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매치’ 조국 VS 한동훈 1번지 대첩 관전 포인트

원수는 외나무다리 아닌 종로서 만난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총선 대첩’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조 전 장관은 ‘어부지리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다분해졌으며, 오랫동안 ‘공천설’이 떠돌았던 한 장관 또한 정계 데뷔 플랜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두 사람이 총선 등판 시 맞붙게 될 전장은 다름 아닌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다. 종로전 승자는 여러 모로 정치적 이익을 챙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은 ‘낭설’로만 떠돌고 있는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대결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내년 총선까지 약 11개월이 남은 가운데, 4년 전 뜨거웠던 열기만큼 유권자들은 차기 총선에도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모든 선거 때마다 그렇듯 주로 관심을 끄는 지역구와 인물들이 있다. 내년 총선서 유권자들 사이서 가장 궁금해하는 대목은 어느 전장에, 어느 장수가 등판하느냐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구도를 벌써부터 그리고 있다.

다음 총선
최대 관심

매번 총선마다 주목받는 지역구들이 있다. 역대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서울 종로, 중량감 있는 후보가 나서며 격전지로 떠오르는 수도권 일부 지역구 및 부산과 충청권의 경합지 등도 관심이 높다. 지난 대통령선거를 기준으로 차기 총선은 서울 강남3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구서 초박빙이 예상되며 충청권서도 박 터지는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주목받는 기준이 꼭 지역구에만 국한돼있는 것은 아니다. 전·현직 및 스타 정치인들의 대결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박남춘 전 인천시장과 국민의힘 유정복 인천시장 전·현직 대결이 좋은 예로, 지난 21대 총선의 민주당 고민정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결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는 의외의 인물들 간 대결 가능성이 많은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직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둘의 대결은 연초만 해도 ‘낭설’에 불과했지만,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지금,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태다.


사실,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 가능성은 그동안 그 누구도 점치지 않았다. 지난 대선·지선서 패배한 민주당의 주요 원인이 조 전 장관이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와 조 전 장관에 대한 민주당의 ‘감싸기’ 전략은 당을 수렁으로 빠트렸다고 평가받았다. 

박근혜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 이후 도덕과 청렴함을 앞세웠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은 ‘조국 수호’라는 당 차원의 감싸기 전략 때문에 ‘내로남불’이라는 꼬리표를 달았고, 민주당 초선 의원들과 몇몇 관계자들은 연이은 선거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방선거 직후 실시된 지난해 6월15일, 국회서 열렸던 민주당 내부 토론회에서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 패배의 원인이 논의됐다. 민주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 ‘더민초’ 등에서는 선거 연패의 원인에 대해 ‘문재인정부 실정’ ‘조국 사태 후속 조치’ ‘이재명 책임론’으로 짚었다.

전·현직 법무부 장관 대결 가능성 주목
맞붙으면 누가 이익? 양당 복잡한 계산

이날 김기식 더미래 연구소장은 “대선 패배의 원인은 문정부, 이재명, 민주당 모두에 공히 있다”며 “복합적인 패배 원인을 한쪽 탓으로 돌리는 건 부적절하고 내부 분열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국 사태서 비롯된 내로남불 문제와 선거 직전에 불거졌던 중진 의원들의 당내 성추문, ‘총선 압승’서 비롯된 독단적인 국정운영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짚었다.

재선 김병욱 의원은 아예 “우리당이 지속적으로 조국 사태 이후 강성 당원 팬덤에 상당 부분 끌려왔다”며 “우리 당의 의사결정이 중도층으로부터 멀어지고 일부 당원에게만 어필하는 수준이 됐다”고 조 전 장관을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이들이 하나 같이 지적하는 문제는 조국 일가의 자녀 입시비리와 이를 감싸던 친문계의 내로남불식 대응이었다. 조 전 장관은 문정부 초기만 해도 ‘차기 대통령감’으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문 전 대통령은 ‘대놓고’ 조 전 장관을 위해 판을 깔아줬고, 조 전 장관도 정부 초기 민정수석으로 일하며 문정부의 높은 지지율에 일조했다.


날개를 단 후 비상할 것 같던 그의 이미지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면서부터다. 그는법무부장관으로 내정되면서 강력한 사법개혁을 예고했는데 이는 문정부의 국정과제와 같은 맥락의 기조였다. 

그러나 검찰은 조 전 장관의 임명을 반대하며 비리 의혹을 하나씩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나온 조 전 장관 일가의 비리는 7개의 허위경력 기재와 가짜 표창장 등 자녀 입시비리다. 

조 전 장관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는 이미 징역 4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받아 지난 2020년부터 수감생활을 이어오고 있고, 조 전 장관의 딸 조민은 부산 의학전문대학원과 고려대학교 입학이 취소돼 고졸 상태로 돌아가 있다.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다소 논란거리가 있지만, 조국 일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유죄’로 점철되는 상황서 여론은 들끓었다. 특히 가장 예민한 문제인 ‘입시비리’와 관련돼 2030세대 표심과 4050 부모 세대 표심 모두가 이탈했다.

내로남불
조국 일가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민주당은 강성 지지층과 함께 ‘조국 지키기’를 선택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법사위원들을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조 전 장관을 옹호하고 나섰다. 특히 문제가 됐던 공주대학교 인턴 건과 단국대학교 논문 문제에 대해 민주당은 “특혜가 아니라 보편적 기회”라며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해 여론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 했다.

한 친문계 의원은 해당 관련 토론회서 “(인턴십을)누구나 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신청하고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고, 다른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은 “배려는 맞지만 특혜는 아니다”고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조국 지키기’는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청와대까지 가세하며 민주당의 딜레마로 자리 잡았고 이는 이어진 선거에까지 영향을 주는 원흉이 됐다.

그런 조 전 장관의 총선 출마설은 민주당을 오래 지켜봤던 지지자들에겐 다소 ‘생뚱맞은’ 소문이었다.

민주당 당사를 찾은 한 지지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민주당이 정권을 내준 것에도, 지방선거서 패배한 것에도, 친문계가 힘을 잃은 것에도 ‘조국 리스크’는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민주당이 어떤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조국 전 장관의 공천 문제는 얼토당토 않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선 조 전 장관의 출마 가능성을 꽤 높게 보고 있다. 그의 출마설은 친명계가 ‘이재명 리스크’로 세력이 매우 약하지고 있는 점과 맞물린다. 조 전 장관의 공천에 대해 ‘이재명 리스크’를 ‘조국 리스크’로 덮으려는 노림수라는 것이다.

현재 조 전 장관과 이 대표의 상황은 매우 닮아있다. 조 전 장관은 지난 2월3일 재판 3년여 만에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았다. 1심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곧 민주당서 공천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민주당 공천 규정에 “하급심 유죄 판결을 받으면 부적격 처리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조항 삭제
출마 가능?

해당 규정은 이 대표에게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 대표는 현재 지난 대선서 불거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대장동·위례 신도시 배임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1심서 유죄 판결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공천 규정은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이 공천 규정서 하급심 유죄 판결 조항을 삭제하면서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은 사라졌다. 앞서 민주당은 ‘22대 총선 후보자 선출 규정 특별당규’서 ‘중대한 비리’ 관련 내용만 남겨놓고 ‘하급심 유죄 판결’ 조항을 삭제했다.

비명계는 공천 규정 변경을 두고 “속이 뻔히 보이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딱 그 부분만 수정된 것이 아이러니하다”며 “대대적인 수정도 아니고 이 대표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분만 삭제됐다. 지난번 당헌 80조 논란 때와 마찬가지다. 기시감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친명계가 이 같은 조치를 무마하기 위해 조 전 장관에 대한 공천 문제를 꺼내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처럼 조 전 장관에게 공천권을 주면서 친문계 의원들의 원성을 불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몇몇 민주당 관계자는 조 전 장관 출마에 대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 지도부가 다음 총선서 조 전 장관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데다, 점차 힘이 빠져가는 이 대표가 비명계를 구슬릴 카드로 공천 문제를 염두하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일요시사>와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조 전 장관이 ‘쉬운’ 지역구나 비례대표에 공천될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대부분 조 전 장관의 지역구를 ‘험지’로 생각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조 전 장관이 출마할 지역은 부산과 서울 주요 도시다. 특히 서울은 관악을이나 종로 출마도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안다”며 “조 전 장관도 ‘강하게’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총선 출마는 현실로 이뤄질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즉, 친명계가 생색내기로 준비 중인 ‘조국 공천’ 카드를 민주당 텃밭이 아닌 험지에 사용해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종로는 이낙연 전 대표의 지역구를 탈환해온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차기 대권의 바로미터라고 불리는 지역에 조 전 장관이 출마한다면 그 자체로도 흥행거리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 커지는 차출론…제대로 활용하려면?
조, 이 대표 처지 비슷…친문 아우르기

여권서도 한 장관의 총선 차출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정계에 소문이 파다하며, 총선 전 한 장관의 국민의힘 입당설을 두고서도 여의도 관계자들이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한 장관이 송파구로 이사 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계 일각에선 ‘한동훈 송파구 출마설’도 돌았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지난달 5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출마를 위해 서울 송파병으로 이사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송파병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신기하다. 최근에 재산등록을 했고 거기에 제 집주소가 나오지 않느냐. 당연히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총선 차출설은)나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송파라는 게 왜 나왔는지 알게 되면 알려달라”고 반박했다.

최근 한 장관이 제출한 재산등록 목록에 따르면 한 장관은 서울 서초구 소재 모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는 강남구 소재의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송파구로 이사 갔다는 소문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국민의힘 관계자는 ‘송파 출마설’에 대해 “여러 유튜버로부터 스토킹 피해를 당한 한 장관에 대해 언론이 섣부른 추측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한 장관이 주거지를 옮긴 건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가기 때문”이라고 <일요시사>에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장관의 총선 합류가 현실이 된다면 그가 강남3구에 나갈 것 같지는 않다. 한동훈이라는 스타 장관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공천이 될 것”이라며 “가게 된다면 용산이나 종로 등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정치 평론가들은 한 장관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점찍은 윤석열정부가 그의 출마를 고려한다면, 종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강남권에 한 장권이 출마하는 그림 자체가 좋지 않다”며 “또 친윤이 즐비한 송파, 강남, 서초 지역구로 가면 괜한 친윤 의원 자리 하나를 빼앗는 꼴이 된다. 제대로 활용하고, 차기 대권까지 고려한다면 정치1번지(종로)에 출마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한 장관과 조 전 장관의 출마 예상지로 종로가 거론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되찾아 오기 쉽지 않은 지역에 조 전 장관을 내보내 ‘명예회복’을 도모할 수 있고, 국민의힘으로선 ‘차기 대통령’으로 한 장관의 이미지를 굳힐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명예회복
차기 대선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서 전·현직 법무부 장관의 맞대결은 장담할 수 없다. 조 전 장관은 어수선한 민주당 분위기와 본인의 사법 리스크를 이겨내야 하고, 한 장관은 ‘정치인 데뷔’라는 무거운 의미와 차기 대권을 생각하는 ‘담대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양측 모두 ‘아직은’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인 상황 속에서 어떤 변화가 생길지 정계 관계자들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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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97년 말 국가부도 상황이 벌어졌다.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자본금 수천억원, 국책은행을 뒷배로 둔 대형 증권사들도 고꾸라졌다. ‘절대 망할 리 없다’던 회사의 붕괴는 3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피해자의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 있다. 산업증권 ‘파산의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8년 10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공성진 의원이 한국산업증권(이하 산업증권) 파산 문제를 언급했다. 당시 공 의원은 “산업증권이 IMF 위기 시에 불·탈법적으로 강제 파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산업증권은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자본금을 100% 출자해 설립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1인 대주주였던 셈이다. 망하지 않는다 이날 국감에서는 산업증권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서 일어난 일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공 의원은 ▲산업증권 해산 과정서 이사회와 재정경제부의 허가 여부 ▲산업증권을 파산으로 끌고 간 1041억원 ▲개인명의의 계좌 ▲개인 계좌를 통해 한국산업선물로 흘러간 54억원 등에 대해 질의했다. 1998년 산업증권 해산 이후 10년 만에 당시 상황이 국감에 언급되면서 각종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개인명의의 계좌를 통해 오고 간 자금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MB(이명박)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감서 산업증권 파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일부 언론은 이전 정부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충현 전 산업증권 채권관리팀장은 여전히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강서구의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외환위기 당시 좌파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범죄적 구조조정과 부정부패로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회복 불능의 상처를 남겼다”고 일갈했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에 근무하다가 산업증권 설립과 동시에 이직했다. 그는 산업증권이 파산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피해자이고 ‘강제파산’ ‘사기파산’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 산업증권강제퇴출피해대책위원장이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로 26년을 보냈다. 그사이 소송서 패소했고 법적 시효는 끝났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산업증권 파산 사건을 놓지 못한 상태다. 산업증권에 근무했던 직접 피해자와 가족 등이 일한 간접 피해자들은 “IMF 사태였다고 해도 산업증권이 망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을 고객으로 하는 일반은행이 아니라 산업자본 조달을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산업증권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망했다. 400여명의 근로자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문제는 1997년 12월 IMF 사태 이후 1998년 해산, 1999년 파산 선고 때까지 석연치 않은 의문이 여럿 나온 점이다. 특히 청산 절차가 시작된 이후 개인명의 계좌를 통해 자금이 움직인 증거가 나왔다. 이 구의원이 가지고 있는 71개의 이른바 ‘비밀 통장’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산업금융 채권의 원활한 소화 및 국제업무 특화’를 목적으로 1991년 4월 설립됐다. 산업은행이 100%를 댄 초기 자본금은 1500억원에 달했고 1992년 11월 1000억원, 1998년 3월 1500억원을 증자해 1998년 7월25일 해산 당시 산업증권의 자본금은 4000억원에 이르렀다. IMF 사태로 증권사 강제 퇴출 산업은행 1인 대주주로 안정성↑ IMF 사태로 휘청이긴 했지만 산업증권은 명예퇴직, 임금 반납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산업은행 역시 산업증권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증자하는 등 위기 타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산업증권 본사에서 근무하던 이 구의원과 지방 지점에 있던 김영수(가명)씨는 “회사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 산업은행에 새 총재가 부임하면서부터다. 특히 언론을 통해 ‘산업증권 연내 폐쇄’가 발표되자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고객과 채권자들은 동요했고 예금인출을 서두르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당연히 신규영업도 줄어들었다. 영업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 뒤 1998년 7월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산결의를 진행했다. 이후 1999년 2월 산업증권의 청산인은 ‘부채 초과 및 지급불능’을 이유로 파산선고를 신청했고 같은 해 3월13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산업증권은 파산했다. 연내 폐쇄 발표부터 파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는 노동조합과의 퇴출 위로금 규모를 합의하는 사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산업증권의 노조위원장과 산업은행의 대표이사, 부총재 등이 퇴출 위로금으로 24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기로 구두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서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산업증권 대구지점서 근무하던 김영수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명예퇴직으로 나간 직원들은 20개월치 월급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산업증권이 망한 이후 나간 직원들은 퇴직금 수준의 돈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업증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 구의원은 2010년 5월 산업증권 파산으로 직장을 잃은 피해자를 모아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전 산업은행 총재와 부총재, 산업증권 청산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증권 파산 과정서 피고들의 불법행위가 자행됐고 이로 인해 피해자(직원)가 생겼으니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해달라는 취지다. 수장 바뀌고 급변한 기류 이 구의원은 “먼저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 파산 신청의 원인이 된 자본잠식 상황은 조작됐고 1041억원의 대지급도 실제 진행됐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산업증권 해산결의 이후 만들어진 수십여개의 개인명의 계좌와 이를 통한 자금흐름은 사기파산, 강제파산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1999년 2월 산업증권 청산인 명의로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한 파산선고신청서를 보면 ▲지급불능 ▲채무초과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1500억원에 달하는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대규모 인원 정리, 조직 슬림화 등 자구 노력에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는 점도 명시했다. 반면 이 구의원은 결산보고서와 회계법인이 청산 가치 기준으로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해산일 기준(1998년 7월25일) 자산이 부채보다 약 100억원가량 많다고 주장했다. 일반 채권자에게 변제해도 돈이 남는 만큼 파산이 아니라 청산 형태로 종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청산이 아닌 파산의 방식을 택했다. 청산은 재산관계를 정리해 이를 분배하는 절차를 뜻한다. 파산은 회사의 총 재산을 총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절차다. 파산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진행된다. 산업증권이 청산으로 마무리됐다면 산업은행은 유일한 대주주로서 손해를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법원이 파산 결정을 내리면서 산업은행은 대주주이면서 채권자가 됐다. 산업증권의 파산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041억원’의 존재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에 빌려준 단기자금으로 파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돈이다. 산업증권은 1998년 7월28일 ‘1998년 7월25일자로 회사 해산을 결의하고 청산 절차를 진행하던 중 1998년 7월27일 교환에 회부된 어음(금액 1041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조치를 당했다. 자체 자금 조달도 어려우니 추가 자금 지원을 부탁한다’고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의문점 많아 국감서 다뤄 산업은행은 이 돈을 산업증권 대신 갚았다(대지급). 다시 말해 산업증권이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산업은행이 산업은행에 갚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업은행이 대지급한 1041억원은 산업증권의 채무로 잡혔다. 이 과정서 부채가 자산보다 늘어나면서 산업증권 파산의 원인, 채무초과 상태가 됐다. 실제 회계법인이 작성한 1998년 10월31일 기준 산업증권의 부채는 2190억원, 자산은 1950억원이다. 부채가 자산보다 240억원 많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산업증권의 파산을 선고했다. 240억원이 산업증권 파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후폭풍은 400명이 넘는 산업증권 직원에게 미쳤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이 대지급했다는 1041억원이 실제 거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증권은 대지급 요청문서 ‘산업증권 청산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라고 기술했고 현금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돼있지만 실제로 산업은행은 산업증권에 1041억원을 신규 지원한 사실이 없고 내부 문서에도 신규 추가지원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파산 절차 과정서 ‘사후관리대지급금’으로 1041억원을 파산채권으로 신고해 2009년 5월 기준 파산채권의 100%를 돌려받았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대신 지급한 돈을 전부 회수한 것이다. 1041억원의 진실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법원의 허가로 산업증권 메인 전산 서버가 파기된 상태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증권 청산 절차 과정서 개설된 통장은 실물로 존재한다. 이 구의원은 71개의 통장을 산업증권 전 직원에게 전달받아 보관해 왔다. 이 구의원은 해당 계좌들을 통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움직였고 일부는 사용처도 불분명하며 최후의 사용처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또 있다. 산업증권과 같은 날인 1998년 7월25일 청산 절차에 들어간 한국산업선물(이하 산업선물)에 송금된 54억원의 성격이다. 산업선물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금융 선물거래를 위해 설립됐다. 파산으로까지 이어진 산업증권과 달리 산업선물은 1998년 정상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청산 종결 처리됐다. 그런 회사에 1998년 8월11일 개인 명의의 계좌서 54억원이 이체된 것이다. 이 구의원은 “산업선물은 자본금 100억원의 회사로 산업은행 해산 당시 정식으로 영업개시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1998년 5월 산업증권 연내 폐쇄 발표가 난 상태서 산업선물에 54억원이라는 거액을 입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998년 7월부터 시중은행에 개설된 통장은 모두 개인 명의로 돼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계좌 명의자 가운데 2명이 산업증권에 대한 특별검사(1998년 7월25일~8월11일)에 투입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검사역이었다는 점이다. 직원 400여명 한순간에 길거리로 법적 판단 끝났어도 문제 제기 중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피고 측은 “1998년 당시 고객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주식회사에 별도로 예치 관리되는 현행 제도와 달리 증권회사의 고유재산과 구분해 관리되지 않았다”며 “금감원(피고)은 특별검사 기간 중 고객예탁금을 안전하게 고객에게 반환되는 것을 보장하는 적법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IMF 사태로 금융회사 파산이 일어난 것은 1998년 이전에 없던 일로 제도가 미비했고 방법을 찾던 중 금감원 검사역의 개인 명의를 이용, 계좌를 개설해 이를 고객예탁금 관리 용도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계좌를 개설했던 2명의 검사역 가운데 1명은 금감원에, 또 다른 1명은 증권사 감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명의 계좌와 관련해서는 2008년 국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된 바 있다. 국감서 공 의원은 2명의 금감원 검사역 외 계좌를 만든 또 다른 개인 명의자에게 “누구의 지시로 개인명의 계좌를 개설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해당 인물은 “금융감독검사국 직원들 지시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공 의원이 거듭 “산업증권의 자금을 개인, ○○○(명의 당사자)의 이름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해당 인물은 “감독 당국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총 주식을 한 사람이 소유하는 이른바 1인 회사의 경우에는 주주총회 소집 절차를 밟지 않거나 총회를 개최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1인 주주에 의해 의결이 있었던 것으로 주주총회의사록이 작성됐다면 그 내용의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결의는 유효하므로 해산결의가 무효라거나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해산을 결의하는 과정이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산결의 절차가 적법하고 유효한 이상 근로자에 대한 해고도 위법하지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또 소송을 제기한 시기가 사건 발생일 이후 10년이 경과된 상황이라 손해배상채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 구의원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적인 판단은 끝난 셈이다. 정치적 이유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 구의원은 2012년 법적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현재 이 구의원이 용산 대통령실에 넣은 청원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 등을 거쳐 금감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이 구의원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면 인수합병, 매각 등의 방식을 써도 됐을 일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1인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산업증권을 없애버렸다. 산업증권의 파산이 정치적인 목적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부가 산업증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고르면서 429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