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클릭도 우클릭도… ‘붕 뜬’ 김기현 현주소

아직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부쩍 민심을 더욱 챙기고 있다. 최근 현안과 관련된 것이라면 일단 손을 댄다. 지지율 하락에 드디어 국민의힘이 위기감을 느낀 모양새다. 떠나간 중도 민심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문제는 내부서도 혼란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왼쪽을 보기에도, 오른쪽만 향하기에도 어정쩡한 상황이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길을 잃었다. 중도층 지지율은 폭락 수준인 데다, 텃밭 지지율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여러 설화에 맞물려 떨어지는 추세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출마 당시 지지율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현재 추세로는 무리라고 여겨진다. 결국 지지율 상승을 꾀하기 위해 당을 재정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나 홀로 
고군분투

잇따른 설화로 대중과 여론의 공분을 산 김재원, 태영호 최고위원의 징계론까지 확산된 상황이다. 200명 정도의 당원은 김 최고위원의 징계를 촉구하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현재 그는 셀프 반성 모드에 들어가면서 공식적인 활동을 중지한 상태다. 

‘북한 5‧18 민주화운동 개입 가능성’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대’ 등 김 최고위원의 발언 여파는 컸다. “우파를 천하통일시켰다”고 발언하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깊은 우정을 과시하는 모습을 모이기도 했다. 지금껏 차곡차곡 쌓아올렸던 광주 민심은 한순간에 폭락해버렸다.

김 최고위원이 쏴 올린 신호탄으로 현재 국민의힘은 ‘극우’ 프레임 때문에 몸살을 앓는 중이다. 


상황을 잠자코 지켜보던 김 대표가 전 목사를 향해 “입을 다물라”고 직접 경고에 나서는 등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전 목사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당원을 고리로 압박에 들어갔다. 결국 김 대표가 전 목사를 추천인으로 적은 당원의 자진 탈당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칼을 빼 들었다. 

자체 조사를 통해 당원 가입 당시 추천인란에 전 목사를 적은 당원은 981명으로 파악됐다. 이마저도 실효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가 많다. 이중 당적자의 출당 조치가 현행 당헌·당규상 불가능해서다. 심지어 추천인란에 전 목사를 적어내지 않은 당원들을 걸러낼 방법도 없다.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른 기조다. 전 목사도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를 버리느냐”며 “(국민의힘의)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앞서 김기현 지도부는 출범 일주일 만에 우클릭만 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중도층의 표심이 떨어져 나가기 전 이미 경고음이 들렸던 셈이다. 

최고위원의 연속 실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태영호 최고위원의 연이은 발언도 여론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다. ‘4‧3 추념일 비하 발언’ 및 JM´S 더불어민주당, 친일 논란, 김구 발언까지 연달아 터졌다. 

정치권에서는 순번을 정해놓고 사고를 치냐는 비아냥 섞인 비판도 나온다. 김구 발언을 두고서는 최근 당내서 자중시켜야 한다는 쓴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태 최고위원은 김 대표로부터 ‘인터뷰 금지령’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들을 두고 일각에서는 최고위원직서 물러나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벌써 내부 곳곳서 잡음 들려
외연확장 시동 걸었지만 부족


태 최고위원은 지도부 회의까지 불참했다. 지도부 입장에선 시작부터 최고위원들의 사퇴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기도 쉽지 않다. 지지율 회복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당 지도부는 윤리위 구성에 속도를 냈다. 윤리위 징계 카드를 통해 리스크를 걷어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빠르게 황정균 윤리위원장을 임명했고, 윤리위원 구성도 마무리했다. 당내에서는 이를 통해 김·태 최고위원 징계가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다만 지도부 자체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서 최고위원들이 떨어져 나간다면 오히려 당내 불안감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텃밭인 PK(부산·울산·경남)·TK(대구·경북)의 지지율도 계속 떨어지는 추세라는 점이다. 

이를 고리로 이르면 상반기 중 당무위서도 당무감사 계획을 논의 중이다. 당무 감사를 통해 당내 잡음을 줄이려는 것이다. 당무위도 구성을 마친 뒤 곧바로 당무감사 계획을 논의해 이르면 상반기 중 당무감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당내 일각에선 당무위가 이르면 이달 중 계획을 공표한 뒤 6~7월부터 전국 당원협의회에 대한 당무 감사에 나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국민의힘은 지난해 한 차례 조강특위를 통해 사고 당협 68곳 중 66곳에 대한 추가 공모를 받았던 바 있다. 이 중 42곳을 충원했고 현재는 26곳이 부재 상황이다. 

이 역시 논란의 불씨를 당길 수 있어 보인다. 대통령실 참모들의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앞으로 당내서도 끊임없이 내홍이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위기를 느낀 김 대표는 박정희 기념관 방문,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 계획 등 집토끼 표심잡기에 나섰다. 이 자리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위대한 역사를 만든 지도자”라고 말했다. 떨어져 나가고 있는 조직 표심을 지키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오비이락?
민심 폭락

김 대표의 이 같은 집토끼 잡기 기조를 두고 우려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중도 민심 하락이 뚜렷한데, 당내 조직 다지기에만 바쁜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사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당시 우클릭으로 상당히 쏠쏠한 재미를 봤던 바 있다.

전당대회 캠프 개소식서 김 대표는 “촛불혁명이라며 광화문 광장을 독점하는 세력에 큰 분노를 갖는다”며 “촛불 호소인에 불과한데, 따져보면 사이비 촛불혁명을 가지고 국민을 농락했다”며 태극기 세력을 붙잡기 위한 발언을 했다. 


이어 “2019년 우리 당을 사랑하는 많은 애국 동지가 광화문에서 표출하고 결집된 힘을 형성해 윤석열정부가 탄생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가 언급했던 해당 날짜는 문재인 전 대통령 퇴진 집회가 열렸던 날이다. 초반만 해도 오른쪽을 향한 시선 돌리기는 내부결속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도층 민심에 더 심각한 경고음이 들려온다. 

김 대표는 즉시 박 전 대통령 예방 일정을 순연했다. 순연 배경에 대해서는 ‘홍준표 불화설’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홍준표 대구시장과 갈등을 겪어 직접 대구를 방문하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중도 민심이 하락하고 있는 상황서 텃밭만 챙기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부분도 있다. 박 전 대통령 예방을 미룬 이유도 당장 TK 지지율보다는 중도 민심을 잡는 데 주력하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실제로 김 대표는 지난 16일, 4·16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에 참석해 눈물까지 훔쳤다. 사흘 뒤인 지난 19일엔 4·19 혁명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이날 여당 의원 70명도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 

앞선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모식에 불참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 대표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단체 방문길에도 올랐다. 


여기에는 윤 대통령도 힘을 보탰다. 김 대표의 행보와 비슷하게 윤 대통령 역시 장애인의 날을 챙겼다. 직접 장애인 유튜브 채널에 댓글을 달기도 했다. 

당 내홍 
다시 격화

앞으로도 당 지도부는 중도 민심을 우선 잡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내달 18에는 여당 의원 전원이 5·18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계획도 마련해놨다. 이를 통해 김 최고위원의 망언 리스크를 털어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김기현호의 서진 정책을 펼치겠다는 심산이지만 이마저도 여러 비판이 나온다. 앞선 제주 4·3 사건을 언급하면서다.

취임 직후 김 대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평가가 미흡하다는 인식이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없었으면 자유민주체제가 대한민국 땅에 수립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과거 정부서 발간했던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가장 책임을 가진 이가 이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결론이 내려졌었다. 4·19 혁명이 있었던 계기도 이승만정부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시민이 주도했던 혁명이다. 

현재 국민의힘에게 필요한 부분은 실언 리스크를 넘어설 정도의 강력한 민생정책 제시로 보이는 가운데, 잠시 중단됐던 민생특위도 다시 띄우기로 했다. “민생을 챙기겠다”며 출범한 해당 특위 역시 시작과 동시에 난관에 부딪쳤다. 밥 한 공기 비우기, 물 보내기 운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놓은 정책이라는 게 유명무실했던 셈으로 이번마저 실효성이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할 경우, 지지율은 수렁의 늪으로 빠져버릴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민심을 다지기 위해 김기현호는 ‘김포 골드라인 혼잡’ ‘인천 전세사기 피해’ 등 각종 특위도 계속해서 꾸린다.

민생 현안을 챙기면서 민심을 함께 공략하겠다는 뜻으로 결국 민심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방점을 찍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마땅한 공격수 없어 힘 못 받아 
조만간 당내서 불만 터질 수도

김포 골드라인 문제나 어린이보호구역 사고 예방 해법 등을 제시하는 형식이다.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문제로 당정이 호흡을 맞추는 이유도 민심을 제대로 다지겠다는 의도에서다. 이번에도 일단 태스크포스(TF)를 띄웠지만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문제는 다음이다. 띄웠으면 결과를 내야 한다. 국민의힘 자체적으로 여러 리스크를 뛰어넘을 정도의 정책이 요원한 상황이다. 차기 총선에 대한 정부 견제론이 벌써부터 심각한 상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도 ‘돈봉투 전당대회’ 등 여러 리스크가 발생했지만, 국민의힘은 전혀 이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송영길 전 대표가 의혹의 중심에 선 만큼 민주당의 이번 돈봉투 전대 리스크는 상당히 심각한 편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위기 때마다 국민의힘의 공격 수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행동을 취해왔고, 국민의힘에는 공격수로 나설 인물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공격력이 높은 이른바 ‘빅 스피커’들을 당에서 줄줄이 쫓아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방어를 잘 해내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의 공격은 1타2피 성격이 강해 용산 대통령실 공격 시 자연스럽게 국민의힘에도 타격이 가해진다. 

당 자체의 리스크 방어에 급급해 공세를 잘 막을 여력도 부족하다. 하루가 다르게 당 내홍은 깊어져만 가고, 내부서조차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홍준표 대구시장의 우려처럼 각자도생만 생각해 분열이 가속화될 수 있어 보인다. 

지금처럼 중도층 공략에만 정성을 쏟아도 문제는 존재한다. 국민의힘 내홍, 잇따른 설화 등이 작용에 따른 여파로 조직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민생으로
외연 확장

김기현호는 앞서 이미 나경원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등을 쳐냈다. 결국 내부적으로도 부글부글 끓으면서 내부 갈등은 점점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차기 총선이 다가올수록 내부 불만이 직접적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외연 확장, 내부 다지기가 현 시점에선 힘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이마저도 맹탕 정책을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주도로 달려간 김재원

제주 4·3 사건을 두고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산 국민의힘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이 지난 20일 제주도를 찾아 유족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유족은 제주를 방문했던 김 최고위원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날 제주 4·3평화기념관을 찾아 유족을 만났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유족들을 찾아가 “유족의 마음을 잘 헤어리지 못하고 잘못을 했다”며 “상처입은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4·3 기념일이나 유족을 폄훼하는 생각은 없었다. 조심하며 신문 기사를 참고했는데 부주의하게 유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사과했다.

이와 관련해 유족들은 “갑자기 사과하러 오는 게 당내서 어려운 지경에 몰려 쇼하겠단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언급했다.

일부 유족은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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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