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깔린’ 윤석열 한가위 플랜

‘민심·표심’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번 추석 연휴는 예년보다 길다. 그동안 왕래가 없던 친인척끼리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명절 대화 주제 중 빠질 수 없는 내용은 바로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뿌린 만큼 민심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 추석을 맞아 민심잡기에 나선 것이다. 관건은 이 시기에 쌓아둔 민심을 깎아 먹지 않고 총선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다. ‘빈손 외교’부터 개각 인사 논란까지 지지율이 아슬아슬하다는 평이 나온다.

총선 위한
시나리오

최근 추석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 지난 13일 단행된 개각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장관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과 ‘MB정권 돌려막기’ 비판이 재조명되면서 대통령실의 인사풀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를 내정했다. 논란의 중심이 된 부처를 대상으로 개각을 진행한 탓일까? 인사청문회가 가닥 잡히기 전부터 후보를 향한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신 후보는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이완용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두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지명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유 후보의 경우 2008년 이명박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 재임 시절 욕설 논란 등 부적절한 언행이 지적됐다.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휩싸이면서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투트랙 장악을 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마지막으로 김 후보는 주식을 제3자에게 맡겨놓은 이른바 ‘주식 파킹’ 의혹을 받으면서 국민의 비판을 샀다. 백지신탁 이후 본인과 배우자의 지분이 단 1%도 없었다는 해명과 달리 ‘소셜뉴스’의 지분 25.8%를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특히 백지신탁 이행을 위해 김 후보 배우자의 지분을 떠안았다던 시누이의 지분이 이 시기 12.82%서 1.1%로 줄어 주식 파킹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다.

세 인물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자 민주당은 “부적격이 후보 자격의 기준이 된 것 같다”며 수위 공세를 높였다.

개각이 진행될 때마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에 타격을 입었다. 내달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차기 총선이 남은 현시점서 벌써부터 민심이 위태롭다는 평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연말 동선은 지지율은 물론, 총선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힘 안팎을 둘러싼 인물의 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우선 국민의힘은 중도층 민심을 끌어오기 위한 인재 영입에 나섰다. 지난 20일 조광한 전 남양주 시장, 김현준 전 국세청장, 고기철 전 제주도 경찰청장, 박영춘 전 SK 부사장, KBS 코미디언 출신의 유튜버 김영민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들은 보수·여당의 험지에 뿌리를 둔 인사들로 분류된다. 친노(친 노무현)계 전직 지자체장을 비롯한 문재인정부 고위공직자 출신을 등에 업은 것이다.


개각 이후 고꾸라진 여론
총선 후보와 PK로 고삐 꽉

국민의힘은 민주당 위성정당을 통해 여의도에 입성한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와 합당도 추진 중이다. 총선 전략으로 ‘험지’ ‘외연확장’에 방점을 찍었다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의 시선이다.

총선에 대비한 장관 교체 역시 주목할만한 시나리오다. 현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총선 출마 후보로 거론된다.

공직자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일 90일 전에 공직서 사퇴해야 한다. 12월 전후로 3~4개의 부처를 대상으로 추가 장관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대거 인사이동이 예상되는 만큼 추석 이후 총선 출마 후보와 차기 장관 후보를 동시에 관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원 장관과 한 장관은 언론 노출이 잦은 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에게도 여러 차례 눈도장을 찍은 인물이다. 이 같은 ‘스타 장관’이 무당층을 타깃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끌어낸다면 국정 이미지 쇄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현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지표다. 현재로서는 싸늘해진 PK(부산·경남) 민심과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가 대두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보수 텃밭인 PK와 TK(대구·경북)가 지지율의 쌍두마차가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최근 PK 세력이 약해지면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이하 엑스포) 등 정책 이슈 관련 체감도는 낮은 반면,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롯한 안전 문제와 외교 민감도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유엔총회 참석 순방은 엑스포와 외교·안보를 동시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꼽힌다. 앞서 지난 5일 진행된 ‘데이비드 캠프’서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의 국익에 도움만 주고 정작 우리는 받아온 게 거의 없다는 혹평이 나와서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은 미국 뉴욕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각국 정상을 만나 나라별 맞춤형 협력과 엑스포의 비전을 설명하며 지지를 요청했다.

기죽은
민주당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순방은 오염수 방류라던가, 일본에게 이익을 주면서까지 우리가 얻는 건 단 한 개도 없었다”며 “이번에도 빈손으로 귀국한다면 그야말로 처참한 외교 참사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번 외교를 통해 국익이 눈에 띄게 부각된다면 그만큼 추석 민심에도 톡톡히 반영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민의힘은 추석 전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띄우면서 정부·여당 지지율 상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밖에도 ‘문정부 통계 조작’과 ‘대선 공작 게이트’ 등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섰다.


앞서 이 대표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지난 9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어떻게든 비회기를 건너뛰고 추석 밥상에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이슈를 올리겠다는 정치 검찰의 추악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지난 19일 오전 윤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국회에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보냈다. 단식투쟁에 나선 이 대표가 건강 악화 탓에 병원으로 이송된 직후였다. 체포동의안 당론을 두고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당에 분열이 생기면 지지율 역시 함께 타격을 입는 만큼 국민의힘 입장으로서는 1타2피인 셈이다.

비명계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주장해왔다. 체포동의안 부결 시 ‘방탄 국회’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직접 의원들에게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만일 가결이 돼도 반란표가 아닌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정당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친명계는 단식투쟁을 이유로 동정론을 호소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을 중심으로 체포동의안 부결 의원에 대한 ‘색출론’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체포동의안 가결을 압박했던 바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민주당은 국민이 던지는 싸늘한 눈길을 염두에 두고 체포동의안 표결에 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결국 부결도, 가결도 민주당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안 쳐내기에 급급한 민주당이 추석 민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침몰하는
김기현호?

결국 지난 21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당분간 민주당은 당내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표결 결과 재석 의원 295명 중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로 과반을 채우면서 최종 가결됐다. 무효는 4표였다.

게다가 최근 문정부 통계 조작과 대선 공작 게이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생긴 ‘조작을 일삼는 야당’ 프레임 역시 부담으로 작용된다.

지난 15일 감사원은 문정부가 당시 집값, 소득, 고용 등 주요 국가통계를 작성·활용하는 과정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 통계청 등을 압박해 수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대선 공작 게이트는 <뉴스타파>가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3월6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제공한 김만배씨와의 인터뷰 녹음파일 편집본을 보도한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2과장이던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당시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의 수사를 덮었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검찰은 해당 언론사가 허위 인터뷰를 하고 그 대가로 신 전 위원장에게 1억65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건에 관해 국민의힘에서는 “대선과 부동산을 조작해 국민을 속인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기현 대표는 통계 조작과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을 동시에 겨냥해 “조작된 뉴스와 허위 사실에 기초한 주장을 원칙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김건희 여사 특검과 이 대표 수사 등 여야 모두 인물 위주의 현안을 추석 밥상에 올렸다. 다만 이번에는 이 대표 개인이 아닌 민주당 자체를 타겟으로 올린 만큼 ‘민주당 심판론’에 불을 지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으레 국민은 명절마다 모여 현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물가, 경제 등 정권 심판 발언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슈성이 강한 이 대표의 단식과 체포동의안 등 야당의 부정적인 면이 더욱 돋보이는 형국이다.

이 리스크에 치고 나가는 윤?
엇박자 타는 김기현의 무리수

추석에 쏠린 민심이 연말까지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여당에 손발이 맞아야 안정적인 지지율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단편적인 메시지 하나에도 민심이 흔들리는 만큼 ‘일심동체’ 같은 국정 수행 능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최근 김 대표 리더십 위기설에 연기가 오르면서 정부·여당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먼저 비대위 체제로 돌아설 것이란 해석이 나오면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를 내보낸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예스맨’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그 인물이 김 대표인데, 막상 앉혀놓고 보니 용산에 납작 엎드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추석 이후 강서구청장 당선 여부에 따라 당 대표직 존폐가 갈리지 않겠느냐”며 국민의힘 체제 변화를 귀띔했다.

최근 김 대표의 거친 발언이 이어지는 것 역시 용산을 향한 ‘세레나데’라는 평이다. 김 대표는 지난 대선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을 ‘국가반역죄’와 ‘1급 살인죄’에 비유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한 자우림 멤버 김윤아씨를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대선주자가 아닌 김 대표가 존재감과 역할 부문서 한계를 느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른바 ‘쌈닭’ 같은 말과 행동이 일종의 생존 방식이라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생존 방식이 오히려 시한부 정치 인생을 앞당겼다고 평가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을 향한 거친 발언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사이다일지는 몰라도 무당층에는 되레 반감을 사게 하는 자충수라는 설명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애초에 김 대표는 거친 발언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 억지로 내뱉다 보니 국민이 봤을 때 오히려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며 “요즘 들어 용산과 ‘쿵짝’이 잘 안 맞는 모양”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 대표 체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총선 승리다. 이번 총선서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국정 동력은 물론 지지율까지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 책임은 오롯이 당 대표가 떠안게 된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지도부를 물색해 총선 전 이미지를 쇄신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뿌린 만큼
거둘라나?

일부 정치권 관계자는 오히려 추석 밥상에 정치 이야기가 오가지 않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가족이 모인 자리서 서로 얼굴을 붉히느니 애초부터 정치 성향을 드러낼만한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추석 민심 선점을 위해 저마다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는 없다. 총선이 다가오는 만큼 한 표가 소중한 때다. 상대방의 약점을 터뜨리고 내 것은 감추기 위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사님의 조용한 추석 내조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는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 등 ‘쪽방촌’ 어르신들을 찾고 다음 날인 14일에는 부산 기장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안전한 수산물’ 홍보 등 추석 민심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추석을 앞두고 광폭 행보를 보이는 김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길에도 동행했다.

김 여사는 ‘한가위 인 뉴욕’ 행사에 참석해 “해양도시 부산은 한국 경제의 탯줄이었고, 우리 경제의 어머니와 같은 도시”라며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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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