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보호소 비참한 현실

더러운 개농장과 다를 것 없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케어의 ‘내로남불’식 잣대는 유별나다. 같은 법을 어겼지만 남의 개 농장은 철폐 대상, 자신들 보호소는 수호 대상이다. 개 농장에서 개가 죽으면 학대지만, 보호소에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케어에게 구조‘당한’ 동물 중 일부는 구조 이후에도 비참한 삶만 살다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면죄부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맛대로 재단한 ‘공익’ 아래 ‘셀프 부여’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와치독’은 2021년 여름, 정식으로 결성된 케어 산하의 개 농장 철폐 조직이다. 이들의 목표는 전국의 모든 개 농장을 문 닫게 하는 것. 무허가 개 농장, 불법 도살 등을 자행하는 불법 개 농장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법 위반 소지가 없는 개 농장 역시 이들에겐 ‘타도 대상’이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케어와 와치독은 “모든 개 농장이 동물 학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다른 동물권 단체들도 개 식용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대부분의 개 농장 철폐 시도는 불법 개 농장에 국한된다.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하는 개 농장은 없앨 근거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이보다 더 과격한 활동 목표를 내건 와치독의 후원 규모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케어 출신 활동가들은 “과거 ‘무단 안락사 사태’로 부침을 겪던 케어가 와치독 결성을 계기로 반등에 성공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김영환 케어 대표는 지난해 3월 열린 총회서 “회원이 늘었다. 이대로라면 연말쯤 케어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치독은 결성 직후부터 케어를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를 방증하듯 케어의 전·현직 대표와 이사 등은 스스로 ‘와치독 기획자’ 자리에 올라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 중이다. 와치독이라고 해서 없는 문제를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신 이들은 일종의 ‘우회 공격’을 통해 개 농장을 사냥한다. 이들은 개 농장이 위치한 땅·건물에 넣어볼 수 있는 모든 민원을 마구잡이로 제기한다.

<일요시사>는 와치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 지자체에 보낸 민원서 원문을 확보했다. 와치독은 한 개농장 주소를 특정한 뒤 ▲건축법 ▲국토계획법 ▲농지법 ▲동물보호법 ▲폐기물관리법 ▲사료관리법 ▲가축분뇨법 ▲액화석유가스법 ▲물환경보전법 ▲하수도법 ▲지방세법 위반 여부를 판단, 처분을 요구했다. 

민원 답변에 따르면 해당 농장에선 동물보호법, 가축분뇨법 등에 관한 위반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스·수도·재산세 법 위반을 이유로 행정처분이 예고됐다. 

와치독은 이 같은 주객전도적 상황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빈틈’이라도 포착하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와치독은 지자체에겐 엄한 행정처분을 내리라고 압박하고, 개 농장주에겐 “계속 버티면 막대한 벌금을 내야 할 것”이라며 폐업을 종용한다. 지난달 와치독은 후원자들에게 “지난해 개농장 218곳을 타격했다”고 보고했다.

물론 와치독의 이 같은 행보가 상식과 동떨어져 보일 수는 있다. 다만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부차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위법 사항은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진짜 문제는 케어와 와치독의 ‘이중잣대’다. 케어가 직접 운영하는 보호소들은 각종 위법 사항들을 안은 채 수년째 운영 중이다. 와치독 활동 경험이 있는 한 동물권 활동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와치독이 케어 보호소를 친다면 즉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외에도 동물권 활동가 다수가 케어 보호소의 위법 요소를 지적했다.

<일요시사>는 케어 직영 보호소 두 곳의 위법 사항을 직접 살펴봤다. 이때 ‘와치독이 케어를 치는’ 상황을 상정하기 위해 와치독의 민원서 양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문맥을 고려한 최소한의 수정을 거친 뒤 케어 보호소 주소를 적어넣었다. 민원서 분량은 A4용지 2페이지를 가뿐히 채웠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말 각 지자체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충북 충주시와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케어 보호소 두 곳은 모두 건축법과 농지법을 위반해 꾸준히 행정처분을 받아왔다. 이에 더해 충주시는 충주 보호소가 가축분뇨법까지 위반 중이라고 알려왔다.

불법 현장 사냥…확인해보니 ‘내로남불’
각종 위법·행정처분 폭탄 “방법이 없다”

케어는 보호소를 지을 수 없는 곳에 보호소 건축을 강행했다. 현행법상 농지 소유자는 농지를 농업용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농지를 허가 없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건 ‘농지 불법전용 행위’로 명명된 금지사항이다.

같은 맥락에서 농지에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 일명 ‘농막’이라 불리는 작은 휴게시설을 제외하고는 천장이 막힌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하지만 케어는 건축법을 수차례 위반했다. 케어는 과거 충주 보호소에서 위반건축물이 적발된 뒤 이행강제금 부과 직전에 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충주시 현장점검에서 또다시 위반건축물 2~3동이 발견됐다. 

설령 두 보호소 부지가 농지가 아니라고 해도, 케어는 보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두 땅 모두 가축사육 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가축사육 제한구역이다. 물론 케어와 와치독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불과 지난달에도 케어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개 농장을 없애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뒤 근거로 가축사육 제한구역을 언급했다.

일단 개 농장을 없애면 옮겨갈 곳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와치독 활동이 본격화된 뒤에도, 케어는 “위법 사항을 시정하라”는 지자체 권고를 줄곧 무시해왔다. 이에 각 지자체는 케어에 이행강제금 부과, 폐쇄 명령, 고발 등 각종 행정처분으로 대응 중이다.

특히 충주 보호소는 2017년 처음 행정처분이 내려진 이래로 꾸준히 시설 폐쇄 및 퇴거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케어 측은 충주시에 “보호소 이전 부지가 확보되는 대로 나가겠다”며 폐쇄 명령 이행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케어는 보호소를 옮기지 않았다.

충주시는 “폐쇄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폐쇄 명령을 재개했고, 케어는 2021년 4월과 지난해 6월 연이어 내려진 폐쇄 명령에 모두 불응했다.


수년간 법을 어겨온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충주시는 박소연 전 대표를 농지법 위반으로, 김 대표를 가축분뇨법 위반으로 각각 고발했다. 아울러 박 전 대표는 충주 보호소 부지 문제로 이행강제금 4000만원을 부과받았다.

도긴개긴
동물 방치

박 전 대표는 압류를 막기 위해 이행강제금을 한 달에 200만원씩 분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충주시는 박 전 대표에게 이행강제금을 추가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케어가 위법 사항을 조속히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케어는 수년 전부터 보호소 이전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케어는 2021년 충청권 모처에 김 대표 명의로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케어는 이곳에도 보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이곳 역시 가축사육 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케어는 관할 지자체에 보호소 건립 허가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끝내 반려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한 동물권 활동가는 <일요시사>에 “결국 부지 매입도, 이행강제금 납부도 후원금으로 하지 않겠느냐”며 “운영진 역량 부족 때문에 후원금이 계속 낭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소 건립 부지를 선정할 때 가축사육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 건 상식이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도 확인할 수 있다”며 “보호소를 지으려고 보호소 못 짓는 땅을 사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케어의 ‘자충수’와는 별개로, 케어의 위법 행위는 ‘동물권 보장’이라는 대의 아래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접촉한 복수의 케어 출신 활동가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케어 보호소의 열악한 실태를 문제 삼았다.

케어에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케어 산하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한 활동가는 “사람들이 개 농장보다 보호소에 더 호의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에 있는 아이들(동물)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보호소 쪽이 훨씬 좋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런데 케어 보호소의 아이들 처우는 개 농장에 갇혀 있던 시절에 비해 나아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시설부터 관리까지 모든 게 너무 열악하다”며 “간판 떼고 보면 (여기가)개 농장인지, 보호소인지 구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호된 공익이 없는데 어떻게 위법 사항을 눈감아 주겠느냐”고 되물었다.

케어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수년 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무단 안락사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함께 도마에 올랐다. 턱없이 낮은 위탁 비용, 배정 예산 대비 초라한 시설 등이 주된 비판거리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케어 보호소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케어 보호소를 드나든 이들이 촬영한 보호소 내부 사진 수십장을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충주와 홍성 보호소는 물론, 동두천에 위치한 위탁보호소 내부 상황도 파악할 수 있었다.

장기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동물 사진이 대다수였다. 길고 떡져 오래된 솜처럼 뭉친 털과 걸을 때 방해될 정도로 자란 발톱은 예사다. 피부염과 교상 등이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데도, 마땅한 치료 없이 방치된 듯한 사례도 여럿이었다. 이끼와 진흙 범벅인 바닥에 온몸이 더럽혀진 모습도 보였다.

비공개
보호소

케어 보호소에선 유독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되는 개 시신이 많았다. 무리한 합사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미 수년 전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표는 새로운 구조활동에 나설 때마다 보호소에 안락사와 합사를 지시했다. 새로운 개들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개들에게는 어느 쪽이든 죽는 길이었다. 순화 교육이 미처 이뤄지지 않은 개들도 마구잡이로 합사됐다. 개들은 허술한 관리 아래 서로를 물어 죽였다. 성별 구분 없이 함께 밀어 넣은 탓에 종종 임신하는 개들도 생겨났다. 

사건이 터진 뒤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19년 12월29일, 충주 보호소에서 개 한 마리가 또다시 물려 죽었다. 얼마 전 박 전 대표가 자유롭게 풀어놓은 개들이 서로를 공격한 것이다. 해당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표의 첫마디는 “낮에 이랬다고요? XX놈들”이었다.

이는 검찰이 박 전 대표를 동물보호법 위반 등 6개 혐의로 기소한 지 불과 이틀 뒤 벌어진 일이다.

활동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보호소 속 개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줄곧 방치됐다. 동물 사체는 보호소 속 냉동창고로 옮겨졌다. 사체를 감싼 비닐이나 이불이 사체에 엉겨 붙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들은 냉동창고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돈이다. 사체를 처리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처리를 미루고 냉동창고에 쌓아둔다. 지난해 동두천 보호소 냉동창고에선 사체 한 구가 후원받은 간식 상자 아래에 깔린 채로 발견됐다. 이를 발견한 활동가가 보호소장에게 항의하자, 소장은 “사체 처리비를 제때 주지 않는 케어 운영진에게 따져라”고 받아쳤다. 

떳떳하지 않으니 문을 열어둘 수도 없다. 케어는 해당 보호소 3곳을 사실상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케어 후원자는 물론 활동가들도 정기적인 출입이 어렵다.

지난해 <일요시사>는 정확한 내부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한 후원자의 동두천 보호소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케어의 오랜 후원자이지만, 보호소에 한 번 방문하기 위해 수년간 운영진을 설득했다고 한다. 내부 상황은 앞서 입수한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끼와 진흙이 가득했던 바닥만은 깨끗했다. 외부인이 온다고 급히 치운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견사 내·외부의 거미줄 등은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았다.

열악한 보호소, 수년 전에도 입방아
“달라진 것 없어…처참한 죽음 계속”

수년 간의 설득 끝에 얻어낸 견학 시간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다. 보호소 내부를 자유롭게 살펴볼 수도 없었다. 보호소장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미리 정해둔 듯한 동선으로 유도했고, 보호소의 외국인 노동자와는 끊임없이 눈이 마주쳤다.

동행한 후원자는 결국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열했다. 그는 “말로만 들었는데 이 정도로 열악한 줄은 몰랐다. 집에서 데리고 있을 여건이 안 돼 ○○(개인 후원하는 개 이름)를 저기 맡겨둔 건데, 그동안 힘들게 지냈을 걸 생각하니 너무 죄스럽다”고 털어놨다.

케어 보호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보호소 상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케어 보호소들은 주로 소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관리한다. 그런데 이들이 동물 보호 업무의 전문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니, 자원봉사자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보호소에 들어갈 수 있는 봉사자들은 극히 소수다. 보호소 내부 사정을 보고도 함구할 정도로 ‘검증’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 노동자·동물 등 보호소 식구들과 오랜 유대감을 쌓아온 케어의 전·현직 활동가들이 비정기적인 봉사활동에 나선다. 또 긴 시간 봉사활동이 이뤄지지 않을 때마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사진과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족한 인력과 전문성, 그리고 폐쇄성이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케어의 보호소 관리가 유독 미진한 이유는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단적인 예로, 케어는 동두천 보호소에 개를 한 마리 위탁할 때마다 월 5만원 안팎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는 통상적인 ‘시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일요시사>가 복수의 동물권 단체에 문의한 결과, 평균적인 보호소 위탁비는 대형견 기준 월 20만원 안팎이다.

위탁 보호소 이용 경험이 있는 동물권 단체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위탁비로 월 5만원을 지급하면 (위탁 동물에게)최소한의 여건도 보장해주기 어렵다. 위탁 보호소 측이 필수적인 미용, 의료행위조차 거부할 수 있다. 이들 입장에서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운영진의 무관심도 보호소 여건 개선의 걸림돌이다. 케어 출신 활동가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와 김 대표를 비롯한 대표·이사진은 보호소를 잘 찾지 않는다. “1년에 1~2번 방문해 사진을 찍는 게 전부”라는 비판 섞인 목격담도 나왔다.

연락 거부
답변 거절

<일요시사>는 케어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케어 홈페이지에 기재된 사무실 주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케어 사무실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 상황을 봤을 때 리모델링 중인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일요시사>는 김 대표와 유선상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1일, 김 대표는 다른 기자 전화기로 건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내 김 대표는 “전화하지 말라”며 대차게 전화를 끊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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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