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따라잡기’ 행안부 큰 그림

경찰국 모자라 수사지휘권 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행정안전부가 변화에 나섰다. 장관의 실질적인 경찰 지휘권이 약해 지휘·감독 체계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다.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과 닮은 꼴이라는 평가다.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권 범위가 넓어지면서 경찰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해당 안건이 추진될 경우, 경찰의 독립성이 증발할 수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해 8월 ‘경찰 장악’ 논란에도 불구하고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정부조직법 등에 근거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논리다. 경찰 안팎에서는 수사 독립성 침해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행안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술 더 떠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에 준하는 틀을 맞추는 분위기다.

정치적
중립 의무

경찰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11차 회의를 열고 안건별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이날 위원회는 오는 23일 최종 권고안 발표를 앞두고 ▲현장경찰 역량 강화 방안 ▲자치경찰 이원화 방안 ▲국가경찰위원회 개편 방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 지휘·감독 체계 보완 방안 ▲경찰대학 개혁방안에 대한 의견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특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 지휘·감독 체계가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위원은 장관이 실질적으로 경찰을 지휘·감독할 수단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황이 발생하면 국회 등에서는 매우 높은 지휘·감독 책임 수준을 요구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경찰 심의·의결 기구인 국가경찰위원회의 성격과 위원들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국가경찰위 위원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훼손했을 때 책임 규정이 없다는 점과 현행법상 행안부 소속 자문위원회인데도 법적 성격에 관한 불필요한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지난해 12월 국가경찰위가 행안부 장관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한 데 대한 비판도 나왔다. 국가경찰위는 지난해 8월2일 제정된 ‘행안부 장관의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이 국가경찰위의 권한을 침해했으므로 무효라는 취지로 권한쟁의를 청구한 바 있다.

장관은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권이 없으므로 지휘규칙 제정행위는 위헌·위법하고, 지휘규칙 제정 시 국가경찰위의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취지다. 헌재는 국가경찰위의 청구를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위원회는 이달 말 열릴 예정인 최종 회의서 제도발전 권고안을 확정한 후 발표할 예정이다. 박인환 위원장은 “오늘 회의서도 경찰대 개혁방안에 관한 의견 대립이 팽팽했으므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표결해서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휘·감독 체계 보완 방안 정해지면 추진
“법무부와 비교 후 논의…확정된 것 없어”

경찰제도발전위원회 관계자는 “최종 회의가 남았고 논의된 것들은 아직 추진 계획이나 검토 단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까지 논의된 건 법무부와 비교해 어떻게 장관의 권한과 경찰청 지휘체계를 보완할 것인지 여러 개선안이 나왔다”며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도 예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안팎에선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국에 이어 사실상 법무부와 다를 게 뭐냐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경찰청 한 간부는 “지난해 경찰국 신설로 독립성을 잃어버렸다는 인식이 늘었다”며 “행안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추진되면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청 관계자도 “독립성 증발을 넘어 경찰이 곧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며 “검찰도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을 때마다 마찰이 심했다. 우리라고 그러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이 장관은 경찰국 신설을 강행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행안부 장관이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게 근거였다. ‘말 바꾸기 논란’에 휩싸인 건 이태원 참사 이후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질의서 “경찰에 대한 일반적인 지휘·감독권이 없다. 특히 개별적 치안 상황에 대해서는 제가 지휘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책임 회피를 위한 말 바꾸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경찰에 대한)지휘 권한은 있으나 그 지휘 권한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며 “지휘·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행안부는 국가 재난·안전의 주무 부처다. 정부조직법에는 행안부 장관이 안전 및 재난에 관한 정책 수립·총괄·조정 등 사무를 관장한다고 돼있다. 재난안전법도 행안부 장관에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법무부와
뭐가 달라?

이태원 참사아 관련해 이 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 내부서조차 나왔던 이유다.

비판이 거셌음에도 이 장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이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1일 동남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면서 전용기 탑승에 앞서 이 장관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귀국할 때는 이 장관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건넸다.

경찰국의 업무 중에는 경찰의 중요정책 수립과 관련해 행안부 장관이 경찰청장을 지휘·감독하는 사항이 포함돼있다. 특히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 지휘규칙에는 경찰청장이 ‘중요 정책 및 계획의 추진 실적’을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그 밖의 법령에 규정된 권한 행사 및 책무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해 행안부 장관이 요청하는 사항’도 보고 대상이다. 이 같은 막강 권력을 쥐고 경찰국의 보고를 받는 이 장관은 인사제청권이라는 칼날까지 휘두를 수 있게 됐다.

이 장관은 “행안부와 경찰을 연결하는 끈은 전혀 없다”며 “유일한 끈이라는 것은 경찰 고위직에 대한 (행안부 장관의) 인사제청권이 유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행안부 장관의 인사제청권이 칼날이 된 시기는 경찰국 신설과 겹친다.

기존에는 경찰청장이 인사안을 추천하면 행안부 장관을 경유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했으나 총경 이상(경정부터 대상)의 인사제청권이 실질화됐다. 형식에 그쳤던 제청권을 행사하면서 경찰 수뇌부를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같은 경찰의 변화로 장관의 수사 개입 여지가 열렸다고 보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특히 검찰보다 인사와 지휘에 취약한 경찰의 특성상 현실화 가능성이 클 수 있다는 걱정도 많았다.

힘 실어주는
윤 대통령


서울 직협 관계자는 “범죄수사규칙상 관할서장은 수사를 지휘하고 보고받는다. 서장의 지휘자는 경찰청장인데, 과거의 개선안은 행안부 장관이 청장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결국 13만 경찰이 한순간에 장관 지시에 따라 수사하게 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경찰국 신설만으로 불만이 상당한데 법무부와 비교해 행안부 장관의 권한을 강화하는 건 경찰을 대놓고 통제하겠다는 비판이 대다수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 법무부도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방향으로 변화를 시도 중인데 행안부 장관의 권한 강화 핑계로 보완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우려했다.

경찰국 신설 직전 당시 경찰 대부분은 반대 움직임을 보였다. 이른바 ‘경란’으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컸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를 주도했던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대기 발령됐고, 회의 참석 총경들에 대한 감찰도 진행됐다. 그러나 경찰 내부의 반발은 줄지 않았었다.

서울 광진경찰서 김성종 경감(경찰대 14기)은 당시 경찰 내부망을 통해 경감과 경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 현장팀장 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경찰 내부망에도 “나도 대기발령 시켜달라” “윤희근(당시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한다” 등의 실명 게시글이 쏟아졌다.

경찰국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던 일선 경찰들도 징계 조치에 대한 비판 움직임에는 동참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활발했던 경란도 현재는 사그라든 상황이다. ‘검찰 하수인’이라는 시선을 극복하고 싶었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검수원복(검찰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에 대한 반발이 작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 영향력 약화 독립성 사실상 증발
검, 검수원복·경찰 간접 비판 여론전


현재 검찰은 직접 수사권 일부를 회복하고 여론전에 나섰다. 특히 마약 수사 등 가시적인 성공을 적극적으로 치하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태원 참사 보완수사 성공사례나 경찰이 연루된 사건 수사 결과를 강조하며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무력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지난 3월6일부터 이틀 동안 부산지역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부산지검 서부지청이었는데, 개청 이후 검찰총장이 방문한 것은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서부지청을 찾은 이 총장은 취재진과의 약식 기자회견서 “직원 격려 차원”이라고 방문 목적을 밝혔다. 또 마약 수사 등 최근 부산지역 검찰이 발표한 사건들을 직접 언급하며 ‘수사 성과’라고 강조했다.

당시 이 총장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을 만들자마자 부산지검서 해외로부터 밀수한 필로폰 50㎏을 압수하는 성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총장의 행보를 두고 검수원복에 속도를 내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검수원복 시행령으로 수사 범위를 확대한 뒤 각종 성과를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특히 부산지검은 마약범죄특별수사팀을 신설한 뒤 시가 1650억원에 달하는 필로폰을 압수한 사건을 공개했는데, 이례적으로 직접 언론 브리핑까지 나섰다.

지난해 부산지검은 보도자료를 통해 불구속 송치된 성폭력 피의자의 2차 가해 정황을 포착해 피의자를 구속한 사건 등 5건의 보완수사 성공 사례를 모아 공개하며 “검찰의 적극적인 보완수사 결과”라고 자평했다.

동부지청은 해외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자를 기소한 사건과 관련해 “경찰 수사에 묻힐 뻔한 일을 검찰의 시정조치 요구를 통해 밝혀냈다”며 검찰의 사법통제권한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교육감 선거 과정서 일어난 금품 제공 관련 사건을 공개하며 검사에게 재수사 요청을 받은 담당 경찰이 수사 기밀을 피의자에게 알려줬다는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검찰의 재수사 요청에도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유지한 사건을 검찰이 직접 수사해 4명 전원을 기소했다는 사실도 함께 포함됐다.

위기감
무기력

최근에는 무인단속장비 납품 비리 관련 수사 결과를 공개하며 현직 경찰이 수사 정보를 흘리고 수사를 엉터리로 진행해 구속했다고 강조하는 등 경찰의 수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검찰 직접 수사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어필하고 모양새다.

경찰 내부에서는 일선의 수사 부담을 덜어주는 검찰의 보완수사 여지 확대 등에는 동의하면서도, 검수원복·수사준칙 개정 등 일련의 흐름 안에서 ‘경찰이 패싱당하고 있다’는 위기감·무기력증을 보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검수원복이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며 “지난해 검경협의체가 구성됐을 때부터 결국 법무부 뜻대로 될 것이란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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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