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마약 다단계’ 대해부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21 15:36:31
  • 호수 14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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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돈이 돌고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옥장판, 다이어트 식품, 화장품 등은 대표적인 다단계 제품으로 꼽힌다. 이 틈새를 노린 상품이 있다. 바로 마약이다. 한때 건설업자들 사이서 마약이 유행했고, 이들은 다단계 유통을 통해 판매했다. 덩치가 커지면서 눈에 쉽게 띄자, 마약밀매는 점조직 형태로 바뀌었다.

보통 다단계는 ‘제조업자→도매업자→소매업자→소비자’와 같은 일반적인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는다. 다단계라는 이름처럼 많은 단계의 회사와 판매원이 거래에 참여하는 유통 방식을 말한다. 즉, 자사 제품을 구입한 고객을 판매원으로 이용해 제품 판매와 유통망을 확대해나가는 판매 방식이다. 

피라미드식
유통 방식

본사는 상품 판매 출자자를 모집하고, 출자자가 다시 다른 출자자를 가입시키면 보수를 받는 구조다. 통상 이를 두고 피라미드식 판매 방식이라고 말한다. 다단계 특징은 판매원의 능력에 따라 이익을 받는다는 것인데, 문제는 판매조직이 상품의 판매와 관계없이 무원칙적으로 확대되고 말단 출자자가 대량의 재고를 책임지게 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 제품엔 딱히 제한이 없지만 화장품, 다이어트 식품, 건강식품 등이 가장 많이 유통된다. 최근에는 코인(가상화폐)까지 다단계 제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마약도 다단계 판매가 이뤄진 적이 있다. 지금은 마약 다단계 조직이 사라졌지만, 마약은 한때 다단계 블루오션으로 큰돈을 벌게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마약이 널리 퍼지기 전의 일이다. 지금은 마약사범이 2만명이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16세부터 69세 이상 성인 5000명을 대상으로 한 마약 실태 설문조사에서 “평생 단 한 번이라도 ‘의사의 적절한 처방 없이 치료 목적 이외의 용도’로 마약을 사용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3.2%가 “사용한 적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는 전체 국민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2%는 약 160만명, 조사 대상인 19~69세를 기준으로 보면 최소 120만명에 달하는 수치다. 연간 출생아 수가 25만명 남짓이니 5년간 태어나는 국민을 모두 더한 숫자와 비슷하다.

마약 다단계 판매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A씨는 공업고등학교 토목과를 졸업하고 지방 건설업체에 입사했다. 당시 주택건설은 호황기였고, 자연스레 그의 꿈은 현장 소장이 되는 것이었다. 현장 소장은 하도급 업자 선정, 근로자 합숙소 운영자 선정 등 건설업체 현장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 건설 쪽 하청업자들은 일이 끝나면 항상 현장 소장을 데리고 술집을 갔다. A씨는 현장 소장을 따라다니면서 유흥주점에 들러 건설업자들과 도박을 했다.

술 대신 하니 피로가 없다고?
건설 노동자 은밀히 총책 활동

그는 “하청업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과 친해져야 한다. 그런 과정서 술을 마시고 노름을 한다. 보통 고스톱을 치는데 투고까지는 아니고 쓰리고, 포고까지 간다”며 “건설 현장은 돈 판이다. 소장에게는 100만원을 주는데, 나한테는 10만~20만원 준다. 이러니 소장은 못 되더라도 현장서 ‘돈이나 모으고, 벌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건설 현장서 벌어지는 도박판을 보고 자신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돈맛’을 봤지만, 애당초 건설 현장서 이뤄지는 도박판은 큰 규모가 아니었다. 게다가 도박을 해보니 자신이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A씨는 도박에 빠져 일이 끝나면 음주와 함께 도박을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다. 현장 소장이 돼 일찍 결혼하고 싶다는 꿈도 물거품이 됐다. 또 건설업체 현장 일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일을 계속하기 위해 술을 마셨다. 문제는 과음하면 숙취로 결근이 잦아졌고 작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때 우연히 목수 기능공이 A씨에게 필로폰을 권유했다. 필로폰은 술과 다르게 숙취가 없어 A씨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는 단순히 필로폰을 투약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A씨에게 필로폰은 돈을 끊임없이 벌도록 해주는 통로였다. 건설 노동자에게 필로폰을 판매해 돈을 벌겠다고 마음먹었다. 필로폰은 숙취가 없어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없는 데다 작업 능률까지 높일 수 있었다.

목수 기능공을 찾아가 마약을 구하는 상선을 집요하게 캐물었던 A씨는 상선에게 마약을 댄 공급자를 찾았고 또 다른 공급자까지 찾았다. 그는 건설 노동자들에게 필로폰을 “지친 몸을 회복시키고 며칠을 야간 작업해도 끄떡없는 신비한 약”이라고 꼬드겼다.

능력에 따라
이익 받는다

다만 마약이라고 설명하진 않았지만, 건설 노동자들은 A씨가 판매하는 약이 마약인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건설 노동자들은 주말도 없고 잔업과 철야 작업이 많아 비가 와야 쉴 수 있는 형편이었다.

A씨는 “그때 건설경기가 제일 좋을 때였다. 주택 100만호 건설이라고 해서 여기저기 말뚝 박고 아파트와 빌라를 지었다. 일을 많이 하는 만큼 몸은 피곤했지만, 돈을 벌었다”며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지만, 내가 그때 마약 한 방에 10만원 받았는데 술값보다 쌌다”고 말했다.

이어 “술을 과하게 마시면 다음 날 일을 못 하니까. 그런데 필로폰 주사를 맞으면 다음 날 힘이 엄청나게 난다. 그러니 한 번 마약을 맞으면 뽕뽑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마약을 투약하고 밤새 일을 지속하면 몸이 축날 수밖에 없다. 건설 노동자들은 마약에 중독됐고, 그만큼 A씨는 돈을 쓸어모았다. 이미 수익 기반이 잡혔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때 A씨의 머리에 스친 것이 바로 다단계였고, 바로 다단계 사업을 모방한 영업전략을 구축했다.

마약 판매에 이어 다단계 사업을 하는 것은 큰 부담을 주는 일이었다. 둘 다 불법이었기 때문인데, 분명한 것은 마약 다단계가 제대로 자리만 잡으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A씨의 영업전략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을 판매자로 변화시켜 등급(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을 만들고 판매량과 소비자 모집 능력을 고려해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었다. 다단계 사업은 호황이었다.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일부 건설 노동자들은 본업을 그만두고 다단계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생겼다.


A씨는 “나는 국내 최초로 마약을 다단계 판매에 적용했다. 원래 마약은 점조직이라 내 밑에 누가 있어도 알 수 없는데 수익률 배분에 있어 내가 100을 먹으면 다이아몬드에 70을 주고, 사파이어에겐 50을 줬다”며 “그러니 아랫사람이 더 팔려고 엄청 열심히 영업했다. 자석 장판 이런 다단계 판매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중독 후
판매자로 

이때 번 돈으로 A씨는 현장 기능사에서 주택건설 업자로 변신했다. 건설업 경영자가 마약밀매를 하는 것은, 건설 현장 기능사가 하는 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자신의 위치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선 셈이었다.

원래 꿈이었던 소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애당초 A씨가 그런 꿈을 가진 것은 고졸 학력에 회사 소장 정도만 가능했다고 여겨서다. 국내 건설계서 초창기 소장은 고졸 출신이 많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도 옛말이 됐다. 이처럼 마약 밀매 사장이 되니 더 바랄 게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주택건설 업자가 된 뒤 A씨는 낡은 단독주택을 매입해 그 부지에 연립주택을 신축했다. 현장 기술과 자본력이 있었지만 대형건설 실적이 없어 대규모 아파트를 신축할 기회를 잡지 못했던 탓이다.

건설업으로 제대로 성공하면 대박이 나지만, 분양이 막힐 경우 도산의 위험도 따른다. 대부분의 건설업자들은 도산했지만, A씨는 마약 다단계로 벌어들인 자금력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다. A씨는 자기 삶을 보상받 듯 수입 자동차에 운전기사까지 고용했다. 밤에는 유흥주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마시는 등 말 그대로 돈을 하늘에 뿌리고 다녔다.


그렇다고 마약 다단계가 현금이 무한정 솟아나는 화수분은 아니었다. 주택 경기가 퇴보하고 마약 다단계 자금마저 바닥이 나자 A씨는 도산했다. 바로 계속된 과소비 때문이었다.

A씨는 “원래 땅장사, 노가다, 건축업자는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신다. 그전에 룸살롱에선 맥주도 팔았는데 양주만 마셨다”며 “그것도 국산 양주 먹으면 격 떨어진다고 외국 양주만 먹었다. 팁을 주면 하루에 100~200만원 깨지는 건 일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단계별 승급 기회와 인센티브
상선에 또 다른 공급자 연결

이어 “주머니에 늘 돈이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썼다. 돈을 벌려고 건설업을 했는지, 술을 먹기 위해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때 사업한 사람들 거의 다 망했는데, 나는 마약을 판매했기 때문에 오래 버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저앉을 그가 아니었다. A씨는 도산 후 마약 밀매로 재기하기 위해 상선과의 루트 재정비에 나섰다. 과거에 자신에게 마약을 공급받았던 사람들을 다시 조직해 소매 조직을 결성했고,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도 잠시, 부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체포돼 4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됐다. A씨 다단계 조직과 지위를 노린 내부자에 의해 밀고돼 체포됐던 것이다.

A씨는 “만약 내가 초창기에 마약 판매했던 것까지 다 했으면 무기징역이 나왔을 텐데 용케 피했다. 원래 마약은 단순히 사용하는 사람이 잡히면 초범으로 집행유예를 받는데 공급자들은 형이 아주 세다”며 “판매자를 막아야 구매자들이 사라지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봐도 4년은 적당하다. 마약은 감형이나 가석방 같은 것이 전혀 없어 선고받은 대로 다 살아야 한다. 그만큼 판사와 법무부도 악질로 보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마약으로 번 돈으로 누렸던 호화로운 삶은 이제 끝났으며, A씨 인생은 교도소 내에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형수를 만나면서 변했다. 사형수는 가족 면회도 오지도 않는 등 고독하고 불우한 사람이었다. 종교단체서 후원하는 약간의 영치금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면서 생활했다.

A씨는 사형수에게 자신의 영치금을 털어 속옷, 책, 간식 등을 구매해 전달했다. 이 과정서 사형수를 교화하는 종교인들의 저서, 사형수의 일화, 일상을 직접 보면서 마약 판매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깨달았다. 잠을 자기 전에는 누워서 교수대에 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A씨는 “사형수 형님을 보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다. 나도 중국이었으면 이미 사형당했을 것이다. 이들은 단 하루의 시간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도록 노력할 거라고 말한다. 이제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형수로 한 달만 살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출소 후 마약 밀매자인 것을 숨기고 일하기 위해 선원이 됐다. 선원 인력업체는 늘 인력이 부족하기에 신원을 조회하거나 과거 경력을 묻지 않고 주민등록증 하나만 보여주면 가능했다. 그는 물때를 맞추기 위해 선주의 집에 기거하며 생활했다.

그 끝은…
초라한 말로

A씨는 마약과 멀리 하기 위해, 머물던 현실과 완전히 격리된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돈만 있으면 다시 마약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망망대해 위 어부의 삶은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

A씨는 자신을 ‘마약 밀매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있는 무기수’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마약을 팔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바닷일을 하면서 느낀 건 교도소서 느낀 것과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 돈은 망하는 지름길이고, 마약 밀매 수입은 미친 돈”이라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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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