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대담> 답답한 연금 해법을 묻다 -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폴리페서에 책임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현재 한국의 연금 기금 적립액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선 다가올 미래에 기금 고갈로 인해 연금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불안함이 퍼져 있다. 이에 대해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갈된 이후의 대처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갈은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문제다.” 사회복지학과 숭실대 허준수 교수는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연금개혁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요시사>가 허 교수를 만나 현 국민연금 제도의 문제점, 개선책 등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허 교수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공적연금 종류는?

▲한국의 공적연금 제도는 전 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으로 구분돼있다. 국민연금(89.2%)은 1998년부터 시작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수직역연금(11.7%)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이 있으며 소수의 관련 직군 종사자들이 가입한다. 국민연금은 적게 내고 적게 받는 반면, 특수직역연금은 많이 내고 많이 받는 구조다. 

-2030년 연금제도가 시한폭탄이 된다는 우려가 많다

▲사실 ‘시한폭탄’이라기보다는 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라고 써야 한다. 공적연금 종류에 따라 기금의 고갈시점이 다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의 경우, 현행제도 유지 시(국민연금 재정 추계 위원회 추계 결과) 적립 기금은 2040년까지 증가해 최대 1755조원에 이르고 2055년까지 유지된다. 현재 1000조원 정도 적립 기금이 있는데 이게 고갈되는 것이다. 


-한국은 연금 규모가 1000조원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그럼에도 기금 고갈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인구의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로 수급자가 증가해서다. 한국의 고령화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서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화율은 2045년 30%에 달할 예정이다. 기대수명 역시 1970년 61.7세서 지난해 83.8세로 증가했다. 기대수명이 증가하면 고령인구도 빠르게 급증한다. 현재 2020년 기준 국민연금 수급자가 532만명인데, 앞으로 2055년이 되면 2119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핵심은 기금이 고갈된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닥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미리 대비하면 된다. 언론에 언제 받을지도 모르고 맨날 기금은 고갈된다고 짚는데, 이건 잘못된 보도다. 기금의 적립 방식이나 부과 방식은 한국이 전 세계 1등 수준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문제는 뭔가?

▲출생율이 감소하고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연금 수급자는 증가하고, 연금 납부자들은 감소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경제 성장률도 둔화 중인데 연금 조성 재원이 줄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연금개혁이 필요하다. 

-결국 저출생 문제가 연금 문제까지로 이어지는 건가?


▲복지 선진 국가라고 하는 나라는 대부분 부과식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꺼내서 쓴다는 느낌인데 이 방식이 한국 정서에는 딱 맞다. 해외는 이미 기금이 고갈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가 낸 세금과 정부의 기여금을 통해서 현재 연금 수급자에게 지원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민정책을 통해 노인 인구 고령화 속도를 늦춘다. 연금은 결국 비율 싸움으로 젊은 사람이 많으면 된다. 미국의 고령화 수준은 한국보다 높은데 전체로 따지면 젊은 층이 훨씬 많다. 그 이유는 1년에 100만명씩 이민자들을 외국서 수혈해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생산 가능 인구가 확 늘었다. 

-한국은 적립식을 택하고 있다

▲적립식 방법을 택한 나라는 미국, 캐나다, 호주다. 이들 국가는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이 방법을 취하고 있지만, 부과식도 일부 혼합하고 있다. 부과식만 하는 나라는 독일, 스웨덴, 일본이다. 독일, 스웨덴은 흔히 복지 국가로 불린다.

저출생으로 조성 재원 줄어들 것
과감하게 소득대체율 부과 높여야

독일은 보험료율이 18% 정도로, 연금 역사가 가장 길다. 부과식과 함께 재정 분배 기능을 통해 운용한다. 한국은적립식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젊은 세대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부과식으로 하면 된다. 사실 기금 고갈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저기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계성을 확보하지 않아 문제다. 

-연금 고갈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지금부터 23년 후까지는 탄탄하다. 5년마다 재정을 재계산해서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채울까 사회적으로 논의하면 된다. 완전히 소진되면 부과식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 외국의 경우 1인 1연금 제도로 가령, 가구에 4명이 있고, 노동시장서 일을 하면 4개의 연금이 있는 셈이다.

한국은 연금의 역사가 짧아 고령층은 연금이 아예 없거나 받을 수 있는 돈이 있기는 하지만, 많지 않다. 그분들에게는 연금의 이동을 보장하지 않았다. 

A라는 산업서 B로 이동하면 중간에 정산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 이후로 납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년기에 접어드니 받는 돈이 없다. 한국은 연금 수급자 30%를 제외하고, 소득 하위 70%에 대해 정부가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기초연금으로 20조원을, 국민연금은 30조원을 지출했다. 합치면 50조원 규모로 2021년 50만원서 60만원까지 증가했다. 가입자가 점점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기초연금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진실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특수직역연금의 기금 대부분은 이미 고갈된 상황이다


▲공무원연금은 2001년 이미 고갈됐다. 2001년 처음 투입한 보전금은 현재 5조원 규모다. 군인연금은 1973년에 고갈이 된 상황이고, 올해 국고 약 3조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학연금은 2049년 고갈 예정이다. 변수는 기금 투자의 수익률이다. 투자 수익률이 1%p 높아지면 기금 소진을 2년 늦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금 보험료율 2%p 인상과 동일한 효과다. 최근 20년 투자 수익률은 연평균 4.5% 정도다.

-어느 부분을 먼저 개선해야 하나?

▲보험료율이다. 한국은 가입자의 기준소득월액에 9% 보험료율을 부과하고 있는데, 다르게 이야기하면 기여율이다. 사용자가 4.5%, 노동 4.5%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또 소득대체율이라는 게 있다. 연금 수급자가 돼 과거 근로 노동 기간에 있던 급여서 소득을 얼마나 대체해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지다. 100만원을 벌었으면 40만원을 받는다. 

고갈 후 부과식 채택해야
정치적 이해관계로 실패

현재 국민연금 1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연금 수준은 60만원 전후인데 이 정도로는 소득 보장을 하지 못한다. 결국 기여율,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고, 수급 연령 인상, 연금액을 정하는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금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과 재정적 지원이 요구된다.

또, 공적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경우 기금을 적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대부분 복지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서 활용하는 부과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해외는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가?

▲독일의 경우 보험료가 19.5%, 덴마크는 18%, 스웨덴은 16.5% 정도로 굉장히 많이 낸다. 소득 대체율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물론, 많이 내는 만큼 돌려받는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외국 연금의 차이는 총가입 기간이다. 한국은 남성,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 25세를 전후해 노동시장에 진출했다가 45~50세 전후로 빠진다.

전체적인 정년 연령은 60세지만 대부분 50대에 일자리서 나오게 된다. 그러다 보면 월급이 적어져 기여금이 줄어들고, 실업이 생기기도 한다.

외국은 연금의 역사가 100년 이상 된다. 대부분 일자리도 정년이 보장돼있어 퇴직 시 국민연금으로 받는 소득이 굉장히 높다. 그에 반해 한국은 일하는 기간이 20년 내외인 데다, 주 일자리서 나왔을 겨우 3대 업종으로 빠지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총 소득 및 가입 기간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즉, 국민연금이 노후 소득 보장의 주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금보고서에 의하면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OECD 회원국 평균은 42.2%고, 한국은 31.2%로 11%p가 낮은 셈이다. 한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는 40년 가입 시 기준으로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소득대체율이 낮은 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군복무 ▲실업 크레딧 등 사회적 경제적 연금 약자에게 가입 기간을 추가로 인정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저소득자에 대한 국가 보험료 지원도 늘려야 한다. 

-연금의 가입 기간과 가입 대상도 고려할 사안으로 보인다

▲가입 기간, 가입 대상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외국 연금 가입자의 정년 연령은 65세 전후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정년 연령은 60세 미만이 대부분으로 외국보다 가입 기간이 현저하게 낮은 편이다. 가입 대상 확대는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중요한 정책 방안인데 가입자는 고령화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가입 대상을 확대하면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데 형평성 측면서도 중요하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소득이 높은 사람이 많다. 가입 대상 확대를 통해 소득이 낮은 사람도 가입하도록 하면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저소득 노동자의 사회보험료 지원 대상을 확대(현재 10인 미만 사업장에만 적용)하고, 앞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보험료를 중앙정부가 소득계층별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역대 정부서도 계속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는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이다. 연금개혁이 굉장히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건 사실이다. 여야가 협력해야 가능한 부분으로 협치를 해야 한다. 서로 공방만 벌이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988년 처음 연금개혁을 띄웠을 때, 소득 대체율이 너무 높게 설정됐다면서 손을 댔다. 다음 주자가 노무현정부때였는데, 소득 대체율이 하락해 50%까지로 올리려고 했다.

노인만을 위한 제도 아냐
50년, 100년 뒤 미래봐야

하지만, 여야의 대립이 강했고 이 때문에 기초연금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국민연금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 결국 핵심적인 제도 개선이 아닌, 땜질 처방한 것인데 현재 그게 30조원이 돼버린 것이다. 문재인정부서도 연금개혁을 하겠다며 소득 대체율을 올리고 내리는 방식 등의 네 가지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단순히 방안만 제시하는 데 그쳤다. 

-윤석열정부도 연금 개혁을 띄웠다

▲윤석열정부 들어 국회 차원서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합의문 도출도 하지 못했고 그동안 논의 경과만 정리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한쪽은 보험료와 소득 대체율을 높여 온전히 노후 보장을 하도록, 다른 한쪽은 소득 대체율도 40%로 줄이고 보험료율도 줄이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다만 수급 개시 연령이 2023년 63세, 2033년 65세 등으로 상향 조정되는 만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공유했었다. 국민적 저항과 경제 상황도 개혁을 좌우하는 부분으로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 연령 상향 등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내용이 많아 저항에 부딪히기 쉽다. 

-여야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닌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탈피해서 50년, 100년 뒤 미래를 봐야 한다. 초저출생의 초고령화 사회서 아이들도 줄어들고 노동자도 사라진다. 노인이 많아지면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데 돌파구는 국민연금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치권이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고갈 이야기만 하지 않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 자문위원회에 있는 사람들이 연금을 기획했던 사람들인데, 이들 폴리페서(Politicsfessor,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교수)들에게 책임이 있다. 연금 기금의 고갈, 노후 소득 보장, 노인 빈곤, 저출생 인구 고령화 등이 함축적으로 섞여 있는데, 이를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 한다. 연금은 지금의 노인 세대만을 위한 게 아니다. 미래에 노인이 될 세대와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ckcjfdo@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