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깔린’ 윤석열 한가위 플랜

‘민심·표심’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번 추석 연휴는 예년보다 길다. 그동안 왕래가 없던 친인척끼리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명절 대화 주제 중 빠질 수 없는 내용은 바로 정치다.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을 앞두고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뿌린 만큼 민심을 거둘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가 눈에 띄게 잦아졌다. 추석을 맞아 민심잡기에 나선 것이다. 관건은 이 시기에 쌓아둔 민심을 깎아 먹지 않고 총선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다. ‘빈손 외교’부터 개각 인사 논란까지 지지율이 아슬아슬하다는 평이 나온다.

총선 위한
시나리오

최근 추석을 앞두고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 지난 13일 단행된 개각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장관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과 ‘MB정권 돌려막기’ 비판이 재조명되면서 대통령실의 인사풀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를 내정했다. 논란의 중심이 된 부처를 대상으로 개각을 진행한 탓일까? 인사청문회가 가닥 잡히기 전부터 후보를 향한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신 후보는 ‘을사늑약’을 체결했던 이완용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두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며 지명 철회를 강하게 요구했다.


유 후보의 경우 2008년 이명박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 재임 시절 욕설 논란 등 부적절한 언행이 지적됐다.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 휩싸이면서 이동관 방통위원장과 투트랙 장악을 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마지막으로 김 후보는 주식을 제3자에게 맡겨놓은 이른바 ‘주식 파킹’ 의혹을 받으면서 국민의 비판을 샀다. 백지신탁 이후 본인과 배우자의 지분이 단 1%도 없었다는 해명과 달리 ‘소셜뉴스’의 지분 25.8%를 확보했던 것으로 전해지면서다.

특히 백지신탁 이행을 위해 김 후보 배우자의 지분을 떠안았다던 시누이의 지분이 이 시기 12.82%서 1.1%로 줄어 주식 파킹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은 현재진행형이다.

세 인물의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자 민주당은 “부적격이 후보 자격의 기준이 된 것 같다”며 수위 공세를 높였다.

개각이 진행될 때마다 윤 대통령은 지지율에 타격을 입었다. 내달 11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차기 총선이 남은 현시점서 벌써부터 민심이 위태롭다는 평이 나온다. 윤 대통령의 연말 동선은 지지율은 물론, 총선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힘 안팎을 둘러싼 인물의 입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우선 국민의힘은 중도층 민심을 끌어오기 위한 인재 영입에 나섰다. 지난 20일 조광한 전 남양주 시장, 김현준 전 국세청장, 고기철 전 제주도 경찰청장, 박영춘 전 SK 부사장, KBS 코미디언 출신의 유튜버 김영민 대표가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들은 보수·여당의 험지에 뿌리를 둔 인사들로 분류된다. 친노(친 노무현)계 전직 지자체장을 비롯한 문재인정부 고위공직자 출신을 등에 업은 것이다.


개각 이후 고꾸라진 여론
총선 후보와 PK로 고삐 꽉

국민의힘은 민주당 위성정당을 통해 여의도에 입성한 시대전환 조정훈 대표와 합당도 추진 중이다. 총선 전략으로 ‘험지’ ‘외연확장’에 방점을 찍었다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의 시선이다.

총선에 대비한 장관 교체 역시 주목할만한 시나리오다. 현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박진 외교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총선 출마 후보로 거론된다.

공직자가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일 90일 전에 공직서 사퇴해야 한다. 12월 전후로 3~4개의 부처를 대상으로 추가 장관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대거 인사이동이 예상되는 만큼 추석 이후 총선 출마 후보와 차기 장관 후보를 동시에 관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원 장관과 한 장관은 언론 노출이 잦은 만큼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에게도 여러 차례 눈도장을 찍은 인물이다. 이 같은 ‘스타 장관’이 무당층을 타깃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이끌어낸다면 국정 이미지 쇄신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장 눈앞에 놓인 현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지표다. 현재로서는 싸늘해진 PK(부산·경남) 민심과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가 대두되고 있다.

정부·여당은 보수 텃밭인 PK와 TK(대구·경북)가 지지율의 쌍두마차가 되길 기대한다. 하지만 최근 PK 세력이 약해지면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2030 부산 세계박람회(이하 엑스포) 등 정책 이슈 관련 체감도는 낮은 반면, 후쿠시마 오염수를 비롯한 안전 문제와 외교 민감도는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유엔총회 참석 순방은 엑스포와 외교·안보를 동시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로 꼽힌다. 앞서 지난 5일 진행된 ‘데이비드 캠프’서 윤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의 국익에 도움만 주고 정작 우리는 받아온 게 거의 없다는 혹평이 나와서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은 미국 뉴욕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각국 정상을 만나 나라별 맞춤형 협력과 엑스포의 비전을 설명하며 지지를 요청했다.

기죽은
민주당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순방은 오염수 방류라던가, 일본에게 이익을 주면서까지 우리가 얻는 건 단 한 개도 없었다”며 “이번에도 빈손으로 귀국한다면 그야말로 처참한 외교 참사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번 외교를 통해 국익이 눈에 띄게 부각된다면 그만큼 추석 민심에도 톡톡히 반영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국민의힘은 추석 전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을 띄우면서 정부·여당 지지율 상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밖에도 ‘문정부 통계 조작’과 ‘대선 공작 게이트’ 등을 추석 밥상에 올리면서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섰다.


앞서 이 대표는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지난 9일과 12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어떻게든 비회기를 건너뛰고 추석 밥상에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이슈를 올리겠다는 정치 검찰의 추악한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지난 19일 오전 윤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국회에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보냈다. 단식투쟁에 나선 이 대표가 건강 악화 탓에 병원으로 이송된 직후였다. 체포동의안 당론을 두고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가 팽팽하게 맞붙었다.

당에 분열이 생기면 지지율 역시 함께 타격을 입는 만큼 국민의힘 입장으로서는 1타2피인 셈이다.

비명계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주장해왔다. 체포동의안 부결 시 ‘방탄 국회’ 논란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직접 의원들에게 가결을 요청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만일 가결이 돼도 반란표가 아닌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정당이 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친명계는 단식투쟁을 이유로 동정론을 호소하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을 중심으로 체포동의안 부결 의원에 대한 ‘색출론’도 확산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체포동의안 가결을 압박했던 바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민주당은 국민이 던지는 싸늘한 눈길을 염두에 두고 체포동의안 표결에 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결국 부결도, 가결도 민주당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안 쳐내기에 급급한 민주당이 추석 민심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침몰하는
김기현호?

결국 지난 21일,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당분간 민주당은 당내 혼란을 수습하는 데 주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표결 결과 재석 의원 295명 중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로 과반을 채우면서 최종 가결됐다. 무효는 4표였다.

게다가 최근 문정부 통계 조작과 대선 공작 게이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생긴 ‘조작을 일삼는 야당’ 프레임 역시 부담으로 작용된다.

지난 15일 감사원은 문정부가 당시 집값, 소득, 고용 등 주요 국가통계를 작성·활용하는 과정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 통계청 등을 압박해 수치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대선 공작 게이트는 <뉴스타파>가 대선 사흘 전인 지난해 3월6일,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제공한 김만배씨와의 인터뷰 녹음파일 편집본을 보도한 것을 말한다. 윤 대통령이 대검 중수2과장이던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당시 박영수 변호사를 통해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의 수사를 덮었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검찰은 해당 언론사가 허위 인터뷰를 하고 그 대가로 신 전 위원장에게 1억65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건에 관해 국민의힘에서는 “대선과 부동산을 조작해 국민을 속인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기현 대표는 통계 조작과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을 동시에 겨냥해 “조작된 뉴스와 허위 사실에 기초한 주장을 원칙적으로 퇴출시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지난해 추석에는 김건희 여사 특검과 이 대표 수사 등 여야 모두 인물 위주의 현안을 추석 밥상에 올렸다. 다만 이번에는 이 대표 개인이 아닌 민주당 자체를 타겟으로 올린 만큼 ‘민주당 심판론’에 불을 지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으레 국민은 명절마다 모여 현 대통령에 관한 평가와 물가, 경제 등 정권 심판 발언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슈성이 강한 이 대표의 단식과 체포동의안 등 야당의 부정적인 면이 더욱 돋보이는 형국이다.

이 리스크에 치고 나가는 윤?
엇박자 타는 김기현의 무리수

추석에 쏠린 민심이 연말까지 이어질지 확신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여당에 손발이 맞아야 안정적인 지지율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 입에서 나오는 단편적인 메시지 하나에도 민심이 흔들리는 만큼 ‘일심동체’ 같은 국정 수행 능력이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최근 김 대표 리더십 위기설에 연기가 오르면서 정부·여당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먼저 비대위 체제로 돌아설 것이란 해석이 나오면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준석 전 대표를 내보낸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예스맨’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그 인물이 김 대표인데, 막상 앉혀놓고 보니 용산에 납작 엎드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추석 이후 강서구청장 당선 여부에 따라 당 대표직 존폐가 갈리지 않겠느냐”며 국민의힘 체제 변화를 귀띔했다.

최근 김 대표의 거친 발언이 이어지는 것 역시 용산을 향한 ‘세레나데’라는 평이다. 김 대표는 지난 대선 ‘김만배-신학림 허위 인터뷰’ 의혹을 ‘국가반역죄’와 ‘1급 살인죄’에 비유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비판한 자우림 멤버 김윤아씨를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대선주자가 아닌 김 대표가 존재감과 역할 부문서 한계를 느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른바 ‘쌈닭’ 같은 말과 행동이 일종의 생존 방식이라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생존 방식이 오히려 시한부 정치 인생을 앞당겼다고 평가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을 향한 거친 발언이 강성 지지자들에게 사이다일지는 몰라도 무당층에는 되레 반감을 사게 하는 자충수라는 설명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애초에 김 대표는 거친 발언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 억지로 내뱉다 보니 국민이 봤을 때 오히려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며 “요즘 들어 용산과 ‘쿵짝’이 잘 안 맞는 모양”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 대표 체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총선 승리다. 이번 총선서 국민의힘이 패배한다면 국정 동력은 물론 지지율까지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 책임은 오롯이 당 대표가 떠안게 된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지도부를 물색해 총선 전 이미지를 쇄신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뿌린 만큼
거둘라나?

일부 정치권 관계자는 오히려 추석 밥상에 정치 이야기가 오가지 않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가족이 모인 자리서 서로 얼굴을 붉히느니 애초부터 정치 성향을 드러낼만한 대화의 물꼬를 트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추석 민심 선점을 위해 저마다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도 예외는 없다. 총선이 다가오는 만큼 한 표가 소중한 때다. 상대방의 약점을 터뜨리고 내 것은 감추기 위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사님의 조용한 추석 내조

지난 13일 김건희 여사는 6·25전쟁 참전 국가유공자 등 ‘쪽방촌’ 어르신들을 찾고 다음 날인 14일에는 부산 기장시장을 찾아 상인을 격려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 ‘안전한 수산물’ 홍보 등 추석 민심잡기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추석을 앞두고 광폭 행보를 보이는 김 여사는 윤석열 대통령 해외순방 길에도 동행했다.

김 여사는 ‘한가위 인 뉴욕’ 행사에 참석해 “해양도시 부산은 한국 경제의 탯줄이었고, 우리 경제의 어머니와 같은 도시”라며 부산 엑스포 유치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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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