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⑩거친 보리밥과 시래기국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7.08 01:00:00
  • 호수 14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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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피에로가 비명을 내질렀다. 누가 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다른 누군가 주전자를 들어 물을 조금씩 손목에다 부었다. 

물은 손목을 타고 내려 밑에 받친 밥그릇으로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마 피에로는 지금 자신의 손목 동맥이 끊겨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그러나 손목에는 상처가 조금 났을 뿐 피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피에로는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일말의 소동

용운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눈을 돌려 버렸다.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말의 소동이 끝난 후에 반장이 용운을 향해 말했다. 


“얌마, 너는 오늘부터 내 안마 담당이다. 니 쫄따구가 들어올 때까지 매일 저녁 내 다리를 주무른다. 알았냐?”

“예.”

“그리고 너.”

피에로를 지목했다. 

“예!”

피에로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대답했다.

“너는 복도 담당이다. 매일 아침 기상하는 즉시 복도부터 점검한다. 어떤 새끼가 고구마 쪄놨으면 책임지고 깨끗이 치워. 만일 눈꼽만큼이라도 흔적을 남겼다가 곡소리 날 줄 알아라. 알았냐?”


“예? 예…….”

“다른 반 앞은 신경 쓸 거 없고 우리 반 앞만 해. 그리고 범인을 잡는 날엔 일계급 특진이다.”

“예.”

피에로가 멍하니 서 있으니까 스라소니가 말했다.

“고구마란 똥을 뜻한다.”

괴이한 노릇이었다. 대체 밤사이 복도에 누가 감히 대변을 본다는 말인가. 또 그게 사실이라면 무엇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래야만 한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비로소 반장의 입에서 ‘휴식!’ 소리가 떨어졌다.

“니들 자리는 저쪽 문 옆이니 즉시 찌그러져.”

용운은 움직였다. 지정해 주는 곳으로 가서 앉으려니까 아까 맞은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용운은 쪼그려 앉은 채로 지급받은 일용품들을 챙기다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원생들의 허리에 스푼과 칫솔이 매달려 있었다. 비누에 구멍을 뚫고 끈을 꿰어 목걸이처럼 걸고 있는 놈도 있었다. 도난이 심하고 한 번 분실하면 되찾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허리 꿰찬 일용품들
가끔씩 배불리 먹기

용운은 식기와 담요 같은 것만 관물대에 넣고 나머지는 허리에 꿰찼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충심사 사장 왕거미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야, 곧장 식사 집합 안 해, 이 잡새끼들아?”

“어, 미안. 지금 나간다.”

반장은 반원들에게 식기를 들고 집합하라고 명령했다. 말투로 보아 그들은 서로 트고 지내는 듯싶었다.

식당은 산등성이 밑에 있었다. 모든 원생을 동시에 수용할 만큼 커다란 건물이었다. 밥 한 끼 얻어먹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두가 출입구 앞에 줄을 맞추고 부동자세로 서서 노란 완장을 찬 주번 원생의 마음에 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야, 저쪽 줄 끝에서 세 번째 놈! 너 이 새끼 어디로 눈깔 돌려. 밥 처먹기 싫어? 그 줄 각심사 1반 맞지?”

그러자 나지막한 불만의 소리가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니기미, 배고파 죽겠는데, 저 새끼 땜에 또 늦네. 개새끼.”

“야, 짱구 움직이지 말그라, 자슥아. 또 우릴 쳐다보잖나.”

우선 착실한 줄부터 입장시키다 보니 용운의 반이 들어갈 때쯤에는 벌써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반도 많았다. 

순서대로 용운이 배식구에 식기를 들이밀자 거친 보리밥과 시래기국이 담겨 나왔다. 양도 형편없이 적었다. 

“차렷! 식사 개시!”

“감사히 먹겠습니다.”

누군가의 구령에 따라 모두 크게 외치고 밥그릇을 끌어당겼다. 용운도 바삐 숟가락을 움직였다. 잠시 후였다.

“야, 여기야 여기…….”

앞줄의 한 원생이 자신의 식기를 가볍게 두드리며 좌우를 향해 소곤댔다. 그러자 주위의 대여섯 원생이 밥 한 숟가락씩을 크게 떠서 재빨리 그의 식기에 몰아주었다.

그건 밥 계(契)라는 것이었다. 기왕에 먹으나 마나 한 양이니만큼 순번을 정해 놓고 어느 한 사람에게 몰아주어 한 끼나마 가끔씩 배불리 먹어 보자는 생각일 터였다.

고무같은 밥

그 원생의 얼굴에 동물적인 미소가 번지는 것을 곁눈질하며 용운은 급히 숟가락을 들고 밥을 퍼먹었다. 

밥은 뜸도 제대로 안 들었는지 설 퍼진 보리알들이 씹히기 싫다는 듯 고무 조각처럼 입안을 맴돌았다. 반찬이라곤 거무튀튀한 소금이 어석어석 씹히는 짜디짠 곤쟁이젓 하나뿐이었다.

너무도 짜서 머릿속이 띵할 정도였다. 차라리 구걸해서 먹을 때보다도 더 못한 것만 같았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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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