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시대’ 영풍제지 무슨 일이…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1.04 14:03:51
  • 호수 14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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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에 추락사고까지
도마에 오른 방만 경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크리스마스 이브날 영풍제지 평택공장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추락사했다. 같은 곳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작업 중 기계에 끼여 숨진 사망사고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침울한 분위기는 본사도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에 영풍제지는 주가조작 사건에 휩싸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연말연시 속 영풍제지는 말 그대로 ‘수난시대’를 겪고 있다.

평택경찰서에 따르면 2023년 12월24일 오전 3시50분께 평택시 진위면의 영풍제지 공장서 60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A씨가 기계 위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A씨는 지난 24일 오전 3시50분쯤 종잇조각을 모아 재가공하는 기계 위에 배관 연결 작업을 하던 중 2.12m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오전 4시53분께 사망했다.

협력업체 
노동자 사망

고용부는 영풍제지가 중대재해법을 위반했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영풍제지 평택공장은 상시노동자 50인 이상으로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따져 형사처벌하는 법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안전수칙 이행 여부 등을 조사했다.

해당 공장에선 지난해 10월14일에도 40대 노동자 B씨가 재생용지를 감는 기계에 끼여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영풍제지는 노동자 사망사고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가족이 B씨의 사망 소식을 들었던 것은 사고 발생 몇 시간 뒤 병원을 통해서였다. 


‘외상으로 인한 심정지’로 사망했다는 의료진의 말을 처음 접한 B씨의 어머니는 ‘심정지’라는 단어만 들었을 때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불과 석 달 전 40대 중반 나이에 건강했던 B씨는 영풍제지 정규직 일자리를 얻었다며 기뻐했기 때문이다.

<경인일보> 보도에 따르면 유가족은 B씨가 사망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영풍제지 측으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는 물론, 사고 원인조차 듣지 못했다. 사망 당일 사고지점을 직접 찾은 유가족은 생전에 B씨가 헬멧 등 기본 보호구를 착용한 정황도 없었고, 위험을 대비한 멈춤 장치의 작동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B씨 동생 C씨는 “멈춤 장치 작동은커녕 위험 지역 진입을 막는 노란색 철제 안전펜스도 먼지만 잔뜩 껴 있어 작동 여부가 의심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구석 뿐”이라며 “사측은 어떤 해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 수사 및 부검 결과만 바라보고 회사는 사과 없이 기다리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유가족이 바라는 건 최소한의 추모 공간 마련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에 추모 공간을 5일 정도 마련해 망자를 기리고, 진상규명에 대한 연대 목소리를 모으자는 게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영풍제지 측은 “유가족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의견 차이가 있는 상황”이라고 일축했다.

안타까운 사망사고가 잇따른 가운데 주가조작 논란에 휩싸인 영풍제지는 침울한 연말을 맞이했다. 영풍제지는 골판지와 지관원지를 제작하는 상장사로 지난 8월 당시 주가가 10개월 만에 700% 넘게 급상승하면서 주가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2023년 4월, 영풍제지의 주식이 무상증자한 후부터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영풍제지 측에서도 “뚜렷한 주가 상승 배경은 없다” “기업 가치가 과열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 주가 상승에 의문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주식 투자자들의 관심은 2차 전지 관련주에 쏠렸던 때라 당시만 해도 영풍제지가 2차 전지에 조금 관련이 있고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강해 주가가 올라간 것으로 봤다. 

안전모 등 기본 장비 없었다
분노한 유가족 “원인도 몰라”

일각에서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대양금속이 주가조작의 배후라고 해석했다. 앞서 스테인리스 제조기업 대양금속은 2022년 11월 사업다각화를 내세우며 영풍제지를 인수했다. 대양금속이 품은 영풍제지는 돌연 지난해 3월, 주주총회서 사업목적을 추가했다.

전자부품제조, 무인항공기 제조, 소프트웨어 개발 등 16가지와 더불어 2차 전지 사업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던 것이다.

최근엔 사용 후 배터리 시험인증업체 ‘시스피아’를 인수한다고 나섰다. 영풍제지는 전환사채(CB·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투자했는데, 1년 뒤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정확한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엔 호주의 한 업체와 함께 2차 전지, 전자폐기물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영풍제지는 이 업체가 광물 채굴부터 재활용까지 배터리 산업의 전반에 걸쳐 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밝혔다.

영풍제지의 2022년 매출액은 1054억원, 영업이익은 78억원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2023년 초 주가는 6000원선에서 4만원대로 치솟았다. 대양금속에 인수되기 전 2500억원 수준이었던 시가총액은 현재 1조5000억원을 넘겼다. 

영풍제지의 주가 상승은 그해 9월까지 계속됐다. 무상증자 이후의 주가가 1만3990원이었는데 같은 달 8일 주가는 5만4200원으로 약 4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영풍제지 관계자는 “2차전지가 미래 먹거리라고 판단했다. 내부에 전문가는 아직 없는데, 영입을 고려하고 있다”며 “생산시설은 가장 빨리 갖출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며 사업 성과가 언제 날지는 변수가 많아 단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18일 영풍제지 주가가 갑자기 하한가를 기록하자 투자자들은 주가조작을 의심했다. 전날에는 약 5만원에 달했던 주가가 갑자기 하한가를 기록하며 하루 만에 약 3만원대로 내려앉았으니 의심받을 만했다. 

사람이 
죽었는데…

금융감독원 등은 수개월전부터 이미 영풍제지 주식을 모니터링해왔다고 한다. 영풍제지의 주가가 급하락하기 하루 전인 10월17일 검찰은 영풍제지 주가 시세를 조작한 것으로 의심되는 피의자 4명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로써 영풍제지의 주가가 급하락한 이유는, 전날 체포된 주범들이 영풍제지 주식을 모조리 매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거래소는 10월20일 영풍제지 주식을 거래 정지시켰으며 앞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4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구속 심사했다. 이어 사흘 뒤인 23일, 검찰은 영풍제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다음 날에는 영풍제지의 최대주주인 대양금속, 대양홀딩스컴퍼니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여파는 키움증권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당시 피의자들이 주가조작에 활용한 주식계좌가 키움증권에 다수 분포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영풍제지 미수금 거래를 차단하지 못하고 4943억원의 미수금을 발생시킨 키움증권의 주가는 이날 23.93% 폭락했다.

영풍제지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윤모씨와 이모씨 등은 소수 계좌서 시세조종 주문을 집중할 경우 범행이 드러날 수 있다고 판단, 100여개에 달하는 다수의 계좌를 동원해 범행 은폐를 시도했다. 피의자들은 이 계좌를 활용하면서 미수거래를 통한 레버리지를 이용했다. 

3일 뒤인 26일, 한국거래소는 영풍제지에 대해 거래를 재개했다. 주가는 여전히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후 11월2일까지 연속으로 하한가를 맞으며 역대 최장기간 하한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5만원대였던 주가가 순식간에 4000원대로 떨어졌다.

하락세는 다음날부터 멈췄다. 장 초반에는 약간의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후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 전일 종가 4010원보다 5.24% 상승한 422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1월3일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주가조작 일당 4명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23년 초부터 영풍제지 주식을 무려 약 3600만주가량 사들여 주가를 조작하고 약 2800억원 상당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과는
없었다

지난해 영풍제지가 무상증자한 직후 주가로 약 3600만주를 계산해보면 영풍제지 주가조작 사태에 약 5000억원이라는 금액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피의자들은 ‘라덕연 사태’와 마찬가지로 다수 계좌를 동원해 매일 조금씩 시세를 상승시키는 방법을 썼다. 11개월 동안 주가를 무려 12배 이상 끌어올렸으나 금융당국의 데이터 분석과 자금 추적에 결국 꼬리를 밟힌 것이다.

라덕연 사태는 투자동호회 등을 통해 동원된 다수의 계좌를 이용, 거래량이 적은 대성홀딩스 등 8개 종목의 주가를 끌어올린 뒤 차익을 실현해 주가가 급락한 사건이다.

영풍제지 주가 역시 라덕연 사태 종목들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특별한 호재성 공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매일 서서히 오르며 2022년 11월부터 12배 이상 상승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SG 사태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다가 나온 게 영풍제지”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조사 착수 후 한 달여간 영풍제지 관련 약 1년간의 매매데이터를 분석하고, 혐의 계좌 등을 거쳐간 자금 원천에 대한 추적을 펼쳤다. 이후 강제수사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 지난 9월 증권선물위원장의 패스트트랙(긴급조치) 결정을 통해 사건을 서울남부지검에 이첩했다.

남부지검은 시세조종이 현재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어 투자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보고 곧바로 수사에 돌입한 뒤 피의자 4명을 체포했다.

영풍제지의 거품은 실적을 통해 드러났다. 2023년 3분기까지 누적매출액이 629억원에 그치며 2022년 같은 기간 대비 23.3%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9억2000여만원의 누적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어 연간 적자전환이 우려된다.

회장 아들도 포기한 회사 
35세 연하 사모님 재조명 

이에 따라 영풍제지를 이끌고 있는 조상종 대표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전망이다. 대양금속 대표이기도 한 그는 영풍제지를 인수한 시점부터 영풍제지 대표도 겸직해오고 있다. 특히, 조 대표 역시 주가조작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는 대양금속 오너 일가와 밀접한 관계로 추정되고 있어 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대재해 발생으로 법적 책임을 마주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재해 발생에 따른 처벌 대상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다. 따라서 잇따른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로 이어질 경우 영풍제지 단독 대표이사인 조 대표가 그 대상이 될 전망이다.

한편, 영풍제지의 오너 리스크는 과거부터 이어져왔다. 영풍제지의 창업주이자 대표이사였던 이무진 회장은 2013년 1월3일 노미정 부회장을 최대주주로 변경했다. 공시에 따르면 이 회장은 2012년 말 자신이 보유하던 주식 51.28%(113만8452주) 전부를 노 부회장에게 증여했다.

증여가격은 주당 1만6800원으로 총 금액이 대략 191억원이다. 이에 따라 노 부회장은 영풍제지의 지분율이 기존 4.36%에서 55.64%(123만 5182주)로 크게 늘어나며 단독 최대주주가 됐다.

더욱 화제가 됐던 건 1969년생인 노 부회장은 1934년생인 이 회장과 2008년 재혼한, 서른다섯 살 연하의 아내라는 점이다. 노 부회장은 2012년 초 영풍제지의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린 후 그해 8월 처음으로 회사 주식을 시장서 사들였고, 12월에 남편인 이 회장 보유 주식 전량을 증여받았다. 

영풍제지를 40년간 이끌어온 이 회장이 하루아침에 딸뻘인 아내에게 최대주주 자리와 사실상의 경영권을 넘겨주면서 경영 자질 논란에 휩싸였다. 심지어 이 회장에게는 전 부인과의 사이서 낳은 장성한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 이택섭씨도 경영에 참여한 바 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씨는 2002년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아 나갔다. 한경대학교를 졸업하고 영풍제지에 입사한 이씨는 경영 전면에 나서며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시작했다.

하지만 부동산 관련업과 DMB 관련 회사를 자회사로 영입하면서 회사 재정에 손실을 입혔다.

이씨는 2009년 대표이사 임기 만료와 함께 그 전까지 보유했던 지분 2.71%도 모두 정리한 채 회사를 떠났다. 이어 차남 이택노(53)씨가 형이 회사를 떠난 2009년, 임기 3년의 등기임원으로 선임된 후 2012년 초까지 활동했으나 재임도 못한 채 임원직서 물러났다.

현대판 
신데렐라

그렇게 두 아들이 거쳐간 빈자리를 노 부회장이 앉았으나,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당시 업계에선 노 부회장을 두고 “전처와의 사이서 태어난 두 아들을 물리치고 경영권을 물려받은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평가했다.

한편, 영풍제지가 중대재해 처벌 위기에 놓인 이유는 방만 경영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40대 노동자의 유가족 측은 “영풍제지가 사고 발생 직후인 10월18일 ‘주가조작 의혹’을 수습하느라 사망 책임을 뒷전에 둔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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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트럼프 뒤통수로 다시 꼬인 한·미·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확실하다고 굳게 믿었던 관계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새 정부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한 적신호가 이제 눈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균열이 시작된 걸까? 우리나라 외교는 한미동맹을 배경으로 진행됐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꾀한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한·미 혹은 한·미·일 관계가 우선시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미국이 삐걱거리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 상수였는데 변수됐나 지난 12일 미국 이민 당국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 316명이 귀국했다. 이번에 구금된 한국인은 총 317명으로 남성 307명, 여성 10명이다. 이 가운데 1명은 잔류를 택했다. 지난 4일,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체류 및 고용 전격 단속에서 체포돼 포크스턴 구금시설 등에 억류된 지 8일 만이다. 이들은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중에 체포·구금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을 급히 방문했다. 당초 이들은 지난 10일(현지시각)에 전세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측 사정’으로 지연됐다. 외교부는 이번에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향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미국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현 외교부 장관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부 장관에게 이들이 신체적 속박 없이 신속히 귀국하고 향후 미국에 재입국하는 데 불이익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답을 받았다고 한다. 체포·구금된 한국인이 미국을 떠나는 방식을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 간의 이견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자진 출국’을, 미국은 ‘추방’을 언급한 것이다. 자진 출국 방식으로 귀국하면 향후 ‘5년 입국 제한’ 등의 불이익이 없다. 반면 추방 명령으로 미국을 떠나면 영구적으로 기록이 남아 최대 10년간 미국에 들어갈 수 없다. 지난 8일 크리스티 놈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이 이번 사안과 관련해 “법대로 하고 있다. 그들은 추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출국 형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다행히 미국 측과 조율이 이뤄지면서 자진 출국 형태로 귀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재명 대통령과 도출한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있고, 이 사안에 대한 한국인의 민감성을 이해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제조업 부흥을 위한 한국의 투자와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야 “700조원 줬는데도?”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이 원하는 바대로 가능한 한 이뤄질 수 있도록 신속히 협의하고 조치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의 노력으로 상황이 봉합되는 모양새지만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의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인 체포·구금 과정에서 드러난 미국 이민 당국의 모습을 두고 동맹을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미국 측은 한국인 체포 과정에서 수갑을 채웠고, 이들을 환경이 열악한 수용소에 구금했다. 야권에서 ‘외교 참사’가 일어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6일, 한국인 체포·구금 사태 이후 내놓은 논평에서 “이재명정부는 700조원 선물 보따리를 미국에 안겼지만 회담은 공동성명조차 발표하지 못한 채 끝났다”며 “그 결과가 고스란히 현대차-LG 합작 공장 단속 사태로 돌아왔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국민 사이에서는 실컷 투자해 주고 뒤통수 맞은 것 아니냐는 분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70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해 놓고도 국민의 안전도, 기업 경쟁력 확보도 실패한 것이 이재명정부의 실용 외교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 한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에 5000억달러(약 70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지난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수갑 채우고 수용소 넣고 장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앞으로 미국 내 한국 기업 현장과 교민 사회 전반으로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수많은 한국 기업이 미국 전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투자를 확대하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되는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가적 차원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 등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재발 방지책과 대미 투자 한국 기업 관계자들의 비자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해 새로운 비자 카테고리를 만드는 등 다양한 방안 논의를 위한 ‘한미 외교부-국무부 워킹그룹’ 신설을 제의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미 관계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관계가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관세 등을 무기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동맹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된 바 있다. ‘삐걱거림’은 이정부 출범 초기부터 감지됐다. 미국 백악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처음 내놓은 메시지에서 중국을 언급해 ‘이례적’이라는 말을 들었다. 백악관은 지난 6월3일 한국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한미동맹은 철통같이 유지된다”면서도 “한국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진행했지만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한다”고 말했다. 백악관의 메시지를 두고 이정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 견제, 실용 외교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압박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당시 미국은 중국과 관세를 두고 이른바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시간이 가면서 다소 소강상태가 되긴 했지만 갈등의 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분위기만 화기애애? 관세 협상이나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도 여전히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협상 시한으로 정한 날짜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타결을 이뤄냈다. 당초 한미FTA로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의 관세는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0’이었기에 타격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한을 통해 언급한 상호 관세 25%를 15%로 낮추는 데는 합의했지만 과정은 난항을 거듭했다. 루비오 장관의 방한이 취소되는가 하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앞두고 미국 측의 취소로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이 발길을 돌리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이 먼저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기준이 생기고 시간에 쫓기는 등 여의치 않은 상황이 지속됐다. 결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서 정리됐고 동시에 천문학적인 수준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때도 관세 협상 결과를 두고 이견이 나타났다. 우리 정부 측은 쌀, 소고기 등 농산물 개방은 없다고 주장했던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면 개방을 말했다. 또 대미 투자의 방식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보였다. 이견은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고도 조율되지 않은 모양새다. 미국 측은 관세 협상 타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했고 실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앞에 두고 면박을 주는 등의 돌발 행동을 보인 바 있어 우려가 제기됐지만 무난하게 마무리됐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명문화된 결과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달 25일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했지만 공동합의문은 발표하지 않았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동맹의 성과와 협력 의제를 문서화해 왔다. 당선 메시지에 중국 언급 정상회담 합의문도 없어 당시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데 대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제기될 정도였다. 정상회담에서 각종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구체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결과였다. 특히 자동차 관세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업계는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으로 타결했지만 문서로 명시되지 않은 것이다. 안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인 지난달 2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공동발표문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정상 간 논의 내용은 상당 부분 생중계됐고 나머지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양국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위 안보실장은 “문건을 만들어내기까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많은 공감대가 있었다.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추가 협의를 하면 마무리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온 조 장관의 발언은 조금 더 구체적이었다. 그는 “투자 부문에서 국민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수용하지 않았다”며 공동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했다. 이어 “미일 간 합의문 내용을 보면 왜 우리가 협상을 지연해 가면서까지 안을 만들고 있는지 이해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일본은 관세 협상에서 제조업·항공우주·농업·에너지·자동차 등 분야에서 미국에 시장을 개방하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내용의 합의를 진행했다. 또 합의 불이행 시 미국이 관세를 재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굴욕 협상’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 장관은 “일본의 타결 협상안을 보면 우리가 비슷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 여러 문제점이 많다”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며 협상을 강하게 하다 보니 합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품목 관세가 부과될 때 최혜국 대우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현재로서는 그렇다”고 인정했다. 불확실성 해소될까? 우리나라와 미국 사이에 자리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을 대하는 방식은 이제 변수를 넘어 상수가 되는 모양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가 한미 관계를 더 흔들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