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 여가부 빅딜 시나리오

잼버리 책임, 폐지로 퉁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잼버리 사태’가 일단락됐다. 정부와 여당은 국제적 망신이라는 객관적 평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두루뭉술한 해명으로 언급 자체를 꺼리고 있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인물로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목됐다.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보여줬다”는 어이없는 발언이 한몫했다. 당정 안팎서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으나 말뿐인 분위기다.

여성가족부가 잼버리 대회 파행으로 위기에 직면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의 ‘자화자찬’과 말실수로 여당 내부의 시선도 차갑다. 김 장관은 사퇴에는 선을 그은 채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김 장관의 거취 및 정치적 책임이 여가부 폐지로 희석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첫날부터
행사 폭망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는 지난 1일에 시작됐다. 잼버리에 참석한 스카우트 관계자들은 첫날부터 대회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물웅덩이와 진흙탕이 곳곳서 발견됐고 화장실에서는 사용 전부터 악취가 났다는 주장이다.

잼버리 대회가 진행된 전북 부안의 기온은 약 35도였다. 폭염 위기경보 수준은 심각 수준으로 높은 습도가 지속됐던 걸 감안하면 체감온도는 37도 이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잼버리에 참석했던 스카우트 관계자는 “나무와 그늘이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베테랑이라고 불린 다른 대장들도 버티기 힘들다고 했다”며 “어린 친구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느냐”고 토로했다.


예상대로 첫날부터 병원 앞에는 온열질환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로 넘쳐났다. 수백명이 대기했지만 100개도 되지 않는 병상으로 사태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악취가 심한 화장실과 샤워장 상황 크게 다르지 않았다. 스카우트 관계자는 “샤워를 해도 하지 않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물과 섞인 갯벌 흙이 굳어버린 채로 배수구를 막아서 벌레도 많았다”고 말했다.

나이가 어린 대원 대부분은 탈수와 탈진 증세를 보였다. 마실 물까지 부족해 야영지 외부로 나가 생수를 사야 했다.

복수의 스카우트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회 이틀째 150명에 가까운 온열환자가 발생했다.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 이번 대회에 가장 많은 4400여명의 청소년과 지도자를 파견한 영국을 비롯해 미국과 싱가포르 등 대표단이 열악한 환경을 이유로 조기 퇴영을 결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서 총력 지원을 지시하고 전 부처가 수습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수준이었다.

태풍 ‘카눈’을 피해 잼버리 참가자 전원이 야영지서 철수한 지난 8일 이후에도 조직위 운영은 부실했다. 대회 개최 전 자신했던 ‘폭우 시 사전 지정된 8개 시·군의 342개 실내 구호소로 대피’한다는 대책은 정작 태풍 앞에서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다.

국제적 망신 분명한데 지금도 자화자찬
잇단 개각설 수면 위 정치적 책임 희석?

김 장관은 “왜 대피소를 활용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342개 구호소는 일시적으로 수용하고, 다시 영지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제하에 운영하는 것”이라며 “이번 태풍은 전국적인 재난이기 때문에 그럴 경우 여기서(참가자들을) 소거(퇴영)하는 매뉴얼이 있다. 그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인원 점검도 허술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입국도 안 한 예멘·시리아 대원들을 대학 기숙사와 연수원에 배정했고, 남학생이 사용하는 대학 기숙사에 스위스 여성 잼버리 대원들을 배치했다가 다시 호텔로 옮기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본인들의 책임을 지운 채 지난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폐영식과 K팝 콘서트 지원인력으로 공공기관 직원 약 1000명을 동원했다.

아이돌 차출을 통해 사실상 권위주의적인 이미지 세탁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잼버리 진행에 관한 걱정과 우려는 수년 전부터 언급됐다. 2016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새만금 잼버리 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은 2023년 8월 1~12일 2023 세계잼버리 기간 한반도에 폭염이 가장 심하고 태풍과 폭우 등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정치인들과 시민사회단체의 경고 목소리도 수차례 있었다. 지난해 8월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 전체회의서 김 장관에게 “빨리 (잼버리)현장에 가보셨으면 좋겠다. 거기 배수시설이라든가 상하수도, 대집회장, 샤워장, 화장실 등이 전체적으로 늦어지고 있다. 잘못하면 준비 상태가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 차출
이미지 세탁

이 의원은 또 국정감사에서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 먼지 대책,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을 정말 점검해야 한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대회가 어려운 역경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김 장관은 “저희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 놓아서 보고드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이후부터 잼버리가 임박한 지난 4월 말까지 단 한 번도 현장을 찾지 않았다.

김 장관의 문제점은 행보서 그치지 않았다. 잼버리 영내 성범죄 의혹에 관해서는 “경미한 것으로 보고받았다”고 했고, 잼버리 조기 철수 사태와 관련해선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시점”이라고 말하는 등 어이없는 망언을 이어갔다.

김 장관의 지속적 돌발행동 때문이었을까? 외신의 평가는 비판으로 얼룩졌다. 영국 <BBC>는 새만금 잼버리에 참가한 대원의 학부모의 말을 인용해 “끔찍했다”고 전했다.

<AFP통신>은 지난 12일 ‘K팝이 구출? 한국, 스카우트 잼버리 폐막 콘서트에 올인’ 기사에서 “정부가 재앙이 된 행사를 수습하기 위해 수백만달러의 비상 자금을 투입했지만, K팝 팬들부터 공공 부문 직원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부의 접근 방식에 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서 열린 잼버리는 폭염, 비위생적 환경에 관한 문제 제기, 대피로 얼룩진 채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K팝 콘서트와 사과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잼버리를 책임졌던 공동조직위원장은 김 장관을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민주당 김윤덕 의원,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 등 모두 5명이다. 조직위 아래 집행위원장은 김관영 전북도지사다. 공동조직위원장 중 3명이 현 정부 국무위원이다.

조직위 주무부처는 여가부지만, 정부 부처 장관 3명이 조직위원장을 맡아 책임을 떠넘기기 ‘안성맞춤’이다.


모두 다
떠넘기기

언론의 비판이 사그라들지 않자 감사원은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감사와 조사를 예고했다. 잼버리 개최지로 새만금이 선정된 2017년 8월부터 지난 6년간 준비·추진 상황 등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번 잼버리에 투입된 총예산 1171억원 중 74%를 차지하는 870억원이 조직위 운영비와 사업비로 잡힌 경위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조직위에 따르면 조직위 예산 외에 상하수도와 하수처리시설, 덩굴 터널 등 기반시설 조성에 205억원, 화장실과 샤워장, 급수대 등 편의시설 설치에 130억원이 각각 배정됐다. 특히 여가부와 전북도 공무원 등의 외유성 출장 수십 건도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김 장관이 ‘입꾹닫’으로 일관하자 여가부 내부의 분위기는 처참한 상황이다. 행사 파행에 관한 자성의 목소리도 있지만, 장·차관 등 수장들이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데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모양새다.

여가부 한 관계자는 “김 장관이 잼버리 개영 전 현장에 간 건 5번도 안 된다. 그런 사람이 국회서 자신 있게 말했다. 이건 대비를 제대로 못 한 게 아니라 할 생각이 없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가부 기자단은 김 장관에게 언론과 국민을 대상으로 잼버리 파행에 관한 입장 발표를 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지만 국회 질의와 감사원 감사를 이유로 사실상 거절만 하고 있다.


지난 20일에는 현장을 지키라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지시에도 16km 떨어진 생태탐방원에 묵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태 탐방원’은 에어컨, 샤워부스 등이 잘 갖춰진 숙소로, 당시 여가부는 신변 위협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실제로는 사흘 전부터 계속 이곳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여가부는 서울 신림동 성폭행 살인 사건에도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본업’마저 소홀히 한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김 장관의 잠행이 지속되면서 국민의힘 내부서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일각에서는 소규모 개각으로 김 장관이 교체 대상에 오르거나 여가부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내부서도 사퇴 목소리 거세
추석 전 해체 겸 퇴장 관측 반반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여가부 폐지가 진즉에 이뤄져야 했지만 김 장관 책임과 신림동 사건까지 겹쳤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폐지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이 의원은 “당내서도 교체 목소리가 강해서 교체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가능한 부처 개각은 최소한으로, 꼭 교체가 필요한 장관만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교체 장관이 늘어날수록 야당과의 인사청문회 전선이 넓어지는 정치적 부담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개각과 대통령실 개편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 장관만 교체하는 핀셋 개각을 먼저 하고, 연말쯤 정치인 출신 장관과 수석 및 비서관을 총선에 내보내기 위해 교체하는 중폭 개각을 순차적으로 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우선 윤 대통령은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을 지명했다. 다음 교체 대상이 김 장관이 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잼버리 사태와 관련해 여가부 등 중앙부처, 전북도 등 지방자치단체에 관한 감사원 감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김 장관의 우선 교체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 장관이 한덕수 국무총리로부터 잼버리 현장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고도 야영장을 벗어나 인근 국립공원 숙소서 묵으며 하루도 숙영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나타나면서 경질론에 더욱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해진 건 없으나 감사원의 감사 기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김 장관이 정해져 있는 여가부와 운명을 같이할 가능성도 있다”며 “연말까지는 여가부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 대통령은 추석 전 여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고용노동부 등 부처와 내년 총선 출마 뜻을 가진 대통령실 참모진 등에 관한 인사를 고민 중이다.

경질 아닌
부처 분해?

현재 정치인 출신 장관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등이다. 윤 대통령도 총선 출마에 나설 장관들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 수석급에선 이진복 정무수석과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김은혜 홍보수석의 총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비서관급에선 주진우 법률비서관과 강명구 국정기획비서관, 전희경 정무1비서관 등 10여명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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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