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쏙 들어간’ 피의사실 공표 논란

같은 식구라 하는 척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배우 이선균씨가 경찰 수사를 받다 세상을 떠난 지 세 달이 다 돼간다. 그의 죽음으로 불거졌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된 조사나 처벌은 여전히 미미하다. 경찰의 실적을 위해서인지 사문화된 법조문 때문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제2의 이씨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자 처벌과 관련 법 개정이 절실하다.

지난해 12월, 고 이선균 배우가 마약 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다 목숨을 끊은 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수사 자료를 유출한 사람에 대한 징계와 피의사실이 유출된 사람에게 공표금지 청구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 등에 따르면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마약범죄수사계는 이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상 대마·향정 혐의로 입건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수사했다. 

시끌벅적
마약 사건

수사 과정서 이씨는 간이시약 검사를 비롯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2·3차 정밀검사에서 음성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경찰은 지난해 12월23일 이씨를 3차로 불러 19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했다. 같은 달 26일엔 변호인을 통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의뢰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제출했다.

마약 투약 혐의 관련 증거가 유흥업소 실장의 진술뿐이라 억울하다는 입장이 의견서에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백을 주장하던 이씨는 서울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 성북구 성북동의 한 주차장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이씨가 구체적인 수사 상황과 확인되지 않은 혐의가 실시간으로 보도되자 이씨가 심적 부담감과 절망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봤다.

실제로 이씨 사건 당시 수사 과정서만 확보할 수 있는 진술, 자료, 수사 계획 등이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심지어는 통상 피검사자에게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마약 검사 상황이나 결과 등까지도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게다가 수사 상황과 상관없는 이씨의 사생활이나 확인되지 않은 의혹까지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기도 했다.

경찰 내부서 수사 자료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은 “이 사건과 관련한 조사, 압수, 포렌식 등 모든 수사 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했고 진술을 영상 녹화하는 등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수사를 진행했다”며 “일부서 제기한 경찰의 공개 출석 요구나 수사 상황 유출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자 경기남부청에선 인천경찰청으로부터 이씨 사건 수사 정보 유출 경위 관련 수사 의뢰를 받아 조사에 착수했다. 

경기남부청은 지난 1월18일 정식 조사에 착수하고 같은 달 23일, 이씨 수사를 진행한 인천청 마약범죄수사계와 이씨 수사 정보를 자세히 보도한 언론사 등을 압수수색하며 재빠르게 행동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수사보고서가 유출된 것은 맞다”는 수사 유출을 확인한 것 외에는 진척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내부 문건인 수사보고서를 유출한 사람이 누군지 유출 경위는 어떻게 되는지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를 상당히 진행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홍기현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지난 4일 기자 간담회 자리서 “수사 유출 목록 확인 등 필요한 수사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며 “추가 압수수색 여부 등 자세한 수사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도 지난 4일 정례 간담회서 “철저하게 필요한 수사는 모두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실적 수사를 지향하고 있어 징계 절차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해 4월 전국 시·도경찰청장 화상회의서 ‘마약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마약범죄 수사 유공자를 특진 임용했다.

이선균 사건 모든 수사 상황 중계 보도
징계 없이…경찰 실적 위해 처벌 안 해?

윤 청장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테러와도 같은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 계속 노력해줄 것을 당부드린다”며 “올해 마약 특진 규모를 작년의 6배인 50명 이상으로 늘리고, 공적이 뛰어나다면 수사팀 전체도 특진시키는 등 대대적으로 포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청장의 발언 이후 경찰의 모든 기능이 마약 수사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각 시도경찰청장(본청은 국가수사본부장)이 총괄하는 합동단속추진단 설치 구상을 내놨다. 

이런 상황서 유명 연예인이 연루된 마약범죄로 이목을 끌고 수사 결과까지 좋았다면 팀 단위 특진은 떼놓은 당상인 셈이다. 한 마약수사계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다른 사건보다 마약범죄 보도가 많이 된 것은 수사 실적을 널리 알리려는 내부적인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이씨 사건은 경찰이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서 수사가 진척됐다”며 “내부 자료를 유출하고 또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해 자백받아 사건을 마무리해 실적을 올리려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목을 끈 덕분인지 인천경찰청은 지난달 역대 가장 많은 6명의 총경 승진 인사를 배출한 데 이어 전국 경찰청 성과 평가에서 ‘A’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1일 경찰청이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에 제출한 18개 시·도청 성과 평가 등급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부산청 등 4곳은 가장 높은 S 등급(상위 20% 이상)을 받았다. 인천청을 비롯해 대구·광주청 등 7곳은 A 등급(상위 40% 이상)이었다.

등급은 최고인 S부터 최하인 C까지 4개로 나뉘는데, 소속 직원의 성과급과 승진 인원에 영향을 준다.

이를 두고 부실 수사 논란과 기밀 유출 의혹에 휩싸인 인천청이 상위 두 번째에 해당하는 평가를 받은 것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과 등급은 치안 종합성과 등 각 지표를 종합 판단하는 만큼 하나의 사건이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어디까지
진행됐나

경찰 내부에선 인천청이 실적을 인정받았는데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되면 경찰청 전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어 조사나 징계위원회 구성이 늦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이미 사문화된 조문이라는 의견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형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민감한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여론재판’이 이뤄져 무죄추정의 원칙은 의미를 잃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상실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였다.

형법 제126조에 따르면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 공표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에 관련한 형사 판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0년간 검찰서 피의사실 공표로 기소한 사례조차도 없다.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지난 2019년 5월 발표한 피의사실 공표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검찰에 피의사실 공표로 접수된 사건은 347건이지만 기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단지 검찰서도 그저 민사소송의 대법원 판례만 참고할 뿐이다.

대법원은 지난 2002년 9월24일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행위는 공권력에 의한 수사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국민들에게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강한 신뢰를 부여함은 물론 그로 인해 피의자나 피해자 나아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치명적인 피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기관의 발표는 원칙적으로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 발표에 한정돼야 하고 이를 발표함에 있어서도 정당한 목적하에 수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자에 의해 공식의 절차에 따라 행해져야 하며 무죄추정 원칙에 반해 유죄를 속단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현이나 추측 또는 예단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는 표현을 피하는 등 그 내용이나 표현 방법에 대해서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시했다.

이는 매우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공표 목적의 공익성, 공표 내용의 공공성, 공표의 필요성, 피의사실의 객관성 및 정확성, 그 표현 방법, 침해되는 이익의 성질 및 내용 등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관행처럼 피의사실 공표를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이를 두고 대한변호사협회 사법인권침해조사단 소속 한 변호사는 “기소 판단의 주체가 수사기관이라는 특이점서 온 현상”이라며 “수사기관의 편의적이고 자의적인 수사 관행을 타파하고 관련 법령체계를 합리적으로 재정비하기 위해 실정법을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된 것에는 법무부와 수사기관의 공보 규칙서의 많은 예외 사항이 있는 것이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예외 사항으로는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가 존재하거나 발생할 것이 명백한 경우’, ‘중요 사건으로서 언론의 요청이 있는 등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등 6개 사항이다.

특히 ‘중요 사건’의 범위가 넓은 것도 문제다. ‘공소시효가 임박한 사건’ ‘내란, 외환, 대공, 선거, 노동, 집단행동, 테러, 대형참사, 연쇄살인 관련 사건’ ‘판사 또는 변호사의 범죄’ ‘국회의원 또는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자 범죄’ ‘공안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이 여럿 있다.

‘특히 사회적 이목을 끌만한 중대한 사건’도 포함되는데, 이 또한 자체 해석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될 여지가 있다.

실례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자녀 입시 비리 수사 당시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피의사실공표죄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이에 법무부는 당시 기존 수사공보준칙을 폐지하고 공표 금지의 강도를 더욱 높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재개정했다.

해당 규정에는 내사 사실을 포함해 피의사실과 수사 상황 등 형사사건 관련 내용은 원칙적으로 공개가 금지되고 공개소환 및 촬영이 전면 금지된다고 나와 있다. 예외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개가 허용된 경우에도 수사에 관여하지 않는 전문공보관의 공보와 국민이 참여하는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해 사건관계인의 인권보장과 국민의 알 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공익을 위해’라는 명목으로 피의사실 공표는 계속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애매모호한 규정만 있어 죄를 입증하기도 처벌을 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한다. 발표할 수 있는 사실의 범위, 구체적인 언론 대응 기준이 수사기관마다 다른 점 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없다?
흘려도 71년 동안 기소 없어

미국의 경우는 검사의 업무 지침에 언론 브리핑 원칙이 적혀 있다. 그중 피의자의 범죄 전력, 유무죄에 대한 의견 등 편견을 낳을 수 있는 정보는 공개할 수 없다. 보도자료에도 “단순한 혐의에 불과하며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코멘트 역시 필수로 적도록 했다.

미국 미연방대법원서도 “언론의 자유는 모든 법적 절차 과정서 최대한 보장돼야 하나 그것이 재판의 원래 목적인 공정성을 혼란시킬 정도로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피의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표돼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언론사와 수사기록을 흘린 사람을 법정 모욕죄에 따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피의사실공표죄의 사문화를 없애기 위해서는 법령 개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재현 오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의사실공표죄의 사문화는 공보와 피의사실 및 위법성 조각 사유 사이에 얽힌 법리와 명확하지 못한 기준들도 적지 않은 원인이 됐을 것”이라며 “명확한 기준 제시를 통해 공표의 내용과 범위를 설정하는 게 규범력을 회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피의자의 인권과 국민의 알 권리 관계를 고려해 보다 조화롭게 개정해야 한다”며 “피의사실이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중대한 범죄로 인해 공익적 목적이 있거나 피의자가 공적 인물인 경우 우선 예외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피의자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 과정서의 일반적·절차적 사항은 공표가 가능하게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봤다. 

그는 “중요한 건 진술과 증거 내용이다. 어떤 맥락이나 관점서 해당 진술을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뒤바뀔 수 있다. 증거도 위법하게 수집됐거나 ‘전문 증거(타인에게 전해 들은 말)’일 수도 있다. 법원이 심리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태서 일방적 진술이나 증거가 진위 확인도 없이 공개되면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는 것”라며 “객관적 사실만을 공표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는 이른바 ‘이선균 금지법’ 이야기도 대책으로 꼽혔다. 지난 1월30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 소속 백민 변호사는 “수사기관 등이 피의사실을 공표한 경우 피의자가 법원에 피의사실의 삭제와 피의사실 공표 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변호사는 “재판부에 선입견을 심을 수 있는 피의사실을 검찰이나 경찰이 기소 전에 공개한 것으로 의심될 때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도 지난해 12월 피의사실공표금지청구권을 신설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피의사실이 공표·유포·누설됐을 경우, 피의자가 법원에 언론 보도 등을 삭제하거나 앞으로의 공개도 막게 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선균 
금지법

한편 수사기관이 흘린 피의사실을 그대로 받아적는 언론기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이야기도 나온다.

백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는 수사기관의 실적 홍보와 언론기관의 선정적 보도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 확대, 증폭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언론사에 대한 실효적인 대책도 필요하다”며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 위법하게 피의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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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