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상민 탄핵 시나리오

정치·정무 아닌 법률적 책임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시작됐다. 10·29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논란이 지속된 지 7개월여 만이다. 헌재가 시간을 그리 오래 끌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안이 중대하지만 복잡하지 않은 이유에서다. 법조계서 이 장관이 정치·정무를 제외한 법률적 책임을 지는 게 무리라는 분석도 해당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통과를 주도했다. 국회 의석수 과반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서조차 무리수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왔다. 헌재가 이 장관 탄핵을 기각할 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과거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도 헌재가 국회 측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례 없는
반대 위원

이 장관의 ‘탄핵 재판’ 키맨 역할은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맡았다. 헌재 심판 규칙 57조에 “소추위원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탄핵 심판을 수행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다. 소추위원단 및 대리인단 구성은 김 위원장의 재량에 달린 것이다.

탄핵 반대파가 소추위원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세 차례 탄핵 심판은 모두 법사위원장이 탄핵 찬성파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는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소속 김기춘 법사위원장이 소추위원이었고,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때도 이를 추진한 민주당 소속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법사위원장은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소속 권성동 의원이었지만, 탄핵 찬성파였다. 권 위원장은 표결 후 탈당해 바른정당에 입당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이 장관 탄핵의 정당성 자체에 의구심을 품었다. 야권에서는 김 위원장이 헌재 심판 과정서 이전의 소추위원과 다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거셌다.

특히 장관 탄핵 심판은 전례가 없다. 헌재가 탄핵 심판을 인용한 경우는 단 세 차례다. 이 중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는 총 9명 의원으로 구성된 소추위원단이 꾸려졌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3명, 민주당 3명, 국민의당 2명, 정의당 1명으로 구성됐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소추위원단 구성 대신 67명의 변호사로 이뤄진 대규모 대리인단이 심판에 대응했다. 당시 김용균·박희태·강재섭 한나라당 의원과 박상천·함승희 새천년민주당 의원 등 율사 출신 현역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임 전 부장판사 탄핵 당시엔 사실상 법사위원장이 홀로 소추위원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소추위원으로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란 야권의 우려에 대해 “헌재는 민주당이 제출한 증거자료·참고자료와 함께 이 장관이 대응하는 자료를 보고 나서 판단할 것”이라며 “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드라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정사상 첫 장관 심판…의석수 과반 민주당 주도
‘특수본 무혐의’가 방증? 정치적 책임 고려 가능성

이 장관에 대한 탄핵 심판 첫 변론기일은 지난 9일 열렸다. 이 장관 측 대리인단에는 김능환(72·사법연수원 7기), 안대희(68·7기) 전 대법관을 비롯해 윤용섭(68·10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이진만(59·18기) 변호사 등이 출석했다.

국회 소추위원 측에는 장주영(60·17기), 최창호(59·21기), 김종민(57·21기), 노희범(57·27기) 변호사가 대리인단과 김 위원장이 출석했다. 이날 변론기일은 새로 임기를 시작한 김형두·정정미 재판관 등 헌법재판관 9명이 모두 참석한 상태서 진행됐다.


앞선 두 차례의 변론준비기일에선 수명재판관으로 지정된 이종석·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이 사전에 제출한 서면을 토대로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 채부 등을 결정했다.

이날 양측 대리인은 여러 쟁점 가운데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전 재난 예방 조치와 사후 재난 대응 조치 의무를 위반했는지 ▲참사 발생 이후 부적절한 언행 등 국가공무원법상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는지 등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섰다.

국회 측은 “헌법 제34조에서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며 “이 헌법 규정에 따라 재난안전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과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행정안전부 장관에게는 재난 발생 시 초동조치와 지휘 등의 업무 수행을 위해 상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운영할 의무가 규정돼있다”며 “용산구청과 경찰서와 같은 지자체뿐 아니라 중앙정부도 공동으로 재난을 예방하고 대비할 의무가 있는데, 이 장관은 이 같은 사전 재난 예방조치 의무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장관 측은 “헌법 제65조 탄핵제도는 고위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책임 추궁이 아니라 헌법이나 법률 위배를 이유로 고위공직자를 파면시켜 공직서 배제하는 규범적 심판 절차기 때문에 이 장관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는 엄격한 헌법 규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며 “이런 관점서 이태원 참사에 대한 법률 평가는 재난안전법이 어떻게 규정하는지 초점에 맞춰 판단해야 한다”고 맞섰다.

중대한 법
위반 핵심

재판부는 청구인 측 탄핵소추 사실 요지 진술과 피청구인 측 의견 진술이 끝난 뒤 소추사유 쟁점을 정리했다.

이 장관이 ▲다중밀집 인파사고 예방 계획 및 대책 마련 의무가 있는지, 있다면 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는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운영 및 고도화 연계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지 않은 것이 맞는지, 맞다면 법률상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적시에 가동하지 않은 것이 맞는지, 맞다면 법률상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참사 발생 이후 대응 과정에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은 것이 맞는지, 맞다면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등이다.

이 외에도 ▲참사 당시 경찰력 등 대응 인력이 적시에 투입되지 않은 것이 맞는지 ▲재난 현장에서의 긴급구조 활동 지휘와 관련해 구체적인 권한 또는 의무가 있는지 ▲참사 대응이 헌법 제10조 및 제34조 제6항, 재난안전법상 의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에 위배되는지 ▲참사 발생 이후 장관의 발언이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하거나 위증에 해당해 국가공무원법상 의무 위반에 해당하는지 ▲헌법 또는 법률 위반이 있다면 그것이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것인지 등이다.

재판부는 오는 23일과 다음 달 13일 두 차례에 걸쳐 행정안전부, 소방청, 경찰청 등의 책임자 4명을 증인으로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헌재가 신속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집중심리 가능성도 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에도 두 달여간 심리가 진행됐고,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도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직접 대통령 직무정지라는 헌정사의 위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집중적으로 심리한 바 있다.

이 장관 탄핵서 주된 쟁점은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 국면서 ‘중대한 법 위반’을 했느냐다. 탄핵소추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65조는 공무원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할 때 탄핵할 수 있다고 규정돼있고, 헌재는 노 전 대통령 탄핵안을 기각하면서 ‘탄핵 심판청구는 중대한 법 위반의 경우를 말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 누구도
장담 못 해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에도 헌재는 세월호 참사가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그 이유로 “직책을 성실히 수행했는지 여부는 그 자체로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헌재의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무능하게 대처했는가 ▲정치적으로 무능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대통령과 임명직인 장관은 헌법서 규정한 탄핵소추의 의사와 의결정족수부터 다르다. ‘중대한 법 위반’의 수준이 대통령 파면에 적용됐던 기준보다는 낮을 수 있고 경미한 헌법·법률을 위반해도 법리상 국무위원에 대한 탄핵 인용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헌재 헌법연구부장 출신 한 변호사는 “행안부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이라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를 보장할 권한과 책무를 위임받았다”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 큰 행사가 있다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실패했다면 안전사고에 대한 중대한 법적 책임이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탄핵 심판이 사법적 판단이지만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탄핵 심판 과정을 봤을 때는 정치적인 고려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김병록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헌재가 전직 두 대통령의 헌법 및 법률 위반행위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선 공통되게 인정하고도 인용·기각 등 각기 다른 판단을 한 것은 대통령의 임기 시점·미칠 파장 등을 종합적으로 따진 정치적 고려”라고 해석했다.


반면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언론 인터뷰서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있겠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탄핵 기각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조계 분석 갈라져 “재판관 성향도 중요”
집중심리 올 하반기 결과 따라 총선 영향

차진아 고려대 로스쿨 교수도 “단순히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다고 바로 탄핵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탄핵을 통한 파면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라며 “행안부 장관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조치해야 할 구체적 행위 의무가 인정돼야 하고, 이를 행하지 않았다는 게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최근 경찰청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도 행안부 장관의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한 만큼 중대한 법 위반을 이유로 탄핵을 인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단순 해임이나 사임이 아닌 탄핵은 정치적으로 리스크가 크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 결론에 따라 민주당, 국민의힘 중 한쪽은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다만 변론과 심리가 길어질 경우, 판결 결과가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서 파급이 달라질 수 있다.

정국 유동성이 증폭되는 22대 총선 시즌인 가을에 결과가 나온다면 타격을 입는 쪽의 내상이 더 클 수 있다.

탄핵 인용 결정 시 이 장관은 법적으로 완전히 면직되며, 장관 임기는 강제 종료된다. 이 장관은 헌정사상 탄핵된 최초의 장관이라는 불명예도 안게 되며, 이후 행보에도 심각한 차질이 생기게 된다. 특히 탄핵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치명적 아킬레스건으로 남아 향후 정계 입문 시도나 다른 임명직을 맡으려 할 때 골머리를 썩을 수 있다.

곤란해지는 건 그를 기용한 윤석열정부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국정을 운영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는 식의 연대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내년 총선서 윤정부 및 국민의힘 심판론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탄핵이 기각될 경우, 이 장관은 개각이 진행되지 않는 한 업무를 계속해서 수행하게 된다.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은 역풍에 직면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탄핵 자체가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수반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이용한 발목잡기를 했다는 비판과 맞물려 총선서 민주당에 대한 심판론이 강하게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장관 탄핵 추진 전부터 역풍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당론으로 채택하려 했지만 당내 이견으로 불발됐을 정도다.

결과 따라
타격 불가피

지난 2월 초 민주당 지도부가 “국회가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총괄 책임자인 이 장관을 직접 문책하는 데 나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탄핵안 처리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전환될 만큼 반발이 적지 않았다. 당시 한 의원은 “이 장관 탄핵안이 내년 총선 직전에 헌법재판소서 기각되면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느냐. 선거를 망치려고 작정했느냐”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이태원 참사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이 장관에 대한 책임론도 존재하고 있기에,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이 국민적 인식과 충돌해 이 장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정으로 비판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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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닻 올린 이재명호 눈앞 암초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서 국민은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3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앞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지난 3일 치러진 6·3 조기 대선서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득표율 49.42%로 역대 대통령 중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8.34%,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0.98%를 각각 기록했다. 넘지 못한 과반의 벽 잠정 집계된 이번 대선 투표율은 지난 20대 대선보다 2.3%p 높은 79.4%였다. 이는 지난 1997년 투표율 80.7%를 기록한 15대 대선 이후 28년 만에 가장 높은 대선 투표율이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기 위한 국민의 뜨거운 의지”라고 입 모아 말했다. 지난 20대 대선서 양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는 0.7%p이었던 만큼 이번 역시 두 후보 간의 격차가 관전 포인트로 제시됐다.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KBS·MBC·SBS)가 한국방송협회와 함께 실시한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51.7%, 김문수 후보는 39.3%로 두 후보간의 격차는 두 자릿수로 크게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대통령의 과반이 예상됐지만, 실제 투표함을 열자 김 후보가 40%대로 진입한 반면 이 대통령은 50%를 넘지 못했다. 두 사람 간의 격차는 289만표인 8.27%p였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 역시 출구조사 발표 직후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4%만 더 얻어서 55%로 안정 궤도를 유지하면 좋았을 것”이라며 내심 아쉬움을 비쳤다. 민주당은 선거 기간 동안 공을 들인 TK(대구·경북)서도 약세를 보였다.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마감 결과 대구서 김 후보가 67.62% 득표한 반면, 이 대통령은 23.22%에 그쳤다. 경북서도 김 후보는 66.87%, 이 대통령은 25.52%로 지난 20대 대선과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초유의 사태인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임에도 격차가 크지 않고 보수 지역서 30% 벽을 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제시된다. 40% 지지율을 등에 업은 국민의힘과 거대 여당인 민주당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전까지는 민주당이 과반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리는 방식이었지만, ‘찐명’으로 꼽히는 김민석 전 최고위원이 국무총리로 내정된 마당에 더는 국민의힘이 손쓸 방법이 없다. 빗나간 출구조사…TK도 20%대 ‘뚝’ 여대야소 정국 ‘동물 국회’ 재연? 이번 하반기 국회가 역대급 ‘혐오 정치’로 얼룩질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거듭 통합을 강조했다. 지난 4일 국회서 열린 취임 선서식서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며 “국민 통합을 동력으로 삼아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선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도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 대통합을 위해 대통령 취임 후 첫 오찬 메뉴를 비빔밥으로 준비했다. 우 의장은 “지역과 세대, 계층, 다양한 의견이 모두 대한민국이고,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도록 이끄는 통합력이 도약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머뭇거릴 새도 없이 이 대통령은 곧바로 업무를 시작했다. 함께 국정을 운영할 내각 구성도 시급하다. 당분간은 윤석열 전 정부 출신인 각료들과 한 지붕 밑에서 일을 해야 한다. 조기 대선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 또한 정부 출범 76일 만에 전원 ‘문재인의 사람들’로 불리는 국무위원과 국무회의를 진행했다. 이날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진행했는데, 이때 통일·외교·안보 기조가 다른 박근혜정부 인사가 함께였던 만큼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어려웠다는 푸념도 들려왔다. 이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새 내각 구성 전까지는 ‘윤석열의 사람들’과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각 부처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을 검증하기 위한 인사청문회 등 절차가 남아 있어 내각 전부를 임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어수선한 여의도 안팎 국무위원 선출을 위한 인사청문회 과정도 험난할 전망이다. 지난 3년간 이동관·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 박장범 KBS 사장 후보까지 피 튀기는 청문회가 밤낮으로 이어졌다. 공수교대가 이뤄진 이번 청문회서 국민의힘이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전망이다. 이 대통령을 둘러싼 다섯 건의 재판도 주목된다. 김혜경 여사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과 대선 정국서 불거진 아들 도박 의혹도 논란이지만, 아직 털어내지 못한 본인의 재판들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대장동 배임 및 성남FC 뇌물 의혹 1심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혐의 1심 ▲불법 대북송금 혐의 1심 ▲위증교사 혐의 항소심 등 총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투표 하루 전날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꼬집으며 “설사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고 하더라도 재판이 예정대로 열리고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벌금형 100만원 이상의 판결을 받을 경우, 두 달 안에 대선을 또다시 치러야 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예정된 재판은 오는 18일에 열리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다. 이는 지난달 1일 대법원이 1심의 무죄 판결을 엎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안이다. 만일 재판부가 예정대로 사건을 처리한다면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에 따라 유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되는데, 이때 대통령직 유지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아울러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을 다루는 헌법 제84조의 해석 논란도 다시 불붙을 예정이다. 막 내리는 용산 시대 민주당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대선 전부터 민주당은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의 구성 요건서 ‘행위’를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처리할 수 있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입법 독재’ 프레임을 우려해 속도 조절에 나섰다. 윤 전 대통령이 개방한 청와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022년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며 영빈관과 녹지원, 상춘재 등을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하는 만큼 우선은 청와대 수리를 기다리며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할 예정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용산으로 가는 게 맞다. 대통령실 이전은 큰 비용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고생도 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빨리 청와대를 수리해서 그 (수리) 기간만 (용산에) 있다가 청와대로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예비 후보이던 시절에도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질문에 “상당히 고민이다. (용산 대통령실이) 보안 문제가 매우 심각해 대책이 있어야 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지금 당장 어디 딴 데로 가기가 마땅치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 혈세를 들여 미리 준비할 수도 없다. 그래서 보안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일단 용산을 쓰면서 다음 단계로 청와대를 신속하게 보수해 그 길로 들어가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윤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용산 집무실 환경에 “황당무계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서 가진 첫 기자회견서 “꼭 무덤 같다. 아무도 없다”며 “필기도구를 제공해 줄 직원도 없다. 컴퓨터도 없고 프린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업 공무원 전원을 복귀시켜버린 모양”이라며 “곧바로 다시 원대복귀 명령을 해서 제자리로 복귀시켜야 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보수가 끝나는 대로 이 대통령이 집무실을 옮길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파기환송 선거법, 재판부 의지에 달려 청와대 복구, 극우 반격…험난한 여정 대통령 집무실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만큼 보안과 경호 등이 늘 지적 대상이 됐다. 관련해 한 민주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100% 개방된 건 아니기 때문에 빠르게 보안 작업을 거친다면 올해 안에는 (청와대를) 집무실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종합청사 등 제3의 장소에 임시로 집무실을 마련하는 방안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JTBC와의 인터뷰서 “국정 책임자의 불편함 또는 찝찝함 때문에 수백억, 수천억을 날리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잠깐 (용산서) 조심해서 쓰든지 하고 청와대를 최대한 빨리 보수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극우와의 싸움과 테러 위협도 현재 진행형이다. 계엄 옹호, 탄핵 반대 그리고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자유통일당 중심의 극우 성향 단체는 이번 대선 결과에 불복해 선동을 이어갔다. 광화문서 지지자들과 개표를 기다리던 전 목사는 출구조사 결과가 공개되자 “선거관리위원회에 쳐들어가자” “불법 선거, 부정 투표”라고 소리쳤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역시 부정선거론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어 대선이 끝난 후에도 잡음은 이어지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용인의 한 사전투표소의 관외 회송용 봉투서 이미 기표된 용지가 나온 사례를 언급하며 “지난 대선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고 문자 그대로 부정선거의 스모킹 건”이라며 “그럼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자의 자작극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선관위 시스템이 얼마든지 조작 가능해서 투표 안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고 한 사람을 안 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런 선관위를 도저히 믿을 수 있겠나”라며 “선거가 아니라 사기”라고 말했다. 현실 부정 테러 위협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망상에 불과하다. 갈라치기 정치의 원인”이라고 일축하며 “정치 성향이 맞지 않는 분들께선 지금 시국이 어수선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번 대선은 내란 세력을 심판한 국민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