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삶과 죽음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4 10:59:32
  • 호수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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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마지막 낭만 주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주먹 세계에 서열 다툼도 예상된다. 경찰의 경계 속에서 조폭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칠성파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등장한 조직이다. 영화는 칠성파와 신20세기파의 다툼을 그렸다. 2021년 5월엔 두 조직의 20대 조직원들이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칠성파는 1950년대에 조직원 7명으로 시작해 이름을 떨쳤다. 1970년대에 초대 두목에게 조직을 물려받은 이강환은 부산 유흥가를 장악했다. 이후 나이트클럽, 필로폰 밀매를 기반으로 서울까지 진출했다. 1980년대에 후발주자로 나선 신20세기파는 칠성파와 30년간 대립했다. 최근 두 조직은 이합집산하며 온라인 도박 등 불법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릴 적
콤플렉스

칠성파는 전국 최대 폭력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 전국 3대 폭력조직을 능가한다는 의미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장악력은 주먹보다는 머리서 나왔다. 선천성 소아마비인 그는 친구들에게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폭력 세계에 들어오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칠성파 초대 두목 이경섭으로부터 조직을 물려받는다. 

이경섭은 이강환의 손윗동서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이강환의 칠성파는 날개를 단다. 특유의 장악력으로 당시 부산의 신20세기파, 역전파, 서면파의 세력을 흡수한다. 칠성파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부산의 유흥업소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필로폰 밀매 등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조직원은 서울로 진출했다.

이강환은 영화 <마약왕>의 실존 인물 이황순과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1980년에 필로폰 제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약 5년간 복역한 이강환은 1985년에 출소했다. 1988년 말에는 부산·경남 지역의 조직과 연대한 화랑신우회를 결성한다. 발족 당시 회원은 약 300명이었다. 종로 건달 이정재의 동대문사단과 흡사하다. 1988년 11월엔 칠성파 간부 8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오사카의 가네야마구미파 두목 가네야마 고사부로와 의형제를 맺기 위해서다.

국내 조폭이 일본 야쿠자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결연식을 마치고 의형제가 된 이강환은 축하금 1억엔을 받았다. 이때부터 야쿠자의 자금과 영향력이 국내에 유입됐다.

칠성파의 균열은 이때부터였다. 1억엔 사용을 두고 칠성파에 내부 갈등이 생겼다. 먼저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결성했다. 간부였던 김영찬도 신칠성파를 결성하면서 이강환과 갈라섰다.

야쿠자와 손잡은 칠성파는 ‘기업형 범죄조직’에 가까웠다. 두 조직은 부산서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1989년 초 가네야마구미는 이강환의 도움으로 울산 그랜드호텔,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 부지를 사들였다. 우리나라가 야쿠자의 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 대검찰청은 이를 막고자 ‘야쿠자의 국내 유입 대책안’을 마련해 전국 수사기관에 내렸다.

왜소한 체구 소아마비 몸으로 부산 평정
필로폰 기반으로 서울 유흥가까지 장악

1990년대 초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이 실시됐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조승식 검사와 심재륜 특수1부장은 서방파 김태촌을 구속했다. 칠성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지검에 발령받은 조 검사는 부산 조직들을 수사했다. 칠성파 간부들이 체포당하자, 이강환은 서울로 도피했다. 결국 1991년 4월 특수대에 체포돼 부산지검으로 압송됐다.

재판에 넘겨진 이강환은 폭력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신칠성파 두목 김영찬을 난도질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등 10여차례에 폭력 혐의를 받았다.


1992년 공판 과정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강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이 자택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약 8년을 복역한 이강환은 2000년에 출소했다. 당시 나이트클럽 지분 분쟁에 연루된 그는 협박·탈세 등의 혐의로 재구속됐다.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복역 도중 또 다른 혐의로 형량이 추가돼 2003년 8월에 출소했다.

이강환은 16년의 옥고를 치르는 와중에도 두목이었다. 심복들을 접견장에 불러 지시를 내리면서 조직을 관리했다.

출소한 그는 2010년 건설업체 대표에게 3억9500만원을 갈취하고 협박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강력계가 투입됐지만, 이강환은 종적을 감췄다. 결국 지명수배가 떨어졌고, 약 한 달 뒤 경찰에 체포됐다. 구속영장이 법원서 기각됐다. 약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그가 선임한 변호인이 자신을 검거했던 조 검사였다.

야쿠자와 손잡고
기업형 조직화

이강환이 감옥을 드나들면서 신20세기파는 물꼬를 텄다. 앞서 칠성파는 신20세기파와 30년 넘게 대립했다. 칠성파가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영화 <친구>에 묘사됐다. 영화 속 준석(유오성)이 칠성파 조직원이었다. 두목 김형두(배우 기주봉 분)가 이강환을 모델로 했다.

영화 속 살해당한 동수(장동건)는 신20세기파 정모씨다. 칠성파는 2005년 신20세기파 조직원 황모씨를 흉기와 둔기로 폭행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2006년에는 신20세기파가 흉기를 들고 장례식장에 쳐들어와 칠성파 조직원과 난투극 벌였다. 이른바 ‘영락공원 조폭 난입 사건’이다.

긴장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1년에는 칠성파 조직원 13명이 신20세기파 조직원을 집단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2021년에는 해운대서 신20세기파 조직원이 생일파티 도중 시비가 붙어 칠성파 조직원을 공격했다. 이후 칠성파 조직원이 신20세기파 조직원에게 반격을 가했다.

결국 그해 10월에 신20세기파 8명과 칠성파 5명이 맞붙었고 칠성파 조직원 2명이 크게 다쳤다. 사건에 연루된 조직원 등 74명은 지난해 검거돼 이 중 24명이 구속됐다.

신20세기파와 갈등 속에 이강환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그의 팔순잔치가 부산 한 호텔서 열려 경찰이 나섰다. 경찰은 이강환의 입지가 전국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날 전국 전·현직 조폭 수백명이 참석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다행히도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도심 한복판
칼부림 시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폭들을 감시하느라 경찰 인력이 분산됐다. 신20세기파 두목의 결혼식이 지난 6월 부산서 이뤄지자 또다시 경찰이 투입됐다. 강력계 형사 30여명이 호텔과 결혼식장 주변에 배치됐다. 경찰은 방문객들이 쉽게 오도록 부산역과 가까운 중구 호텔을 잡았다고 봤다.

경찰이 우려했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식장에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조폭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호텔 투숙객이 조직원과 충돌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서 조폭들이 칼부림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현 정부의 강경한 대응도 쇠락에 한몫했다. 지난 3월 경찰은 전국 경찰력을 동원해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경찰은 전국 시도 320개 팀, 1539명의 ‘조직폭력 전담수사반’을 동원했다. 갈수록 광역화·지능화되고 있는 조직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부산 20~30대 젊은 조폭들은 FX 마진 불법 거래, 온라인 도박사이트, 가상화폐 시세조작 등에 개입했다. 옛날처럼 해운대 백사장서 파라솔을 팔던 시대는 지났다. 수사망이 촘촘해지자, 조폭은 음성적으로 이권에 개입해 생존법을 모색했다. 사채업, 성매매업소 등을 운영하며 수익 구조도 만들었다. 주식, 가상자산 등 고수익 종목을 알려주고 투자금을 빼돌리는 ‘리딩 사기’에 관여하기도 한다. 

경찰의 이번 집중 단속 대상은 도박사이트, 보호비 갈취, 조폭 개입 건설 현장 불법행위 등이었다. 경찰은 조직 간 집단폭행에도 대응했다. 또 불법 사업을 방지해 수익금을 몰수·추징 보전에 주력했다.

한편, 지난해 검거된 조직폭력배는 3231명이다. 2021년(3027명) 대비 6.7% 증가했다. 광주에서는 조폭 73명이 검거됐다. 대구에서는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폭 72명이 검거됐다.

영화 <친구> 캐릭터 실제 인물
30년 라이벌 신20세기파와 대립

검찰은 최근 논란이 된 전남의 수노아파도 39명을 일괄 기소했다. 이에 따라 20년 이상 활동한 폭력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봤다. 과거 폭력과 갈취를 일삼던 조폭은 적과 아군이 따로 없다. 이권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형태다.


마약을 유통하거나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기 해외로 도피한 경우도 있다. 서울과 중국 등에 사무실을 두고 3조원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15명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범죄단체를 구성했다.

신20세기파도 사실상 쇠퇴하고 있다. 부두목급 간부였던 위경만의 아들 위대한이 대표적인 예다. 어린 시절 야구의 재능을 보인 위대한은 2007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투수의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1군으로 등판하기 전, 학교폭력 과거가 드러나 빈축을 샀다. 스스로 은퇴한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주먹세계로 입성했다.

조폭이 된 위대한은 2016년 6월 재래시장 상인들을 갈취해 구속됐다가 현재는 아프리카 BJ로 활동하고 있다.

이강환의 죽음으로 부산 조폭계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이강환은 지난 19일 새벽, 부산의 한 병원서 숨을 거뒀다.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해 치료받던 중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부산 남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경찰의 우려와 달리 타 조직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2006년부터 뇌경색과 소아마비 후유증을 앓았다. 상·하반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해왔다. 

생전에 그는 2011년 부산 해운대에 호텔서 부하 조직원 한모씨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돼 ‘회장’ 호칭을 허락받은 건 한씨가 처음이었다. 약 7년간 복역을 마치고 2020년에 출소한 그는 후계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씨는 “이강환은 이미 충성 경쟁을 앞세워 후계자를 2~3차례 바꿨다”며 “이강환이 살아있는 한 누구도 보스를 이을 수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 생활
초라한 말년

현재까지 칠성파의 후계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2010년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 난동 사건의 타격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강환의 양성애자 의혹도 내리막길을 자초했다. 2016년 이강환은 동성 간병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2021년에는 자신을 간병하던 20대 부하 조직원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강환 가족은?

2019년 부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는 화환 30개가 세워져 있었다. 여느 가족과 다름없는 장례식이었다.

이강환의 아내는 암투병 중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세간의 우려와 달리 조용히 치러졌다. 

이강환은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싶다는 뜻을 경찰에 밝혔다. 실제로 지인이나 60대 이상 원로급 위주로만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식장 바깥에도 10여명 이상이 모여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산 경찰도 형사와 폭력 1개팀만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강환 아내는 영락공원서 화장된 이후 부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과거와 달리 조폭들이 경조사를 차분히 진행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기업화되면서 위화감 조성 행위를 크게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속칭 ‘어깨들’이 인사를 하는 행위 등은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다. 이씨는 고령인 데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두목이 아니다 보니 조용한 가족장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관리하는 폭력조직의 경조사가 요즘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7년 이강환의 아들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500여명의 조폭이 참석했다.

이강환의 아들 이모씨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철 유통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이씨는 칠성파와 다름 없었다.

앞서 이씨는 투자자 A씨로부터 받은 5억원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자 이에 A씨가 자신을 검찰에 고소하려 하자 돌변했다.

이씨는 윤모씨 등과 함께 A씨를 협박해 조사받지 못하게 했다.

이씨는 자신을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협박에 견디지 못한 A씨는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결국 고소 사건은 각하 처리됐다.

A씨는 “윤씨 등이 이씨가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겁을 줘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남부경찰서는 첩보를 입수하고 보복을 두려워하던 A씨를 설득, 피해자 조서를 받았다.

A씨가 이씨를 고소한 사건도 재수사했다. 이씨는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이씨는 2012년 영광원자력 발전소에 구리를 공급한 뒤 이익금을 배분하겠다며 투자금을 받았다.

사업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A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경찰은 이씨를 주점 업주들의 주대를 갈취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와 대동한 재건용호파와 국이파 소속 조직폭력배 3명을 구속하고 20여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남구와 해운대 일대 주점서 2600만원 상당의 술값을 내지 않았다.

경찰은 윤씨가 살인미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조폭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 등 2명은 사실상 칠성파”라며 “이씨의 운전사와 보디가드 역할을 하고, 이강환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A씨를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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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