 후보 역시 “민주당을 구하는 큰일이라 계산 없이 나섰다”며 “최고위원 후보가 5인5색이 아니라 5인1색 될 것 같다. 다양성이 실종된 당의 현주소를 국민이 많이 불편해한다”고 화답했다.

오히려 김 후보의 출마를 반색하는 이들도 있다. 흥행 요소가 전혀 없는 ‘노잼 전당대회’로 끝날까 노심초사했지만 두 후보의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주목도가 높아졌다는 평이다. 이 후보에게만 쏠릴 뻔한 부담과 ‘이재명 일극체제’라는 비판적인 여론을 희석하는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툭’ 튀어나온 김 후보에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와의 관계성을 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했다. 특히 두 사람이 사전에 합을 맞춘 ‘약속 대련’이 아니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 후보는 단독 출마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김 후보는 정치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는 이른바 ‘윈윈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두관 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데 의의를 뒀을 것”이라며 “2026년 지방선거가 있지 않은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정치적 활동반경을 가늠하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PK와 친노(친 노무현), 친문(친 문재인) 세력까지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이 후보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진 않다. 지난 총선서 이낙연 전 대표를 비롯한 무수히 많은 비명계가 당을 떠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다들 알고 있다”며 “이번 양자 대결은 당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후보는 2010년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여러 굵직한 자리를 맡아왔으며 한때 대권주자로 거론되기도 했던 인사다. 비록 이번 총선서 고배를 마셨지만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서 승부수를 던져볼 만하다. 이번 전당대회서 거대 야당의 수장인 이 후보와 겨뤄봄으로써 스스로의 체급을 확인할 좋은 기회기도 하다.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김두관 후보의 경우 ‘내가 이재명에 비해 뭐가 부족한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보면 김두관 후보는 부족함이 없다. 다만 이번 총선서 떨어진 게 마이너스로 작용했을 뿐, 당 대표에 도전하고 또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면 고착된 민주당에 작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김 “내 나이가 몇인데…내 정치해야”
지선 생각 없다는데…혹시 또 대선?

약속 대련 의혹에 대해 양측 모두 선을 그었다. 특히 김 후보는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제 나이가 몇 살인데 제 정치를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반박했다.

‘2026년 지방선거를 위해 출마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2010년 경남도지사를 지낸 후 도정에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다음 지방선거가 워낙 중요해서 이번에 당 대표를 맡게 되면 기초광역의회 후보 공천 시스템을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도지사에 도전할 의사는)전혀 없다”고 답했다.

약속 대련이든 진검승부든 이번 전당대회서 승기를 거머쥘 사람은 결국 이 후보일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이다. 아무리 결투의 장을 넓히고 후보군이 많아도 7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한 이 후보를 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에서다.

김두관 후보와 김지수 후보의 출마는 이 후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에서는 김 후보가 주장한 ‘제왕적 대표’라는 표현과 약속 대련에 공감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당원의 선택을 받아 다시 한번 당 대표직에 도전했을 뿐, 당 차원서 어떠한 압력도 외압도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이재명 대표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천준호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이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문제 삼는 건 제한적 관점이라 본다”며 “다수의 지지를 받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위적으로 다양성 자체를 목표로 해서 경쟁구도를 만들고 지지를 조정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현 상황은 정치권 안팎서 제기되는 일극체제가 아닌 당원 중심 체제로 당이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당대회 대진표가 구성됐지만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강성 지지자 한 명 한 명을 찾아가 다독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렇다 보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심리적 분당’의 원인이었던 친·비명간의 갈등이 재점화될까 마음졸이는 이들도 있다.

그래도
‘어대명’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최요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이 건강하단 증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우리나라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주의 체제로 들어섰다. 지금까지 우여곡절을 겪었고 그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겹씩 쌓여갔다. 지금도 그런 과정”이라며 “이 후보의 77.77% 지지율이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이는 큰 문제가 아니며 내부서 여러 이견이 나올 수 있다. 세 명의 후보 모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당원도 거기에 맞게 한 표를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치 집단에서는 갈등이 필연적”이라며 “일각서 제기되는 계파 분열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용감한 도전자 김지수는 누구?

이재명·김두관 후보와 어깨를 나란히 할 김지수 후보는 1986년생으로 민주당서 꾸준히 활동해 온 청년·원외 인사다.

그는 재단법인 ‘여시재 북경사무소’ 소장 출신으로 한반도 미래경제포럼 대표를 맡고 있다.

2022년에는 민주당 최고위원 선거에도 도전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출마 선언문을 통해 “미래 세대를 대표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당 대표에 출마한다”며 “저의 도전이 대한민국에 작지만 큰 파동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 있었다”며 “제가 도전하지 않으면 이번 전당대회서 언급되지 않을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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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