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 선택’ 국힘 황우여 비대위원장의 임무

결국 혁신보다 안전빵 택했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혁신을 위한 테이블을 마련하랬더니 여전히 주류만 이끌고 가려는 모양새다. 누구든 회초리를 들고 종아리라도 때려야 하는데, 먼 하늘만 바라보는 격이다. 도무지 나아지겠다는 의지도 없이 속절없는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 

4·10 총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은 여전히 반성문만 내놓고 있다. 수습 절차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못하는 중이다. 총선 뒤 약 한 달이 지난 끝에 수습책보다는 차기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누구를 앉히느냐에 혈안이 돼있었다. 방식은 개혁형이냐, 관리형이냐 두 가지 갈래였다. 

고르고 
골랐다

고민 끝에 국민의힘은 관리형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양한 인물들이 하마평에 올랐다. 비대위원장을 맡겠다고 손을 들었던 인물도 있었으나 쉽게 결론짓지 못했다. 

지난 3일, 취임 입장 발표 기자회견서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은 “먼저 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며 “보수 가치를 약화·훼손해 사이비 보수로 변질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초 비대위원장 후보로는 여러 인물들이 거론됐다. 중진 의원을 통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의견과 당 외부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갈렸다. 누가 앉느냐에 따라 국민의힘의 명운이 결정될 중요한 사안이었다. 


여전히 국민의힘 내에선 주도권을 두고 다툼이 오간다. 공식적으로 큰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여전히 물밑 싸움이 치열한 모습이다. 극악으로 내몰린 상황을 종식시키기에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한다. 처음에는 비대위원장 인선을 두고서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원내대표가 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다른 한편에서는 빠른 수습을 위해 지금의 원내대표가 뽑으면 된다는 의견이 대립됐다. 

결국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이 결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도무지 비대위원장으로 낙점될만한 인사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7일, 당내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6선)이 “헌신한 각오가 돼있다. 스스로 독이 든 성배를 마시겠다”고 나섰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에 따르면, 몇몇 의원들이 조 의원을 추천해 윤 권한대행에게 의사를 전달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장고 끝에 국민의힘은 같은 달 29일, 당선인 총회를 열고 비대위원장 추대 작업에 나섰다. 총회 결과 신임 비대위원장으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달 22일 당선인 총회를 통해 윤 권한대행에게 비대위원장 임명권을 부여했다. 이후 윤 원내대표는 비교적 긴 시간 당내 중진들과 의견을 나누며 후보군을 좁혀왔다. 결론적으로 황 전 대표가 선임됐다. 

선거 끝난지가 언젠데 아직도 반성문?
“독 든 성배 마시겠다” 조경태는 무산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사퇴한 지 18일 만이다. 황 전 대표가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선출됐던 전당대회서 관리위원장을 맡았으며, 공정한 전당대회 관리 등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엇보다 당과 정치를 잘 알고, 당 대표로서 덕망과 신망을 받을 수 있었던 것 등이 인선 배경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황 비대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선당후사의 마음으로 수락했다. 할 사람이 여러 명 있었으면 나서지 않았을 텐데, 당이 어려울 때 마다하면 안 된다는 마음을 늘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엔 윤 원내대표에게 거절의 의사를 드러냈는데, 지속적으로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없어 당의 현 상황을 매듭지어야 하는 때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황 비대위원장 인선을 두고 당내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수도권 내 5선 중진의 윤상현 의원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받들고 어떤 혁신과 쇄신의 그림을 그려 나갈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당선자 총회서 아무도 ‘황우여 비대위’에 대한 반기를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장일치로 의결돼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무난한 인사라는 소리가 나오기는 하나 혁신이 필요한 상황서 전당대회만을 염두에 둔 인선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당장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명분이 없는 인선이었던 데다 밖에서 볼 때 올드한 느낌이 있다”며 “정치적으로 은퇴한 사람을 다시 세운다는 게 당 입장서 좋은 모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황 비대위원장은 판사 출신으로 신한국당 소속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해 19대 국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20대 총선서 낙마한 뒤 국회를 떠났고, 당명이 바뀌는 동안 정치 일선을 떠나 있었다. 박근혜정부 당시에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내 친박(친 박근혜)계로 불렸지만 계파색이 옅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대룰 과제
밑그림 담당

한나라당 원내대표 및 사무총장 등 핵심 당직을 지냈으며, 개혁신당 이준석 전 대표가 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했던 2021년 전당대회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결국 쇄신 대신 안정을 택한 셈이다. 황 비대위원장 앞에는 비대위구성등 여러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조만간 비대위원 지명 건을 의결해 비대위 구성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비대위원 구성에는 과연 수도권을 안배한 인사를 합류시킬지가 관건이다. 

앞서 황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수도권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인사는 물론, 영남권에 대한 예우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수도권은 이번 총선서 국민의힘에게 역대급 패배를 기록했던 지역이었다. 서울에선 48석 중 11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고, 74석이 걸린 인천·경기에선 8석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반면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PK(부산·경남)·TK(대구·경북) 지역에선 오히려 결집 현상이 두드러졌다. 선거 막판 보수세력이 한데 뭉치면서 간신히 개헌 저지선을 막아냈다. 

이런 상황서 수도권 안배 인사를 뽑지 않을 경우, 국민의힘으로서는 자멸의 길로 들어서는 것과 다름없다. 수도권 인사를 비대위에 참여시켜 수도권 민심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황 비대위원장이 총선 패배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방안을 내세울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전당대회 룰 세팅도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존 룰인 당원 100% 투표를 어떤 방식으로 고칠지가 관건이다. 전대 룰 수정 당시에도 여러 말들이 오갔다. 

국민의힘은 김기현 전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될 당시 룰을 고쳤다. 명분은 당 대표인 만큼 당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존 룰은 당원 70%, 여론조사 30%의 비율이었다.

당시 여론조사가 포함된 후 김 전 대표의 지지율이 밀리자, 전대 룰도 갑작스럽게 변경됐다. 전대 룰 변경을 두고 당내 곳곳서 반발이 심했다. 사실상 김 전 대표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친윤, 비윤
누구 손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정일체의 강한 기조로 상당히 폐쇄적인 구조로 운영됐다. 결국 당에서는 대통령실에 이렇다 할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의도하는 대로 끌려만 다녔다.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지목되는 이유다. 당내서도 전대 룰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최대 뇌관인 전대 룰을 황 비대위원장이 고칠 것인지는 추후 지켜봐야 안다. 그러나 정치권에 따르면 친윤(친 윤석열)계는 전대 룰 변경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본인들이 지난 전대 당시 급히 바꿔버린 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들의 발언은 과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으로 황 비대위원장이 친윤과 비윤(비 윤석열)계 사이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하다. 친윤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면 또다시 국민의힘은 당정일체의 관계로 빠져들게 된다.

이미 대통령실은 비서실장에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을 임명하면서 대놓고 친윤 체제를 공고히 했다. 대표적인 친윤계인 이철규 의원이 원내대표 후보로 급부상하면서 김도읍 의원이 경쟁자로 분류됐으나, 불출마를 선언했다. 

황 비대위원장에게는 상당히 부담으로 작용할 지점이다. 당과의 대통령실 관계 설정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그가 친윤이 당을 이끌고 가려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설 경우 당내에서는 또다시 분란이 생긴다. 

이와 관련해 황 비대위원장은 “(당정 관계는)바꾸기보다는 비대위원장이 됐으니 기존 룰을 바꾸자는 의견이 많이 있을 때 검토하게 된다. 검토 절차가 당헌·당규에 규정돼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발언은 전대 룰 변경에 다소 회의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어 “비대위는 철저하게 사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닌, 질서에 맞게 하도록 돼있다. 모든 것은 절차대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황 “선당후사 마음으로 수락” 당정 관계는?
당 일각선 “과연 개혁 잘될까” 우려 목소리

반면 수도권 당선인 중심으로는 전대 룰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이 상당히 강하다. 실제로 김재섭 당선인과 안철수 의원은 “수도권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서 전대 룰 변경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나아가 수도권에 경쟁력을 가진 인물을 앞세워 중도층 포섭 구도까지 만들어 내야 한다며 확장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단순히 전대 전 비대위원장이기 때문에 잠시 거치는 직이라는 인식도 다수 있다.

하지만, 황 비대위원장의 숙제는 전대 룰만 있는 게 아니다. 우선 총선 참패를 어떻게 수습할지도 논의를 띄워야 한다. 총선 패배에 대한 반성 후 이유 등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탓이다.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다음 선거에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미 이번 총선 결과로 ‘영남당’으로 인식이 굳혀져버린 상황이다. 영남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면 보수의 궤멸은 예정된 수순이다. 여당의 역할을 복원할 방식 등도 미리 논의돼야 한다. 

재임 기간이 짧아도 현재 처한 상황을 뚫어낼 방안 마련은 필수적이다. 당의 체질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3년 동안 집권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국민의힘은 벌써 4번째 비상 상황을 맞고 있다. 툭하면 꺼내드는 체제서 누구든, 성공적으로 직을 마무리지었던 전례도 전무하다. 

이번 황우여 비대위 체제마저 실패했다는 평가가 내려질 경우, 추후 대선 및 지방선거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여전히 당 주류는 영남계로 이들의 생존을 위해 비주류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불어닥칠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중한
스타일

정치권에 따르면 황 비대위원장은 무리하지 않는 이른바 안전형 스타일로, 파격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평가에 대해 황 비대위원장은 “과연 관리형으로 끝날 수 있겠냐는 생각이다. 쇄신의 목소리가 크고 당에서 해야 하는 당무가 있다”면서도 “하루 이틀, 미룰 일이 아니다. 새로운 당 대표가 뽑히기 전까지 여러 일을 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우여 비대위원장, 수락 고민했던 이유?

국민의힘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수락한 배경에는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다.

처음 제안이 왔을 때 황 비대위원장은 직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바로 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 비대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발을 좀 다쳤다. 사진을 찍다가 왼발을 접질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병원에 가 보니 봉숭아 뼈가 골절이 됐다더라”고 말했다.

이어 “큰일났다고 생각했는데, 압박붕대로 3주 정도 고생을 해야 한다. 완전히 붙으려면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비대위원장직 수락 여부를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비대위원장도 쩔뚝이고, 당도 쩔뚝이는 모양이 좋지 않다”고 하자, 윤 원내대표가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부탁한다”며 재차 설득에 나선 끝에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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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