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 선거에 목매는 양당 막전막후

자존심 걸린 ‘총선 전초전’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차기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10·11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골머리를 맞대고 있다. 윤석열정부의 중간 성적표로 평가되는 만큼 차기 대선까지 영향이 끼치는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정권교체, 검찰정부’라며 국민의힘을 겨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대적할 인물을 두고 고심 중이다. 내년 총선서 이기는 쪽은 한숨을돌릴 수 있다. 당장은 보선이 코앞이다.

내달 11일, 여야가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의 광복절 특사 사면 복권으로 다시 한번 맞붙게 됐다. 10·11 보궐선(이하 보선) 선거인 수는 총 50만5034명으로 지난해 4만8000여명서 2000명가량 늘었으며 투입되는 혈세는 무려 40억원에 달한다. 차기 총선을 감안할 때 더불어민주당도, 국민의힘도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선거다. 패배 시 적잖은 타격으로 당이 비상 체제로 돌입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신경전

강서구청장 보선을 두고 양당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민주당은 텃밭을 되찾기 위해, 국민의힘은 바로 직전 구청장이 되돌아오기 위해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들 중 진교훈 전 경찰청 차장을 전략공천했다. 진 전 차장은 정치에 발을 이제 막 들인 신인이다. 

33년 동안 경찰 밥을 먹었던 그는 지난해 6월 차장을 끝으로 퇴임했다. 당초 민주당에는 14명의 인물들이 강서구청장에 나가겠다며 후보로 등록했다. 이후 진 전 차장을 포함한 3명의 예비후보로 추려졌고, 진 전 차장이 최종후보로 결정됐다. 

민주당은 강서구청장 후보 결정까지 공식적인 과정을 거쳤다. 진 전 차장을 전략공천한 배경에는 지지 기반을 다지면서 외연 확장이 가능한 인물로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출마 선언한 지 10일 만에 후보로 낙점됐지만, 지지도나 인지도가 비교적 빠르게 상승했다. 


정치 신인인 만큼 민주당 입장에서는 신선함을 줄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또 강서구서 20년 정도 거주해 지역 주민과도 소통이 가능한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검증된 인물이라며 도덕성에 결함이 없음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재명 대표 역시 “새로운 인재 영입도 필요하다”며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전략공천 이유를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경찰청서 3년 넘게 했던 기획조정과장을 맡았던 이력도 공천에 적잖은 도움이 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획, 예산, 조직, 성과 관리 등을 업무를 담당했던 데다 행정안전부, 국회, 기획재정부 등 국가 업무 이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라디오서 밝힌 그의 강서구청장 도전 이유는 행정가로서 구민들의 삶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입장서 강서구청장 탈환은 절실하다. 진 전 차장 본인은 동의하지 않았으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번 보선은 경찰과 검찰의 대립구도로 설정됐다. 이미 윤석열정부를 두고 민주당은 검찰정부, 검찰 독재로 낙인찍었다. 

이번 강서구청 보선서 민주당은 이를 시험하려는 모양새다. 진 전 차장은 이 대표의 단식 장소서 공천장을 받았다. 

테스트 격 4·10 시험무대
‘강대강’ 양측 저격수 배치

이 대표는 “윤석열정부의 상상을 초월하는 퇴행과 민주주의 파괴를 멈춰 세워야 하는데 강서구청장 선거가 그 전초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존재감을 심어주려는 듯 나란히 앉아 사진도 함께 촬영했다. 


지난 지방선거서 국민의힘 김 전 구청장에게 패배한 이력이 있는 민주당은 전 차장의 낮은 인지도가 약점으로 통한다. 실제로 정치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치 신인으로 일종의 배수진이기도 하다. 

함께 경선을 치렀던 후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당초 민주당은 경선으로 방향을 잡았으나 김 전 구청장이 공천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전략공천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선을 기대하고 있던 예비후보들 입장에선 불만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규의 전 수석부대변인은 “공천 과정서 어제의 정당과 차별성이 없는 정치공학적인 모습으로 일관해 후보와 강서구민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며 “내년 총선도 이런 식으로 가지 않겠냐는 잘못된 시그널마저 주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상황은 국민의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무공천서 후보를 공천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 탓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무공천 기조가 뚜렷했던 바 있지만 막상 선거를 앞두고 김 전 구청장이 광복절 특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차기 총선의 전초전으로 불리는 이번 보선서 패배 시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수도권 위기론이 재점화될 수 있다. 또 대통령 사면권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강서구는 국민의힘에 험지로 분류되는 지역이다. 후보로 누가 나와도 이기기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먼저 후보를 결정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일각에선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김 전 구청장은 지난해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서 국민의힘 소속 후보로 출마해 서울 강서구청장에 당선됐다.

무공천
급선회

그러나 지난 5월18일 공무상비밀누설죄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개월의 유죄를 선고받으면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검찰 공무원 출신인 그는 2018년부터 1년간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원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비밀을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우유근 주러시아 대사 금품수수 의혹 등 비위 첩보와 김상균 철도시설공단 이사장 비위 첩보 등을 알려 최종심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3개월 뒤,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정치적 판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면 복권 이후 김 전 구청장은 기다렸다는 듯 보선 출사표를 던졌다. 예비후보 등록 및 선거사무소 개소식까지 끝냈다. 당시 국민의힘 내부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으나 민주당 후보가 결정된 직후 ‘김태우 공천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여기엔 이른바 해볼만하다는 판단이 깔렸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후보를 내고도 패배한다면 지도부에 책임론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진 전 차장을 전략공천한 이상 민주당 내부의 반발 분위기가 감지되면서 반사이익을 누리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실제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쉽지 않은 선거가 되겠지만, 후보를 내는 게 집권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언급했다. 

현재 국민의힘엔 김 전 구청장을 비롯해 김진선 강서병 당협위원장, 김용성 전 서울시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국민의힘 역시 민주당처럼 공천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복잡한 당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7일,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을 완료하는 한편, 원칙대로 공정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략공천을 암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사실상 광복절 특사 때 사면 복권된 김 전 구청장을 공천하겠다는 기류가 강했다. 

번복에 번복
또다시 혼란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전략공천은 무리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가 이번 보선의 원인 제공 당사자라는 점 때문이었는데, 재차 경선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날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보선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를 구성해 후보자 추천 절차에 돌입했다.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이철규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위원으로는 박성민 의원, 배현진 의원, 강민국 의원, 김선동 서울시당 위원장, 송상헌 홍보본부장 등 5명이다. 

문제는 경선이다. 김 전 구청장이 경선 대상자인지 여부를 두고 내부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 당규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이유 등으로 인한 재·보선이 발생한 경우 해당 선거구의 후보자를 추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김 대표는 “당헌·당규상 보선 원인(제공)에 따른 무공천 사유가 아니다”라며 “이 사안은 김명수 대법원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등’이다. 김 전 구청장이 공직선거법이 아니라 공무상비밀누설죄에 해당해 선거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해당 당규에서는 등이라는 항목이 있는 만큼 공무상비밀누설죄 역시 해당 범주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해석에 따라 김 전 구청장이 경선 대상자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등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인지도 전문가 고심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표 이탈

김 위원장 측 관계자는 “경선 방식을 정한다는 건 맞지 않는 논리다. 보선 유발자를 경선 대상자로 선정한 게 의문”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이 관계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1심, 울산시장 선거 부정 사건 등 개입된 사건이 줄줄이 대기 중”이라며 “당에서는 이 사건이 (국민의힘에)유리하다면 키워야 하는데 오히려 조용하다. 한 후보(김 전 구청장)를 밀어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앞서 김 위원장은 김 전 구청장에게 후보를 한차례 양보한 경험이 있다. 단일화를 통해 김 전 구청장을 도와 선대위원장까지 역임했던 바 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김 위원장은 탈당 후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구청장의 출마 선언과 맞물려 당내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지역 정가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보선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해왔다. 만약 그가 국민의힘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할 경우, 국민의힘 내부의 혼란은 한층 더 가열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에서도 선거를 앞둔 상황서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조직력도 탄탄한 편인 것으로 전해진다. 강서구청장 투표율은 25% 정도로 6만표 정도를 얻을 경우 당선이 가능한데, 김 위원장의 지지 세력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는 인물에게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당도 마찬가지다. 작은 표 차이로 패배한다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이라도 듣지만, 민주당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배하게 되면 수도권 위기론을 현실화하는 꼴이 된다. 

김 위원장은 공관위의 경선 룰 결정 이후 탈당할 가능성도 엿보이는데 이는 경선서 패배했다는 명분을 심어주지 않기 위함으로 읽힌다. 

수도권 명운
졌잘싸 없다

김 위원장 측 관계자는 “지금은 당에서 어떤 말을 해도 믿지 못할 것 같다. 경선이 최종 결정된 뒤, 룰이 불리하다고 여겨지면 탈당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에서 경선 대상에 김 전 구청장을 포함시키는 순간 자가당착에 빠진다. 스스로 논리 모순에 빠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강서구청장 다른 당 후보는?

역대급으로 구청장 선거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를 두고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소수 야당 역시 후보를 내면서 기대감을 모은다. 

정의당에서는 현재 강서구 지역위원장을 맡은 권수정 후보를 냈다.

전주 보궐선거서 당선돼 이목을 끌었던 진보당도 권혜인 전세사기·깡통전세 대책위 공동위원장을 후보로 선정했다.

이 밖에 원내에 진출하지 않은 정당들도 각각 후보를 내면서 강서구청장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녹색당 김유리 후보, 민생당 김영숙 후보, 우리공화당 이명호 후보, 자유통일당 고영일 후보다.

무소속 후보로 등록한 인물은 행정사로 일하고 있는 안성현 후보다. <차>

<기사 속 기사> 강서구 시급한 현안은?

김포공항으로 서울 강서구 전체 면적의 97.3%가 고도 제한을 받고 있다. 

이런 탓에 주민 재산권 행사 및 지역 균형발전에도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2013년 30만명 주민 서명 운동을 통해 2015년 항공법(현 공항시설법)이 개정된 바 있다.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됐지만 국토교통부는 국제민간항공기구 기준 개정 이후에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 중인 터라 7년이 지난 현재도 개정된 법규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차기 강서구청장 역시 이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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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