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가습기살균제로 아내·장모 잃은 송기진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대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28 13:44:10
  • 호수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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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기업 치료비도 안 준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7000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숫자다. 이들은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병인 폐섬유화증 등 각종 폐질환에 걸렸다. 일상생활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하거나 걷는 것조차 힘든 피해자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가해기업들은 “금액이 부담스럽다” “재판 결과를 보자”며 치료비 제공을 미루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34조(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분담금)에는 ‘환경부 장관은 이 법에 따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지원 등에 드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원료물질 사업자’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분담금(이하 분담금)을 부과·징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분담금 산정은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의 총액은 1000억원으로 하며, 개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은 공식 계산식에 따라 산정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만들었거나 판매한 기업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분담금을 지급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이 분담금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다. 사람마다 증상은 다 다르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경제적 활동이 어렵고, 보호자가 간병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해 분담금은 필수적이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니 기업은 분담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의 ‘말’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난 21일, 서울시 도봉구 소재의 한 카페서 송기진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대표를 만나 해당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먼저 송 대표는 자신이 가습기살균제 판매 기업과 통화한 내용을 <일요시사>에 제공했다. 해당 통화서 가해기업은 “(우리 입장에선)분담금 액수가 적지 않다. 기업이 동일한 수준의 분담금을 낸다.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다른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갖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우리는 일단 최종 결과를 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기업 측이 말하는 ‘최종 결과’는 2021년 1심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에 함유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이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한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본 것인데, 이는 환경부가 CMIT·MIT 성분의 인체 유해성을 인정한 것과 배치된 결과다.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으로, 재판 결과는 내년 1월11일에 나온다. 즉, 항소심 결과에 따라 해당 기업은 분담금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송 대표의 입장을 들어봤다. 그는 120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구성된 모임의 대표로 어떻게 피해자 대표가 됐는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표는 왜?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그땐 이미 장모님과 아내가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이후다. 그때만 해도 가습기살균제 사건 때문인지 몰랐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시간이 흘러 아내가 일하기 위해 보건소 건강검진 기록지가 필요해 검사해 보니 폐에 문제가 있었다. 굉장히 건강했으며, 가족 중 폐가 아픈 사람도 없다. 대학 병원에 가니까 2년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언론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들이 보도되면서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내가 아프단 것을 알게 됐고, 피해 인정도 받았다. 그리고 2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문제 해결 긍정적
공식적으로 만나자면 나몰라 꽁무니

사람이 이렇게 죽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원래 목사였는데,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목회를 계속 할 수 없어 탁구장을 운영한다. 그런데 알아 보니 사람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피해자들이 피해 배·보상을 받지 못했다. 누군가는 피해자 대표를 맡아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하기 시작한 것도 있다.

-장모와 아내가 어떻게 투병 생활을 했나?

▲앞서 말한 것처럼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픈지 몰랐다. 우선 장모님은 연세가 많으셨는데, 병원에 가보니 폐 섬유화가 진행 중이었고 그로 인해 돌아가셨다. 아내도 같은 병이었다. 병원에 유전병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해 난치병 환자로 분류돼 치료받았다.

대학병원 의사는 50대 초반의 아내가 2년밖에 못 산다고 했으니 완전히 날벼락이었다. 계속 치료했지만, 폐 기능이 저하되면서 아내는 점점 숨을 쉬지 못했다. 집이 3층이었는데, 막판에는 계단을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집에서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다녔다.

마지막 방법이 폐 이식이라서 이식받겠다고 등록했지만, 이게 순서라는 있어서 그런지 기증자가 없었다. 만약 1년 안에 기증자가 나왔더라면 아내는 살았을 것이다.

한 번은 기증자가 나와서 수술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기증자의 폐가 너무 안 좋아서 수술이 취소됐다. 그 후 이식 등록 1년이 지난 뒤 이식받았는데, 기증을 받고 나서 40일 지나 중환자실서 일반실로 갔다. 당시엔 교회서 한 달 휴가를 받아 아내를 간병했다.

아내는 이식한 뒤 한 달 정도 회복에 전념했다. 처음엔 손에 힘이 없었는데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그렇게 희망적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잠을 못 자더니 중환자실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병원비는 얼마나 들었나?

▲가장 큰 문제는 병원비가 아니었다. 아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늦게 등록됐지만, 난치병 환자로 분류돼 병원비는 전체의 10%만 지불했다. 문제는 내가 간병해야 하니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폐 이식을 진행하면서 6개월에 6000만원 정도의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나중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되면서 이 금액(분담금)은 모두 받았다. 이 돈이 없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인정된 후에 받았으니, 6000만원 비용은 내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전부 빚이었는데, 그나마 피해자로 인정받고 병원 영수증을 제출해서 병원비를 다 받았으며, 치료비는 한도 없이 준다.

-가해기업 측 발언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너무 화가 난다. 2021년부터 계속 가습기살균제 관련 측 사람들과 만나왔다. 이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만나서 “제대로 문제 해결을 해보자” “배·보상을 진행해보자”고 하면 항상 긍정적인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내용을 공개하자” “공식적으로 만나자” “우리끼리만 만나지 말고 피해자 대표들끼리 만나자”고 하면 자리를 피한다.

7000명 인생이 망가진 사건
“정부는 왜 분담금 내지 않나?”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하고 13개 피해자 단체가 회의도 하니 계속 만났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법적으로 가해기업들이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정해놨는데, 이제 기업 간 분담금 내는 것이 똑같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솔직히 말해 피해자가 이런 일까지 신경써야 하는 게 화난다. 사실 이건 기업 간 조율해야 할 일 아닌가? 이미 법을 만들 때 본인들도 인정한 부분이 있다. 합의금이든, 배·보상 문제든, 분담금 비율이든 기업이 법적으로 다퉈서 각자 비율을 정하는 것은 알아서 해야 한다. 제발 피해자를 가해기업이 싸우는 데 끼어들게 하지 마라.

-분담금이 생긴 이유는?

▲기본적으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지고 피해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병원비는 계속 들어가고, 언제까지 들어갈지 알 수도 없다. 특히 성장하는 아이들은 더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에도 단계가 있는데, 1~2단계 사람들은 이미 배·보상을 받았다. 금액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문제는 남은 사람인데 병원비, 유족 위로금, 요양 급여 등 구제급여를 만들었다. 병원비용은 과거 영수증까지 내면 받을 수 있다.

-기업이 갑자기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사건이 처음 터진 상황에서는 피해자 수가 적기도 했고, 사망자는 돈을 한 번만 주면 되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자가 많아졌다. 7000명이 넘는다. 그러니 내야 하는 금액도 무한대가 됐다. 분담금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내야 한다.

그러니 가해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와 피해자의 연관성이 없다고 소송을 걸어놓은 것이다. 여기서 기업이 이기면 피해자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게 된다. 더 이상한 것은, 법을 보면 정부도 책임이 있어 구제급여를 내야 하는데 1차만 내고 2차는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들이 분담금을 못 내겠다고 하면 피해자들 치료비는 어떡하느냐? 그럴 때는 정부가 내야 한다. 2차 때 정부가 왜 돈을 안 냈는지는 모르겠는데, 1차 때 냈던 정부 돈도 쓰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것도 왜 안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3차 돈을 내야 하는 시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끼워 넣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남들보다 늦은 스물여섯살에 신학대학교에 갔고 서른살에 졸업해 서른두살에 결혼했다. 목사가 되려면 대학원까지 가야 해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마흔한살때였다. 다행히 중간에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다.

바로 목사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부목사를 잠깐 했었는데 꿈을 이뤘던 기간이기도 하고, 이 기간이 내 인생서 유일하게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 나뿐만이 아니다. 지금 피해자가 7000명이나 되는데, 7000명 인생 모두가 무너진 것이다. 여태까지 기업이 피해자 가족에게 배·보상해준 인원은 1, 2단계 피해자 뿐이다.

과거 영수증까지 내면 받을 수 있다. 아내 사망 당시 구제급여 및 유족조의금 한도가 4000만원이었고 병원비 및 간병비(증빙된 영수증)로 75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유족조의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구제급 한도가 1억으로 조정되면서 2500만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이 문제가 빨리 해결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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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