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 취급 ‘CRPS’ 환자들 실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11.06 14:08:13
  • 호수 14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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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진통제로 하루하루 버틴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칼로 벤 듯한 고통 속에 살아가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장애로 인정했으나, CRPS 환자들은 끊임없는 재판정을 통해 ‘꾀병’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의료용 마약 진통제로 버티며 생사를 오가는 이들은 ‘마약 중독자’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CRPS는 외상을 입거나 수술을 마친 후 비정상적으로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신경 경로가 정상서 일탈해 통증이 과도하고 불규칙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드물게는 염좌, 베임 등 비교적 가벼운 손상에도 발생할 수 있다. 만성적인 통증질환으로 진행되는 발병기전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치료에 어려움이 따른다.

3명 중 2명 
일상이 고통

통증은 환자마다 조금씩 다르게 느낀다. 절단한 신체가 있는 것 같다거나, 감전된 듯 찌릿하다고 표현한다. 어떤 환자는 땀이 과도하게 나고, 감각이 예민해져서 사회·경제적 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미세한 바람에도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외관상 피부의 색이나 질감이 변하는 등 근육과 관절의 경직도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CRPS 치료를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와 향정신성 약물을 활용한 약물치료, 신경치료, 척수 자극기 수술법, 기능 회복을 위한 재활치료가 있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할 만큼 고통스러운 이들은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기도 한다. 다만, 용량에 따라 식약처서 문제가 제기된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 등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다.


1인 치사량은 0.002g으로, 2021년 미국서만 7만명 넘는 사람이 펜타닐 중독으로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몸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제작된 펜타닐 패치는 다른 마약류와 달리 의사 처방에 따라 합법적 구매가 가능하고 몸에 붙이기만 해도 빠른 속도로 약효가 나타난다.

보통 비 암성 통증(만성 통증)일 때 건강보험서 허용하는 펜타닐 패치의 최대 용량이 37.5 mcg/h다. CRPS 환자는 이를 준수하기 위해 2장의 펜타닐 패치(12.5mcg/h 1장과 25mcg/h 1장)를 처방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식약처는 이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주로 펜타닐 패치 처방은 3일에 1장이기에 CRPS 환자가 과량 처방받고 있다고 해석한다.

또, 신경치료는 건강보험 횟수 제한으로 충분한 치료가 어렵다. 특히, 보건복지부 기준 CRPS가 ‘심하지 않은 장애’로 분류되는 점도 문제다. 이에 따라 CRPS 재활치료는 건강보험서 인정받지 못해 회당 5만~15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용우 CRPS 환우회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장애 인정 관련 문제점을 언급했다. 이 회장은 “CRPS 환자를 심하지 않은 장애로 인정하는 점과 2년마다 재심사,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점에서 (다른 질환과 비교해)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장애 등록도 지체장애를 잣대로 보기 때문에 통증만 겪는 환자는 장애 진단서 배제된다”며 “CRPS 환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 데도 장애 진단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극심한 고통에 못 이겨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CRPS 환자 10명 중 8명은 자살 충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 어려운데 재활치료비도 본인이?
‘중독자 오명’ 오남용 제도 개선 시급

매년 국내서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새로 발생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시급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19년 7월~8월까지 전국 37개 수련병원서 치료받고 있는 CRPS 환자 25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부, 학생 등을 제외한 응답자 75% 이상이 발병 전 사회·경제적 활동을 했지만, 발병 이후에는 3분의 2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 원인으로는 통증점수(10점 기준) 7점 이상의 극심한 통증과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발병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 부위가 확대됐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했다.

CRPS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은 일반인들이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응답자 80%가 ‘자살 충동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가벼운 일상활동서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고 응답한 비율도 절반을 넘었다. 또 응답자 전체의 평균 수면 시간은 4.9시간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 중 45%는 하루에 고작 4시간도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CRPS는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약물치료, 신경치료, 약물펌프 수술법, 재활치료 등으로 치료를 진행하지만 정확한 기전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서 이미 만성이 된 CRPS 환자들은 재활치료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CRPS 전문 재활클리닉은 국내 분당서울대병원이 유일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 임재영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CRPS 재활치료는 1대1로 환자와 치료사가 치료를 30분 이상을 해야 한다”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하루에 최대 15만원까지 환자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CRPS 환자를 대상으로 재활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은 한정돼있고 병원 입장서도 건강보험 규정상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치료는 한정돼있다”며 “이마저도 거절하는 병원이 많다.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CRPS 환자를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병원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도 “CRPS로 재활치료를 처방하고 치료 보장을 받는 것은 쉽지 않다”며 CRPS 재활치료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체계의 부재를 지적했다.

10명 중 8명
“자살 생각”

CRPS 환자들은 건강보험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 모양새다. CRPS 환자의 경우 마약성 진통제의 양이 한정돼있고 이를 넘어가면 전부 본인이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안 될 경우,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고통이 심해도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해 보험이 되는 약으로만 버티지만,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 교수는 CRPS 치료를 위한 신경치료의 건강보험 횟수 제한 등 유연하지 못한 보험 제도를 지적했다.


그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인 신경차단술이나 마약진통제 같은 경우 암 환자는 무한정 보험이 적용되지만 CRPS 환자는 용량·횟수 제한이 있다”며 “전혀 다른 중증도와 질환임에도 횟수 제한을 똑같이 규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CRPS 환자가 펜타닐 패치를 오남용한다는 왜곡된 시선도 있다. 문제는 CRPS 환자들이 건강상 문제가 없는 마약 투약범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것이다. CRPS 환자는 갑자기 찾아오는 돌발통 때문에 마약성 진통제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일상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약이 없으면 언제 통증이 찾아올 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상생활은 마비가 된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겐 쉽게 와 닿지 않는 경우다. 일부 CRPS 환자는 펜타닐 패치 오남용 이슈로 인해 기존에 처방받던 용량만큼도 못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마약성 진통제를 기준치 이상 복용해야 하는 CRPS 환자들은 “마약 중독자”라는 싸늘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정부와 경찰의 마약 단속에 발맞춰 의료계가 마약 근절과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

지난 8월2일, 서울 압구정역 앞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으로 행인을 들이받은 이른바 ‘롤스로이스’ 사건은 향정신성의약품(향정약) 오남용 사례를 전적으로 보여준다. 가해자 신모씨가 인근 성형외과서 미다졸람·디아제팜 등 향정신성의약품(향정약)을 투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난 9월11일에는 무면허 상태로 주차하다 시민을 흉기로 위협한 ‘람보르기니’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가해자 홍씨도 필로폰·엑스터시·케타민 등의 양성 반응을 보였다. 사건 직전 그는 서울 논현동 피부과를 방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롤스로이스 사건 가해자와 연루된 병원 10곳 이상을 압수수색했다. 조사 결과 사건 당일 신씨에게 마약류를 처방한 A 의원에서는 수상한 정황이 포착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료용 마약류 안전 사용 기준에 따르면 간단한 시술 및 진단을 위한 프로포폴 투약 횟수는 월 1회를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A 의원에서 지난 2년 새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이 2배 급증했다. 2020년 790명이었던 이곳의 향정약 처방 환자가 지난해 1593명으로 2배 증가했다.

해당 병원서 연도별 향정신성의약품을 가장 많이 처방받은 상위 20명을 분석한 결과, 한 명은 지난해 13건에 걸쳐 총 47개 프로포폴을 처방받았다. 최근 5년간 사망자 명의로 처방된 마약류는 4만여개에 달한다. 이른바 ‘유령 처방’이 의료기관서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마약 범죄 
오해 대상

국민의힘 최영희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망자 명의 의료용 마약 처방량은 3만8778개였다. 

최근에는 의사들이 직접 허위로 수술한 것처럼 꾸민 뒤 프로포폴을 대량으로 빼돌려 유통한 혐의로 경찰 수사선상에 올랐다. 이에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회원들을 중앙윤리위원회에 징계 심의를 부의,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프로포폴·펜타닐·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유통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수면제 및 진통제 처방이라는 명목하에 오남용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환자들의 오남용을 1차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의료진이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환자의 개인정보인 의료기록을 들여다보기 어렵기에 마약성 진통제를 얼마나 사용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 내 ‘약물 쇼핑’을 감시할 법적 제도가 미비해 정부 차원의 대응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관계부처가 제시하는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 혹은 DUR(Drug Utilization Review) 제도의 도입도 거론되고 있다. DUR은 의약품 처방·조제 시 의약품 안전성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약물 사용을 사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의사 및 약사에게 의약품 안전정보를 제공하는 제도다.

강력한 예방책으로 제시됐으나, 실효성의 한계는 존재한다. 과거에 오남용 이력이 있는 환자를 판별하기 때문에 ‘병원 뺑뺑이’를 처음 시도하는 환자는 걸러낼 방법이 없다.

이에 따라 마약류 진통제가 꼭 필요한 CRPS 환자들은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마약성 진통제 처방 행위가 자칫 범죄 행위로 간주되면 CRPS 환자조차 의료인이 처방을 꺼릴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 등이 꼭 필요한 환자가 쓰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DUR 제도를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약성 진통제 처방 시, 환자에게 설명 및 동의서를 의무화하고, 정기적인 혈중 마약농도 검사를 통해 부적절한 환자를 배제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 적정성 평가를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평등한 제도로 인한 피해자는 실제로 존재했다. 한 CRPS 환자는 “통증으로 주사를 맞고 싶어도 횟수 제한 때문에 참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희귀난치성질환인 CRPS는 산재 승인 과정도 쉽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증상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

서울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최초 접수 후 산재 범위에 들어오면 그 다음부터 요양 기간을 연장할 시 진료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며 “공단에선 의학 전문가에게 자문해야 하고 의무기록을 모아야 하므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과정서 신경외과나 정형외과는 빠른 자문이 가능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경우 온라인 자문이 없어 시간이 소요된다.

눈에 띄지 않는 증상으로 인해 환자가 직접 검사를 받으러 가야만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스치기만 해도 아픈 CRPS 환자가 산재 승인 과정에 필요한 의사 면담을 위해 직접 옷을 벗고 확인받아야 하는 것이다.

지난 2021년 4월 장애인정을 비롯한 꾸준한 개선이 있었지만, 여전히 장애인정 기준과 대상, 잦은 재판정 등으로 환자의 불편이 따른다는 지적이다.

CRPS 환우회와 대한통증학회 전문가들은 “CRPS에 대한 재판정 빈도에 있어 1회 재평가 후 재진단하지 않는 통상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며 “진단 후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의 요구는 미국 AMA서 규정한 ‘1년 이상’의 기준에 준해 1년으로 수정됐으면 한다”는 입장이다.

장애 인정 문턱도 높다. CRPS 진단 후 2년 이상 지속 치료에도 골스캔 검사, 단순 방사선 검사, CT 검사 등 결과 근위축, 관절구축이 뚜렷한 경우 혹은 팔 또는 다리 전체에 마비가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 이 중에서 근위축 등 가동성 감소는 CRPS로 인한 필연적 증상이 아니다.

환자의 상당수는 통증 자체만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 사회적 활동 자체가 어려운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다. 객관화, 시각화할 수 있는 기준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향후 상당수 CRPS 환자들이 통증만 가졌다는 이유로 장애 인정 대상서 원천 배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 4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서 열린 환자 중심 CRPS 정책 개발과 시행을 위한 정책토론회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주대학교 마취통증의학과 최종범 교수는 “CRPS 환자의 장애 인정 기준의 경우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외상 수술 등과 관련된 지체장애에 해당하는 환자만 장애 대상으로 포함된다는 점이 모순적인 부분”이라며 “CRPS 환자에 맞는 통증 장애진단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어렵게 장애 판정을 받은 CRPS 환자들이 잦은 재판정 등으로 불편이 크며 실제 혜택 대상서 제외되는 등의 위험에 처해 있다”며 ”현재 복지부 지침에 따라 2년마다 다시 판정하도록 하는 동시에 2년 이상의 진료기록을 요구하는 부분은 앞으로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뽕쟁이 아냐?
범죄자 취급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최경일 과장은 “장애 진단 후 재판정 기간을 현행 2년서 3년 혹은 4년으로 연장하는 것과 최근 2년 간의 진료기록 제출 기한을 단축할 수 있도록 완화하는 부분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장애정책이 빠르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만큼 많은 토론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답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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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