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특집> 끌려간 소년-소녀병들은 지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6.19 11:12:33
  • 호수 14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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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그들은 버려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6‧25전쟁 발발 73주년. 현재 한국은 전쟁의 참사를 찾아볼 수 없다. 박물관 정도 가야 확인할 수 있을까? 참사가 현실서 사라지듯, 같이 사라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이다. 이제 이들도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됐다. 이렇게 긴 세월이 흘렀지만, 소년-소녀병들은 6‧25전쟁 참전병으로 인정받기가 힘든 상황이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4시. 한국의 역사를 가르는 6‧25전쟁이 발발했다. 6‧25전쟁은 북한이 기습적으로 한국을 침공하면서 발발됐다. 미국과 중국이 참전해 세계적 대규모 전쟁이 될 뻔했으나, 1953년 7월27일 오후 9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됐다. 세계적 대규모 전쟁을 피했다 뿐이지, 6‧25전쟁은 한국이 치른 전쟁 중 가장 피해가 큰 전쟁이다.

“끌려가…”
강제 징병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군 전사자 13만8000명과 민간인 사망자 24만5000명, 피난민 651만명으로, 베트남 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에 비해 6‧25전쟁은 민간인 사망자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을 정도로 처참한 전쟁이었다.

전쟁으로 발생한 이재민도 1000만여명이 넘었다. 이는 전체 인구 절반 이상이 피해를 본 것으로 가족을 잃거나 헤어진 사람들은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재산 피해는 추산이 어려울 정도다. 북한군에 밀려 마지막 교두보로 삼았던 부산을 제외한 전 국토가 초토화됐다. 국내 제조업의 42%가 파괴됐고, 군사작전에 이용될 수 있는 도로뿐만 아니라 철도, 교량, 항만, 학교 등은 물론 개인 가옥도 대부분 파괴됐다.


6‧25전쟁으로 집을 잃거나 고향을 떠난 피란민은 거처를 마련하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미군 부대서 나오는 포장지와 통조림 깡통 등을 모아 엮어서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 당시 대부분 국민은 우방국이 원조한 구호 식량과 나무껍질, 풀뿌리로 연명했다.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서 끓인 꿀꿀이죽이 피란민의 주요 영양 공급원이었다. 어린아이들은 초콜릿을 얻기 위해 미군 병사의 꽁무니를 따라다녔고, 시장에나 거리에서는 담배를 팔거나 구걸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피해 규모를 비교할 순 없으나,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는 6‧25전쟁 소년-소녀병이었다. 소년-소녀병은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군인이나 이들로 이뤄진 군대를 뜻한다. 이런 이유로 학생 때 자진해서 군에 입대한 학도의용병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10대에 전쟁 참여…지금도 강제 징집 논란
UN “미성년자 군사 목적 동원은 절대 금지”

하지만 학도의용병은 학생 신분으로 자진해 지원한 비정규군으로, 그 업적과 존재를 인정받았지만 소년-소녀병은 아니다.

소년-소녀병은 병역의무를 지우면 절대 안 되는 17세 이하의 아동임에도 현역병으로 징집돼 군번을 부여받아 정규군으로 참전했다. 국방부 군적에 남아 있는 인원만 무려 3만여명에 달한다. 그 속에는 소녀군도 500명이나 포함돼있다.

UN은 미성년자를 군사적 목적으로 동원하는 것을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으로 판단해 엄격히 금지한다. 중대한 인격침해라는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서도 이를 금지하고 있다. 18세 미만을 소년-소녀병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6‧25전쟁 때 소년, 소년들은 어떻게 징집된 것일까? 15세에 대구서 중학교를 다니다 6‧25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2달 만에 징집된 생존 소년병 윤한수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윤씨는 “(학교에 온 군인들이)‘제군들, 장교나 일반 병사로도 지원해서 모두 가거라, 나라가 이리 위중하다’며 징집을 권유했는데 법률적으로 우리는 병역의무를 이행할 나이가 안됐으니까, 그건 이제 설사 지원한다고 해도 안 받아 주는 게 원칙”이라며 “그런데 자고 나면 학생이 하나씩 없어졌다. 그때 방위군, 경찰관들이 와서 강제로 데리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쟁 탓에 평범한 학생들이 강제적으로 군인이 된 것이다. 당시 윤씨는 키 160㎝가 안 됐다. 이때부터 책가방 대신 24㎏ 군장을 들어야 했다. 총 쏘는 법도 몰랐던 윤씨는 지옥 같은 전쟁터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버려지다

윤씨는 “전쟁터서 다친 아이들을 들것에 담고 내려왔다. 생명이 붙어 있는 놈들은 고함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몸 전체에 소름이 끼쳤다. 나도 곧 저리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어린 소년병에게 담력을 키운다며 실험을 했다. 실험은 제네바 협정에 의해 포로를 잡으면 즉결심판 같은 것을 못 시키는데 즉결심판을 시켰다. 그 즉결심판 처형 사수를 소년병에게 시켰다. 나는 총 쏘는데 안 맞았다”며 “떨려서 잘 안 봤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고, 좌우간 내가 그걸 했다. 너무 무서웠다. 이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한다”고 하소연했다.

6‧25전쟁 당시 무려 1만2000명의 소년병이 가장 치열하고 위험했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 최전선에 투입됐다. 이때 전체 소년병 3만명 가운데 10%인 3000명이 전사했다.

6‧25전쟁 소녀병이었던 김명자씨는 이후 한국 최초의 여군이 됐다. 김씨는 한 방송 프로에 나와 “6‧25전쟁 당시 소녀 첩보원으로 활동했다. 16세에 군대에 들어가서 3년7개월 있다가 왔다.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가 와서 폭탄이 떨어지면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난리가 났었다. 그때 여군을 모집했다. 우리 동네서 여자만 20명이고 다른 동네 합쳐서 40명 넘게 트럭을 타고 갔다. 죽을 각오로 간 거다. 가서 싸우다 살면 살고, 죽으면 죽고. 정말 죽으러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특수부대서 활동했다.

잊혀져 가는
그들의 고통

그는 “켈로 8240부대였고, 작전명이 ‘래빗’이었다. 당시에는 이게 뭔지 몰랐다. 중3이 ‘켈로’가 뭔지 어떻게 아느냐. 아군서 파악하지 못한 걸 보고 알리는 일이었다. 첩보활동이라 비밀을 알아와야 했다. 각자 맡은 게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맡은 임무는 비밀이었다”며 “나는 먼 곳으로 파견돼 100리, 200리를 걸어갔다. 산속이니 엄청 힘들었다. 치마저고리 입고 고무신 신고 다녔다. 겨울에는 발이 얼어서 말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하다가 도중에 시체도 못 찾고 죽는 사람이 허다했다. 50명 모집해서 나처럼 임무를 하다 30명쯤 죽으면 또 가서 모집했다. 나는 죽으러 왔는데 왜 살고 살려고 바둥댄 사람들은 다 죽었다. 울적하면서도 슬프고 이게 인생인가 싶었다. 떠난 동료들이 생각나 잠도 못 잔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트라우마로 소년-소녀병들은 일생을 고통 속에서 보낸다. 이유는 참혹한 전투서 동료들을 두고 혼자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소년병 참전자로 강제 징집된 장성곤씨는 3주간의 훈련을 받고 곧바로 전투에 투입됐다. 장씨는 “바로 시체를 넘고 다니는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광경이 뇌리에 박혀서 떠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전투 중 머리에 포탄 파편을 맞는 등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남은 건 정신적‧물질적 상처뿐이다.

그는 “피해는 말도 못한다. 거지가 됐다. 당연히 학업을 못 했는데, (군대에)3~4년 있다가 나오니까 다른 사람들은 졸업을 했다. 우리는 군에 갔다 왔기 때문에 졸업장이 없으니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사라진 동네 아이들
“폭탄 떨어져 죽고, 총 쏴서 죽이고”

이런 상황 속에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 명예선양법이 더 이상 미뤄지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소년-소녀병이 나라 존망 위기서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 집중 투입되는 등 희생됐지만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전 유승민 의원이 19·20대에 걸쳐 두 차례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끝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서도 국민의힘 강대식·임병헌 의원이 2020년과 지난 3월 각각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돼있다.

이 법안의 목적은 ‘6‧25전쟁 당시 병역의무 대상 연령이 아닌데도 징집 또는 소집돼 참전한 소년-소녀병 및 그 유가족의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합당하게 예우하고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소년-소녀병 및 그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소년-소녀병 위로금 지급심의위원회를 설치 ▲6‧25전쟁 당시 병역의무 대상 연령이 아닌데 참전해 희생한 소년-소녀병과 그 유족에 대한 예우에 관한 사항을 규정 ▲소년-소녀병의 희생을 보상하기 위해 소년-소녀병 또는 그 유족에게 위로금 지급 ▲위로금 지급 심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위원회가 검증 또는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함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소년-소녀병을 추모하고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 및 추모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함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다.

임 의원은 “소년-소녀병들의 특별한 희생과 공헌에 합당한 예우가 시급하다. 소년-소녀병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국민의 애국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일익이 될 것인 만큼 조속한 법안 통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어린 소년-소녀병들이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됐다. 남은 분도 2000여명이 되지 않는다. 21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6‧25전쟁 참전 소년-소녀병들의 헌신과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이뤄질 수 있도록 여야가 한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 조사기관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소년-소녀병 강제징집 사건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만 17세 미만 소년-소녀들이 강제 징집되는 과정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늦었지만…
시작된 조사

정영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국 국장은 “아동 소년병에 대해 법적 근거 없이 입대 혹은 징집시켜서 군 복무를 시킨 점은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봐 조사 개시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실규명 신청인인 하경환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대통령께서, 국무총리께서, 국방부 장관께서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뵙고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다’ 이 말씀을 꼭 드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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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