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민주당 꽃놀이패

“타협은 없다” 용산 압박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국정감사를 마친 민주당이 입법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이 중에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도 있다. 타협의 여지가 적은 법안을 다시 국회에 올리면서 용산 압박에 나서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11월 정국에 접어든 민주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기 위한 몸풀기에 나섰다.

지난 11일 치러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 정치판 지각에 변동이 생겼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보궐선거서 두 자릿수 차이로 패배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한껏 몸을 낮췄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부각하는 전략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기도 하다.

신사협정
실효성은?

선거 다음 날인 지난 12일 “선거 결과를 엄중하게 받아들인다”는 대통령실 입장이 나왔다. 다음 날에는 “선거 결과서 교훈을 찾아 차분하고 지혜롭게 변화를 추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보선 관련 언급이 전해졌다.

이 밖에도 용산 대통령실서 참모진과 회의하며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 된다” 등 ‘민생’과 ‘소통’을 화두로 한 메시지를 꾸준히 내놨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국정운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도 제시됐다. 국민의힘 역시 “민생 해결을 위해 협치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논의하자”는 기조를 내세웠다.


민주당도 발맞춰 ‘민생 최우선’이라는 변화를 선언했다. 지난 23일 단식 치료를 마치고 국회로 복귀한 이 대표는 “시급한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회 회의장서 서로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잠잠해질 전망이다. 여야가 회의장서의 피켓 소지 및 부착 행위, 고성이나 야유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합의를 보면서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국회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전날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와 만나 국회 회의장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말했다. 여야가 지나치게 정쟁에 매몰됐다는 지적을 개선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과거에는 여야 의견이 서로 달라도 회의장을 나가면 의원들끼리 안부 정도는 묻는 분위기였는데, 21대 국회에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날카로운 분위기가 조금은 누그러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홍 원내대표도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대통령 시정연설, 여야 교섭단체 대표연설 시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들이 별도의 발언, 말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가 일종의 ‘신사협정’을 제안했고 여야가 이에 대해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여야 협치 유효기간 11월?
거부권 꺼내면 또 ‘전쟁’

국민의힘이 의대 정원 확대를 띄우고 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인 것 역시 차갑게 식어가는 민심을 의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의료계 현안을 통해 각자 이득을 보려는 ‘동상이몽’을 꾀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례적으로 합을 맞추는 만큼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는 평도 나온다.


하지만 양당의 화합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의견에 힘이 실린다. 11월 본회의를 앞두고 의석수를 등에 업은 야당이 입법을 강행하고, 여당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서 갈등이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11월 국회가 민주당 ‘꽃놀이패’로 가득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만큼 여야 대립이 극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대두되는 쟁점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간호법 제정안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야당이 단독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심의·의결 절차를 진행하고 이를 재가했다. 양곡관리법은 쌀이 수요 대비 3~5% 이상 더 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해당 법안을 두고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 반할뿐더러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양곡관리법과 관련한 여러 개정안이 발의된 만큼 11월 정기국회서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는 야당이 발의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은 총 14건이다.

개정안은 양곡의 시장가격이 기준가격이나 목표가격 이하로 하락할 경우 그 차액을 지원하는 ‘목표가격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국정감사에서도 농민 소득안정을 위해서는 농산물 가격안정제가 중심이 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후속 입법안’ 통과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거부권만
만지작∼

민주당은 개정안을 법안심사소위서 한데 모아 종합한다는 방침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농민의 의견을 진솔하게 담고, 정부 입장도 가능하면 수용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현재로서는 개정안이 받아들여질지 예단하기는 어려운 부분”이라며 “정부가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톤다운을 시킨 것”이라고 답했다.

두 번째 쟁점인 간호법 제정안은 발의 전인 논의 단계지만 민주당에서는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관측된다.

새롭게 발의될 간호법 제정안은 조항 내 갈등의 소지가 있는 문구를 수정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법 제1조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이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지역사회’ 단어를 두고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한다”고 반발해왔다.

이에 민주당은 문구 수정을 통해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일종의 바운더리를 설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조항도 수정 대상이다. 기존법 5조에는 간호조무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을 ‘간호 특성화고 졸업자’ 또는 ‘고교 졸업자로 간호학원을 수료한 자’로 명시했는데, 이는 학력 상한을 고교 졸업으로 뒀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교 졸업자’는 ‘고교 이상 졸업자’로 수정될 전망이다.

다만 수정된 간호법 역시 통과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실이 ‘의료’서 간호 분야를 분리하는 법안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때 의료계 파업까지 몰고 온 사안인 만큼 국민의힘 역시 “충분히 숙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야당의 단독 처리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정부·여당에 정치적 부담을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두 법안을 재추진했다고 해석했다. 간호사와 농민 등 집단 표심을 공략하는 한편, 정부·여당을 향해서는 ‘불통’ 이미지를 덧씌우는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깎고
또 깎는다

만일 윤 대통령이 또다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연일 강조해온 ‘민생’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정의당 등 야당이 추진해온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역시 정부·여당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여겨진다. 민주당이 다음 달 9일, 국회 본회의서 두 법안을 상정해 처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갈등이 재점화될 가능성이 크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은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를 골자로 한다.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사용자로 보게끔 하는 것이다.

즉, 사용자 범위는 확대하면서 노조 관련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게 이번 개정안의 핵심이다.

방송 3법은 한국방송(KBS)·문화방송(MBC)·교육방송(EBS) 등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편함으로써 정치권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함이다. 공영방송 이사를 현행 9명 또는 11명서 21명으로 늘릴 수 있다. 이 밖에도 국회, 학회, 시청자위원회, 언론단체의 추천을 받는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변경도 포함된다.

앞서 두 법안은 정부·여당의 반대 속 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를 거치지 않은 채 본회의에 직회부됐다. 국회법 86조에 따르면 법안이 법사위에 이유 없이 계류된 지 60일 이상 지나면 소관 상임위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본회의 부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법안이 직회부 요건을 충족했다”라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반면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은 “개정안을 정상적으로 심사하고 있었으므로 이유 없는 계류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결국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법률안 심의 표결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4~5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두 법안에 관해 권한쟁의심판 청구와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다만 지난 26일 헌재가 두 건의 권한쟁의심판서 무효확인 청구와 권한 침해 확인 청구를 전부 기각하면서 “입법절차는 무효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국회법 86조 등 국회법상 절차를 준수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탄력을 받은 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힘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생부터 예산까지 꽉
리스크 구석구석 공략

다음 달 예정된 예산 국회서 민주당은 ‘민생 예산’ 증액 추진을 위한 송곳 심사도 벼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잼버리 파행의 책임을 새만금에 물어 전북도 예산을 삭감하고, 연구·개발(R&D) 투자금을 대폭 줄인 것이 주요 뇌관이 될 전망이다.

지난 24일, 전북도에 대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잼버리 파행과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삭감 책임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잼버리가 잘되면 내 덕, 안 되면 남 탓이냐”며 “조직위에 전북 출신 공무원 75%가 파견 갔는데 공무원을 감시·감독 못한 도지사의 무능이고 무책임”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예산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전북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정부 역시 새만금 (기본)설계서 재수립을 이유로 (기본)계획을 무력화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쟁점의 여지가 있는 부분은 명확하게 점검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예산을 복원하는 데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천준호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올해까지 부처 예산을 100% 반영했던 예산안을 내년도에 갑자기 5000억원이나 삭감해 22%만 반영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맞느냐”며 ‘보복성 삭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은 “대통령 모욕”이라고 소리를 높이는 등 고성이 오갔다. 국민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한 신사협정 약속이 일주일도 가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또 다른 쟁점으로 꼽히는 R&D 예산은 31조1000억원서 16.6% 삭감한 25조9152억원으로 책정됐다. 삭감 폭이 큰 분야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과 정보통신기술 연구·개발(ICT R&D) 지원 사업 등이다. 비효율적이고 낭비성인 요인은 정비하고, 인공지능과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대한 R&D는 늘렸다는 게 정부 측의 설명이다.

반면 대통령의 해외순방 비용이 증가한 것을 두고 민주당은 강하게 질책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서 “R&D 예산도 깎고 일자리 예산도 깎고 골목상권 살리는 지역상품권 예산도 깎았는데, 해외순방 가는 대통령 예산만 늘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 역시 “외국에 나가서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5000만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어려운 삶을 제대로 챙겨보길 권유드린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R&D 예산을 비롯한 청년 일자리나 소상공인 지원예산 등 정부와 반대되는 행보를 강조하며 증액 검토에 나설 전망이다. 이는 총선을 앞둔 시점서 2030세대의 민심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민주당은 잠잠하던 ‘김건희 특검법’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지난 24일,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던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것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지막
치명타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에게 치명적인 리스크 중 하나를 재점화해 총선까지 압박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의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장모가 구속된 만큼 김 여사 특검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세를 몰아 민주당 의원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지역 주민과의 스킨십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총선을 앞두고 골고루 뿌려 놓은 민심이 표가 되어 돌아올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화합과 파열 사이

화합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던 더불어민주당서 파열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당이 단합과 통합을 해야 한다”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가 무색할 만큼 매일같이 친·비명계가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다.

친명(친 이재명)계가 계속해서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의 징계를 요구하자 일부 비명계는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부결하자는 호소는 선동인 ‘해당 행위’”라고 맞불을 놨다.

여기에 비명계를 향한 ‘개딸’의 수위 높은 발언이 이어지면서 갈등의 골이 또다시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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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