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⑨“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7.01 06:00:00
  • 호수 1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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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자, 준비됐으면 눈 감고 실시한다!”

반장의 말에 두 신입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용운은 오른발부터 최대한 높이 들어 조심조심 보이지 않는 고무줄을 넘었다. 눈을 감은 탓에 한 발을 들 때마다 몸이 중심을 잃고 자꾸 비틀거렸다.

노래에 신경 쓰랴, 고무줄에 신경 쓰랴, 여간 까다로운 노릇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단 한 차례 왕복했을 때였다.


고무줄 놀이

“스톱!”

스라소니가 동작을 제지시켰다. 

“눈깔 떠고 봐, 이 XX들아!” 

용운은 눈을 떴다. 우려했던 대로 고무줄이 허벅지를 스치고 있었다.

“정신을 어따 팔아!”

스라소니가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용운은 가슴께를 설맞았지만, 피에로는 복부를 제대로 강타당한 모양인지 그대로 쪼그려 앉으며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요 새끼 엄살부리는 거 봐. 너 뒈질래?”

스라소니가 발로 피에로의 이마를 떠밀었다. 벌렁 나자빠지자 다가가 가슴을 밟았다.

“어때, 누우니까 삼삼하냐? 이대로 계속 쉬게 해줘?”

“아니, 잘 하겠습니다!”

“또 다시 실수하면 죽여 줄 테니까 알아서 해라.”

스라소니가 윽박질렀다. 두 사람은 다시 고무줄 앞에 섰지만 떨고 있었다. 눈 감고 하는 일에 실수도 실수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들 쪽에서 고의로 고무줄을 갖다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자, 눈 감고, 시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마에 진땀이 흘렀다. 스라소니가 좀체 제지시키지 않는 걸로 보아 아직은 고무줄에 걸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방에서 뜻 모를 웃음이 일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약간 킬킬대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박장대소로 변하고 있었다. 요란한 웃음소리 틈새에서 스라소니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스톱! 이제 눈깔들 떠라.”


용운이 눈을 떠 보니 원생들은 히죽거리며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리 우스웠을까? 힐끗 피에로를 바라보니 그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듯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반장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만 하면 합격이다. 그럼 이번엔 38선 통과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양편의 원생들이 고무줄의 높이를 쓱 낮추었다.

“그대로 뒷짐지고 엎드려!”

사방서 뜻 모를 웃음 퍼져
드라큘라처럼 음흉한 미소      


신입은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등과 고무줄 사이는 반 뼘 정도의 여유밖에 없었다.

“즉시 아리랑을 부르면서 그 밑을 반복 통과하는데, 등짝에 고무줄이 안 닿게 해라. 알았으면 헤드라이트 끄고 아리랑 시작!”

두 신입은 방바닥에 배를 밀착시키곤 조심조심 고무줄 밑을 기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삼팔선 고개를 넘어간다
북녘에 남겨둔 아리따운 해당화 아가씨가 그리워
총칼을 가슴속에 품고 철조망을 넘어간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피에로가 크게 선창을 부르고 용운은 슬쩍 후렴을 따라하는 꼴이었다.

이번에는 원생들의 폭소가 아까보다도 빨리 시작되었다. 훨씬 큰 웃음소리였다. 아마도 배를 움켜쥐고 마룻바닥을 구르는 사람까지 있는 듯싶었다. 

“좋아! 지X 그만!”

반장이 입을 열었다. 그의 말 속에도 웃음이 들어 있었다. 용운은 눈을 떴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등 위에 있어야 할 고무줄이 보이지 않았다.

두 신입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또 한 차례 폭소가 방 안에 왁자했다. 용운은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달았다. 고무줄 같은 건 이미 걷어치운 지 오래였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혹시라도 고무줄에 닿을세라 뱀XX처럼 방바닥을 이리저리 비비적거렸으니 얼마나 우스웠을까.

잠시 후, 스라소니가 목소리를 착 가라앉히더니 음흉스럽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피뽑기를 하겠다. 잘 알겠지만 우리들은 이곳에서 너무 먹지를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육지에서 잘 먹고 살았던 신참이 들어오면 그 싱싱한 피를 뽑아 가끔은 영양 보충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지?”

“예.”

용운과 피에로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을 했다.

“그럼 가위바위보를 해서 순서를 정해라.”

두 신입은 구령에 따라 손을 떨면서 내밀었다. 용운이 이겼다. 스라소니는 피에로를 바닥에 눕게 했다.

피 뽑기

그리고 부하에게 밥그릇과 유리 조각을 가져오게 하여 그 옆에 놓았다.

그것을 흘끔 본 피에로는 몸을 덜덜 떨었다. 스라소니는 수건으로 그의 눈을 가려 버렸다. 몇 명의 원생들이 바짝 다가앉아 피에로의 팔과 다리를 잡아 눌렀다.

“시작해라!”

스라소니가 지시했다. 백곰 반장은 입가에 드라큘라처럼 음흉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원생 하나가 유리 조각을 들어 피에로의 손목 동맥을 그었다.

“으악!”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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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