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답답한 연금 해법을 묻다 -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폴리페서에 책임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현재 한국의 연금 기금 적립액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다가올 미래에 기금 고갈로 인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함이 퍼져 있다. 이에 대해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갈된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갈은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문제다.” 사회복지학과 숭실대 허준수 교수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연금개혁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요시사>가 허 교수를 만나 현 국민연금 제도의 문제점, 개선책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허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공적연금 종류는?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는 전 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으로 구분돼있다. 국민연금(89.2%)은 1998년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수직역연금(11.7%)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이 있으며 소수의 관련 직군 종사자들이 가입한다.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반면, 특수직역연금은 많이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2030년 연금제도가 시한폭탄이 된다는 우려가 많다

▲사실 ‘시한폭탄’이라기보다는 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라고 써야 한다. 공적연금 종류에 따라 기금의 고갈시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현행제도 유지 시(국민연금 재정 추계 위원회 추계 결과) 적립 기금은 2040년까지 증가해 최대 1755조원에 이르고 2055년까지 유지된다. 현재 1000조원 정도 적립 기금이 있는데 이게 고갈되는 것이다. 


-한국은 연금 규모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기금 고갈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수급자가 증가해서다. 한국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서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화율은 2045년 30%에 달할 예정이다. 기대수명 역시 1970년 61.7세서 지난해 83.8세로 증가했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 고령인구도 빠르게 급증한다. 현재 2020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가 532만명인데, 앞으로 2055년이 되면 2119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핵심은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닥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리 대비하면 된다. 언론에 언제 받을지도 모르고 맨날 기금은 고갈된다고 짚는데, 이건 잘못된 보도다. 기금의 적립 방식이나 부과 방식은 한국이 전 세계 1등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문제는 뭔가?

▲출생율이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연금 수급자는 증가하고, 연금 납부자들은 감소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제 성장률도 둔화 중인데 연금 조성 재원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연금개혁이 필요하다. 

-결국 저출생 문제가 연금 문제까지로 이어지는 건가?


▲복지 선진 국가라고 하는 나라는 대부분 부과식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꺼내서 쓴다는 느낌인데 이 방식이 한국 정서에는 딱 맞다. 해외는 이미 기금이 고갈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낸 세금과 정부의 기여금을 통해서 현재 연금 수급자에게 지원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노인 인구 고령화 속도를 늦춘다. 연금은 결국 비율 싸움으로 젊은 사람이 많으면 된다. 미국의 고령화 수준은 한국보다 높은데 전체로 따지면 젊은 층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1년에 100만명씩 이민자들을 외국서 수혈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생산 가능 인구가 확 늘었다. 

-한국은 적립식을 택하고 있다

▲적립식 방법을 택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다. 이들 국가는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부과식도 일부 혼합하고 있다. 부과식만 하는 나라는 독일, 스웨덴, 일본이다. 독일, 스웨덴은 흔히 복지 국가로 불린다.

저출생으로 조성 재원 줄어들 것
과감하게 소득대체율 부과 높여야

독일은 보험료율이 18% 정도로, 연금 역사가 가장 길다. 부과식과 함께 재정 분배 기능을 통해 운용한다. 한국은적립식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부과식으로 하면 된다. 사실 기금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계성을 확보하지 않아 문제다. 

-연금 고갈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지금부터 23년 후까지는 탄탄하다. 5년마다 재정을 재계산해서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까 사회적으로 논의하면 된다. 완전히 소진되면 부과식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1인 1연금 제도로 가령, 가구에 4명이 있고, 노동시장서 일을 하면 4개의 연금이 있는 셈이다.

한국은 연금의 역사가 짧아 고령층은 연금이 아예 없거나 받을 수 있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다. 그분들에게는 연금의 이동을 보장하지 않았다. 

A라는 산업서 B로 이동하면 중간에 정산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이후로 납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년기에 접어드니 받는 돈이 없다. 한국은 연금 수급자 30%를 제외하고, 소득 하위 70%에 대해 정부가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초연금으로 20조원을, 국민연금은 30조원을 지출했다. 합치면 50조원 규모로 2021년 50만원서 60만원까지 증가했다. 가입자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기초연금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수직역연금의 기금 대부분은 이미 고갈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2001년 이미 고갈됐다. 2001년 처음 투입한 보전금은 현재 5조원 규모다. 군인연금은 1973년에 고갈이 된 상황이고, 올해 국고 약 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학연금은 2049년 고갈 예정이다. 변수는 기금 투자의 수익률이다. 투자 수익률이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을 2년 늦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금 보험료율 2%p 인상과 동일한 효과다. 최근 20년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4.5% 정도다.

-어느 부분을 먼저 개선해야 하나?

▲보험료율이다. 한국은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에 9% 보험료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기여율이다. 사용자가 4.5%, 노동 4.5%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또 소득대체율이라는 게 있다. 연금 수급자가 돼 과거 근로 노동 기간에 있던 급여서 소득을 얼마나 대체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지다. 100만원을 벌었으면 40만원을 받는다. 

고갈 후 부과식 채택해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실패

현재 국민연금 1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연금 수준은 60만원 전후인데 이 정도로는 소득 보장을 하지 못한다. 결국 기여율,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수급 연령 인상, 연금액을 정하는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금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또, 공적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경우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복지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서 활용하는 부과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해외는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가?

▲독일의 경우 보험료가 19.5%, 덴마크는 18%, 스웨덴은 16.5% 정도로 굉장히 많이 낸다. 소득 대체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물론, 많이 내는 만큼 돌려받는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외국 연금의 차이는 총가입 기간이다. 한국은 남성,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 25세를 전후해 노동시장에 진출했다가 45~50세 전후로 빠진다.

전체적인 정년 연령은 60세지만 대부분 50대에 일자리서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월급이 적어져 기여금이 줄어들고, 실업이 생기기도 한다.

외국은 연금의 역사가 100년 이상 된다. 대부분 일자리도 정년이 보장돼있어 퇴직 시 국민연금으로 받는 소득이 굉장히 높다. 그에 반해 한국은 일하는 기간이 20년 내외인 데다, 주 일자리서 나왔을 겨우 3대 업종으로 빠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총 소득 및 가입 기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즉,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의 주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보고서에 의하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회원국 평균은 42.2%고, 한국은 31.2%로 11%p가 낮은 셈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40년 가입 시 기준으로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군복무 ▲실업 크레딧 등 사회적 경제적 연금 약자에게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저소득자에 대한 국가 보험료 지원도 늘려야 한다. 

-연금의 가입 기간과 가입 대상도 고려할 사안으로 보인다

▲가입 기간, 가입 대상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외국 연금 가입자의 정년 연령은 65세 전후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정년 연령은 60세 미만이 대부분으로 외국보다 가입 기간이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가입 대상 확대는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중요한 정책 방안인데 가입자는 고령화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가입 대상을 확대하면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형평성 측면서도 중요하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다. 가입 대상 확대를 통해 소득이 낮은 사람도 가입하도록 하면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 대상을 확대(현재 10인 미만 사업장에만 적용)하고, 앞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보험료를 중앙정부가 소득계층별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역대 정부서도 계속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연금개혁이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건 사실이다. 여야가 협력해야 가능한 부분으로 협치를 해야 한다. 서로 공방만 벌이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처음 연금개혁을 띄웠을 때, 소득 대체율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면서 손을 댔다. 다음 주자가 노무현정부때였는데, 소득 대체율이 하락해 50%까지로 올리려고 했다.

노인만을 위한 제도 아냐
50년, 100년 뒤 미래봐야

하지만, 여야의 대립이 강했고 이 때문에 기초연금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국민연금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결국 핵심적인 제도 개선이 아닌, 땜질 처방한 것인데 현재 그게 30조원이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정부서도 연금개혁을 하겠다며 소득 대체율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 등의 네 가지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순히 방안만 제시하는 데 그쳤다. 

-윤석열정부도 연금 개혁을 띄웠다

▲윤석열정부 들어 국회 차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합의문 도출도 하지 못했고 그동안 논의 경과만 정리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한쪽은 보험료와 소득 대체율을 높여 온전히 노후 보장을 하도록, 다른 한쪽은 소득 대체율도 40%로 줄이고 보험료율도 줄이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만 수급 개시 연령이 2023년 63세, 2033년 65세 등으로 상향 조정되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공유했었다. 국민적 저항과 경제 상황도 개혁을 좌우하는 부분으로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 연령 상향 등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이 많아 저항에 부딪히기 쉽다. 

-여야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탈피해서 50년, 100년 뒤 미래를 봐야 한다. 초저출생의 초고령화 사회서 아이들도 줄어들고 노동자도 사라진다. 노인이 많아지면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데 돌파구는 국민연금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치권이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고갈 이야기만 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 자문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이 연금을 기획했던 사람들인데, 이들 폴리페서(Politicsfessor,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책임이 있다. 연금 기금의 고갈, 노후 소득 보장, 노인 빈곤, 저출생 인구 고령화 등이 함축적으로 섞여 있는데, 이를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연금은 지금의 노인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다. 미래에 노인이 될 세대와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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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