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삼영 후폭풍’ 경찰 속수무책 속사정

그럼 그렇지∼ ‘까라면 까야죠’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류삼영 총경에 대한 중징계가 확정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직접 중징계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내부 불만이 급속도로 퍼지는 분위기다. 윤 청장이 ‘경찰 대표자’가 아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오른팔’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사태를 해결할 묘수가 없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도 윗선 수사를 시작하지 못한 상황. 특히 이 장관에 대한 직접 수사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류삼영 총경의 중징계 소식을 접한 경찰 대부분은 윤희근 경찰청장에 대한 신뢰를 내려놨다.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윗선 수사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김광호 서울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개입 의혹 수사조차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분노는 커지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게 현실인 셈이다.

중징계 확정
청장이 요청

경찰청 중장징계위원회(이하 징계위)는 지난 13일 류 총경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앞서 류 총경은 지난 7월23일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총경회의 주최를 주도했다가 상부의 해산명령을 즉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다.

경찰공무원 징계 규정상 정직은 파면·해임·강등 다음으로 무거운 중징계에 해당한다. 징계위는 류 총경이 징계위에 회부된 언론 인터뷰를 이어나간 행보를 문제 삼은 것으로 파악됐다. 복종·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다.

류 총경은 서장회의를 중단하라는 경찰청장의 명령은 정당한 지시가 아니고, 언론 인터뷰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총경에 대한 중징계 처분에는 윤 청장의 강한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초 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는 지난 9월 경징계를 권고했다. 그러나 윤 청장은 시민감찰위 권고와 달리 류 총경에게 중징계를 내려달라고 경찰청 중앙징계위원회에 요구했다.

류 총경은 징계위 결정에 대해 즉각 불복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류 총경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국가인권위원장도, 경찰인권위원장도, 경찰 내부에서도 계속 (저를)징계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는데도 이런 결정이 내려졌다”며 “권력을 쥔 소수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류 총경은 징계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하고, 구제받지 못하면 법원에 징계 결정 취소소송도 낼 계획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류 총경의 ‘중징계’를 요구한 윤 청장을 향해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경찰 내부망 ‘폴넷’에는 ‘윤희근 경찰청장님이 부끄럽다’는 글도 올라왔다.

언론 수차례 접촉…품위 위반 정직 3개월
윤희근·이상민 등 윗선 향한 분노서 그쳐

작성자 A씨는 “청장은 내정자 시절 수많은 부하직원들의 반대만 아니라 (경찰국 신설에)법률적 하자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찰국 설치에 찬성했다”며 “정작 경찰국 논의를 하겠다는 류 총경에게는 중징계를 의뢰했는데, 저는 당시 정치권으로부터 류 총경을 보호하기 위한 청장의 묘수인 줄만 알았다”고 했다.

A씨는 ‘이태원 참사’ 국면에서 윤 청장이 보인 모습까지 비판하며 “청장 자리는 부하직원들의 과실에 대해 칼질을 해대는 자리가 아니라 무한대의 책임을(지는 것)”이라고 했다. 윤 청장이 지난달 1일 “(참사)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발표하자 경찰 내부에선 “책임을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A씨는 “경찰청장이라는 자리는 부하직원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대통령의 은혜를 입은 자리가 아니다”며 “저는 윤 청장이 우리의 수장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윤 청장을 향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경찰직협은 “당시 회의(총경회의)는 휴일에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된 것으로서 이를 중단하라는 직무명령이 적정했는지 의문이고, 과거 검사회의와 비교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라며 “류 총경이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과 윤 청장에 대한 일부 경찰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 윗선을 향한 특수본의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나올 정도다. 우선 특수본은 지난 13일 오전 증거인멸 교사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부장과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된 김진호 전 용산경찰서 정보과장 등 3명을 검찰에 송치했다.

박 전 부장은 용산경찰서 정보과가 생산한 핼러윈 인파 급증 예상 보고서를 서울시내 31개 정보과장이 참여한 단체대화방에서 삭제하도록 취지의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김 전 과장은 이 지시를 받고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직원을 회유·종용한 혐의로 입건됐다.

묘수?
꼼수?

특수본은 보고서 삭제에 가담한 용산경찰서 정보과 직원 A씨 역시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기기로 했다. 특수본은 A씨의 경우 위계에 의해 본인 직무 밖의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 삭제 과정에서 김 청장이 관여한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 참사의 핵심인 현장 책임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혐의를 받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송병주 전 용산경찰서 112상황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지난 5일 기각되면서 전반적인 수사 일정에 차질을 빚었다.

이후 특수본은 두 피의자를 세 번째 소환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기 위한 보강수사에 열을 올렸다. 이번 주 중 두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재신청한다는 계획도 잡았다.

앞서 특수본은 지난 11일 오전 10시 수사본부가 차려진 서울청 마포통합청사로 이 전 서장을 소환해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5일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엿새 만이자, 이 전 서장만 총 세 번째 소환 조사다. 이 전 서장에 대한 첫 번째 구속영장 청구 때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만 적시됐다.

당시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망할 우려에 대한 구속 사유와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피의자의 충분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반면 이번 소환 조사에서는 이 전 서장이 참사 당일 현장에 도착한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실제 오후 11시5분쯤 현장에 도착했지만, 상황 보고서에는 오후 10시17분에 도착한 것으로 기재돼있었다.

이와 함께 특수본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와 관련해서는 ‘공동정범’을 적용하는 방향으로도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다.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때도 ‘과실의 공동정범’ 법리가 받아들여진 바 있기 때문이다.


이 전 서장의 단독 과실로 참사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지만, 경찰·구청·소방·교통공사 등 관련 기관들의 과실이 중첩돼 참사가 발생했다고 법리를 구성하면 인과관계 입증이 수월해진다는 게 특수본 설명이다.

다만 이 같은 법리 구성을 하게 될 경우 업무 과정에서 사소한 과실이 있는 공무원도 전부 포함될 수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법원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업무상과실치사상 공동정범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숨 돌린
수뇌부

결국 특수본이 이 전 서장에 대한 영장 재신청 시 공동정범 여부 등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관한 보강수사는 물론,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도 추가 분석해야 하는 등 해결 과제는 늘어나게 됐다.

특수본이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윗선 수사에도 속도감이 생길 수 있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 상급기관 고위 공무원들에 대해 같은 혐의를 적용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두 피의자는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책임 주체로서 비교적 과실이 뚜렷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들에 대해 무혐의 또는 재판부의 무죄 판단이 나오면 김 청장이나 윤 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워진다.


구속 지연은 경찰 외에 소방이나 구청 등에 대한 수사에도 줄줄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수본은 지난주 이 전 서장과 송 전 실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곧바로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한 영장을 신청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찰이 입건한 이태원 참사 관련자 대다수가 이 전 서장, 송 전 실장과 같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다는 점이다.

특수본은 피의자들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경찰과 소방·구청 등의 미흡한 대처, 즉 과실이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해 피해를 키웠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기초적 수사 스탠스가 초반부터 흔들리게 되면 한 달이 지난 특수본의 수사는 사실상 제자리걸음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이 전 서장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다면 수사 동력을 잃는 등 치명타가 될 전망이다. 이 전 서장의 신병을 확보한다고 해도 윗선 수사가 더 큰 난제다. 행안부와 서울시 등 상급 기관 수사는 발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고 담당 공무원에 대한 직무유기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 적용도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기댈 곳은 특수본뿐인데…용두사미 조짐
헛도는 수사…업무상과실치사상 적용 어려워

게다가 최근 협의회가 출범하면서 유가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수사 결과가 유가족의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경우 정치적 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부담이 뒤따를 수 있다.

특수본 소속 경찰관들은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수사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일요시사>와 만난 복수의 경찰 간부들은 “특수본 관계자들이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성과를 내려 애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청 한 간부는 “상당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도 혐의 입증을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어제 특수본 후배를 만났는데 정말 힘들어 한다. 윗선 수사에 미적거리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정말 억울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인과관계 입증이 쉬운 일이 아니다. 물적 증거와 논리가 퍼즐처럼 들어맞아야 한다. 또 다른 혐의를 적용하기 어려워 무혐의 처분을 할 수도 없어서 애쓰고 있다”며 “유족들이 실망하지 않을 결과를 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고 지켜봐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유가족과 경찰 내부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실은 이 장관을 버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12일 이 장관에 대한 국회의 해임 건의에 대해 “해임은 진상이 명확히 가려진 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밝혔다. 진상 확인과 실체 규명이 이뤄져야 책임 소재도 가려낼 수 있다는 방침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것이다.

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은 이날 인사혁신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수사와 국정조사 이후 확인된 진상을 토대로 종합적인 판단을 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적어도 현 단계에서 도의적 책임이나 야당의 공세를 이유로 경질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부끄럽다”
비판 확산

그러면서도 대통령실은 해임 건의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는 ‘이상민 문책론’을 부정하는 듯 비쳐 자칫 유가족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 부대변인이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해서는 진상 확인과 법적 책임 소재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며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 유가족에 대한 최대의 배려이자 보호”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출근길에서 국회 해임 건의에 대한 질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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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