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 노총 회계 공시 수용의 이면

정부가 이겼다? 칼 가는 노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백기 투항인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가? 양대 노총이 윤석열정부의 노동개혁 정책에 호응했다.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무게추가 정부 쪽으로 기울면서 노동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어느 정부서나 노동 관련 정책은 조심스럽게 진행된다. 전 국민의 관심과 양대 노총으로 불리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의 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

개혁 첫걸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3대 개혁에 달렸다는 취지다. 특히 노동개혁을 첫손에 꼽으면서 ▲노사 및 노‧노 관계 공정성 확립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사 법치주의 등을 과제로 밝혔다. 그러면서 노조와 강 대 강 대치를 기조로 삼았다. 

먼저 칼을 들이댄 곳은 노조의 회계 시스템이다. 앞서 윤정부는 지난해 12월 노조의 재정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조 재정이 투명하게 관리되고 공개되는지에 국민 불신이 커지고 있고 ‘깜깜이 회계’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이는 노조가 그간 기업에 투명성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기 통제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는 조합원 1000명 이상인 대규모 노조와 상급단체 253곳에 노동조합법상 비치 의무가 있는 서류를 사무실에 비치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법에 따르면 각 노조는 사무실에 조합원 명부와 규약, 임원의 성명 및 주소록, 최근 3년 치 회의록과 재정과 관련한 장부, 서류를 둬야 한다. 응하지 않을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현행법에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노조의 재정에 정부가 칼을 들이댄 적은 없었다. 윤정부가 사실상 처음인 셈이다. 당연하게도 노조의 반발이 뒤따랐다. 양대노총 등은 ‘노조 탄압’이라면서 정부와 맞섰다. 윤정부가 회계공시를 빌미로 노조 길들이기에 나섰다며 회계 공시를 거부했다.

기나긴 줄다리기 
정부 쪽으로 무게

지난 2월 양대 노총은 공동 기자회견서 “노조를 기득권 세력으로 몰고 범죄 집단화하는 공작과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MZ세대를 주축으로 구성된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이하 새로고침)는 “왜 큰 이슈가 되는지 모르겠다. 투명한 회계 공개는 당연하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는 점이다. 

양대 노총과 새로고침은 규모와 영향력서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노조를 바라보는 국민 인식이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는 상황서 MZ세대로 불리는 젊은 노동자가 양대 노총과 다른 목소리를 낸 점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정부와 노조 모두 밀고 밀리는 대치를 계속하다가 한국노총이 먼저 회계 공시 수용 의사를 밝혔다.

한국노총은 지난 23일 “개정 노조법 및 소득세법 시행령에 따른 노조 회계공시 시스템에 회계 결산 결과를 등록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하 노조 조합원이 세액공제 과정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배경도 언급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노조법 시행령과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노조가 회계를 공시하지 않으면 연말정산 시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 노조 조합비는 지정기부금으로 분류돼 15%의 공제율로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예를 들어 조합비가 월 3만원이라면 연 36만원에 대해 5만4000원(36만원의 15%)의 세금을 돌려받는 구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일부터 시행 중인 개정 노조법 시행령은 노조가 ‘노조 회계 공시 시스템’에 결산 결과를 공표해야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시 대상은 조합원 수 1000명 이상인 노조와 산하 조직이다.

산하 노조가 회계를 공시한다고 해도 상급 단체인 양대 노총이 하지 않으면 해당 산하 노조도 함께 세액공제 혜택이 박탈된다.

결국 민주노총도 수용 의사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지난 24일 “민주노총 방침과 결정에 따라 투쟁해온 조합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함”이라면서 회계 공시 수용을 시사했다. 양대노총이 정부 정책에 따라 기존 입장서 한 발자국씩 물러선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세액공제에 백기 들어
근로시간으로 2차전?

여당인 국민의힘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노조 회계 공시 의무화 방침에 따르겠다는 민주노총의 결단을 환영한다”며 “노조원이 매달 월급서 쪼개 낸 조합비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노조는 연간 수천억원을 깜깜이로 회계처리해 횡령‧비리 사건 등에 연루되며 국민 신뢰를 잃었다”면서 “정부의 단호하고 원칙 있는 대응으로 노동개혁이 첫걸음을 내딛게 됐으며 양대 노총은 노동계의 낡은 관행서 탈피할 계기를 맞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윤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양대 노총 등 노조의 저항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노조 조합원의 불이익 방지를 위해 일시적으로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대정부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상태다.

회계 공시 수용이 정부와 노동계의 화해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노총은 헌법소원을 낸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회계 공시 제도 도입 과정서 시행령을 고쳤다. 이때 상위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소득세법)에 노조 회계 공시 관련 대목이 없는데도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사항을 정부가 시행령으로 사실상 강제하는 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 양대 노총이 회계를 공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산하노조까지 세액공제를 박탈당하는 것은 ‘연좌제’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노총 역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맞섰다. 세액공제와 무관한 운영자료 등 노조 활동에 대한 개입과 간섭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봉우리 하나를 넘었다곤 해도 윤정부 앞에 놓인 노동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과 맞물려 윤정부의 노동개혁이 속도 조절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근로시간 제도 개편과 관련해서는 노동계의 반발 수위가 매우 높아 윤정부가 주춤한 상태다. 

일시적 후퇴?

지난 3월 정부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월이나 분기 등 단위로 유연화하는 개편안을 제시했다. 이 과정서 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발이 커졌다. 결국 윤 대통령은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정부는 설문조사와 집단 심층면접을 진행하는 등 실태 조사에 나섰고 다음 달 초, 분석 결과와 함께 보완 방향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소강상태에 접어든 양대노총과 정부의 대결구도가 전면전으로 치달을 불씨가 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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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