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몰이’ 대통령 노림수

지금 필요한 건 ‘한 놈만 팬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정부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합작으로 통일부가 새 단장에 들어갔다. ‘대북 지원부’ 탈피 주문을 받은 통일부는 ‘북한 인권’에 방점을 찍었다. 남북 교류와 협력 분야의 인력을 감축하는 대신 대북 정보기능 강화와 메시지 관리에 힘을 쏟았다. 대화 창구가 뚫릴 기미조차 없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통일부가 김영호 장관 체제로 출범한 지 약 한 달 만에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교류와 대화 분야를 축소하고 북한 인권 업무를 위주로 기틀이 짜이는 모양새다. 정부 측은 교류·협력이 장기간 중단된 상황서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인권을 앞장세운 대결적인 대북 압박 부서”라고 맞불을 놨다.

물갈이

윤석열정부가 북한 인권에 공을 들이는 건 이는 인류 보편적 가치이자 국가의 책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민주당과 전 정부는 “북한 사람이 아닌 북한정권을 옹호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과거 정부가 단기간에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집착한 나머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부는 남북한 주민 모두가 우리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 구현될 수 있도록 북한 인권 증진을 궁극적 목표로 삼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접근 방법을 두고 여야 의견이 갈리는 모양새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한 민주당 의원 관계자는 “이번 통일부 기조는 북한과의 소통을 축소하고 대북 정보기능만 대폭 늘리겠다고 한다”며 “통일부 본 기능을 지우거나 폐지 수순을 밟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김영호 교수가 통일부 장관으로 오르면서 대화는 사라지고 압박만 남을 것이란 우려다. 김 장관은 후보 시절부터 대북관과 극우 성향 논란 등 부적격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거 김 장관은 “북한 체제 파괴”나 “김정은정권 타도”와 같은 대북 강경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학자로서는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으나 통일부 장관으로서는 부적절한 언행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김 장관이 지명된 직후부터 “통일부 장관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지명 철회를 요구했다. 극우적 시각과 적대적 통일관을 가진 인물이 과연 통일부 장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윤정부 출범 뒤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15번째 장관급 인사다.

북한인권재단 공회전
7년째 출범 준비만

내부 정비를 마친 통일부는 지난달 23일, 정원을 617명서 536명으로 81명 감축하는 등 통일부 개정안에 관한 입법예고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남북 간 상황이 급변하는 환경 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조정을 추진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우선 통일부가 북한을 향해 선명한 의사표시를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통일부가 통일정책실 산하에 ‘메시지 기획팀’을 신설하면서다. 이제까지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조심스레 접근했던 단어 선택이 이번 개편을 기점으로 바뀔 것이란 관측이 제시된다.


이는 북한의 불법적인 행태에 정부의 대표자로 통일부가 나서 확실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장관이 인사청문회 때부터 강조했던 ‘대북 정보기능’도 대폭 강화될 전망이다. 지금의 정세분석국을 ‘정보분석국’으로 바꾸면서 북한에 대한 분석 기반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국내외 유관기관과 민간단체 등과 협력해 정보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보조사협력과’도 신설된다. 이는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정보기관의 파견과 지원을 받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중요시했던 교류·협력 조직 규모는 축소됐다. 기존의 ▲교류협력국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 ▲남북회담본부 ▲남북출입사무소 등 조직이 ‘남북관계관리단’으로 통합되면서다. 다만 남북관계가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경우 ‘추진단’ 형태로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전반적인 물갈이가 이뤄졌지만 북한인권법에 따른 ‘북한인권재단’을 두고는 장시간 진통이 이어지고 있다. 여야 정쟁으로 설립이 7년째 지연되면서다.

북한인권재단이 공식 출범하기 위해서는 여야 동수로 재단 이사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2018년 이후 추천을 거부하면서 지연되고 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적대적 관계를 개선하는 노력 없이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상대방을 비난하고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의견과 상충하면서다.

지난달 30일 통일부는 국회에 재단 이사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을 국회에 발송했다. 통일부가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시행된 이후 국회에 이사 추천 요청 공문을 보낸 횟수는 총 12번이다. 어느 한쪽도 양보하지 않는 만큼 북한인권재단 출범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경 봉쇄 푸는 북한
살살 압박하는 정부

북한을 둘러싼 논의가 다시 탁상에 오른 것은 북한의 활발한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지난달 북한은 국내관광 활성화와 국제관광 확대를 위한 관광법을 제정했다고 밝혔다. 관광법 제정을 기점으로 국경을 전면적으로 개방해 외국인 관광객들을 맞기 위한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6월 북한은 ‘수출입상품검사법’을 제정했다. 무역 물품 등을 비롯한 물적자원 교류 확대를 대비한 사전적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7월에는 ‘노 마스크’를 시행한 뒤 해외 체류 국민을 귀국시키는 등 국경 봉쇄 완화의 폭을 단계적으로 넓혀왔다.

다만 한국을 향해서는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연구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최근 총참모부 훈련지휘소를 방문해 전쟁 발생 시 ‘적군과 아군의 예상 행동 시나리오’에 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전군 지휘 훈련 조직 정형과 진행 실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과 일본의 한반도 전쟁 개입을 파탄시키기 위한 계획 역시 수립한 것으로 관측된다는 게 일부 전문가의 주장이다. 특히 지난달 김 위원장은 남한의 수도권 지역 등을 가리키며 군 간부들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김 위원장은 최근 이뤄진 한·미·일 정상회의를 언급하며 정상을 향해 ‘깡패 우두머리’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저급한 수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현재 북한이 러시아와 중국 등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한국이 압박 수위를 높일수록 그 반동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시된다.

공격수

정보를 종합하면 현재 통일부는 북한 인권의 실상을 국제사회를 통해 북한 주민에게까지 알려지도록 유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본래 통일부의 역할은 북한과의 협상 창구다. 통일부가 북한의 예민한 곳을 공격한다면 그 부작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입장은 아니었다고 본다”면서도 “강경 대북파 장관이랑 대통령이 나란히 고삐를 잡으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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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