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치인 판사들 잔혹사

법원 재판보다 여론재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야당 대표의 재판을 맡고 있던 판사가 돌연 사표를 제출했다. 4·10 총선을 3개월 앞두고 해당 재판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던 차였다. 일각에서는 ‘김명수 코트’ 당시 불거진 재판 지연의 여파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8일, 강규태 판사가 법원에 사표를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34부 재판장을 맡은 강 판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을 심리 중이었다. 이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2021년 12월 언론 인터뷰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에 대해 “재직 때는 잘 몰랐다”고 허위로 발언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도망갔나?

공직선거법상 선거법 사건은 다른 재판에 우선해 신속히 진행하고 기소 후 6개월 이내 1심 선고를 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벌써 1년4개월째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서 강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면서 재판의 추가 지연이 불가피해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4·10 총선이 3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관심은 이 대표의 재판에 쏠린 상태였다. 이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서 어떤 결과를 받느냐에 따라 여야는 물론 민주당 내부도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총선 전에 1심 판결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강 판사가 정치에 휘말려 재판을 지연시키다가 끝내 놓아버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강 판사는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재판 지연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녕 변호사는 지난 9일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강 판사는 “어제 주요 일간지에 난대로 2월19일자로 명예퇴직한다”며 “일반적인 판사의 퇴직 시점을 조금 넘겼지만 변호사로 사무실을 차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 한다”고 사표 제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상경한 지 30년이 넘었고 지난 정권에 납부한 종부세가 얼마인데 결론을 단정짓고 출생지라는 하나의 단서로 사건 진행을 억지로 느리게 한다고 비난하니 참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내가 조선시대 사또도 아니고 증인이 50명 이상인 사건을 어떻게 하라는 거냐”며 “하여간 이제는 자유를 얻었으니 자주 연락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강 판사는 전남 해남 출신이다. 

강 판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심의 눈초리는 가시지 않고 있다. 과거 야당 정치인이 연루된 재판은 일반 재판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 특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임기 당시 재판 지연이 사법부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현재 강 판사의 사표 제출로 이 대표의 재판이 늦어질 가능성이 나오자 이전 재판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오르는 모양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의혹 사건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을 재판하다가 판사가 돌연 휴직하는 일도 있었다. 김미리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 4년 동안 근무하면서 한 법원에 3년 넘게 있지 않는다는 관례를 벗어난다는 논란 속 인물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대법원장 ‘코드 인사’ 논란에 언급되기도 했다. 

당시 김미리 판사가 속해 있던 형사합의21부에서는 조 전 장관의 자녀 입시비리 및 유재수 감찰 무마 등 사건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최강욱 전 열린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등을 심리 중이었다.


김미리 판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시기 건강상 이유로 3개월 휴직을 신청했다. 여기에 해당 재판을 맡았던 김상연 부장판사 역시 지난해 건강상의 이유로 6개월 휴직했다. 

재판 중 돌연 사표 제출
총선 전 선고 안 나올 듯

조 전 장관 재판은 지난해 2월 1심 선고가 나왔는데 1심에만 무려 3년2개월이 걸린 셈이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지난해 11월에야 1심 선고가 나왔다. 2020년 1월 검찰이 기소한 지 3년10개월 만이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 혐의로 기소됐던 무소속 윤미향 의원의 1심 재판도 2년5개월 걸렸다. 

재판 지연이 야당 정치인에 집중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판사의 정치색 논란도 함께 불거졌다. 공정성과 중립성이 생명인 판사가 정치 성향을 드러내면서 사법부의 신뢰를 깎아 먹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동반됐다.

실제 박병곤 판사의 경우 과거 SNS에 정치 성향이 담긴 글을 게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편파성 판결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재판부를 맡았던 박 판사는 지난해 8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 구형량을 웃도는 실형 판결에 법조계가 술렁였다.

이 과정서 박 판사가 법관으로 임용된 뒤에도 SNS에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올렸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박 판사는 민주당 이 대표가 낙선한 대선 직후 “울분을 터뜨리고 절망도 하고 슬퍼도 했다가 사흘째부터는 일어나야 한다”고 적었다.

법원은 당시 재판장의 정치 성향을 거론하며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정치 판결‘ 의혹을 일축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결국 박 판사는 ’엄중주의‘ 처분을 받았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11월 “해당 법관이 임용 후 SNS에 게시한 글 중 정치적 견해로 인식될 수 있는 부분에 관해 소속 법원장을 통해 엄중한 주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징계는 아니지만 재발 주의를 당부한 것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판사가 SNS에 글을 쓸 때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지만 관련 징계 규정은 없다. 

일각에서는 정치로 인한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정치인 재판을 맡은 판사에 대한 ’낙인찍기‘가 심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판사가 정치색을 띠는 것이 아니라 여야 지지자들이 입맛에 맞게 정치색을 씌운다는 비판이다.


실제 민주당 지지자들은 유창훈 판사가 민주당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는 환영하다가 같은 당 송영길 전 대표의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때 비판하는 등 같은 판사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신뢰 추락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상황이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국민은 공정한 잣대로 같은 상황서 흔들림 없는 판결을 하는 것을 사법부에 기대하는데 그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 논란 역시 그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은 “신속하지 못한 재판으로 고통받는 국민은 없는지, 공정하지 못한 재판으로 억울함을 당한 국민은 없는지, 법원의 문턱이 높아 좌절하는 국민은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보겠다”며 사법부 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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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