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계곡 살인 무기징역 이은해 검찰 ‘부실 공소장’ 의혹

인정 못 받은 ‘직접 살인’ 상고할까?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계곡 살인사건’으로 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은해가 2심서도 같은 판결을 받았다.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을 통한 직접 살인은 이번에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간 검찰에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을 언급했다. 최근 선고공판 직전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직접 살인 입증에만 몰두하던 검찰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가평계곡 살인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이 지난달 26일에 있었다. 살인·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해는 동종 전과가 없었으나 잔혹성이 인정돼 1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법원의 판단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이은해 측 변호인은 억울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한다. 검찰이 내민 정황상 간접 증거에 의한 비상식적 판결이라는 주장이다.

인정된 범행
잔혹성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6-1부(원종찬·박원철·이의영 부장판사)는 살인·살인미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은해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내연남이자 공범인 조현수도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보험금 8억원을 노려 두 차례 살인미수와 살인을 저질러 죄책이 매우 무겁다”며 “양심의 가책 없이 보험금을 청구했으며 유족 피해 해소도 전혀 없었고 도주하는 등 정황도 불량하다”고 질타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은해는 조현수와 함께 2019년 6월30일, 경기도 가평군 용소계곡서 남편 윤모(사망 당시 39세)씨를 물에 빠지게 해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19년 2월과 5월,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에 빠뜨려 윤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도 받는다.


2심 재판의 쟁점은 살인이 가스라이팅에 의한 직접(작위) 살인 여부였다. 1심은 직접 살인이 아니라 물에 빠진 피해자를 일부러 구하지 않은 간접(부작위) 살인이라고 봤다. 검찰은 이은해가 윤씨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가스라이팅을 통해 구조장비 없이 4m 높이 바위서 3m 깊이의 계곡물로 뛰어들게 했다며 직접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법이 금지한 행위를 직접 실행한 상황에는 ‘작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부작위’라고 한다. 통상 작위에 의한 살인이 유죄로 인정됐을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보다 형량이 훨씬 높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해자와 이은해 사이의 심리적 주종 관계 형성과 관련해 가스라이팅 요소가 있다고는 판단하지만 지배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고 판단했다.

가스라이팅이 주로 경제적인 영역서 이뤄졌을 뿐 다른 영역에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살인미수나 보험사기 등 혐의는 원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은 2019년 윤씨 사망 당시 가평경찰서가 혐의점을 찾지 못해 단순 변사사건으로 내사 종결됐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일산 서부경찰서가 재수사에 착수해 이은해와 조현수를 살인·보험사기 미수 혐의로 2020년 인천지검에 송치했다. 이들은 2021년 12월 검찰의 첫 소환조사를 받은 뒤 잠적했고, 공개수배 끝에 지난해 4월16일 경기도 고양서 검거됐다.

이들은 윤씨의 생명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윤씨를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스라이팅’ 인정 안 돼…유례도 없어
원심 유지…조현수 전 연인 핵심 진술


이은해는 보험사가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2020년 소송을 제기했고, 지금까지 취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6월 변론기일을 연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박준민 부장판사)는 형사재판 결과를 기다려보겠다는 취지로 다음 기일을 잡지 않았다.

윤씨의 매부는 선고 뒤 취재진과 만나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선량한 서민이 범죄자에게 피해를 보는 일이 반복되는데, 가슴 아픈 일이 다시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은해가 보험금 소송을 포기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아직도 금전에 대한 미련이 많은 참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하다”고 비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박준민 부장판사)는 이은해가 S 생명보험사를 상대로 한 8억원의 생명보험금 청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은해는 조현수와 범행 이후 윤씨 명의로 가입한 생명보험금 8억원을 청구했으나 보험사기를 의심한 S 생명보험사 측으로부터 지급을 거절당했다.

S 생명보험사 측은 이은해가 나이와 소득에 비해 생명보험 납입액수가 큰 점, 보험 수익자가 법정상속인이 아니라 이은해인 점 등을 의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은해는 현재 살인 혐의뿐만 아니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미수 등 혐의도 적용받은 상태다.

국내 판례에서는 지금껏 손도 대지 않고 사람이 살해된 바 없다. 이번 선고공판서 직접살인이 인정됐다면 유례없는 판결이었을 수 있었다. 재판부가 검찰에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을 언급한 것도 그 이유다. 그만큼 검찰이 직접살인을 고집한 게 재판부의 어깨를 무겁게 해왔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검찰은 지난해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 이규훈)가 진행한 13번째 심리서 이은해에 대한 공소장을 바꾼 바 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도 염두에 두라”는 재판부의 요구 때문이었다.

수차례
공소장 변경

<일요시사>가 입수한 ‘계곡 살인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2019년 6월30일 가평 용소계곡서 피해자 윤씨가 계곡물에 빠진 뒤 이은해 등이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봤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살인 계획에 따라 피해자가 물에 뛰어든 직후 허우적대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은해는 위 계곡의 모래톱에 구명조끼가 3벌 있었고, 조현수에게 튜브가 있어 즉각 피해자를 구조할 수 있었음에도 (동행한)A씨에게 이은해는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자고 유인했다. 계곡서 약 58m 떨어진 곳에 비치된 구명튜브를 가지러 가는 방법으로 현장서 이탈시켜 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를 적기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현수에 대해선 “피해자와 약 5m 거리서 튜브를 착용하고 있었음에도 피해자에게 튜브를 던져주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물속에 잠겼음에도 즉시 피해자가 빠진 위치 인근으로 다가가 물에 잠긴 피해자를 수색해 물 밖으로 인도하는 등의 구호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혐의를 변경하지 않았다. 혐의는 유지하되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작위적 요소와 부작위적 요소가 결합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볼 땐 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지난달 말에도 공소장을 변경했다. 피고인들이 주고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바탕으로 범행 일시와 방법 등을 더욱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다. 앞서 검찰은 1심서 이은해와 정모씨가 인근서 사온 복어와 부산물 등을 넣은 매운탕을 먹였다고 밝힌 바 있다.

진술 신빙성에 문제
수상스포츠 곧잘 즐겨

해당 공소장에는 이들은 2019년 2월 강원도 양양군의 한 펜션서 미리 사둔 복어 1마리를 남겨놓고 남편에게 술을 마시도록 했다고 적시됐다. 그러나 윤씨가 거부하자 한 가게서 복어와 부산물을 추가로 구매했다. 이은해와 정씨는 남겨놨던 복어 및 부산물을 넣고 끓여 남편에게만 먹였다.

검찰은 이 정황이 직접살인의 증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은해 측 변호인은 텔레그램 내용 자체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은해 측 변호인은 “텔레그램상에도 복어를 손질받아왔고 피와 독성이 있는 부위도 구해오지 않았다. 독이 없는 복어로 매운탕을 끓인 것이지 윤씨를 죽이려 했던 게 아니다. 이은해 등의 주된 목적은 위자료 계획에 따라 윤씨가 술을 많이 먹도록 유도해 타 여자에게 실수하게 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은해 측 변호인은 ‘키맨’이자 조현수와 연인 관계였던 증인 김모씨의 진술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씨는 사건 당시 이은해의 살인이 계획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본 이후 ‘이은해가 살인을 하려 했다’고 여기게 됐다는 게 검찰 진술 내용이다.


다른 증인은 “윤씨가 빠지서 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할 정도로 물을 무서워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그는 “윤씨가 이은해에게 ‘물에 들어가기 싫어, 물놀이 기구 안 탄다’고 말했으나 이은해가 윤씨에게 화를 내며 ‘그럼 내가 탈 것’이라고 해 윤씨가 바나나보트를 탄 것”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주장은 윤씨가 수영을 못 한다고 판단하는 데 중요한 진술이 됐다. 그러나 실제 윤씨는 김씨와 빠지에 자주 갔고 웨이크보드를 타고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교육을 받았었다. 물에 대한 공포심이 심해 물에만 들어가면 경직된다는 말과 달리 수상스포츠를 곧잘 즐겼다는 주변인들의 증언도 존재한다.

재판부 여러 차례 공소장 변경 언급
정황상 간접증거 의한 비상식 판결?

이은해 측 변호인은 “원심서부터 17회의 공판을 거치면서 정황 증거일 뿐 허구성이 존재한다. 검사는 피고인들이 밀복의 독이 있는 내장을 이용해 윤씨를 독살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장난처럼 이어진 텔레그램 내용만 있다”며 “실제로 복어를 구입했는지, 어디서 구입했는지, 복어의 독이 있는 내장은 구했는지, 그 내장으로 실제 매운탕을 끓여서 윤씨에게 먹였는지에 대해 어떠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검찰은 피고인들이 낚시터에서 윤씨를 밀어 죽이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김씨의 진술만 있었을 뿐이다. 김씨는 이은해가 윤씨를 미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조현수가 물속에서 윤씨를 가라앉히려 시도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은해 측 변호인은 2심 판단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이다. 원칙적으로 상고는 항소심의 판결, 즉 제2심판결에 대한 불복신청이다. 제1심판결에 대해서도 이른바 비약 상고가 인정돼 예외적으로 제1심판결에 대한 상고도 포함된다.

상고심의 관할권을 가지는 법원은 어떤 경우에도 대법원이며, 그 제기 기간은 항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7일이다. 상고도 상소의 일종이므로 당사자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지만, 상고심의 주된 사명은 하급법원의 법령해석·적용의 통일을 기한다.

상고는 최종심이므로 상고심의 재판에 대해서는 다시 상소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행법원은 신중을 기하는 의미서 ‘판결의 정정’ 제도를 인정하고 있다. 상고심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사후심으로서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상고심의 절차에 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다.

검찰도 직접살인을 인정받으려 상고에 임할지는 아직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상고에 임한다 해도 판결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구체성 없는
간접 정황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1~2심서 유죄가 나온 사건이 대법원서 뒤집힐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며 “현재까지 채택된 증거만으로는 원심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도 “정황 및 간접증거라고 해도 대법원 판단은 법률심이다. 법률에 반박할 수 있는 물증이 없다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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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