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삶과 죽음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4 10:59:32
  • 호수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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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마지막 낭만 주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주먹 세계에 서열 다툼도 예상된다. 경찰의 경계 속에서 조폭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칠성파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등장한 조직이다. 영화는 칠성파와 신20세기파의 다툼을 그렸다. 2021년 5월엔 두 조직의 20대 조직원들이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칠성파는 1950년대에 조직원 7명으로 시작해 이름을 떨쳤다. 1970년대에 초대 두목에게 조직을 물려받은 이강환은 부산 유흥가를 장악했다. 이후 나이트클럽, 필로폰 밀매를 기반으로 서울까지 진출했다. 1980년대에 후발주자로 나선 신20세기파는 칠성파와 30년간 대립했다. 최근 두 조직은 이합집산하며 온라인 도박 등 불법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릴 적
콤플렉스

칠성파는 전국 최대 폭력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 전국 3대 폭력조직을 능가한다는 의미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장악력은 주먹보다는 머리서 나왔다. 선천성 소아마비인 그는 친구들에게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폭력 세계에 들어오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칠성파 초대 두목 이경섭으로부터 조직을 물려받는다. 

이경섭은 이강환의 손윗동서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이강환의 칠성파는 날개를 단다. 특유의 장악력으로 당시 부산의 신20세기파, 역전파, 서면파의 세력을 흡수한다. 칠성파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부산의 유흥업소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필로폰 밀매 등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조직원은 서울로 진출했다.

이강환은 영화 <마약왕>의 실존 인물 이황순과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1980년에 필로폰 제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약 5년간 복역한 이강환은 1985년에 출소했다. 1988년 말에는 부산·경남 지역의 조직과 연대한 화랑신우회를 결성한다. 발족 당시 회원은 약 300명이었다. 종로 건달 이정재의 동대문사단과 흡사하다. 1988년 11월엔 칠성파 간부 8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오사카의 가네야마구미파 두목 가네야마 고사부로와 의형제를 맺기 위해서다.

국내 조폭이 일본 야쿠자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결연식을 마치고 의형제가 된 이강환은 축하금 1억엔을 받았다. 이때부터 야쿠자의 자금과 영향력이 국내에 유입됐다.

칠성파의 균열은 이때부터였다. 1억엔 사용을 두고 칠성파에 내부 갈등이 생겼다. 먼저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결성했다. 간부였던 김영찬도 신칠성파를 결성하면서 이강환과 갈라섰다.

야쿠자와 손잡은 칠성파는 ‘기업형 범죄조직’에 가까웠다. 두 조직은 부산서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1989년 초 가네야마구미는 이강환의 도움으로 울산 그랜드호텔,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 부지를 사들였다. 우리나라가 야쿠자의 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 대검찰청은 이를 막고자 ‘야쿠자의 국내 유입 대책안’을 마련해 전국 수사기관에 내렸다.

왜소한 체구 소아마비 몸으로 부산 평정
필로폰 기반으로 서울 유흥가까지 장악

1990년대 초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이 실시됐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조승식 검사와 심재륜 특수1부장은 서방파 김태촌을 구속했다. 칠성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지검에 발령받은 조 검사는 부산 조직들을 수사했다. 칠성파 간부들이 체포당하자, 이강환은 서울로 도피했다. 결국 1991년 4월 특수대에 체포돼 부산지검으로 압송됐다.

재판에 넘겨진 이강환은 폭력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신칠성파 두목 김영찬을 난도질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등 10여차례에 폭력 혐의를 받았다.


1992년 공판 과정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강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이 자택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약 8년을 복역한 이강환은 2000년에 출소했다. 당시 나이트클럽 지분 분쟁에 연루된 그는 협박·탈세 등의 혐의로 재구속됐다.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복역 도중 또 다른 혐의로 형량이 추가돼 2003년 8월에 출소했다.

이강환은 16년의 옥고를 치르는 와중에도 두목이었다. 심복들을 접견장에 불러 지시를 내리면서 조직을 관리했다.

출소한 그는 2010년 건설업체 대표에게 3억9500만원을 갈취하고 협박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강력계가 투입됐지만, 이강환은 종적을 감췄다. 결국 지명수배가 떨어졌고, 약 한 달 뒤 경찰에 체포됐다. 구속영장이 법원서 기각됐다. 약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그가 선임한 변호인이 자신을 검거했던 조 검사였다.

야쿠자와 손잡고
기업형 조직화

이강환이 감옥을 드나들면서 신20세기파는 물꼬를 텄다. 앞서 칠성파는 신20세기파와 30년 넘게 대립했다. 칠성파가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영화 <친구>에 묘사됐다. 영화 속 준석(유오성)이 칠성파 조직원이었다. 두목 김형두(배우 기주봉 분)가 이강환을 모델로 했다.

영화 속 살해당한 동수(장동건)는 신20세기파 정모씨다. 칠성파는 2005년 신20세기파 조직원 황모씨를 흉기와 둔기로 폭행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2006년에는 신20세기파가 흉기를 들고 장례식장에 쳐들어와 칠성파 조직원과 난투극 벌였다. 이른바 ‘영락공원 조폭 난입 사건’이다.

긴장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1년에는 칠성파 조직원 13명이 신20세기파 조직원을 집단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2021년에는 해운대서 신20세기파 조직원이 생일파티 도중 시비가 붙어 칠성파 조직원을 공격했다. 이후 칠성파 조직원이 신20세기파 조직원에게 반격을 가했다.

결국 그해 10월에 신20세기파 8명과 칠성파 5명이 맞붙었고 칠성파 조직원 2명이 크게 다쳤다. 사건에 연루된 조직원 등 74명은 지난해 검거돼 이 중 24명이 구속됐다.

신20세기파와 갈등 속에 이강환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그의 팔순잔치가 부산 한 호텔서 열려 경찰이 나섰다. 경찰은 이강환의 입지가 전국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날 전국 전·현직 조폭 수백명이 참석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다행히도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도심 한복판
칼부림 시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폭들을 감시하느라 경찰 인력이 분산됐다. 신20세기파 두목의 결혼식이 지난 6월 부산서 이뤄지자 또다시 경찰이 투입됐다. 강력계 형사 30여명이 호텔과 결혼식장 주변에 배치됐다. 경찰은 방문객들이 쉽게 오도록 부산역과 가까운 중구 호텔을 잡았다고 봤다.

경찰이 우려했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식장에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조폭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호텔 투숙객이 조직원과 충돌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서 조폭들이 칼부림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현 정부의 강경한 대응도 쇠락에 한몫했다. 지난 3월 경찰은 전국 경찰력을 동원해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경찰은 전국 시도 320개 팀, 1539명의 ‘조직폭력 전담수사반’을 동원했다. 갈수록 광역화·지능화되고 있는 조직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부산 20~30대 젊은 조폭들은 FX 마진 불법 거래, 온라인 도박사이트, 가상화폐 시세조작 등에 개입했다. 옛날처럼 해운대 백사장서 파라솔을 팔던 시대는 지났다. 수사망이 촘촘해지자, 조폭은 음성적으로 이권에 개입해 생존법을 모색했다. 사채업, 성매매업소 등을 운영하며 수익 구조도 만들었다. 주식, 가상자산 등 고수익 종목을 알려주고 투자금을 빼돌리는 ‘리딩 사기’에 관여하기도 한다. 

경찰의 이번 집중 단속 대상은 도박사이트, 보호비 갈취, 조폭 개입 건설 현장 불법행위 등이었다. 경찰은 조직 간 집단폭행에도 대응했다. 또 불법 사업을 방지해 수익금을 몰수·추징 보전에 주력했다.

한편, 지난해 검거된 조직폭력배는 3231명이다. 2021년(3027명) 대비 6.7% 증가했다. 광주에서는 조폭 73명이 검거됐다. 대구에서는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폭 72명이 검거됐다.

영화 <친구> 캐릭터 실제 인물
30년 라이벌 신20세기파와 대립

검찰은 최근 논란이 된 전남의 수노아파도 39명을 일괄 기소했다. 이에 따라 20년 이상 활동한 폭력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봤다. 과거 폭력과 갈취를 일삼던 조폭은 적과 아군이 따로 없다. 이권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형태다.


마약을 유통하거나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기 해외로 도피한 경우도 있다. 서울과 중국 등에 사무실을 두고 3조원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15명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범죄단체를 구성했다.

신20세기파도 사실상 쇠퇴하고 있다. 부두목급 간부였던 위경만의 아들 위대한이 대표적인 예다. 어린 시절 야구의 재능을 보인 위대한은 2007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투수의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1군으로 등판하기 전, 학교폭력 과거가 드러나 빈축을 샀다. 스스로 은퇴한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주먹세계로 입성했다.

조폭이 된 위대한은 2016년 6월 재래시장 상인들을 갈취해 구속됐다가 현재는 아프리카 BJ로 활동하고 있다.

이강환의 죽음으로 부산 조폭계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이강환은 지난 19일 새벽, 부산의 한 병원서 숨을 거뒀다.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해 치료받던 중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부산 남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경찰의 우려와 달리 타 조직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2006년부터 뇌경색과 소아마비 후유증을 앓았다. 상·하반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해왔다. 

생전에 그는 2011년 부산 해운대에 호텔서 부하 조직원 한모씨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돼 ‘회장’ 호칭을 허락받은 건 한씨가 처음이었다. 약 7년간 복역을 마치고 2020년에 출소한 그는 후계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씨는 “이강환은 이미 충성 경쟁을 앞세워 후계자를 2~3차례 바꿨다”며 “이강환이 살아있는 한 누구도 보스를 이을 수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 생활
초라한 말년

현재까지 칠성파의 후계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2010년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 난동 사건의 타격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강환의 양성애자 의혹도 내리막길을 자초했다. 2016년 이강환은 동성 간병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2021년에는 자신을 간병하던 20대 부하 조직원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강환 가족은?

2019년 부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는 화환 30개가 세워져 있었다. 여느 가족과 다름없는 장례식이었다.

이강환의 아내는 암투병 중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세간의 우려와 달리 조용히 치러졌다. 

이강환은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싶다는 뜻을 경찰에 밝혔다. 실제로 지인이나 60대 이상 원로급 위주로만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식장 바깥에도 10여명 이상이 모여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산 경찰도 형사와 폭력 1개팀만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강환 아내는 영락공원서 화장된 이후 부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과거와 달리 조폭들이 경조사를 차분히 진행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기업화되면서 위화감 조성 행위를 크게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속칭 ‘어깨들’이 인사를 하는 행위 등은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다. 이씨는 고령인 데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두목이 아니다 보니 조용한 가족장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관리하는 폭력조직의 경조사가 요즘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7년 이강환의 아들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500여명의 조폭이 참석했다.

이강환의 아들 이모씨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철 유통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이씨는 칠성파와 다름 없었다.

앞서 이씨는 투자자 A씨로부터 받은 5억원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자 이에 A씨가 자신을 검찰에 고소하려 하자 돌변했다.

이씨는 윤모씨 등과 함께 A씨를 협박해 조사받지 못하게 했다.

이씨는 자신을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협박에 견디지 못한 A씨는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결국 고소 사건은 각하 처리됐다.

A씨는 “윤씨 등이 이씨가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겁을 줘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남부경찰서는 첩보를 입수하고 보복을 두려워하던 A씨를 설득, 피해자 조서를 받았다.

A씨가 이씨를 고소한 사건도 재수사했다. 이씨는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이씨는 2012년 영광원자력 발전소에 구리를 공급한 뒤 이익금을 배분하겠다며 투자금을 받았다.

사업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A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경찰은 이씨를 주점 업주들의 주대를 갈취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와 대동한 재건용호파와 국이파 소속 조직폭력배 3명을 구속하고 20여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남구와 해운대 일대 주점서 2600만원 상당의 술값을 내지 않았다.

경찰은 윤씨가 살인미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조폭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 등 2명은 사실상 칠성파”라며 “이씨의 운전사와 보디가드 역할을 하고, 이강환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A씨를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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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