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천 드러나는 당정 일체의 한계

대통령 지키다 민심 다 잃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지도부의 컨벤션 효과가 시작과 동시에 끝났다. 지도부의 존재감도 크지 않다. 끓여보겠다는 연포탕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친윤 일색’이다. 지지율에 민심이 반영되자, 곧바로 하락하는 추세다. 김기현 대표 등 지도부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인 모양새지만 이마저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되려는 자세만 보인 탓이다. 

대통령실에서 밀어준 덕분에 김기현 당 대표는 과반을 넘겨 승리를 가져갔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에도 당정일체가 필요하다고 줄곧 강조해왔다. 본격적으로 당정 일체가 시작되자, 지도부는 한 달에 두 번 만남을 가지며 운명공동체격으로 당과 정부가 하나가 될 모습이다. 과거 김영삼정부 이후 20년 만의 부활이다. 사실상 윤석열정부의 정책에 힘을 싣겠다는 의도다. 

벌써 끝난
컨벤션 효과

첫 만남에서는 윤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3대 개혁에도 발을 맞춘다. 이 중 특히 노동개혁에 가장 힘을 쏟고 있다. 김 대표는 민·당·정 협의회서 “3대 구조개혁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국가적 과제”라고까지 강조했다. 

단순 ‘아이디어 차원’이라는 정책들도 윤정부와 궤를 함께해 여론의 반응을 살폈다. 문제는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노동정책의 문제와 함께 검토한 출산 대책도 여론의 공분을 샀다. 아이 3명을 낳으면 군 면제를 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쉽게 말해 20대 남성에게 아이 3명이 있으면 군대에 가지 않을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는 대학 졸업 후 4년 안에 아이를 셋 낳아야 가능한 만큼 현실성이 결여돼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렇듯 대통령실이 여러 실책을 저질러도 당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당정일체는 표면상으로는 당과 정부가 시너지효과를 내겠다는 게 목표였다. 

해당 정책의 기저에는 윤정부가 설정한 방향을 수정하거나, 우려를 표할 수 없다는 게 깔려 있다. 사실상 대통령의 그늘에 당이 가려지는 셈이다. 당만의 목소리는 실종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당대회에서는 당정일체론이 통할 수밖에 없었다. 지지율 한 자릿수에 그쳤던 인물이 윤 대통령의 영향력으로 당선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조직적인 면에서는 친윤으로 완벽함을 이뤘다.

친윤(친 윤석열) 핵심 세력으로 불리는 이철규 의원이 사무총장에, 이 의원을 보좌하는 전략 부총장, 조직 부총장에는 각각 친윤으로 분류된 박성민, 배현진 의원이 임명됐다. 대변인단도 유상범·강민국 의원 등 친윤 색채가 짙은 인물 위주로 구성됐다는 평가다.

정책위의장 역시 박대출 의원이, 여의도 연구원장에는 박수영 의원을 배치했다.

이 같은 인사는 조직 결속 부분에서는 상당한 이점을 가져갈 수 있어 보인다. 다만 전당대회 기간에도 주인공이 당 대표가 아닌, 윤 대통령이 됐다는 부분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고 당 대표의 존재감은 한 달도 안 돼 사라져버렸다.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에 역전을 허용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청년층의 지지세가 심각하게 낮다는 점이다. 과거 새누리당 시절만큼의 지지율이 나올 정도다. 


빠른 속도로 함께 추락하는 중
청년 지지율 순식간에 빠져나가

새누리당 시절에도 보수당은 청년 일자리, 모바일 정당 등의 2030 대책을 내놨으나 실제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예 다시 과거 행보를 반복하는 수준이라는 불만도 있다. 청년 세대는 캐스팅 보트로 불린다. 중도층이 많은 청년 특성상 이들의 마음을 살 수 있어야 차기 총선서 유리해진다. 실제로 헌정 사상 최초의 ‘30대 당수’였던 이준석 전 대표 체제하에서는 청년의 니즈를 잘 파악해왔다.

이 전 대표의 여의도 문법 탈피, 새로운 시도 등이 잘 먹혀들어가면서 2030세대들이 앞다퉈 국민의힘에 입당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단순히 문재인정부에 대한 비호감 때문에 국민의힘을 지지한 게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당 지도부는 이준석계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김 대표는 “천하람 위원장은 말할 것도 없이 당협위원장”이라며 “당연히 함께 가야 한다”고 손을 내밀었다. 

이는 전대 직후 이별을 암시했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전대가 끝난 직후에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함께 가기 어렵다는 발언과는 상반돼서다. 하지만, 이준석계는 쉽게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의 청년층 지지세는 다른 연령대보다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대선 기간에는 청년층이 국민의힘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30대층이 국민의힘으로 옮겨갔으나, 최근 잇따른 실책에 빠르게 이탈 중이다. 

69시간근무제 논란, 일본과의 관계 등이 이유다. 급해진 당 지도부는 MZ 노조와의 치맥 회동, 1000원 학식 확대 등으로 뿔난 청년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정책에 빠른 속도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당에서 요청하자마자, 대통령실에서도 바로 예산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비판이 나온다.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대학들과는 달리 지방대학들은 재정 확보가 어려운 상태라는 점 때문이다.

시작부터
엇박자

정치권에서는 추후 국민의힘을 향한 청년층 지지가 더욱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그러자, 청년 표심이 간절한 국민의힘은 청년을 전진 배치시키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책위원회에 청년부의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 정책위 내 각 상임위 현안을 조정하는 정책조정위원회별로 청년 부위원장을 배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청년층과 함께 당 정책을 개발하고, 표심을 끌어오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하지만, 정작 청년층에선 시큰둥한 반응이다. 오히려 장외에 있는 이 전 대표에게 시선이 쏠린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장외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모양새다.

지도부를 향한 공격도 더욱 거세졌다. 이 전 대표는 “김 대표가 정상적으로 집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치 지형상 본인이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등에 올라탄 뒤, 대통령이 밀어 당 대표가 돼 애매한 이야기를 한다”고 작심 비판했다. 

이 전 대표는 순천을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할 예정이다. 비단, 청년층뿐 아니라 민심 자체를 노리는 것이다. 이미 전대서부터 민심을 차곡차곡 다져왔고, 반 민주당 세력을 따로 꾸리고 있다. 노선도 당내 공격보다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는 쪽으로 바꿨다. 지도부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리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당정 일체만 챙기다가 민주당 견제에 느슨함을 보이기도 한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한일정상회담에 대한 이슈들로 정부여당과 윤정부를 공격한다. 양곡관리법과 관련해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한 목소리를 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공식적으로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으며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즉각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오히려 농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판단을 잠시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런 지점을 계속 노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을 방어하는 태도를 취할수록 상황이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사실상 국민의힘과 윤정부의 공동노선이 민주당에게 큰 이득인 셈이다. 애써 여러 번 공격할 필요 없이 한 번만 공격해도 동시에 둘을 타격하고, 국민의힘에게 끊임없이 부담을 실어주려는 행보다. 

같이 죽자고?
손 잡고 하락

이처럼 정부여당과 윤정부의 엇박자가 자꾸 나오는 가운데,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이관섭 국정기획 수석이 혼선을 방지하고자 꺼내든 것이 바로 핫라인 카드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그립을 강하게 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정의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겠다는 취지인데, 오히려 수직적으로 비칠까 우려스럽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겠다며 청와대를 박차고 나간 뒤, 용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최근 당정일체론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가 쏟아진다. 당선 다음 날에는 “대통령은 당의 사무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정의 분리 기조가 뚜렷했다. 

당정 일체론을 본격적으로 띄운 인물은 윤핵관의 핵심 중 한 명인 장제원 의원이다. 장 의원은 “당정이 충돌했을 때 부담이 됐다”며 “우리 역사가 증명한다”고 필요성을 언급했다. 친윤(친윤석열)계도 함께 뜻을 모았다. 비윤(비 윤석열)계는 당정일체론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당이 폭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벌써부터 당정 일체의 부작용이 심각한 편이다. 윤정부의 헛발질이 계속될수록 국민의힘도 위기가 지속된다. 

일심동체로 적극 방어에 나서고는 있지만 힘겨울 정도다. 대통령실의 책임 회피는 지금껏 자주 있던 일이다. 앞선 노동시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책임도 노동부에 떠넘겼다. 앞선 경우처럼 대통령실은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별개의 의견들이 나온다. 이런 식의 해결은 국민의힘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분석된다. 

당정 일체론은 과거 정부서도 자주 꺼낸 카드다.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이 집권여당 총재를 겸했다. 당 인사와 재정 심지어 공천권까지 쥐고 흔들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의 당정 일체론은 권력이 대통령에 집중되는 등 여러 폐단을 낳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실시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정치권의 심한 견제를 받았던 데다 정부 여당이 분열의 길까지 들어섰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 쉽지 않다는 예상 파다
승리 없이 자기 사람만 심기 목표?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이런 모습을 지켜봤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결국 당정 일체론을 줄곧 내세웠다.

이 전 대통령은 표면상으로는 당 대표를 맡지는 않았지만 공천, 인사 등으로 당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특히 이명박정부 당시에는 친이(친 이명박)계의 득세 속에 친박(친 박근혜)계를 공천서 완전 배제하면서 공천 학살 논란이 일었다. 

내년 22대 총선은 윤정부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한 만큼 당정 일체론은 1년 뒤, 총선 승리 여부와도 직결된다.

현재까지의 상황대로라면, 국민의힘이 내년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힘은 차기 총선서 큰 희망을 걸기 어렵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 당심이 곧 민심이라는 기조를 세웠기 때문이라는 것. 

현재의 민심으로는 윤 대통령 얼굴로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기도 하다. 통상적으로 정가에선 총선서 대통령을 앞세우려면 50%가 넘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윤 대통령 지지율은 30%대까지 떨어져 있다. 김 대표가 자신했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 60%에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대신 부정 평가는 60% 가깝게 나온다. 

일각에선 아예 국민의힘이 총선 승리에 욕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할 바에 윤 대통령의 측근만 심으려는 계획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와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친윤 그룹이 당내 주류임은 확실하지만, 윤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불리는 인물은 몇 없다. 현재 윤 대통령은 서울서 지지율이 10%p 정도가 빠졌다. 

오히려
부작용

민심을 통틀어 지지세가 굳건한 지역은 TK(대구·경북) 뿐이다. PK(부산·울산·경남) 지역도 부정 평가가 과반을 넘는다. 지지율 상승을 이뤄내지 못하면, 윤 대통령의 측근 심기는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만 한정될 수 있다. 당선 지역이 강남, 영남권에 한정된다는 소리다. 

한 정가 관계자는 “당정 일체가 잘 이뤄지면 신속하게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대통령실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당 지도부는 ‘아니다’라는 말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외연 확장과 지지율을 끌어올릴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당정일체? 막가는 김재원

김재원 수석 최고위원이 또 실책을 저질렀다. 앞서 김 위원은 전광훈 목사를 찬양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전 목사가 우파 진영을 전부 천하통일했다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발언은 즉시 여론에 뭇매를 맞았는데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징계 목소리까지 나온다.

김기현 대표가 경고하긴 했지만 당 지도부는 김 위원을 징계하지 않을 예정이다. 본인이 사과했다는 게 이유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같은 친윤이기 때문에 징계 등이 내려지지 않는다는 비판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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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