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과거사 사과' 진의 전격해부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28 17: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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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여왕 "사과 한마디면 끝나?"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지난 9월24일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입장을 전격 표명했다. 박 후보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후 단 한번도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심지어 홍일표 전 대변인은 박 후보에게 보고 없이 사과라는 표현을 썼다가 대변인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했다. 박 후보의 이번 사과가 파격적인 이유다. 박 후보의 파격적인 사과 뒤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지난 24일 여의도 당사에서 깜짝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 아닌 대선후보로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추석 전 박 후보가 과거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는 관측은 많았지만 시기는 예상보다 빨랐다. 내용 역시 파격 그 자체였다.

파격적 사과  

박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며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한때 5·16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치켜세웠던 것과 비교하면 측근들조차 깜짝 놀란 전향적인 평가였다. 그러면서 박 후보는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본 분과 가족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의 개최는 박 후보가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회견문도 본인이 직접 작성했다. 측근들조차 마지막까지 기자회견문의 전체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할 만큼 박 후보는 회견문을 수차례 수정했다고 한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회견 직후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수위의 발언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단 전문가들은 박 후보의 사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으로 그동안 박 후보의 발목을 족쇄처럼 붙잡던 과거사 논란은 어느정도 마무리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선 상대후보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도 박 후보의 사과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후보가 야권의 요구대로 전향적 사과를 한 만큼 이 문제를 더 이상 물고 늘어진다면 오히려 야권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딸이 아버지 무덤에 침 뱉는 것을 국민이 진정 원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울먹이는 듯 한 박 후보의 목소리는 유권자들의 감성까지 자극했다는 평가다. 이 문장은 당초 초안에는 없던 내용이지만 박 후보가 직접 추가했다고 한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인의 좌익 활동 전력이 거론되자 "그러면 제가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고 반문한 것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대목이었다.

박 후보는 또 아버지의 과오에 대해 사과를 하긴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반드시 국민을 잘 살게 하고야 말겠다는 간절한 목표와 고뇌가 진심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당시 불가피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을 항변함으로써 박 후보의 사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보수층을 최대한 위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었다. 한 전문가는 "이번 사과는 분명 향후 대선정국에서 지지율 회복에 도움이 되겠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만약 박 후보가 이 같은 수준의 사과를 대통합 행보 초반에 했더라면 대통합 행보도 크게 탄력을 받았을 것이고 지금도 여전히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 후보는 그동안 과거사 논란에 대해 '역사적 판단에 맡기자'며 버티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지지율이 하락해 위기에 처하니까 억지로 사과를 한 모양새가 됐다. 당연히 진정성 논란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혁당 유가족들 역시 박 후보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도층 얻을까? 보수층 잃을까? 표 득실 계산 복잡
용기에는 박수를, 진정성은 의심…추석 민심 향방은?

또 일부 보수층은 박 후보의 사과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박 후보의 사과에 대해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라며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조갑제닷컴에 올린 글에서 "좌익들은 박 후보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배신당한 보수는 기권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대통령 선거에서 지지 세력을 배신하고 아버지와 조국을 깎아내림으로써 표를 구걸한 이가 당선된 예는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향적 사과에도 불구하고 박 후보의 지지율은 여전히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박 후보의 지지율 하락세는 보수층의 이탈보다는 전날 발생한 김재원 대변인 내정자의 '막말 파문'의 영향이 더 컸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박 후보의 기자회견 내용 자체는 높게 평가한다"면서 "만약 김재원 의원의 막말 파문만 없었다면 분명히 지지율 상승 효과를 누렸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박 후보가 전격적인 사과를 결정한 배경에도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 후보는 평소 한번 피력한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는 스타일로 유명했다. 과거사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박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과거사 문제로 시달렸지만 "역사의 판단에 맡긴다"는 입장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전문가들은 계속된 지지율 하락이 이번 사과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대선 국면 초반승부처로 여겨지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하락세가 이어졌던 것이 결정적으로 박 후보의 입장변화을 이끌어 냈다는 분석이다. 추석을 앞둔 박 후보의 사과는 일단 추석 민심을 다독이는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지지율 하락을 견디다 못해 억지로 사과한 것 아니냐는 여론의 비판은 박 후보에게 큰 부담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쟁점은 박 후보가 이 같은 사과에 대해 어떻게 진정성을 인정받는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쟁점은 진정성

박 후보 측은 이와 관련한 후속 조치를 이미 준비 중이다. 박 후보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이미 인선 작업이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대통합위원회는 박 후보가 집권하게 된다면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전태일 재단을 재방문하거나 인혁당 유족을 방문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정치전문가는 "일단 박 후보의 전향적 사과에도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는 모양새"라며 "하지만 앞으로 박 후보가 어떤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이냐에 따라 위기로 여겨졌던 과거사 문제는 오히려 지지율 반등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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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