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마약 다단계’ 대해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21 15:36:31
  • 호수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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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돈이 돌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옥장판, 다이어트 식품, 화장품 등은 대표적인 다단계 제품으로 꼽힌다. 이 틈새를 노린 상품이 있다. 바로 마약이다. 한때 건설업자들 사이서 마약이 유행했고, 이들은 다단계 유통을 통해 판매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눈에 쉽게 띄자, 마약밀매는 점조직 형태로 바뀌었다.

보통 다단계는 ‘제조업자→도매업자→소매업자→소비자’와 같은 일반적인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는다. 다단계라는 이름처럼 많은 단계의 회사와 판매원이 거래에 참여하는 유통 방식을 말한다. 즉, 자사 제품을 구입한 고객을 판매원으로 이용해 제품 판매와 유통망을 확대해나가는 판매 방식이다. 

피라미드식
유통 방식

본사는 상품 판매 출자자를 모집하고, 출자자가 다시 다른 출자자를 가입시키면 보수를 받는 구조다. 통상 이를 두고 피라미드식 판매 방식이라고 말한다. 다단계 특징은 판매원의 능력에 따라 이익을 받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판매조직이 상품의 판매와 관계없이 무원칙적으로 확대되고 말단 출자자가 대량의 재고를 책임지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 제품엔 딱히 제한이 없지만 화장품, 다이어트 식품, 건강식품 등이 가장 많이 유통된다. 최근에는 코인(가상화폐)까지 다단계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마약도 다단계 판매가 이뤄진 적이 있다. 지금은 마약 다단계 조직이 사라졌지만, 마약은 한때 다단계 블루오션으로 큰돈을 벌게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마약이 널리 퍼지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마약사범이 2만명이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16세부터 69세 이상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마약 실태 설문조사에서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의사의 적절한 처방 없이 치료 목적 이외의 용도’로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3.2%가 “사용한 적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전체 국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2%는 약 160만명, 조사 대상인 19~69세를 기준으로 보면 최소 120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 남짓이니 5년간 태어나는 국민을 모두 더한 숫자와 비슷하다.

마약 다단계 판매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A씨는 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졸업하고 지방 건설업체에 입사했다. 당시 주택건설은 호황기였고, 자연스레 그의 꿈은 현장 소장이 되는 것이었다. 현장 소장은 하도급 업자 선정, 근로자 합숙소 운영자 선정 등 건설업체 현장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 건설 쪽 하청업자들은 일이 끝나면 항상 현장 소장을 데리고 술집을 갔다. A씨는 현장 소장을 따라다니면서 유흥주점에 들러 건설업자들과 도박을 했다.

술 대신 하니 피로가 없다고?
건설 노동자 은밀히 총책 활동

그는 “하청업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그런 과정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한다. 보통 고스톱을 치는데 투고까지는 아니고 쓰리고, 포고까지 간다”며 “건설 현장은 돈 판이다. 소장에게는 100만원을 주는데, 나한테는 10만~20만원 준다. 이러니 소장은 못 되더라도 현장서 ‘돈이나 모으고, 벌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건설 현장서 벌어지는 도박판을 보고 자신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돈맛’을 봤지만, 애당초 건설 현장서 이뤄지는 도박판은 큰 규모가 아니었다. 게다가 도박을 해보니 자신이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A씨는 도박에 빠져 일이 끝나면 음주와 함께 도박을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현장 소장이 돼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꿈도 물거품이 됐다. 또 건설업체 현장 일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 문제는 과음하면 숙취로 결근이 잦아졌고 작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때 우연히 목수 기능공이 A씨에게 필로폰을 권유했다. 필로폰은 술과 다르게 숙취가 없어 A씨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는 단순히 필로폰을 투약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A씨에게 필로폰은 돈을 끊임없이 벌도록 해주는 통로였다. 건설 노동자에게 필로폰을 판매해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다. 필로폰은 숙취가 없어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없는 데다 작업 능률까지 높일 수 있었다.

목수 기능공을 찾아가 마약을 구하는 상선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A씨는 상선에게 마약을 댄 공급자를 찾았고 또 다른 공급자까지 찾았다. 그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필로폰을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며칠을 야간 작업해도 끄떡없는 신비한 약”이라고 꼬드겼다.

능력에 따라
이익 받는다

다만 마약이라고 설명하진 않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A씨가 판매하는 약이 마약인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주말도 없고 잔업과 철야 작업이 많아 비가 와야 쉴 수 있는 형편이었다.

A씨는 “그때 건설경기가 제일 좋을 때였다. 주택 100만호 건설이라고 해서 여기저기 말뚝 박고 아파트와 빌라를 지었다.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몸은 피곤했지만, 돈을 벌었다”며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때 마약 한 방에 10만원 받았는데 술값보다 쌌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과하게 마시면 다음 날 일을 못 하니까. 그런데 필로폰 주사를 맞으면 다음 날 힘이 엄청나게 난다. 그러니 한 번 마약을 맞으면 뽕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약을 투약하고 밤새 일을 지속하면 몸이 축날 수밖에 없다. 건설 노동자들은 마약에 중독됐고, 그만큼 A씨는 돈을 쓸어모았다. 이미 수익 기반이 잡혔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 A씨의 머리에 스친 것이 바로 다단계였고, 바로 다단계 사업을 모방한 영업전략을 구축했다.

마약 판매에 이어 다단계 사업을 하는 것은 큰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둘 다 불법이었기 때문인데, 분명한 것은 마약 다단계가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A씨의 영업전략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판매자로 변화시켜 등급(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을 만들고 판매량과 소비자 모집 능력을 고려해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었다. 다단계 사업은 호황이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 건설 노동자들은 본업을 그만두고 다단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생겼다.


A씨는 “나는 국내 최초로 마약을 다단계 판매에 적용했다. 원래 마약은 점조직이라 내 밑에 누가 있어도 알 수 없는데 수익률 배분에 있어 내가 100을 먹으면 다이아몬드에 70을 주고, 사파이어에겐 50을 줬다”며 “그러니 아랫사람이 더 팔려고 엄청 열심히 영업했다. 자석 장판 이런 다단계 판매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중독 후
판매자로 

이때 번 돈으로 A씨는 현장 기능사에서 주택건설 업자로 변신했다. 건설업 경영자가 마약밀매를 하는 것은, 건설 현장 기능사가 하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자신의 위치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선 셈이었다.

원래 꿈이었던 소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A씨가 그런 꿈을 가진 것은 고졸 학력에 회사 소장 정도만 가능했다고 여겨서다. 국내 건설계서 초창기 소장은 고졸 출신이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이처럼 마약 밀매 사장이 되니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주택건설 업자가 된 뒤 A씨는 낡은 단독주택을 매입해 그 부지에 연립주택을 신축했다. 현장 기술과 자본력이 있었지만 대형건설 실적이 없어 대규모 아파트를 신축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탓이다.

건설업으로 제대로 성공하면 대박이 나지만, 분양이 막힐 경우 도산의 위험도 따른다. 대부분의 건설업자들은 도산했지만, A씨는 마약 다단계로 벌어들인 자금력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A씨는 자기 삶을 보상받 듯 수입 자동차에 운전기사까지 고용했다. 밤에는 유흥주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는 등 말 그대로 돈을 하늘에 뿌리고 다녔다.


그렇다고 마약 다단계가 현금이 무한정 솟아나는 화수분은 아니었다. 주택 경기가 퇴보하고 마약 다단계 자금마저 바닥이 나자 A씨는 도산했다. 바로 계속된 과소비 때문이었다.

A씨는 “원래 땅장사, 노가다, 건축업자는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다. 그전에 룸살롱에선 맥주도 팔았는데 양주만 마셨다”며 “그것도 국산 양주 먹으면 격 떨어진다고 외국 양주만 먹었다. 팁을 주면 하루에 100~200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단계별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
상선에 또 다른 공급자 연결

이어 “주머니에 늘 돈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썼다. 돈을 벌려고 건설업을 했는지, 술을 먹기 위해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사업한 사람들 거의 다 망했는데, 나는 마약을 판매했기 때문에 오래 버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저앉을 그가 아니었다. A씨는 도산 후 마약 밀매로 재기하기 위해 상선과의 루트 재정비에 나섰다. 과거에 자신에게 마약을 공급받았던 사람들을 다시 조직해 소매 조직을 결성했고,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부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체포돼 4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A씨 다단계 조직과 지위를 노린 내부자에 의해 밀고돼 체포됐던 것이다.

A씨는 “만약 내가 초창기에 마약 판매했던 것까지 다 했으면 무기징역이 나왔을 텐데 용케 피했다. 원래 마약은 단순히 사용하는 사람이 잡히면 초범으로 집행유예를 받는데 공급자들은 형이 아주 세다”며 “판매자를 막아야 구매자들이 사라지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봐도 4년은 적당하다. 마약은 감형이나 가석방 같은 것이 전혀 없어 선고받은 대로 다 살아야 한다. 그만큼 판사와 법무부도 악질로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마약으로 번 돈으로 누렸던 호화로운 삶은 이제 끝났으며, A씨 인생은 교도소 내에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형수를 만나면서 변했다. 사형수는 가족 면회도 오지도 않는 등 고독하고 불우한 사람이었다. 종교단체서 후원하는 약간의 영치금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면서 생활했다.

A씨는 사형수에게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속옷, 책, 간식 등을 구매해 전달했다. 이 과정서 사형수를 교화하는 종교인들의 저서, 사형수의 일화, 일상을 직접 보면서 마약 판매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다. 잠을 자기 전에는 누워서 교수대에 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A씨는 “사형수 형님을 보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다. 나도 중국이었으면 이미 사형당했을 것이다. 이들은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도록 노력할 거라고 말한다. 이제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형수로 한 달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출소 후 마약 밀매자인 것을 숨기고 일하기 위해 선원이 됐다. 선원 인력업체는 늘 인력이 부족하기에 신원을 조회하거나 과거 경력을 묻지 않고 주민등록증 하나만 보여주면 가능했다. 그는 물때를 맞추기 위해 선주의 집에 기거하며 생활했다.

그 끝은…
초라한 말로

A씨는 마약과 멀리 하기 위해, 머물던 현실과 완전히 격리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돈만 있으면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망망대해 위 어부의 삶은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A씨는 자신을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무기수’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마약을 팔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바닷일을 하면서 느낀 건 교도소서 느낀 것과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돈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마약 밀매 수입은 미친 돈”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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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문정부 정조준’ 감사원 최후의 발악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이후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미묘한 시기에 사정기관의 칼끝이 문재인정부를 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관에 대해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향방에 따라 행보를 달리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기’ 상황에 놓여있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탄핵안 인용으로 파면됐고 새 대통령은 아직 뽑히지 않았다. 헌법은 대통령 궐위 이후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존재하긴 하지만, 한정된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는 이른바 ‘반쪽짜리 정부’ 상태에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앞두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면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움직임은 느려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와 180도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 보고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 형태로 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음 정부는 여느 정부보다 ‘전 정부 지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서 새로운 정책을 펴거나 기존 정책을 발전시키는 행보는 무의미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정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선거에 미칠 영향 때문에라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편이다. 특히 유력 후보와 관련한 사건은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칫하다가는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 이번 대선은 선거 기간이 짧아 국민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작은 사건이 대선에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검찰과 감사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후보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전 대통령이 표적이 됐다. 이전부터 해온 수사와 조사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하기엔 시기가 미묘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21년 12월 시민단체 고발 이후 3년5개월여 만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등을 수사해 왔다. 서씨가 취업했던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상직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도 뇌물공여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전 대통령의 딸인 다혜씨와 서씨는 기소유예 처분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다혜씨, 서씨와 공모해 이 전 의원이 실소유한 이스타항공의 해외법인 격인 타이이스타젯에 서씨를 임원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서씨는 2018년 8월 취업 이후 2020년 3월까지 타이이스타젯에서 급여로 약 1억5000만원, 주거비 명목으로 6500만원을 받았다. 집값 통계 조작 결과 발표 청와대 외압 정황도 나와 검찰은 서씨의 취업으로 문 전 대통령이 그간 다혜씨 부부에게 주던 생활비 지원을 중단한 점을 들어 문 전 대통령이 이 금액만큼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판단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 직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의원은 “터무니없고 황당한 기소”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보복성 기소”라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윤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문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린다. 그는 “법정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검찰권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행사되고 남용되고 있는지 밝히는 계기로 삼겠다”며 “수사권 남용 등 검찰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 고소하는 것은 물론, 검찰을 개혁하는 기회로 여기겠다”는 발언도 내놨다.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도 문정부에 대한 감사 결과를 내놨다. 문정부 임기 동안 부동산 등 국가 통계를 광범위하게 조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청와대와 정부가 통계 작성 기관 등에 압박을 가한 사실도 드러나 충격을 안겼다. 지난달 17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 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전국 주택가격 동향 조사(주택통계), 가계동향 조사(소득통계), 경제활동인구 조사(고용통계) 등을 감사한 자료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11명)·국토교통부(7명)·한국부동산원(7명)·통계청(6명) 등 총 31명에 대해 징계 요구(14명)·인사자료 통보(17명) 등 엄중 조치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와 통계청 등에 통계의 정확성·신뢰성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향후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제도개선 통보 및 주의 요구를 처분했다. 검찰 기소 왜 지금? 감사원은 2023년 9월 대통령비서실·국토부·통계청·한국부동산원(이하 부동산원) 소속 22명 가운데 일부 주요 관련자에 대해서는 검찰에 수사 의뢰한 바 있다. 당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및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홍장표 전 경제수석,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부는 주택 가격에 대해 부동산원에 ‘통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며 사전 제공하도록 지시했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결과를 임의로 수정하고 통계 개선 명목으로 표본 가격을 조작하는 등 통계 왜곡을 은폐했다. 이렇게 집값 관련 통계 수치를 조작한 사례는 감사원 확인 결과 102건에 달했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외압은 2018년 1월 서울 양천, 성남 분당의 주택 매매 가격 주간 변동률 왜곡 등에 처음 시작됐고, 2018년 하반기 부동산시장이 요동치자, 객관적 근거도 없이 특정 지역 개발계획 철회 등 정부 발표 내용이 시장 안정에 효과를 준 것처럼 통계에 반영토록 요구했다. 감사원은 “국회·언론은 국정감사 등에서 주택 가격 동향 조사 변동률 등이 시장 상황 및 민간 통계 등과 다르다며 통계의 정확성·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으나 개별 표본 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되지 않아 표본 가격이 시장가격과 격차가 벌어진 사실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감사원 감사 결과 문정부가 핵심 정책의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통계를 조작한 사실도 드러났다. 문정부는 출범 때부터 ‘소득 주도 성장’을 일관되게 밀어붙였다. ‘양질의 일자리 만들기’도 정부 주도로 진행했다. 문제는 그 효과를 정부 차원에서 왜곡했다는 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통계청은 2017년 각각 2·3·4분기 가계소득을 가집계한 결과 전년 대비 감소로 확인되자, 정당한 절차 없이 표본 설계에 없는 가중값을 임의로 적용해 가계소득을 증가시켰다. 부동산·고용 다 건드렸다 소득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마사지’가 들어갔다. 청와대는 2018년 1분기 소득5분위 배율이 역대 최악(5.95)으로 나타나자 통계청에 개인정보 등이 포함된 통계자료를 사전 제공하도록 부당한 지시를 했다. 또 한 노동연구원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개인별 근로소득 불평등 개선’으로 보고·발표하도록 지시했다. 통계청은 청와대 지시에 따라 통계자료 제공 관련 보도 설명 자료 등을 사실과 다르게 작성·발표했다. 감사원 결과가 나온 이후 정치권은 들끓었다. 국민의힘은 ‘국기 문란 범죄’라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감사원의 ‘표적 감사’라고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 모든 실패를 통계 조작으로 감추고 국민의 고통 위에 거짓의 탑만 쌓아 올렸다. 거짓의 탑이 무너지려고 하자 최재해 감사원장을 탄핵했다”며 “한술 더 떠서 이재명은 감사원을 민주당 자신들이 장악한 국회 아래로 이관해 손아귀에 틀어쥐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표본도, 지수 작성 방식도, 자료 수집 방식도 다른 통계를 동일선상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이미 전 정권이 돼버린 윤석열정권의 잔당들이 전 정권(문재인정부)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겠다는 의지가 부른 희대의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발표한 시기도 지적했다. 한 최고위원은 “윤석열정부 출범 4개월 만에 착수한 감사를 새 정부 수립을 불과 47일 앞둔 때에 마무리한 저의가 대체 무엇인가”라며 “대통령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저열한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북한 GP 파괴 두고도 수사 요청 민주 “해체 준하는 개혁” 반발 감사원은 지난달 24일에도 문정부 당시 군 인사 6명을 수사해달라 요청했다. 이들은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이 파괴한 북한군 최전방 감시초소(GP)에 대한 우리 측의 불능화 검증을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경두·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관계자들이 수사 요청 대상자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2018년 체결한 9·19 군사 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 내 GP 10개씩을 파괴하고 1개씩은 원형을 보존하면서 병력과 장비를 철수시킨 뒤 상호 현장 검증을 실시했다. 당시 군 당국은 북한군 GP 1개당 총 7명씩 총 77명으로 검증단을 파견해 현장 조사를 한 뒤 북한군 GP가 완전히 파괴됐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북한군 GP 지하시설의 존재 가능성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우리 군 당국이 이 부분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나왔다. 전직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은 지난해 1월 이 내용을 포함한 북한군 GP 불능화 검증 부실 의혹에 대한 공익 감사를 청구했다. 그 결과가 이번 감사원의 수사 요청인 셈이다. 검찰의 문 전 대통령 기소와 감사원의 연이은 문정부 ‘공격’에 민주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검찰과 감사원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며 ‘신 관권선거’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회 소통관서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감사원이 북한의 GP 파괴 관련 결과를 내놓은 이후다. 조 수석대변인은 “권력기관이 이제 대통령선거에까지 사실상 개입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라며 “마지막까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졸개이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내란 세력이 벌이는 최후의 저항을 국민과 함께 막아내고 내란 세력을 철저히 뿌리 뽑아 국민 주권을 돌려 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세 영향 미칠까? 앞서 민주당은 집값 등 통계 조작 관련 감사원 발표 이후 ‘해체에 준하는 개혁 대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전 정권 탄압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서 나온 발언이다. 민주당은 “독립 기관이라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 채 내란 옹호 기관이라는 오명을 안은 감사원에 닥칠 결말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도 문정부 표적 감사, 윤정부 부실 감사 등을 이유로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헌재가 탄핵안을 기각해 최 원장은 직무에 복귀했으나 감사원장이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당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