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 그 마지막 퍼즐

4년 걸려 막 9부 능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19년 11월 한 연예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연예인의 죽음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연예인의 사망 소식은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졌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에게 자식의 유산을 상속해야 하는가.’ 구하라법의 시작이었다.

지난 7일 ‘구하라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2020년 6월 처음 발의된 이후 4년여 만이다. 20대 국회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가 21대 국회서 다시 발의된 지는 2년여 만이다. 

거듭된 사례

구하라법은 피상속인에게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학대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같이 상속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법정 상속인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2019년 11월 사망한 가수 고 구하라씨의 오빠가 입법을 청원하면서 구하라법으로 불렸다.

당시 구씨가 ‘어린 구하라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동생 사망 이후 상속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서도 구하라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날 법사위를 통과한 구하라법에는 친부모라도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았거나 학대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 유산을 받지 못하도록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상속권 상실 선고제도’가 담겼다. 


피상속인이 유언 등으로 상속권 상실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하고 미성년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피상속인 또는 그 배우자나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 등을 상속권 상실 선고의 사유로 명시했다.

21대 국회 만료 전에 본회의가 열리면 통과가 유력하다. 법안 시행 시점은 2026년 1월부터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는 이전부터 있었다. 천안함, 세월호 사건 당시 오랫동안 교류 없이 지내다가 사망보상금을 수령하기 위해 가족이 나타나는 경우가 수차례 발생했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는 사망한 군인의 친모가 28년 만에 나타났고, 세월호 사건에서는 희생자의 친부가 이혼 12년 만에 나타나 보상금을 받아간 사실이 드러나 공분이 일었다. 

이전 국회서도 사회적 요구에 따라 법안이 발의됐지만 대부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구하라법 역시 표류 끝에 간신히 9부 능선을 넘었다. 그사이 비슷한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전북서 소방관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친모가 나타나 유족급여를 받아가려 한 사건이 드러났다.

또 실종된 아들의 보험금을 타려고 50여년 만에 나타난 친모도 있었다. 

2021년 1월 경남 거제 앞바다서 선원으로 일하던 김종안씨가 어선을 타다 폭풍우를 만나 실종됐다. 그러자 친모 A씨가 나타나 자신에게 상속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A씨는 1967년 2세였던 김종안씨 등 3남매를 버리고 집을 떠났다. 이후 아들이 실종되고 거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54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민법 제1004조에 명시된 상속순위는 1순위가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 손자녀 등), 2순위가 배우자와 직계존속(부모, 조부모 등), 3순위가 제자매의 순이다. 실종 당시 김종안씨는 사실혼 관계를 6년 동안 지속한 여성이 있었지만 사실혼 관계는 상속권한이 없다. 자녀도 없었기 때문에 친모인 A씨가 법적 상속인이 된 것이다. 

김종안씨의 누나 김종선씨는 법의 부당함을 호소했다. 누나 등은 상속순위서 밀려 A씨가 유산을 분할해주지 않는 한 법적으로는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누나 김종선씨는 “보상금을 받아도 54년 동안 엄마 대신 남매를 키운 고모와 할머니가 받아야 한다”며 “양말 한 켤레, 사탕 하나 안 보내놓고 이제와 생모라고 자식 목숨값을 챙기는 게 법이고 정의인가”라고 토로했다. 

법안 소위 통과…본회의는?
“헌재 판결이 영향 미쳤다”

앞서 공무원 자녀의 연금 및 유족위로급 지금을 제한하는 이른바 ‘공무원 구하라법’은 2020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 시행 중이다. 이달 1일부터 퇴직군인연금 지급 조건을 제한하는 ‘군인 구하라법’도 시행됐고, 사망한 선원 자녀의 보험금 지급을 막는 ‘선원 구하라법’ 역시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별 직군에 따라 연금 및 보험금 수령을 제한하는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구하라법은 여야 간 이견으로 진통을 겪으면서 오랜 시간 계류 상태에 머물렀다. 21대 국회 막바지에 이르러 구하라법 본회의 통과 가능성이 높아진 배경으로는 유류분 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판결이 꼽힌다.

지난달 25일 헌재는 학대 등 패륜 행위를 한 가족에게도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을 상속하도록 정한 현행 민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다. 

헌재의 판단에 따라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1~3호에 대해 오는 2025년 12월31일까지만 효력을 인정하고 그때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잃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또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규정한 민법 1112조 4호는 위헌으로, 특정인의 기여분을 인정하지 않는 민법 1118조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현행 민법은 자녀·배우자·부모·형제자매가 상속받을 수 있는 지분(법정상속분)을 정하고 있다. 피상속인이 사망하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으면 법정상속분에 따라 배분한다. 유언이 있더라도 자녀와 배우자는 법정상속분의 1/2을, 부모와 형제자매는 1/3을 보장받는데 이를 유류분이라고 한다. 

1977년 특정 상속인이 유산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하고 남은 유족의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있었다. 개인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1977년 도입 이래 한 차례의 개정도 없이 현재까지 유지됐고 헌재서도 2010년과 2013년 합헌 판단을 받았던 유류분 제도는 이날 결정으로 47년 만에 변화를 맞게 됐다. 

헌재는 가족의 역할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상속인은 유류분을 통해 긴밀한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제도 자체는 정당하다고 봤다. 가족 구성원별로 상속비율을 정한 부분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다양한 사례에 맞춰 유류분 권리자와 비율을 정하는 입법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족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는 구성원에게 유류분을 받을 권리를 빼앗는 보완제도를 두지 않은 점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했다.

이제서야…

구하라법이 본회의 통과 직전에 오기까지 구하라씨의 오빠, 김종안씨의 누나 등 고인을 아낀 가족의 애끓는 호소가 있었다. 헌재 판결을 발판삼아 구하라법이 법안 소위를 통과하면서 또 다른 ‘구하라’의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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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조국 사면’ 군불 때는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풀어주느냐, 마느냐, 이재명 대통령이 깊은 고심에 빠졌다. 8·15 특별사면·복권 명단에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의 이름이 올라오면서다. 한때 아군이었던 조 전 대표의 정치 생명이 용산의 선택에 달렸다. 조국혁신당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계까지 사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지난 7일 이재명정부의 첫 특별사면을 준비하기 위한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특별사면 명단에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의 관심이 급상승했다. 사면심사위원회가 사면·복권 건의 대상자를 검토하면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설에 부채질 조 전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로 지난해 12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받았다. 조 전 대표의 만기 출소 예정일은 내년 12월15일이다.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이 이뤄질 경우 출소 시기는 앞당겨질 수 있다.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기소 자체가 검찰의 무리한 시도였다고 보는 만큼 이번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이뤄내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혁신당 신장식 의원은 지난 대선 정국서 “조 전 대표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이재명 후보가) 그냥 이기는 게 아니라 크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곧 조 전 대표의 사면이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한 것이다. 조 전 대표의 부인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더1찍 다시 만날 조국’이라는 홍보물을 제작하는 등 이 후보의 당선과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동일시했다. 이렇듯 혁신당은 지난 총선과 대선 등에서 일궈낸 업적을 청구서 삼아 은근한 눈치를 보냈고,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친문(친문재인)까지 목소리를 키우면서 이 대통령을 전방위로 둘러쌌다. 지난달 30일 친문계인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조 전 대표와의 접견 사실을 알리며 “특유의 미소가 여전하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많을 법도 한데 오히려 긍정 에너지가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자꾸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마음의 빚을 지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이어 “조국의 사면을 많은 이들이 바라는 이유는 검찰개혁을 요구했던 우리가 틀리지 않았음을 그의 사면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마음 아닐까”라며 “야수의 시간과 같았던 지난 겨울 우리가 함께 외쳤던 검찰개혁이 틀리지 않았음을, 서로 생각은 달라도 통합과 연대라는 깃발 아래 모두가 함께 있었음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통합 일환? 이 결정만 남아 친문계에 문까지 팔 걷어붙여 친명(친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민주당 김영진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통합을 위한 측면에서 넓게 사면 복권에 관한 판단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든다”면서도 “이 문제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통령께서 판단할 문제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문 전 대통령이 용산 측에 조 전 대표의 사면 의견을 직접 전달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5일 경남 양산 평산마을을 찾은 우상호 정무수석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우 수석은 “뜻을 전달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김원기·임채정·정세균·문희상·박병석·김진표 등 민주당 출신인 전 국회의장도 가세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책임을 수용한 이들에 대한 절제된 관용”이라며 “대통령께서 국민 통합의 뜻을 담아 조 전 대표에 대한 특별사면을 단행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한 개인의 구제가 아니라 극한 대립과 갈등의 시기를 겪어내며 상처 입은 우리 사회 공동체에 건네는 ‘공정한 매듭과 위로’의 손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방에서 사면 요청이 쇄도하자 대통령실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앞서 지난 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사면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사회적 약자와 민생 관련 사면에 대해 일차적으로 검증 및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인 사면에 관해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 중”이라며“아직 최종적인 검토 내지는 결정에는 이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혁신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조 전 대표가 수감 된 지 8개월이 지났는데 혁신당은 아직도 권한대행 체제다. 전당대회를 통해 새 대표를 뽑을 만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뭐겠느냐”며 “이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조 전 대표가 사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가 돌아와서 혁신당이 이전 같은 명성을 되찾길 기다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혁신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당대표가 궐위된 때에는 최고위원 가운데 가장 많은 득표로 선출된 최고위원이 남은 임기 동안 당대표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선민 권한대행이 내년 7월까지 조 전 대표의 임기를 대신해 자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당초 조 전 대표가 자신의 수감 생활을 예측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이러한 당헌·당규를 개정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8개월째 대행 체제 혁신당 “확신” 믿을 구석 있었나 내년 지방 선거를 위해서라도 혁신당은 조 전 대표의 사면이 필요하다. 구심점이 없고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만 존재하는 지금으로서는 지난 보궐선거만큼의 역량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민주당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정 초기부터 자녀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복역 중인 인사를 사면했다가는 ‘범죄자 프레임’에 함께 걸려들 수 있다. ‘조국 사태’에 거부감을 느낀 지지자들의 이탈도 고려해야 하는 지점이다. 반면 사면 요청을 거절할 경우 오히려 조 전 장관의 정치력을 키우는 등 일종의 서사를 부여할 수 있다. 조 전 대표는 본인의 사면에 대해 큰 뜻을 밝히지 않아 오히려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될 것이란 해석이다. 민주당에 있어 조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다. 지난 총선서 호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혁신당이기에 조 전 대표가 정치권에 돌아온다면 진보진영 텃밭을 둘러싼 두 정당 간의 경쟁과 그로 인한 잡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벌써부터 그의 행보를 예측하고 나섰다.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이른 시일 안에 전당대회를 치러 다시 한번 당대표직을 거머쥐고 내년 지방 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조 전 대표가 부산 시장 등으로 직접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도 보고 있다. 어디로 튈까 민주당은 최종 사면 명단이 공개되기 전까지 별다르 입장을 내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 7일 문 전 대통령을 예방했지만, 이날 조 전 대표의 사면 논의는 나오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공은 이 대통령에게 넘어왔다. 단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걸린 문제지만 그의 복권은 정치 진영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여러 가지 변수와 상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최종 선택에 이목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