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뉴월드호텔 살인사건 재구성

29년 만에 끝난 조폭 혈투

[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1994년 12월4일. 노태우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4년 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서울 강서구 영산파와 광주 신양파는 강남 일대서 주름잡던 조폭 집단이었다. 영산파 두목은 1991년 팔레스호텔 살인사건 당시 신양파 일당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3년이 지나고 영산파가 신양파 일당에게 보복범죄를 저지른 것이 살인사건의 전말이다.

29년 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뉴월드호텔서 4명의 조직폭력배 사상자를 냈던 사건 수배범이 지난 11일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수배범은 공소시효 기간 해외로 도피한 흔적이 들통나자 검찰이 공개수배에 나서면서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4시30분쯤 관악구 소재의 한 호텔서 수배범 정동섭(55)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경찰은 숙박업소 주인으로부터 “퇴실 시간이 지났는데 손님 인기척이 없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적 압박
극단적 선택

현장에는 유서로 보이는 자필 문서와 전날 저녁 정씨가 혼자 입실한 점을 두고 극단적 선택에 무게를 두고 조사하고 있다.

정씨는 1994년 12월4일 뉴월드호텔 결혼식에 참석한 신양파 조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살해하고 2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정씨는 당시 강서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던 영산파 행동대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정씨는 자신의 두목을 살해한 광주 신양파에 앙심을 품고 보복살인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12명의 가담자 중 10명은 검거돼 처벌받았다. 영산파 조직원 12명 중 10명은 붙잡혀 최고형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정씨는 사건 직후 도주해 2011년 공소시효 만료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받고 국내서 살인죄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정상인처럼 생활해왔다.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서모씨는 지난해 3월 영사관에 자진신고하고 귀국한 뒤 처벌을 피하려고 밀항 시점을 속였다가 적발돼 28년6개월 만에 구속 기소됐다. 중국으로 밀항했던 그는 지난해 갑자기 중국 영사관으로 찾아가 밀항 사실을 자수해 서씨의 신병을 넘겨받은 해경이 수사했다. 검찰은 그를 밀항단속법위반죄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자수 후 1년간 전남 지역에 살던 서씨를 긴급체포한 검찰은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밀항 시기를 속였던 것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 그는 1994년 사건 직후 도주해 숨어 지내다 2003년 가을 전북 군산서 선박을 타고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도피 생활을 이어갔다. 함께 검거되지 않았던 영산파 행동대장 정씨와 중국서 수차례 만나고, 가족까지 중국으로 불러들여 재회하는 등 대범한 도피 행각을 이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서씨 밀항 시기가 2003년이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에 해당해 해외 체류 기간 공소시효는 정지된다.

12명 가담자 중 10명 검거…남은 2명은?
주범 서씨 구속 정동섭은 숨진 채 발견 

해외 도피 생활에 지친 서씨는 밀항 시점을 살인사건 공소시효가 끝나는 15년 뒤인 2016년으로 주장하면 살인죄 처벌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서씨는 1994년 살인범죄에 관한 공소시효가 만료된 15년 이후인 2016년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해경은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한 채 밀항단속법 위반으로 서씨를 불구속 송치했다.


2015년에는 살인죄와 관련 공소시효까지 폐지돼 서씨는 뉴월드호텔서 저지른 살인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밀항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재수사를 벌여 서씨가 2016년이 아닌 2003년 중국으로 밀항한 행적을 찾아냈다. 해외에 머문 기간 동안 공소시효가 중단됐고 살인죄 공소시효도 폐지된 만큼 검찰은 서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이영남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살인사건의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각오로 전면 재수사에 착수,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 수사는 정씨가 사망하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료될 예정이다. 검찰은 정씨와 서씨의 도피를 도운 이들을 향한 수사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당시 광주지검 관계자는 “서씨에 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될 무렵, 정씨가 재차 잠적해 소재가 불분명했다”며 “출석요구에도 응하지 않아 결국 지난달 26일 공개수배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은 29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당시 서울 삼성동 뉴월드호텔 앞에서 자행된 집단살인사건은 범인들이 1991년 서울 팔레스호텔 조직폭력배 피살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사전에 치밀한 계획하에 조직적으로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영산파 두목 이모씨와 행동대장 안모씨 등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조직원 10명에 대한 검거에 주력했다.

대범한 
도피 행각

당시 경찰은 범인들이 이번 범행에 앞서 팔레스호텔서 영산파 조직원 최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복역 중이던 박모씨의 출소일에 맞춰 그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던 사실을 추가로 밝혀냈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강남 일대 조폭 간 세력다툼으로 인해 최씨가 박씨에게 살해당했다. 

행동대장 안씨는 부하 10명과 함께 박씨가 출소하는 광주교도소로 내려갔으나 살해 계획을 사전에 인지한 선배들의 만류로 일단 범행을 보류했다. 이후 12월4일 뉴월드호텔서 보복범죄를 계획한 후 박씨를 살해했다. 그러나 살해된 박씨는 같은 성씨의 다른 인물로 밝혀졌다.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은 그 당시 파장이 컸다. 1990년 노태우정부는 범죄와 폭력 등 민생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31 특별 선언인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노태우정부가 실제 민생치안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들고 나온 정책이 아니라 집권 4년 차를 앞두고 어지러운 정국과 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정책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첫 시행단계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경찰이 폭력 조직 검거 건수를 올리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선량한 시민을 체포한 사례가 증가했던 것이다. 경찰이 검거한 조직에는 13세 초등생이 있을 정도로 무차별적이었다.


그러나 대낮 칼부림으로 이어진 뉴월드호텔 살인사건은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는 단초가 됐다. 당시 강남 번화가 일대를 지나던 행인은 칼부림 목격 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폭력 조직을 향한 여론이 들끓자 조폭 소탕의 타당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1995년 서울중앙지검은 살인사건 주범 서씨와 정씨를 소재 불명으로 기소중지 처분을 내렸다. 이후 영산파 조직은 사실상 와해 수준으로 해체됐다.

팔레스호텔 
보복 계획

영산파는 20년 뒤 해외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영산파가 운영하는 캄보디아 도박장서 원정도박을 벌인 국내 기업인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벌인 도박판 규모는 무려 수십억원에 달했다. 한 판에 1억원이 넘는 돈을 베팅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캄보디아의 한 카지노서 원정도박을 알선한 혐의(도박장소 개설 등)로 폭력조직 영산파 행동대장 전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2014년 6월 전씨가 원정도박 브로커 문모씨와 함께 캄보디아의 한 카지노서 코스닥 상장업체 대표 오모씨를 유인한 혐의를 적용했다.

전씨는 오씨에게 60억원 상당의 도박 자금과 카지노칩 등을 제공했고, 오씨는 1회당 7000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는 바카라 도박을 수백회 했다. 전씨는 같은 방식으로 원정 도박자들을 유인한 뒤 카지노 업체 측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해외 도피와 관련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규정은 일반 공소시효에만 적용되고 재판 시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첫 판례가 나왔다. 재판 중인 범인이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시효가 정지된다는 규정이 없다. 이처럼 재판 중 장기간 해외로 도피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면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1995년 유흥주점 인수대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피해자들을 속여 5억6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1997년 8월 기소됐다.

같은 해 11월 1심 첫 공판이 열렸지만 이후 A씨가 1998년 4월 미국으로 출국해 다시 입국하지 않아 재판이 진행되지 못했다.

공소시효 계산 실수로 입국했다 붙잡혀
해외 도피 끝까지 심판 ‘김봉현 방지법’

1심 재판부는 “공소제기 후에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국외로 도피한 피고인을 처벌할 필요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고, 또한 공소제기 전에 국외로 도피한 피의자의 경우와의 형평을 고려하면 공소제기 후에 국외로 도피한 피고인에 대해서도 ‘공소시효완성 간주’(재판 시효)의 시효를 정지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면서도 “그러나 피고인에 대한 처벌의 필요만으로 공소시효 정지를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253조 3항이 구 형사소송법 제249조 2항에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형사처벌에 관한 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유추하거나 확장 해석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어긋날 우려가 있다”고 결정했다.

국내 최고 법원인 대법원의 판결은 판사가 판결을 내릴 때 참고하는 하나의 가이드라인이다. 대법원 판례는 1심 2심 재판부가 판결할 때 참조 판례로 제일 인용을 많이 한다. 법무부가 재판 시효 규정을 개정하기로 한 배경에는 해외 도피 피고인에 대해선 공소시효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이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법무부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재판 중인 피고인이 형사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재판 시효(25년)가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정지돼 끝까지 처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행법상 형사소송법이 정한 재판 시효는 25년이다. 공소제기 후 25년이 지나도록 확정판결이 나지 않으면 공소시효가 완성된 것으로 본다. 수사를 받고 있거나 형이 확정된 이후 해외로 도피하면 공소시효나 형 집행시효가 정지되는 반면, 재판 중인 피고인은 해외로 도피해 25년이 지나면 처벌할 방법이 없다.

이번 법 개정으로 수사나 형 집행 단계 시효정지 제도의 불균형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라임 사태 주범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보석으로 불구속 재판을 받던 도중 도주해 이에 대한 사각지대가 우려됐다. 이른바 ‘김봉현 방지법’으로 불리는 개정안이 통과된 후 김 전 회장이 해외로 나갔다면 신병 확보 후 처벌이 가능하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기간 해당 법안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개정안을 확정할 계획이지만, 도주 48일 만에 검거된 김 전 회장은 정부가 추진 중인 소위 ‘김봉현 방지법’ 적용은 피해가게 됐다.

해체된
영산파

해당 개정안은 부칙서 아직 공소시효가 완료되지 않은 범죄에도 적용한다고 규정한다. 향후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해외로 도피한 피고인에게 적용될 수 있다. 만약 수사 과정서 김 전 회장이 도피 기간 중 해외에 출국했던 사실이 드러나면 적용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후 개정안에 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하고,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서 통과돼야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범죄자들이 아무리 오래 해외로 도피하더라도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법률의 공백을 메우는 취지”라고 말했다.

<ojh34522@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밀항한 살인범
19년 지나 처벌 이유?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따지던 내연녀 남편을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뒤 19년 만에 나타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우겼던 40대 남성 A씨가 범행 이후 1년5개월 뒤 밀항한 사실이 들통나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됐다.

해당 남성은 추궁 끝에 1998년 4월 밀항 사실을 자백했으며 피해자는 A씨 내연녀의 남편이었다.

외도를 눈치챈 피해자가 여성를 때렸고, A씨가 이 사실을 알고서 피해자를 찾아가 다툼 끝에 살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은 피해자의 시신을 불에 태워 유기한 후 이들은 2015년 주중 영사관을 찾아가 밀항을 자수했다.

현지서 여권법 위반으로 붙잡힌 두 사람은 2016년 1월 한국으로 압송됐다.

한국으로 건너온 남성은 “살인죄 공소시효가 지난 2014년 중국으로 밀항했다”고 주장했으나 조사 결과 1998년 밀항했던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다.

이들은 한국서 재판에 넘겨져 A씨는 살인죄로, 내연녀는 여권위조죄로 법정에 서게 됐다.

이들은 중국서 은신하면서 투옥과 비슷한 삶을 살았기에 선처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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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는 내란 특별검사팀이 해소하지 못한 건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특별수사본부 외에도 TF팀을 꾸렸으나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상규명 핵심 기관인 정보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상당수가 근거가 빈약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인사도 문제다. 내란에 연루된 핵심 기관임에도 인적 쇄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본부에 조사관들이 상주까지 했는데 밝혀진 게 없다.” 한 정보사령부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정보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차원의 특별수사본부와 헌법존중 TF(테스크포스)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제보와 투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후신인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보사에는 대북공작 전문가들인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가 있다. 휴민트 부대인 HID(북파공작부대)와 이들을 지휘하는 100여단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들은 대북공작 실행 부대로 전략·기획은 특수사업처가 담당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 특수처는 최근 특수·대외·훈련평가 등 3개의 부서를 특수·대외로 개편했다. 신임 정보사령관에는 1988년 이진백 사령관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인 조선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박민영 육군정보학교장이 임명됐다. 참모장은 육사 출신 한모 준장, 정보단장은 하모 준장(3사)이 맡게 됐다. 100여단장이던 육사 출신 정모 준장은 제2작전사령부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당분간 100여단장 자리를 공석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휴민트 조직이 12·3 내란에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특수본의 수사가 끝난 이후 진급 심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보사는 검찰과 경찰, 내란 특검팀 수사에 의해 부서명이 노출돼 기밀이 새 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홍도 격화되고 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에 제보와 투서가 빗발치고 있는 점이 정보사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한 군 관계자는 “‘진급 시즌’ 때문이라고 해도 의혹에 그치는 제보가 많다. 중요한 내용도 있지만 타 부서의 간부를 언급하며 ‘문제가 있어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약물 공작’ 문건 본거지 특수처 압수수색 패스 논란의 인물들 되레 진급 “장군 인사로도 거론”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약물 공작 문건’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건 작성자인 이모 대령(현 속초 HID 부대장)과 군무원 외에도 당시 특수처장이던 A 대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이 확보한 해당 문건은 정보사 특수처 산하 대외 담당실에 존안돼있었다. 문건 작성 및 책임자인 A 대령과 이 대령 모두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수처 간부 중 일부는 수사에 협조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하게 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연결고리가 의심됐으나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는 관련 의혹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실제 담당 조사관들은 정보사 안양 본부에 상주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 공작 문건 외에도 지난해 2월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준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던 ‘2016 계획(가칭)’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으로 있을 때 당시 노상원의 지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대북 중요 임무를 6개월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불합리한 지시가 많았지만 특히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던 지시가 생각난다. 노상원은 요원들에게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보낸 뒤 임무를 끝내면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계획은 노상원 전 사령관이 취임 이후 자신의 비서실장과 특수처장, 사업단장을 해임한 이후 모의됐다. 일반적 공작처럼 북한 내 쿠데타를 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실제 수십명의 공작관들이 강제로 동원돼 노 전 사령관의 비상식적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상원 폭사 지시 ‘2016 계획’도 조사 바짝 붙었는데 빈손…진상규명 어려울 듯 한 국방부 관계자는 “TF에서 해당 사안을 조사했던 건 사실”이라며 “차후 어디서 수사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2016 계획’이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됐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 전 사령관은 2016 계획 외에도 대북공작 관련 보고서를 ‘특수’가 아닌 ‘일반’ 문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제한된 공간에 보관한 후 통제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안양 본부에 가서 보고하는 절차에서 노상원이 직접 100여단을 방문해 보고를 받았다. 시스템이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문상호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반 문서로 분류한 대북공작 문건들은 김용현에게 따로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상원은 사실상 수년간 김용현에게 휴민트들이 작성한 첩보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 간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또 다른 군 정보기관인 777사령부에 대한 ‘인사 차별’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777사령부에 소속된 시긴트(SIGINT·신호정보·820) 전문가들은 휴민트와 같은 820 정보병과다. 다만 ‘인간’과 ‘신호’로 구별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보사는 관행대로 육군 소장이 신임 정보사령관을 맡게 됐지만 777사령부는 공군 준장으로 격하 보직된 데 이어 지휘관의 군종까지 뒤집히는 전례 없는 조치가 단행됐다. 777사령부는 정보사와 다르게 내란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다. 인사만 놓고 보면 두 군 정보기관 간 인사에 차이가 있다는 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주먹구구 인사 국방부 인사를 담당하던 한 소식통은 “777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사”라며 “정보사 육사 출신들의 진급이 대거 배제됐다고 해도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속사정은 다르다. 실질적 지휘 체계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F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16일 조사를 마무리한 TF는 조만간 결과를 검토해 다음 달 13일까지 승진 취소 및 징계성 전보 등 인사 조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적어도 이날까지는 군 정보기관 내 파열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