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삶과 죽음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4 10:59:32
  • 호수 14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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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미문’ 마지막 낭만 주먹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칠성파 전 두목 이강환이 사망했다. 그의 죽음으로 주먹 세계에 서열 다툼도 예상된다. 경찰의 경계 속에서 조폭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칠성파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등장한 조직이다. 영화는 칠성파와 신20세기파의 다툼을 그렸다. 2021년 5월엔 두 조직의 20대 조직원들이 패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칠성파는 1950년대에 조직원 7명으로 시작해 이름을 떨쳤다. 1970년대에 초대 두목에게 조직을 물려받은 이강환은 부산 유흥가를 장악했다. 이후 나이트클럽, 필로폰 밀매를 기반으로 서울까지 진출했다. 1980년대에 후발주자로 나선 신20세기파는 칠성파와 30년간 대립했다. 최근 두 조직은 이합집산하며 온라인 도박 등 불법 사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릴 적
콤플렉스

칠성파는 전국 최대 폭력조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 전국 3대 폭력조직을 능가한다는 의미다.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장악력은 주먹보다는 머리서 나왔다. 선천성 소아마비인 그는 친구들에게 구타당하기 일쑤였다. 폭력 세계에 들어오면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후문이다. 이어 칠성파 초대 두목 이경섭으로부터 조직을 물려받는다. 

이경섭은 이강환의 손윗동서이기도 하다. 1970년대 말 이강환의 칠성파는 날개를 단다. 특유의 장악력으로 당시 부산의 신20세기파, 역전파, 서면파의 세력을 흡수한다. 칠성파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부산의 유흥업소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필로폰 밀매 등으로 부를 축적한 일부 조직원은 서울로 진출했다.

이강환은 영화 <마약왕>의 실존 인물 이황순과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 결국 1980년에 필로폰 제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약 5년간 복역한 이강환은 1985년에 출소했다. 1988년 말에는 부산·경남 지역의 조직과 연대한 화랑신우회를 결성한다. 발족 당시 회원은 약 300명이었다. 종로 건달 이정재의 동대문사단과 흡사하다. 1988년 11월엔 칠성파 간부 8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갔다. 오사카의 가네야마구미파 두목 가네야마 고사부로와 의형제를 맺기 위해서다.

국내 조폭이 일본 야쿠자와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결연식을 마치고 의형제가 된 이강환은 축하금 1억엔을 받았다. 이때부터 야쿠자의 자금과 영향력이 국내에 유입됐다.

칠성파의 균열은 이때부터였다. 1억엔 사용을 두고 칠성파에 내부 갈등이 생겼다. 먼저 부두목 천달남이 영도파를 결성했다. 간부였던 김영찬도 신칠성파를 결성하면서 이강환과 갈라섰다.

야쿠자와 손잡은 칠성파는 ‘기업형 범죄조직’에 가까웠다. 두 조직은 부산서 합법적인 사업을 시작한다. 1989년 초 가네야마구미는 이강환의 도움으로 울산 그랜드호텔, 부산 서구 서대신동 꽃마을 부지를 사들였다. 우리나라가 야쿠자의 영향권에 들어온 것이다. 대검찰청은 이를 막고자 ‘야쿠자의 국내 유입 대책안’을 마련해 전국 수사기관에 내렸다.

왜소한 체구 소아마비 몸으로 부산 평정
필로폰 기반으로 서울 유흥가까지 장악

1990년대 초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범죄와의 전쟁이 실시됐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 조승식 검사와 심재륜 특수1부장은 서방파 김태촌을 구속했다. 칠성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지검에 발령받은 조 검사는 부산 조직들을 수사했다. 칠성파 간부들이 체포당하자, 이강환은 서울로 도피했다. 결국 1991년 4월 특수대에 체포돼 부산지검으로 압송됐다.

재판에 넘겨진 이강환은 폭력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신칠성파 두목 김영찬을 난도질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히는 등 10여차례에 폭력 혐의를 받았다.


1992년 공판 과정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강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이 자택 앞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약 8년을 복역한 이강환은 2000년에 출소했다. 당시 나이트클럽 지분 분쟁에 연루된 그는 협박·탈세 등의 혐의로 재구속됐다. 2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복역 도중 또 다른 혐의로 형량이 추가돼 2003년 8월에 출소했다.

이강환은 16년의 옥고를 치르는 와중에도 두목이었다. 심복들을 접견장에 불러 지시를 내리면서 조직을 관리했다.

출소한 그는 2010년 건설업체 대표에게 3억9500만원을 갈취하고 협박했다. 체포영장이 발부돼 강력계가 투입됐지만, 이강환은 종적을 감췄다. 결국 지명수배가 떨어졌고, 약 한 달 뒤 경찰에 체포됐다. 구속영장이 법원서 기각됐다. 약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이때 그가 선임한 변호인이 자신을 검거했던 조 검사였다.

야쿠자와 손잡고
기업형 조직화

이강환이 감옥을 드나들면서 신20세기파는 물꼬를 텄다. 앞서 칠성파는 신20세기파와 30년 넘게 대립했다. 칠성파가 신20세기파 행동대장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은 영화 <친구>에 묘사됐다. 영화 속 준석(유오성)이 칠성파 조직원이었다. 두목 김형두(배우 기주봉 분)가 이강환을 모델로 했다.

영화 속 살해당한 동수(장동건)는 신20세기파 정모씨다. 칠성파는 2005년 신20세기파 조직원 황모씨를 흉기와 둔기로 폭행하기도 했다. 이에 맞서 2006년에는 신20세기파가 흉기를 들고 장례식장에 쳐들어와 칠성파 조직원과 난투극 벌였다. 이른바 ‘영락공원 조폭 난입 사건’이다.

긴장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2011년에는 칠성파 조직원 13명이 신20세기파 조직원을 집단폭행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2021년에는 해운대서 신20세기파 조직원이 생일파티 도중 시비가 붙어 칠성파 조직원을 공격했다. 이후 칠성파 조직원이 신20세기파 조직원에게 반격을 가했다.

결국 그해 10월에 신20세기파 8명과 칠성파 5명이 맞붙었고 칠성파 조직원 2명이 크게 다쳤다. 사건에 연루된 조직원 등 74명은 지난해 검거돼 이 중 24명이 구속됐다.

신20세기파와 갈등 속에 이강환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10월에는 그의 팔순잔치가 부산 한 호텔서 열려 경찰이 나섰다. 경찰은 이강환의 입지가 전국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이날 전국 전·현직 조폭 수백명이 참석하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다행히도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도심 한복판
칼부림 시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조폭들을 감시하느라 경찰 인력이 분산됐다. 신20세기파 두목의 결혼식이 지난 6월 부산서 이뤄지자 또다시 경찰이 투입됐다. 강력계 형사 30여명이 호텔과 결혼식장 주변에 배치됐다. 경찰은 방문객들이 쉽게 오도록 부산역과 가까운 중구 호텔을 잡았다고 봤다.

경찰이 우려했던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식장에는 결혼식의 주인공이 조폭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호텔 투숙객이 조직원과 충돌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심 한복판서 조폭들이 칼부림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현 정부의 강경한 대응도 쇠락에 한몫했다. 지난 3월 경찰은 전국 경찰력을 동원해 ‘조폭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경찰은 전국 시도 320개 팀, 1539명의 ‘조직폭력 전담수사반’을 동원했다. 갈수록 광역화·지능화되고 있는 조직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부산 20~30대 젊은 조폭들은 FX 마진 불법 거래, 온라인 도박사이트, 가상화폐 시세조작 등에 개입했다. 옛날처럼 해운대 백사장서 파라솔을 팔던 시대는 지났다. 수사망이 촘촘해지자, 조폭은 음성적으로 이권에 개입해 생존법을 모색했다. 사채업, 성매매업소 등을 운영하며 수익 구조도 만들었다. 주식, 가상자산 등 고수익 종목을 알려주고 투자금을 빼돌리는 ‘리딩 사기’에 관여하기도 한다. 

경찰의 이번 집중 단속 대상은 도박사이트, 보호비 갈취, 조폭 개입 건설 현장 불법행위 등이었다. 경찰은 조직 간 집단폭행에도 대응했다. 또 불법 사업을 방지해 수익금을 몰수·추징 보전에 주력했다.

한편, 지난해 검거된 조직폭력배는 3231명이다. 2021년(3027명) 대비 6.7% 증가했다. 광주에서는 조폭 73명이 검거됐다. 대구에서는 총 1조8000억원 규모의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조폭 72명이 검거됐다.

영화 <친구> 캐릭터 실제 인물
30년 라이벌 신20세기파와 대립

검찰은 최근 논란이 된 전남의 수노아파도 39명을 일괄 기소했다. 이에 따라 20년 이상 활동한 폭력조직이 사실상 와해된 것으로 봤다. 과거 폭력과 갈취를 일삼던 조폭은 적과 아군이 따로 없다. 이권에 따라 조직을 운영하는 형태다.


마약을 유통하거나 불법 도박 사이트를 만들기 해외로 도피한 경우도 있다. 서울과 중국 등에 사무실을 두고 3조원대 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15명 역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사이트를 운영하기 위해 범죄단체를 구성했다.

신20세기파도 사실상 쇠퇴하고 있다. 부두목급 간부였던 위경만의 아들 위대한이 대표적인 예다. 어린 시절 야구의 재능을 보인 위대한은 2007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해 투수의 재능을 보였다. 그러다 1군으로 등판하기 전, 학교폭력 과거가 드러나 빈축을 샀다. 스스로 은퇴한 그는  아버지의 길을 따라 주먹세계로 입성했다.

조폭이 된 위대한은 2016년 6월 재래시장 상인들을 갈취해 구속됐다가 현재는 아프리카 BJ로 활동하고 있다.

이강환의 죽음으로 부산 조폭계는 새 국면을 맞이했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이강환은 지난 19일 새벽, 부산의 한 병원서 숨을 거뒀다. 평소 앓던 지병이 악화해 치료받던 중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부산 남구의 한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경찰의 우려와 달리 타 조직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2006년부터 뇌경색과 소아마비 후유증을 앓았다. 상·하반신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존해 생활해왔다. 

생전에 그는 2011년 부산 해운대에 호텔서 부하 조직원 한모씨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공식 후계자로 지명돼 ‘회장’ 호칭을 허락받은 건 한씨가 처음이었다. 약 7년간 복역을 마치고 2020년에 출소한 그는 후계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씨는 “이강환은 이미 충성 경쟁을 앞세워 후계자를 2~3차례 바꿨다”며 “이강환이 살아있는 한 누구도 보스를 이을 수 없다”고 말했다.

휠체어 생활
초라한 말년

현재까지 칠성파의 후계자는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다. 특히, 2010년 부산 영락공원 장례식장 난동 사건의 타격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강환의 양성애자 의혹도 내리막길을 자초했다. 2016년 이강환은 동성 간병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2021년에는 자신을 간병하던 20대 부하 조직원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했다. 

<smk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강환 가족은?

2019년 부산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는 화환 30개가 세워져 있었다. 여느 가족과 다름없는 장례식이었다.

이강환의 아내는 암투병 중 먼저 세상을 떠났다. 당시 세간의 우려와 달리 조용히 치러졌다. 

이강환은 조용히 장례를 치루고 싶다는 뜻을 경찰에 밝혔다. 실제로 지인이나 60대 이상 원로급 위주로만 조문이 이어졌다.

장례식장 바깥에도 10여명 이상이 모여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부산 경찰도 형사와 폭력 1개팀만 현장에 나와 있었다.

이강환 아내는 영락공원서 화장된 이후 부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과거와 달리 조폭들이 경조사를 차분히 진행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기업화되면서 위화감 조성 행위를 크게 줄인 것으로 보고 있다.

속칭 ‘어깨들’이 인사를 하는 행위 등은 대부분 사라진 상황이다. 이씨는 고령인 데다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두목이 아니다 보니 조용한 가족장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관리하는 폭력조직의 경조사가 요즘은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된다”고 말했다.

불과 10년 전에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2007년 이강환의 아들 결혼식이 열렸을 때는 500여명의 조폭이 참석했다.

이강환의 아들 이모씨는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철 유통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이씨는 칠성파와 다름 없었다.

앞서 이씨는 투자자 A씨로부터 받은 5억원의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자 이에 A씨가 자신을 검찰에 고소하려 하자 돌변했다.

이씨는 윤모씨 등과 함께 A씨를 협박해 조사받지 못하게 했다.

이씨는 자신을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강조했다.

협박에 견디지 못한 A씨는 조사를 받지 않았으며 결국 고소 사건은 각하 처리됐다.

A씨는 “윤씨 등이 이씨가 칠성파 두목 이강환의 아들이라고 말하면서 겁을 줘 진술을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남부경찰서는 첩보를 입수하고 보복을 두려워하던 A씨를 설득, 피해자 조서를 받았다.

A씨가 이씨를 고소한 사건도 재수사했다. 이씨는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앞서 이씨는 2012년 영광원자력 발전소에 구리를 공급한 뒤 이익금을 배분하겠다며 투자금을 받았다.

사업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A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투자금 일부를 돌려줬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또 경찰은 이씨를 주점 업주들의 주대를 갈취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와 대동한 재건용호파와 국이파 소속 조직폭력배 3명을 구속하고 20여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남구와 해운대 일대 주점서 2600만원 상당의 술값을 내지 않았다.

경찰은 윤씨가 살인미수죄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조폭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 등 2명은 사실상 칠성파”라며 “이씨의 운전사와 보디가드 역할을 하고, 이강환의 아들이라는 점을 내세워 A씨를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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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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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