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정조준’ 금감원 3대 펀드 재조사 내막

‘금융검찰원’ 용산 향한 충성 경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금융당국이 3대 펀드 사태에 관한 재조사에 나섰다. 문재인정부 때 이미 조사가 끝났던 사안이다. 정권이 바뀌자 결론이 뒤집힌 것이다. 그만큼 이례적이다. 금융감독원은 먼저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와 민주당 간 유착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재조사 과정서 불법성이 확인되면 검찰 수사에 속도가 붙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남부지검이 금융감독원의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재조사 결론을 받아낼 채비를 마쳤다. 검찰은 지난해 말부터 해당 펀드를 재수사해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이 폐지돼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금융당국까지 나서 검찰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만 민주당 유착 의혹을 제외한 타 의혹은 관심 밖인 분위기다.

이례적
뒤집기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3대 펀드 운용사 재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같은 날 금감원 압수수색을 통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 수사는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 등에 관한 ‘특혜성 환매’와 펀드 투자자금 횡령과 관련된 자금이 민주당 관계자들에게 흘러간 의혹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제기된 라임 핵심 관계자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해외 수배) 측이 투자한 필리핀 리조트 사업을 둘러싼 소문도 확인할 계획이다. 옵티머스나 디스커버리 펀드도 투자회사들의 횡령 여부도 들여다보고 있다.

펀드 사태 피해자들을 위한 진상규명보다는 문재인정부 시절의 비리와 불법성을 확인하는 게 먼저인 셈이다.


남부지검 관계자는 “금감원이 발표한 내용은 원래 알고 있던 내용서 한층 더 깊어진 것”이라며 “의혹 전반에 관해 재수사 중이고 조치도 충분히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7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환매가 중단된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5조159억원에 달한다. 이 중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3개 펀드를 제외한 환매중단액도 2조708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 펀드 사건 수사는 사실상 멈춰있다.

이의환 전국사모펀드 사기피해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검찰과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3개 펀드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다른 펀드 피해에 관한 구제나 수사는 진척이 없다”며 “젠투 펀드 피해액은 수천억원이 넘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됐고 피델리스 펀드, 독일헤리티지 펀드, 트랜스아시아무역금융 펀드 등도 고소·고발을 했는데 기소도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독일헤리티지 환매중단액은 4772억원, 피델리스 펀드 3445억원, 트랜스아시아무역금융 펀드는 3302억원에 달한다. 피해자만 해도 수천명이다. 헤리티지 펀드는 2021년 4월 검찰에 고소 접수한 뒤 수사 진척이 없다. UK 펀드도 투자자들이 2021년 1월 펀드 관계자들을 사기와 부정거래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수사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예상 못한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재검
조사 결과 합수단에 통보…물적증거는 아직

2020년 7월 고소가 접수된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사건은 올해 1월에야 펀드 판매를 주도한 전직 은행원 1명이 해외 도피 중에 붙잡혀 구속되자 재판이 시작됐을 뿐이다.

이들 펀드뿐 아니라 지난 3월 남부지검에 고소장이 접수된 포트코리아 그린에너지 펀드 사건은 고발인 조사만 하고 아직 진척이 없다.


사모펀드 한 피해자는 “당국 발표 내용을 보면 새로 알게 된 내용도 있지만 이미 대부분 우리들이 이야기했던 것들”이라고 토로했다. 당국과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으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당국과 검찰은 유독 3대 펀드에 관해서만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해당 펀드 모두가 야권과 정치적으로 얽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서 당국이 민주당과 펀드 사태의 연결고리를 찾으면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카드로 쓰일 것이라는 해석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라임 사태는 라임자산운용이 코스닥 기업들의 전환사채(CB) 불법거래를 통해 부정하게 수익률을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펀드런 위기에 몰렸고, 2019년 10월 환매가 중단됐다. 투자자들이 본 피해만 1조6000억원 규모다.

검찰은 수사 결과 민주당 기동민·이수진(비례) 의원, 김영춘 전 의원, 열린우리당 김갑수 전 부대변인 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김봉현 라임 대표는 이들 4명에게 1억6000만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기부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금감원은 이번 추가 검사에서 김 회장이 라임 펀드 자금 300억원을 메트로폴리탄 임원에게 대여금 형태로 인출한 뒤 276억원으로 필리핀 이슬라 리조트를 차명으로 사는 등 총 299억원을 유용한 혐의를 발견했다. 이 과정서 일종의 사업 파트너였던 장모씨와 전모씨 등에게 매각대금 명목으로 펀드 자금 일부가 건네진 정황을 확인했다.

3대 펀드
뭐길래?

문제는 장씨와 전씨가 정치권과 일부 인연이 있다는 점이다. 장씨는 지난 대선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 산하 금융혁신위원회와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전씨는 민주당 지역 도당 후원회장과 강원도 민주당 후보의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다.

다만 아직 민주당과 연결 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라임 펀드 자금이 이들을 통해 정치권으로 건네졌다는 증거와 정황이 확인된 바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윤갑근 전 고검장은 자문료 명목의 돈을 받고 은행에 로비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가 2심서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이 사건은 합수단서 수사를 맡았으나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합수단을 폐지하면서 사실상 수사가 좌초됐다. 당시 송삼현 남부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옵티머스 사건은 안전한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한다면 3200여명으로부터 1조3500억원 모아, 부실 채권이나 돌려막기에 사용해 1000여명에게 5600억원의 피해를 끼친 사건이다.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는 사기 혐의로 징역 40년에 벌금 5억원, 추징금 751억7500만원이 확정됐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수사에 착수해 ‘펀드하자치유’라는 문건을 확보했다. 문건에는 민주당, 법조계 20여명의 실명이 거론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검찰은 2021년 8월 문건에 적힌 각종 의혹 모두를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문건에는 “채동욱 전 총장이 추진하던 경기 광주 봉현물류단지 사업 인허가와 관련해 2020년 5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만났다”는 내용도 있다. 검찰은 당시 “두 사람이 식사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청탁은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정권
인사 겨냥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대표가 만든 디스커버리 펀드의 ‘펀드 돌려 막기’ 의혹도 금감원이 일부 정황을 확인됐다. 장 대표는 환매 중단 책임을 놓고 기소됐지만, 1심서 무죄를 받았다.

금감원은 디스커버리 펀드를 판매한 기업은행에 관해서도 추가 조치를 검토 중이다. ‘투자자에 100% 배상’(투자원금 전액 반환) 결정을 기업은행 측에 내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올 정도다. 금감원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US핀테크 글로벌 채권펀드’를 운용하는 과정서 환매가 되지 않자 동일한 구조의 다른 펀드를 만들어 돌려 막았다고 결론냈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은 이 과정서 투자 대상을 거짓 기재한 투자제안서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에 환매가 되지 않은 펀드를 상환할 목적으로 새로운 펀드를 만들었음에도 새 펀드의 투자제안서엔 이 사실을 기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해외의 다른 투자처에 투자한다는 거짓정보를 넣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은 향후 디스커버리 펀드에 관한 분쟁조정과 관련해 신중한 입장이다. 이번 자산운용 검사 결과는 물론 미국 당국으로부터 확보한 자료 분석, 기업은행에 관한 추가 검사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 검사국 관계자는 “9월 초에 기업은행 검사가 예정돼있다. 주로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이 기재한 투자제안서의 거짓된 내용을 알면서도 판매했는지가 핵심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원 내에서는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통해 100% 손해배상 결정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의 거짓 투자제안서를 기업은행이 그대로 인용했다면 이것만으로도 불완전 판매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옵티머스 펀드를 판매한 NH투자증권에 100% 배상을 결정한 전례가 있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NH투자증권은 라임 펀드를 판매한 신한금융투자와 달리, 옵티머스 펀드 부실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자금 흐름 파악…정치자금으로 의심
피해 진상 규명 아닌 조사만 논란도

민법(제109조)에 따른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는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착오를 일으킬 정도로 중요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을 경우 내릴 수 있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는 2021년 5월 디스커버리펀드와 관련해 기업은행에 원금의 40~80%를 투자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금감원이 범죄 혐의를 통보한 이후 검찰이 풀어야 할 매듭은 자금흐름이다. 펀드 사태 핵심 피의자들이 왜 자금을 주고받았는지와 어느 용도로 사용됐는지를 밝혀내지 못하면 정치적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재경지검 한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투자금을 수표나 코인으로 전환한 정황도 있어 추적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정치자금으로 활용됐는지가 핵심일 것 같은데 의심만 될 뿐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고 말했다.

야당에서는 반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금감원이 아니라 금융 정치원"이라며 "이복현 금감원장은 엄중한 책임을 반드시 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라임 펀드 자금 중 일부가 이 대표 대선캠프의 외곽조직 인사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보도에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9월 정기국회에서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권한 남용’ 의혹을 집중적으로 다루겠다고 예고했다.

이 원장이 권한을 넘어 통화 정책에 관여하거나, 해외 투자설명회(IR) 출장비용 내역을 제출하라는 국회 요구에 불응하고, 내달에도 유럽 IR 출장길에 오르는 등의 행보를 주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내년 총선을 고려한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 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이복현 원장이 금감원장 권한을 넘어서 통화정책에 관여한 것과 IR 참여, 정치적인 금융감독 행태에 관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하고 바로잡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러다 말면…
역풍 주의보

민주당이 주목하는 건 이 원장의 이력이다. 검사 출신이자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원장이 지휘한 ‘라임 사태 재검사’ 결과가 문재인정부 유력 인사들을 정조준하는 수사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민주당은 보고 있다.

이로써 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전선도 넓어졌다. 검찰, 감사원에 이어 금감원이 세 번째 적이 된 셈이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확실한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선거를 진두지휘해야 할 이 대표는 ‘사법 리스크’로 5번째 소환을 앞두고 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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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