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퍼주고 까인 윤석열정부 후폭풍

수출, 역사, 독도… 다 뺏기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분명 ‘가는 말’은 고왔다. 윤석열정부는 ‘오는 말’도 고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 이후에도 태도 변화가 없다. 교역 정상화는 요원하다. 역사관과 영유권 인식은 여전히 퇴행적이다. 과거에 멈춘 일본 탓에 난감한 건 “미래로 가자”던 윤정부다. 국민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야당도 총공세에 나선 형국이다.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가 한일 양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서도 공통되게 나오고 있다.” “한국 정부가 한일관계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가 됐고 국제관계서도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일본인 마음을 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밝은 미래
어디로?

지난달 19일 대통령실은 한일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이같이 자평했다. 대통령실이 그린 ‘밝은 미래’는 불과 아흐레 만에 그 색이 바랬다. 지난달 28일 일본 문부과학성 교과서 검정심의회를 통과한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 내용이 알려지면서다.

일본의 한반도 가해 역사에 관한 기술 일부가 개악됐다. 해당 교과서들은 내년부터 사용될 예정이다.

개정 교과서에선 조선·한국인이 겪은 고통에 관한 서술이 대거 삭제됐다. 이를테면 ‘일본문교출판’의 2019년 검정 교과서는 임진왜란을 설명한 대목에서 “조선 국토가 황폐해지고,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고 적었다.


반면 이번에는 “천하(일본)통일을 달성한 히데요시는 다음으로 중국(당시 명)을 정복하려고 두 차례에 걸쳐 중국을 따르고 있던 조선에 대군을 보냈다. 그러나 조선서 전쟁이 잘 진행되지 않아 큰 피해가 날 뿐이었다”고 서술했다.

과거엔 ‘피침략자’인 조선의 피해 상황에 주안점을 뒀지만, 이번엔 ‘침략자’인 왜군 피해에 초점을 맞춰 내용을 작성한 셈이다. 가해 사실을 부정·희석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풀이가 나온다. 

한일 강제병합, 태평양전쟁 등 일본의 치부로 여겨지는 근현대사에서는 더 많은 내용이 삭제·변경됐다.

앞서 ‘도쿄서적’은 한일 강제병합 과정을 두고 “식민지가 된 조선의 학교에선 일본어 교육이 시작되는 한편, 조선의 역사는 가르치지 않아 사람들의 자긍심이 깊이 상처받게 됐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어 교육이 시작되는 한편,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됐다”고 비교적 간략히 적었다. 조선인의 민족적 상실감을 직접 언급한 부분이 빠졌다. 도쿄서적은 시장 점유율 과반을 차지한 출판사다. 

일 교과서 역사 왜곡 강화…“뒤통수” 비판 
독도 영유권 주장도 한술 더…외교부 항의

일본문교출판은 1923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에 관한 기술 내용을 삭제했다. 이외에도 출판사들은 전쟁기간 자행된 조선인 징병과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순화된 표현을 다수 채택했다.


반면 이들은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담았다. 기존에 독도를 ‘일본 영토’나 ‘일본 고유영토’로 섞어 지칭하던 것을 이번에 ‘일본 고유영토’로 통일했다.

일본문교출판은 6학년 사회 교과서(2019년 검정본)에서 ‘일본 영토’라고 적었지만, 이번에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수정했다. 이는 ‘독도는 역사상 한 번도 다른 나라 영토였던 적이 없다’는 일본 정부의 억지 주장이 더욱 명확히 관철된 결과다.

실제로 출판사 측은 수정 배경으로 “(일본 영토란 표현을)아동이 오해할 우려가 있어 ‘고유’란 표현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관련 시각자료의 활용도 늘었다. 독도를 일본 지도에 포함시키는 방식이 주로 활용됐다.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하고,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과 영해에 끼워 넣었다.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경계선을 긋기도 했다.

자화자찬
열흘 만에…

한국인의 ‘역린’과도 같은 과거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이 동시에 이뤄졌다. 그간 국내 여론의 포화 속에서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자세를 취해왔던 정부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이날 오후 외교부는 구마가이 나오키 일본 대사 대리를 초치해 항의했다. 외교부는 “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이 담긴 교과서를 일본이 또다시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며 “독도에 대한 일본의 어떠한 주장도 수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통령실도 “대한민국 주권과 영토에 관해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취지의 별도 입장을 냈다.

하지만 여론의 분노는 금세 정부 책임론으로 옮겨붙었다. 윤정부가 ‘통 큰 양보’를 하고도 일본 측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퍼주기만 하고, 받은 건 없다’는 비판이다. 며칠간 외교 성과를 자화자찬하던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의 발언도 역풍을 부추겼다.

외교 전문가들의 혹평도 잇따랐다. 강창일 전 주일대사는 지난달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일 외교에 대한 소견을 전했다.

강 전 대사는 전날 일본의 행보를 겨냥해 “화답은커녕 우리 뒤통수를 친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몰라서 잘못을 저질렀다”고 꼬집었다. 일본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면 먼저 양보하는 정부 전략이 적절치 않았다는 주장이다. 

미래·주도 외치던 정부, 명분 실종에 난감
화이트리스트 복원도 요원…실리마저 놓칠라


그는 “일본 사회는 점점 더 우경화되고 있다. 그리고 자민당(일본 여당)도 그 세력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며 “우리가 통 크게 대승적 결단을 내렸다고 했을 때, 이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렸더니 말 잘 듣는다’ 이런 식으로 인식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심하게 욕했더니 말 잘 듣더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겠나”라며 “그런 것(특징)을 면밀히 파악해서 대책을 냈어야 했는데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양보 명분으로 삼은 교역 규제 완화도 난항을 겪는 모양새다. 당초 양국은 정상회담서 교역 정상화에 뜻을 모았다. 이에 일본은 2019년 8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한 것을 원상회복 하기로 했다.

한국 역시 같은 해 9월부로 일본을 화이트리스트서 배제한 것을 복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을 제소한 건 역시 취하하기로 했다. 화이트리스트는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국가’ 명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일본 측은 회담 이후 미온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복원을 신중히 판단하겠다”고 발언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복원에는 시행령 개정 등 비교적 복잡한 절차가 요구되는데, 일본은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미 복구 절차에 돌입했다. WTO 제소는 취하했고,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복귀 관련 고시 개정안은 지난달 23일부터 오는 12일까지 행정예고된 상태다.


정부는 이번에도 ‘선 조치 후 관찰’ 전략을 택했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7일 “우리 측이 할 수 있는 조치를 우리가 먼저 하고 그다음에 일본 측이 어떤 조치를 할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지난달 말처럼 또다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보를 고수하는 정부 전략에 대한 불신도 점차 커지는 분위기다.

끌까지 
믿을까

정치권에선 한일관계에 대한 공방이 전면전으로 비화되고 있다. 여당은 일본 정부의 행보를 규탄하며 ‘정부 책임 덜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고, 야당은 국정조사까지 꺼내 들며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일본 교과서 검정에 대한 입장을 내비쳤다. 주 원내대표는 “일본의 잘못”이라며 “그게 무슨 한일정상회담 결과가 잘못돼 그렇다는 것은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는 회의서 “역사 왜곡은 한일관계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일 정상회담으로 양국이 관계 정상화에 물꼬를 텄는데,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송 부대표는 “일본은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적 결단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야 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비판에 초점을 맞췄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즉각 일본에 사과를 촉구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부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날 오전 경남 보궐선거 지원 유세에 참석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교과서에 쓴다고 해도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말했던 대통령이 있었다”며 “이번에도 독도 이야기를 상대방은 했다는데 이쪽은 감감무소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교과서에 싣는다고 하면 ‘무슨 소리하냐’고 박차고 나와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냐”고 반문했다.

여 “일본 규탄” 야 “굴종 외교”
한일 정상회담 성과 다시 도마 위

박홍근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서 “윤 대통령이 피해 당사자, 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써가며 독단과 오만으로 강행한 강제동원 제3자 배상 굴욕안의 대가가 바로 이것이었느냐”고 따져 물었고, 박성준 대변인은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주장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인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여당 지도부는 더욱 한심하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한일정상회담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윤 대통령의 굴종외교를 감싸기에 급급하다”면서 “윤 대통령은 일본의 적반하장에 대해 어찌할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민주당은 한일 외교 전반에 걸친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29일 ‘일제 강제동원 굴욕 해법 및 굴종적 한일정상회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국정조사 범위로는 ▲제3자 변제안과 구상권 포기 과정 문제 ▲방일 중 독도·위안부 문제 거론 여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 해제 요구 여부 ▲WTO(세계무역기구) 제소 철회 과정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문제 ▲화이트리스트 복원 이유 등이 거론됐다.

민주당은 국정조사와 동시에 관련 상임위서 개별·합동 청문회도 개최할 계획이다. 안팎으로 수세에 몰린 정부에게, 전문가는 ‘강단 있는 대응’과 ‘새로운 대책 모색’을 돌파구로 제시한다. 

강 전 대사는 “통 큰 양보만 계속하는 정부이니까 (이번에도)아무 문제 안 삼을 줄 알았는데 어저께 초치한 건 잘했다”며 “이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윤석열정부가 가다듬고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 설마∼”
감싸기 급급

그는 윤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만나 ‘근린제국조항’ 부활을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린제국조항은 ‘인근 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관계에 관한 근현대의 역사적 사실에는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의 견지서 필요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 기준 규정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 자체 검열을 이끌어낼 조항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일본 강경보수파의 반발로 유명무실화된 상태다. 윤 대통령 요청에 따라 해당 조항이 부활한다면, 성난 국내 여론의 반발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후쿠시마 오염수 이해” 일본 보도 진실은?

일본의 한 언론이 지난달 17일, 윤석열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를 만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했다며 지난달 29일 보도했다.

반면 대통령실은 “근거 없는 오보”라면서 논란 차단에 나섰다.

이달 일본 <교도통신>은 한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방일 중이던 윤 대통령과 스가 전 총리의 접견에 동석한 누카가 후키시로 전 일한의원연맹 회장이 한국 정부에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해와 2011년 원전 사고 이후 시행해온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보도에서 “윤 대통령이 ‘문재인 전 정권은 이해하는 것을 피해온 것 같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국 국민의 이해를 구해나가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해당 보도가 국내로도 전해지면서 파장이 일었다.

이에 대통령실은 “근거 없는 오보”라고 보도 내용을 일축했다.

지난달 30일 MBC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일 간 정서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별도의 과학적 조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라며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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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