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비운의 농구스타 김영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2.06 12:16:02
  • 호수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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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가…비참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한국화장품의 장신 센터 김영희가 점보시리즈 개막 이래 최고의 스타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5㎝에 98㎏의 거구 김영희는 점보 1차 시리즈서 센터답게 1게임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고 기록인 52점을 올렸으며 리바운드도 17개나 뽑아내 공수 양면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경향신문>, 공포의 최장신 김영희, 1983)

지난 1일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KB와 부천 하나원큐 경기 시작에 앞서 추모하는 묵념을 15초간 진행했다. 추모의 대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 김영희다. 김영희는 지난달 31일 향년 60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영희의 별세 소식에 농구계가 슬픔에 잠겼다.

대한민국
최장신

김영희는 대한민국 역대 최장신 여자농구선수다. 205㎝ 키로 한국 여성 중에서도 최장신으로 알려졌다. 김영희가 아기 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작게 태어나 할머니가 백일기도를 할 정도였다. 김영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165㎝ 정도로 크지 않았다.

장신으로 눈에 띄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맨 뒤에 설 정도로 키가 작았지만, 5학년 때는 175㎝가 넘었다. 

운동선수에게 있어 큰 키는 그 자체로 좋은 자질이 될 수 있지만, 운동선수가 아닌 사람에게는 콤플렉스가 될 수 있다. 김영희는 “어려서부터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장군감’이라고 말하던 동네 어른들을 피해 멀리 돌아다녔다. 경기도 부천으로 이사 갔을 때 아이들이 집 앞에 몰려와 ‘거인 나와라’고 외쳐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키가 커서 운동을 시작한 것은 맞다. 중학생 때 감독님이 ‘너는 서서 그물망에 공만 집어넣으면 된다’고 말했다. 큰 키 때문에 고등학교 때는 러브콜을 많이 받기도 했다”고 유년 시절을 회상했다. 

학교에서는 김영희 때문에 배구팀을 만들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부터는 공부를 중단하고 서울로 상경해 1년 동안 실업 배구팀 생활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결핵으로 요양 중이었고, 어머니는 생선 행상을 했다. 가난한 집에서 밥 구경도 못하다 서울 실업 배구팀으로 간 후 키는 187㎝까지 컸다.

결국 그가 운동을 선택한 것도 돈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이 어려워 1년 간 국수만 먹은 적도 있었다. 집안에 보탬이 되고 싶어 시작한 운동이었다. 어린 나이에 제안받은 월급은 김영희에게 큰돈이었다.

김영희가 처음부터 농구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농구와 배구선수를 전전하던 그는 동주여자중학교 농구부 시절 실업팀 한국화장품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키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축복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1981년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에 입단한 김영희는 대회 엠블럼에 코끼리 그림이 들어간 점보시리즈가 출범하면서 주목받았다. 1983년 12월11일 한국화장품 대 조흥은행 경기에서 최다인 52점을 넣으며 개인 타이틀 5관왕을 차지했다. 득점상, 리바운드상, 야투투사율상, 최우수상, 인기상이었다. 

큰 키로 고등학교 때부터 러브콜
84년 올림픽 은메달 쾌거 주인공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의 쾌거를 이룬 주역으로 활약했다. 그 공로로 이후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 등을 받기도 했다.


언론은 김영희를 두고 “물찬 코끼리가 나르는 코끼리로 변했다”고 비유했다. 이때가 최전성기로 힘들어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면도 존재했다. 김영희는 성적 지상주의로 인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았다. 특별히 컸던 키는 뇌하수체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성장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과잉 분비되면서 발현된 결과였다. ‘거인증’이라고도 불리는 말단비대증은 초기에는 증상이 없고, 증상도 점진적으로 진행돼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김영희는 고교 시절부터 병마에 시달렸다. 극심한 두통에 밤새 눈물을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감독에게 훈련 및 경기를 빼달라고 사정하면 어린 선수의 꾀병으로 받아들였다. 아프다고 말하면 사우나에 들어가 몇 시간씩 러닝을 해야 했다. 

통증은 진통제로 해소했다. 경기에 나서기 전에는 독한 진통제를 먹어야 했고, 경기에 뛸 때는 고통을 잊었지만, 밤만 되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힘든 선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 스피드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3점슛 제도 도입으로 농구 전술이 바뀐 것도 악재였다. 김영희는 “경기에 지면 모든 게 내 탓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벤치에 자주 앉아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체중이 120㎏까지 불어났다.

훈련받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무거워지자, 소속팀에선 체중감량을 요청해 물 한 방울조차 먹을 수 없었다.

1987년 11월 말단비대증 진단을 받았고 운동을 그만둬야 했다. 뼈 성장으로 손발과 얼굴 등은 물론 혀와 같은 연부 조직까지 커졌다. 저혈당 및 갑상선 질환, 장폐색 등 합병증도 김영희를 괴롭혔다. 

1987년 11월은 두통이 극심해졌다. 샤워할 때 머리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였다. 이때가 스물다섯살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뇌종양 판정을 받아 꿈을 접어야 했다.

거인병
뭐길래…

김영희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가려는데 간호사가 기쁜 소식이 왔다고 전했다. 신문에 ‘김영희, 점보시리즈 1000득점 돌파’라고 보도됐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농구공을 손에 놓지 않으며 재기 의지를 이어갔지만 끝내 선수 생활을 접었다.

그렇다고 농구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수술 직후 훈련을 시작했지만 다시 쓰러졌다. 병원에선 ‘생명이 위독하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김영희의 선수 생활이 막을 내렸다.

불행은 파도처럼 찾아왔다. 아버지가 방광암 판정을 받았고, 그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출혈로 1998년 세상을 떠났다. 이어 2000년 세 차례의 암 수술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김영희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개월 가까이 곡기를 끊었다. 130㎏ 나가던 체중이 70㎏까지 빠졌다. 목숨을 끊으려 한 적도 있다. 남동생의 간곡한 설득 때문에 다시 살기로 했다”며 “말단비대증으로 매달 150만원 넘게 드는 성장호르몬 억제 주사를 평생 맞아야 한다. 나를 왜 이렇게 크게 만들어 힘들게 하는지. 하늘을 수도 없이 원망했다”고 회상했다.

김영희를 가장 괴롭힌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은메달리스트로 체육 연금 20만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돈으로 한 달을 연명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부산의 8평 남짓한 아파트서 홀로 거주하며 계속되는 생활고를 겪었다. 어떤 때는 보름도 안 지났는데 7000원만 남은 적도 있었다. 

한 번 입원하면 2개월 넘게 했다.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불안증, 우울증이 심해져 3~4년간 집 밖을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 난방을 틀지 않고 울기도 했다. 

2002년 KBS <추적 60분> 방송팀이 김영희를 찾아왔다. 국가대표였던 김영희의 어려운 삶을 카메라에 담기 위한 것이었다. 방송팀과 함께 병원에 간 김영희는 자신이 거인병에 걸렸단 사실을 몰랐다. 은퇴 당시까지도 뇌하수체 종양으로 몸이 불편한 줄만 알았다.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말은 김영희를 좌절시켰다.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었다.

지독한 병마
나눔의 시작


김영희는 “당시 국가대표 선수 연금으로 매달 받는 20만원이 전 재산이었다. 당연히 수술비도 없었고, 간병해줄 사람도 없었다. 너무 서러워서 주저앉아 울었다. 병원에선 3일 동안 수술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했다. 3일 뒤 그냥 죽음을 택하겠다”고 했다.

당시 그는 “밖에 나가도 사람들이 다 저를 피한다. 너무 큰 몸 때문에. 지금 제 모습이 너무 싫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영희는 “그랬더니 병원에서 저와 비슷한 거인증을 앓던 남성이 약물치료로 나은 사례가 있다면서 수술 말고 치료를 권했다. 매달 주사 한 번 맞고 약 타는 데 300만원씩 들었다”며 “감사하게도 병원에서 ‘10년간 국가대표 선수로 국위 선양한 만큼 도움을 주자’고 결론내렸다. 이분들의 나눔으로 생명이 연장된 것”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도움의 손길은 또 이어졌다. 한 택시기사는 10년 넘게 몸이 불편한 김영희의 운전기사 역할을 자처했고, 집주인은 “평생 전세금을 올리지 않을 테니 이곳에서 편하게 오래오래 살라”고 배려했다.

쌀과 음료 등 식재료가 떨어질 때마다 몰래 채워주기도 했다. 제주도서 겨울마다 한라봉을 보내주는 따뜻한 이웃도 있었다. 선수 시절 혼자 경기를 보러 왔던 한 장애인은 김영희의 소식을 들은 뒤 매달 5만원의 성금을 보냈다. 

이런 김영희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있다. 바로 어머니의 유언이다.

모친은 “엄마, 아빠 다 죽고 너 혼자 되면 남에게 먼저 베푸는 삶을 살아라. 너가 나중에 늙어 걷기도 힘들 때 누가 널 도와주지 않는다”며 “힘들어도 누군가를 부축하고 일으켜야 너도 살 수 있다. 너가 먼저 고개 숙이고 베풀어야만 다른 사람들도 너를 돌봐주는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기초연금과 메달 포상연금 등으로 생활한 김영희는 면도날 끼우기, 양말 실밥 제거, 전자제품 조립 등 가내 부업으로 장애인과 소년소녀 가장 등을 도왔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쌀 같은 구호품 등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하루 버는 돈은 1만원도 되지 않았지만, 김영희는 행복했다.

장애인 자원봉사는 김영희를 부끄럽게 했다. 불편한 몸으로 양말을 신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홀몸 노인에게 팥죽을 끓여주기도 하고 자신을 놀리던 꼬마들에게는 과자와 사탕을 건네기도 했다.

승합차에 과자, 음료수, 떡, 양말을 가득 싣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중증장애인 시설을 찾았다. 김영희가 문에 들어서자 50명의 장애 아이들이 겁을 내며 달아났다. 처음엔 쭈뼛거리며 다가오지 않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져 결국 친구가 됐다.

말단비대증 합병증으로 선수 생활 중단
“장애인 봉사 시작으로 우울증 치료해”

김영희는 아이들이 신고 있던 낡은 덧버선을 예쁜 수면양말로 바꿔 신겼다. 다리와 발가락이 휘어져 양말을 신기조차 어려운 친구를 만났을 땐 눈물이 흘렀다. 

이런 경험은 그의 삶을 바꿨다. 자신이 가진 아픔으로 끙끙 앓던 과거 모습을 부끄럽게 느꼈다. 헤어질 때면 손을 꼭 잡고 가지 말라고 외치던 아이들의 모습이 항상 눈에 아른거렸다. 도움이 필요한 장애인 시설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양손 가득 물품을 들고 찾아갔다. 그렇게 김영희가 다녀간 장애인 시설 및 보육원만 4곳이다.

김영희의 모습을 본 동네 주민들도 나눔에 동참했다. 인근 중국집 사장은 “혼자 좋은 일 하지 말고 같이하자”며 70인분 자장면을 들고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다.

성금을 걷어 전달하는 이들도 있었다. 증상이 악화된 이후부터는 독거노인을 위한 나눔을 시작했다.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기엔 걷는 것조차 버거웠기 때문이다.

동네에는 혼자 사는 노인이 많았다. 김영희는 보름을 굶었다는 할아버지를 위해 갈비탕을 사 드렸다. 동네 노인이 김영희의 집에 오면 호박죽도 만들고 가락국수도 만들어 대접했다. 남은 음식은 용기에 담아 싸드리기도 했다.

먼저 다가가니 사람들도 그에게 다가왔다. 이때부터 김영희의 별명은 ‘거인 아줌마’에서 ‘이쁜이’로 바뀌었고, 집은 동네 사랑방이 됐다. 이웃은 “아픈 데 없냐” “밥은 먹었냐”며 매일 찾아와 음식을 나눠줬다. 김영희는 혼자 사는 어른과 한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냈다. 덕분에 심각했던 외로움과 우울증을 떨쳐낼 수 있었다.

평생을 미혼으로 살아온 김영희지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아래층에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어린 자매에게 김영희는 또 다른 엄마였다. 성금이 들어올 때마다 생활비, 병원비는 물론 컴퓨터 등 필요한 학용품도 사줬다.

그렇게 8년간 아이들을 키웠고 고민 상담도 했다. 김영희는 “학교서 친구들이 계속 돈을 가져오라고 한다고 울었다. 안 그러면 엄청나게 맞는다면서 우는데, 나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학교 교장 선생님께 전화해 학교폭력을 해결해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며 “담임 선생님이 찾아와서 아이 이야길 천천히 듣고는 해결을 약속했다.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됐고, 지금도 ‘이모 보고 싶다’며 연락이 온다”고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따뜻하게
기억되길

김영희는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따뜻함은 여전하다. “제가 좋아하는 시에 이런 문구가 있다. ‘사랑도 훨~훨, 미움도 훨~훨, 하늘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훨~훨, 성냄도 훨~훨, 물같이 바람같이 그렇게 살라 하네.’ 저도 그렇게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키가 큰 여자가 있었는데, 마음은 솜사탕이더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 그거면 충분하다. 이 덩치에 마음이 좋으면 안 된다. 이웃을 향한 작은 관심이야말로 나눔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절망 속에 있던 제가 일어선 것처럼.”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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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단독]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에테르노 압구정 아파트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 차준영이 영화배우 김모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준영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준영이 어떻게 워커힐 카지노 VVIP냐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카지노 출입설’이 단발성 풍문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PM 전문가로 알려진 차준영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준영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에테르노 간 큰 베팅 최근 차준영은 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누어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현재 차준영에게는 DL이앤씨 등과 소송 과정에서 발생한 수천억원 이상의 손해배상 채무가 있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그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준영이다. 압구정의 모 샤브샤브 전문점 사장에 따르면 “최근 연예인 해외원정 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차준영이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미국 영주권자인 차준영은 국내 카지노를 활보하면서 한 연예인의 해외 도박을 제보한 셈이다. <일요시사>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동종업계 종사자와 나눈 카카오 메시지에서 넥스플랜 차준영의 요청으로 가수 겸 배우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준영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카지노 업계에서 차준영은 “수백억원을 베팅하는 큰 손”이라고 표현했다. MC몽도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차준영은 나에게 10~20억원 정도는 배팅해야 된다며 도박을 권유했던 사람”이라며 “시행사 투자금 들고 카지노 쫓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차명 통장으로 분양금 받아 차준영 회사로 황정음·손흥민 에테르노 분양 대금의 행방 다만 대한민국 카지노 출입 기준은 ‘VIP 여부’가 아니라 ‘국적’이다. 현행 관광진흥법상 내국인은 원칙적으로 카지노 출입이 금지되며,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는 외국 국적자에 한한다. 카지노 멤버십 등급, VIP·VVIP 여부, 이용 금액, 단골 여부 등은 출입 적법성 판단에 어떠한 법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VVIP의 요청이라서 김씨의 출입을 허용했다”는 설명은 법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는 면책 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카지노 사업자가 출입자 신분 확인 의무를 완화하거나 소홀히 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에 가깝다. “VIP 요청이라 허용했다”는 표현은 김씨의 출입 허용 판단의 기준이 ‘법’이 아니라 고객의 경제적 가치였음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차준영의 도박 자금의 출처도 궁금해진다. 차준영은 ‘에테르노 압구정’을 분양하는 과정에서 친형이자 피아크 그룹 차가원 회장 아버지인 차대영의 계좌로 분양계약금 등 수백억원을 받은 뒤, 자신의 회사인 넥스플랜 계좌로 25억원을 입금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통장 이체 내역을 살펴보면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수탁자인 A 신탁에서 차대영의 통장으로 30억원이 이체됐다. 이어 3월24일 오전 10시43분 넥스플랜으로 5억원이 이체되는 방식으로 총 25억원이 넥스플랜으로 직접 흘러갔다. 앞서 차준영은 2024년 9월 DL이앤씨로부터 받은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 패소하면서 5184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통장과 제반 금융에 압류가 설정되자, 차준영은 “가족에게 생활비를 송금한다”는 목적으로 차대영이 개설한 통장을 빌렸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대영은 2024년 10월경 “예금채권 압류로 정상적 금융거래가 불가능해졌다”는 사정을 호소한 동생에게 생활비 등 기본 거래용이라며 하나은행 저축예금 계좌 1개를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러나 2025년 7월경 거래내역을 확인하자 잔액이 0원이었고, 생활비 용도와 무관한 거액 거래가 다수 발견돼 비밀번호를 변경하고 통장을 재발급받은 뒤 2025년 7월25일 내용증명으로 사용허락 철회를 통지했다는 것이다. 꿀꺽한 ‘셀럽 마케팅’ ‘신탁형 PF’ 구조인 에테르노 압구정은 분양수입금이 신탁계약상 A 신탁사 명의 관리계좌로 수납돼야 하는데 ‘차준영→넥스플랜’으로 직접 받으면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법적으로 납부효력이 문제될 수 있고(미납 취급 위험), 신탁사가 보호해줄 수 없는 영역이 생긴다”는 논리를 제시할 수밖에 없다. 형사상 “업무상 횡령” 및 “자금세탁”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에 차대영은 동생을 상대로 계약서 위조 및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차준영은 차대영의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계약을 지난 2024년 30억원에 체결하기도 했다. 차준영과 A 신탁사 직원이 공모해 계약명의자인 차대영의 동의 없이 분양계약서를 위조하고 거액을 이체한 정황이 포착되면서 경찰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차대영은 지난해 12월31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차 회장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총 3명을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금융실명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시행사는 차준영의 회사인 넥스플랜, 신탁사는 A 신탁, 시공사는 장학건설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차준영과 넥스플랜 소속 직원, A 신탁 소속 직원 등 3명은 2024년 10월25일께 차대영 명의로 에테르노 압구정 한 채의 공급계약서를 위조했다. 위조계약서를 A 신탁, 장학건설 관계자에게 진정하게 성립한 것처럼 교부했다는 게 차대영 측 주장이다. 이어 2025년 3월12일께 같은 방법으로 차대영 명의의 공급계약 해제합의서를 다시 위조하고 이를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통장 거래내역을 보면 2024년 10월25일 오후 2시39분 차대영 명의의 하나은행 계좌에서 A 신탁 계좌로 30억원이 ‘에테르노 압구정 102호 분양대금 일부’ 명목으로 이체됐다. 오후 2시44분 이 거래는 취소됐고 다시 오후 2시50분 같은 금액을 재이체했다. 이후 2025년 3월20일 오후 5시47분 ‘공급계약 해제에 따른 분양대금 반환’ 명목으로 30억원이 계좌로 반환됐다. 날아간 통일 동산 차대영은 “2024년 10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내 계좌에서 수십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졌다”며 “나는 분양계약을 체결한 적도, 그에 대한 동의를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A 신탁이 본인 확인 절차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상 신탁사가 수십억원대 분양계약을 체결할 때는 계약자 본인의 신분증 확인, 본인 서명 또는 날인, 본인 통장 확인 등의 절차를 거친다. 대리인이 계약하더라도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는 필수다. 에테르노 압구정은 축구선수 손흥민, 황정음 등 연예인들이 200억원 이상을 쏟아부은 아파트로 관심을 끌었다. 이와 반대로 분양대금은 차준영이 친형에게 빌린 통장으로 입금돼 관리되고 있던 것이다. 배우 출신 황정음의 에테르노 압구정의 수상한 계약도 눈길을 끈다. 2025년 3월20일 황정음은 압구정 모 부동산에서 총 분양금 230억원에 달하는 ‘에테르노 압구정 501호’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금은 통상 총 분양금에 10%에 달하지만, 황정음의 계약금은 4억원이라는 점도 특혜성 계약이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황정음 측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계약금이 아니라 청약금인 줄 알았다”며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 철회 의사를 밝혔으나 현재까지 4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이밖에 에테르노를 분양받은 손흥민 등 일부 유명인사들은 차준영을 직접 만나 거래하기도 했다. 차준영이 친형의 통장을 빌린 결정적인 이유는 파주 통일동산 개발사업의 실패다. 2024년 9월 DL이앤씨는 파주 통일동산 콘도 사업과 관련해 넥스플랜을 상대로 제기한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5000억원대 지급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 금액, 공사 중단 경위, 청구 내역(공사비·구상금·대여금 등)과 같은 구체 항목까지 드러났다. <비즈한국>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재판장 박준민)은 2024년 9월10일 DL이앤씨가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 시행사이자 차준영이 운영하던 ‘시티원’을 상대로 낸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에서 시티원이 DL이앤씨에 518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분양가 230억인데···황정음 계약금 4억 어디로? 시티원에서 넥스플랜으로…법인 바꾸고 자금 회수 인용된 청구 채권은 하자보수금을 제외한 기성 공사비 611억원과 구상금 3524억원, 대여금 1000억원, 지연손해금(법정이자) 50억원 등이다. 앞서 DL이앤씨는 ​2020년 8월 공사비 등 이 사업에 투입한 비용 총 5781억원을 정산해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청구 채권 상당액을 인정한 일부 승소 판결이 나온 셈이다. 소송 당사자인 시티원과 DL이앤씨는 각각 이 사업 시행사와 시공사로, 2006년 12월 공사 기간을 28개월, 공사비를 4125억원, 지체상금을 1일당 공사비 0.1%(최대 5%)로 정하는 공사 도급계약을 맺었다. 공사대금은 분양대금 납입 일정에 맞춰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공정률 33%에서 18년째 멈춰 있다. 결국 DL이앤씨는 2020년 8월 사업비용을 정산해 달라며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된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에서 상계 채권을 제외한 총 578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는 이 사업 시공자로서 공사비를 직접 투입한 것은 물론 시티원 측에 사업비를 직접 대여하거나 연대보증인으로서 시티원이 갚지 못한 사업비 원리금 등을 대신 갚아왔다. 시티원은 오히려 DL이앤씨가 사업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과 사업 손해를 물어내야 한다며 2022년 4월 반소를 제기했다. 양측이 맺은 도급 계약에 따라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별다른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는 것. 공사 현장은 20년 동안 방치돼 흉물이 됐다. 공사 재개에는 2691억원이 필요해 회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DL이앤씨가 현장을 철거하고, 공사 지연에 따른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 5%)과 미래 분양 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차준영의 자금 운용 건전성에 적신호는 해소되지 못한 반면, 카지노에선 VVIP로 불렸다. 정작 부동산시장에서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불과 수개월전까지 워커힐 카지노를 출입한 셈이다. 차준영에게 제기된 문제는 초고가 주택 분양 계약의 공정성, 대형 개발사업의 책임 귀속, 그리고 국내외 카지노 출입 논란까지 확장되고 있다. 법인 바꿔 타짜 행세 쟁점 중 하나는 ‘에테르노 압구정 직접 계약’이다. 축구 국가대표 손흥민이 에테르노 압구정과 관련해 시행사 대표와 직접 계약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분양 절차의 투명성과 이해상충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통상 초고가 주거상품의 분양은 다층적 심사·중개·검증 절차를 거치는데, 이 과정이 축약되거나 개인 간 직거래로 처리됐다면 ‘특혜’ 또는 ‘절차 생략’ 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