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건희 오빠’ 공소장 공개

곁가지 수사…알고도 봐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김건희 일가가 연루된 ‘양평 의혹’이 잠잠하다. 김건희 여사의 오빠 김모씨가 불구속 기소되면서 야권의 맹공이 예상됐으나 금방 사그라들었다. 고발 대상서 빠져 있던 걸 보면 더불어민주당도 구체적인 속사정은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검찰의 수사 과정서 불법행위가 드러났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혹에 관해서도 제대로 들여다봤을까? <일요시사>가 입수한 공소장을 보면 석연치 않은 대목이 상당하다. 

김건희 여사의 오빠인 김모씨의 공소장을 보면 그가 행한 불법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문서를 위조해 이득을 취했고 당국이던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상 그의 행태를 눈감아줬다. 2년 가까이 진행된 수사치고는 김씨의 범죄는 ‘대단’하지 않았다. 기소 내용과 혐의 적용 모두 사실상 축소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기소 
축소 의혹

경기 양평군 양평읍 공흥리 일대 2만2411㎡(6779평) 규모의 공흥지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민임대주택 조성을 계획했던 곳이다. 2011년 7월, 양평군 반대로 사업이 좌초되면서 민영 개발로 전환됐다. 같은 해 8월 윤석열 대통령 처가가 소유한 부동산개발회사 ESI&D는 350가구 규모의 민간사업을 제안했다.

양평군은 2012년 11월 도시개발구역 사업을 최종 승인했다. ESI&D는 윤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와 그 자녀들이 지분을 100% 소유한 가족회사다. 이 사업의 실시계획인가 기간 만료일은 2014년 11월이었다. 사업이 점점 미뤄지다가 준공 예정일을 한 달 앞둔 2016년 6월, 양평군은 갑자기 사업기간 변경을 고시한다.

기간 내 사업을 완료하지 못한 사업자에게 공사 중지나 인허가 취소 같은 행정조처가 아닌 특혜를 준 셈이다.


1년 반 넘게 사업기간을 연장해준 건 전문가들도 이례적 케이스라고 분석한다. 특히 ESI&D는 사업기간 연장을 신청한 적도 없다. 양평군이 임의로 사업기간을 2016년 7월로 연장한 뒤 승인을 고시한 것이다.

당시 인허가권자였던 양평군수는 지난해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경선캠프에 참여했던 김선교 전 의원(국민의힘·경기 여주양평)이었다. 윤 대통령은 2013년 4월~2014년 1월 여주·양평·이천을 관할하던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이었다. 둘 사이의 인연이 양평 특혜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던 이유다.

최씨 일가가 공흥지구 일대 임야를 취득하는 과정서 농지법을 위반한 정황도 드러난다. 최씨는 ESI&D 명의로 2006년 12월, 공흥리 일대 임야 1만6550㎡(5006평)와 자기 명의로 공흥리 259번지 등 일대 농지 다섯 필지(2965㎡)를 사들였다.

또 LH가 사업을 포기한 이후인 2011년 9월과 11월에도 인근 농지(46㎡)와 임야(2585㎡)를 추가로 구매했다.

개발부담금 17억서 ‘0원’…이유 언급 없어
양평군청 김씨 로비 가능성 수사 초부터 배제

당시 최씨 등은 양평군에 제출한 농업경영계획서에 “영농 경험이 없지만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고 적은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당시까지 부동산과 요양병원 동업 등 여러 사업을 벌여왔을 뿐, 농업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798억원 규모의 분양 실적을 올렸지만, 개발부담금을 내지 않은 것도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양평군은 2016년 7월 준공 이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개발부담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사업자 측이 이의신청을 냈고, 양평군은 이를 받아들여 매입가 기준으로 부담금을 다시 산정하면서 환수할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양평군은 최초 부과한 개발부담금 액수도, 이의신청 뒤 재산정 근거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최초 부과액이 6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한 시민단체가 제기된 의혹을 종합해 2021년 최씨와 김 전 의원 등을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경기 양평경찰서는 양평군청으로부터 공흥지구 개발사업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하면서 입건 전 조사(내사)했다가 상급기관인 경기남부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직접 1년6개월가량 수사했다.

사건을 송치받은 수원지검 여주지청 형사부(부장검사 이정화)는 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의 혐의로 김씨 등 ESI&D 관계자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수사 결과 양평군이 ESI&D가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2016년 11월 17억4800여만원의 개발부담금을 부과했다가 두 차례의 이의신청을 받은 뒤, 2017년 6월 개발부담금을 부과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후 제20대 대선을 앞둔 2021년 의혹이 불거지자 같은 해 11월 뒤늦게 개발부담금 1억8700여만원을 정정 부과했다.

이해 힘든
행정 조처

검찰은 이들이 위조된 문서를 행사해 공무원의 직무 집행을 방해한 것으로 보고,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혐의도 추가로 적용했다. 다만 시민단체가 고발했던 김 전 의원과 최씨, 김 여사 등은 경찰 수사 단계서 무혐의 처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최씨와 김 전 의원이 송치된 바 없다. 특히 경찰 수사 단계서 최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씨의 무혐의가 경찰의 판단 오류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씨가 성남시를 상대로 낸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행정소송과 비교해보면 재판부의 판단과 대조적이다. 수원지법은 최씨가 공흥지구 사업 초기부터 2014년 11월 회사 대표 자리를 김씨에게 넘긴 뒤에도 ESI&D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경찰이 판단한 최씨의 무혐의 근거는 혐의 기간 ESI&D 대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발부담금 문제는 2016년과 2017년에 발생했고, 최씨는 그전에 김씨에게 대표이사 자리를 물려줘 직접적으로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최씨가 성남시를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문에는 최씨가 2014년 11월 대표직을 물러난 이후에도 ESI&D를 ‘지배’해 회사자금을 실질적으로 운용했다고 나와 있다. 이는 성남시가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에 과징금 27억3000여만원을 부과하자 최씨가 취소해달라며 낸 행정소송이었다. 원고 최씨의 청구는 기각됐다.

수사기관 판단
법원과 평행선

해당 소송서 법원은 최씨가 대표직을 아들에게 물려준 후에도 지속적으로 ESI&D를 지배해왔고, 2015년경부터 성남 도촌동서 진행된 부동산 투자에 회사자금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경찰 단계서 무혐의 처분됐기에 차후 공수처의 수사를 지켜봐야겠지만 재판 상황이었다면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다”며 “최씨가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면 판단이 뒤집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김씨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 수사도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의문의 꼬리표가 떼지지 않는다. 검찰이 양평 사건을 수사한 건 2년 가까이 된다. 검찰은 사건 담당 공무원의 비상식적 행정조치로 김씨 측이 특혜를 입었음에도 ‘로비 의혹’과 이어진 연결고리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개발부담금 17억원이 ‘0원’이 된 이유도 공소장에 언급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양평군 공무원 3명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 났다. 이들이 저지른 범행은 정해진 준공기한까지 공사를 완료하지 못해 시행사로부터 사업권을 회수하지 않고 준공기한을 이례적으로 연장해 공사를 진행하게 해준 특혜를 일컫는다. 김씨와의 연결고리는 수사 자체를 시작하지도 않은 셈이다. 

검찰 공소장에는 “정상적으로 절차를 거치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입주 예정자들의 민원이 예상되고, 기간이 만료됐음에도 사업이 진행된 위법 상황을 감추려고 서류를 조작했다”고 적시돼있다. 양평군 공무원 3명은 2021년 말 경찰이 양평군에 수사 개시를 통보하고 검찰이 기소까지 했다. 그러나 현재 전원이 승진했다.

석연치 않은 공무원 ‘단독 범행’ 결론    
시작부터 ‘기일 변경’ 이례적 시간 끌기


김씨가 위조한 문서는 ‘토사 운반 거리 확인서’와 ‘토사 반출입 확인서’ 2건이다. 김씨는 이 문서를 위조하는 데 윈도우 기본 프로그램인 ‘그림판’을 사용했다. ‘잘라내기’와 ‘붙이기’ 기능을 이용해 관련 업체의 도장 이미지를 다른 서류서 붙여넣은 것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김씨는 운반 거리가 멀고, 토사량이 많을수록 비용이 늘어난다는 점을 노려 사업지서 18.5㎞ 떨어진 경기도 광주의 사토장까지 15만㎥의 흙과 암석을 운반한 것으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김씨 등이 위조 서류를 이용해 비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양평군의 개발비용 산정 업무를 방해했다며, 김씨 등에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도 적용했다. 하지만 검찰은 실제 토사 운반에 들어간 비용과 부풀린 비용 규모를 구체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다.

검찰 수사도 오래 걸렸지만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여주지원 형사2단독(부장판사 김수정)은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양평군청 공무원 3명에 대한 공판기일을 이달 20일서 다음 달 30일로 변경했다.

당초 이들의 첫 공판은 지난달 7일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공무원 측의 기일변경 신청에 따라 지난 11일로 연기됐었다. 이들은 측은 또다시 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했고, 공판기일은 9월20일로 미뤄졌다. 양평군청 공무원 측은 이번에도 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주지원 관계자는 “변호인단서 어떤 사유로 기일변경을 신청했는지는 확인해줄 수 없다”며 “재판부는 신청서를 검토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기일을 변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공무원 측의 기일변경 요청이 시간 끌기라고 비판한다.

보나마나
대충 마무리?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형사 사건서 기일변경은 전형적인 시간 끌기”라며 “방어권 행사와 검찰 측의 증거 채택 반대 등 여러 예가 있지만 공판 초반부터 기일변경을 하는 건 판사 입장서 성실하게 재판에 임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이 시간 끌기에 나선 이유에도 다양한 견해가 나온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윤석열 일가와 연관된 인물의 재판이기에 법원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지방서 벌어진 일에 여러 언론사가 달라붙으니 부담은 더욱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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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