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선물’ 풍산개 파양의 진실

12월 알리려 했는데 그새 못 참고?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퇴임 당시, 강아지 두 마리를 본인의 사저로 데려갔다. 키우던 강아지들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모습은 대중에게 매우 ‘아름다운 그림’으로 비쳤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지금, ‘아름다운 그림’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정치싸움의 ‘씨앗’으로 변질됐다. 서로 “네 탓”이라 주장하는 상황에서 누구의 말이 ‘진실’에 가까운지 <일요시사>가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확인해봤다.

풍산개는 함경도 ‘풍산’ 지방에 뿌리를 둔 북한 토종견이다. 김정일 주석이 특히 총애했던 견종으로 지난 60년간 북한에서 개체 수가 대량으로 늘어났으며, 1980년에는 북한의 공식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여러 마리가 모이면 맹수로부터 주인도 지킬 수 있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풍산개는 매우 용맹하고 충성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애견인들은 풍산개를 주인과의 의리를 귀중하게 여기는 ‘의리파’ 반려동물로 분류하곤 한다.

자의?
타의?

그러나 반려동물이 아무리 주인에게 의리를 지킨다고 해도, 주인의 애정이 없으면 의리를 이어나갈 수 없는 법이다. 지난 8일,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는 의리를 지킬 대상을 한순간에 잃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이 ‘대통령기록물’인 곰이와 송강이를 정부에 ‘반환’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 측에 따라 곰이와 송강이는 이날 경북대 동물병원으로 인도됐고, 약 1주일 동안의 건강검진을 마친 후 제3의 위탁기관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두 마리의 풍산개는 2018년 9월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암수 한 쌍의 강아지다.


역대 북한 지도자들은 남북의 관계가 호전될 때마다 종종 풍산개를 선물해왔다. 2000년 최초로 성사된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자주’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풍산개 한 쌍을 선물한 바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서로의 성공적인 교류를 두고두고 확인하기 위해 풍산개를 활용해왔으며, 풍산개 선물의 의미는 단순히 반려동물을 선물한다는 의미를 넘어 국가 간 교류의 매개체 성격을 띤다고 분석한다.

문 전 대통령 측 또한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와 개인 SNS 등을 통해 풍산개들과 함께 찍은 대통령 내외의 사진을 공개하며 북한 측에 화답했다. 이렇게 곰이와 송강이는 문재인정부와 김 위원장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 발생했다. 현행법상 국가 정상 간 선물은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에 귀속돼야 하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이 ‘합법적으로’ 곰이와 송강이를 키울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문제를 두고 문재인정부는 윤석열 당시 당선인과 수차례 의견 조율을 한 바 있다. 원칙에 따라 강아지들을 대통령기록관에 넘겨야 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을 ‘물건’ 다루듯이 반환한다는 것이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원칙과 상식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가운데,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두 가지 쟁점이 발생했다.

첫 번째 쟁점은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를 누구의 의지로 결정했냐’를 두고 불거졌다. ‘문 전 대통령이 강아지들을 본인의 뜻에 따라 데려왔는지’와 ‘윤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강아지들을 데려왔는지’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갈린 것이다.


문의 선택 둘러싼 두 쟁점, 확인해 보니…
누구 의지로 강아지들 데려왔냐가 관건

이 쟁점이 중요한 이유는 강아지들을 데려온 것이 누구의 ‘의지’인가에 따라 국가 지원금의 정당성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곰이와 송강이를 데려갈 당시, 의무가 아닌 자발적 의지로 데려간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 뜻에 따라 데려간 반려동물에 ‘국가지원금이 필요하냐’는 내부의 반대 의견이 있었다”며 “(세금이)우리 돈도 아닌데 강아지들의 양육비를 쉽게 승인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마지막날, 대통령 비서실과 대통령기록관은 협약서 한 장을 작성했다. 해당 협약서에는 곰이와 송강이를 위한 지원금 내역이 자세히 기록돼있다.

양측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강아지들의 양육비는 한달 242만원으로, 사료비(35만원), 의료비(15만원), 사육관리용역비(192만원) 등이 고루 포함됐다.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세금이 들어가는 문제인 만큼 행안부와 법제처 안팎에서는 지원 예산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문 전 대통령 측의 불만은 고조돼갔다.

민주당 측은 윤 대통령이 ‘먼저’ 제안해서 데려간 국가기록물에 대한 정당한 보조금이라 주장하고 있고, 정부 관계자들은 ‘자발적으로’ 강아지들을 데려갔으니 보조금 지원은 ‘무리한 요구’라 믿고 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윤 대통령이 ‘먼저’ 강아지들을 데려갈 것을 문 전 대통령 측에 제안했고, 이를 문 전 대통령이 ‘수락’한 것이 사실에 가장 가깝다. 이는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했던 강아지들에 관한 발언에도 고스란히 나와있다.

강아지들에 대한 거취 문제에 최초로 의견을 공개 타진한 것은 윤 대통령 본인이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었던 지난 3월23일, 기자들은 곰이와 송강이의 거취 문제에 대해 윤 대통령에게 묻자 “아무리 정상 간에 주고받았다 해도 키우던 주인이 계속 키워야지”라며 “동물을 볼 때 사람 중심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고 정을 자기한테 많이 쏟은 주인이 계속 기르게하는 것이 오히려 선물의 취지에 맞다”고 다소 강한 어조로 ‘데려가야 한다’는 뉘앙스로 답했다.

한달에
242만원

이로부터 5일이 지난 3월28일, 두 사람은 공개석상에서 만나 강아지들의 거취 문제를 공식적으로 합의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준 거라 당선인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위탁해서 키워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윤 대통령은 “주인이 바뀌면 환경 적응이 어려울 것이다. 계속 키우시라”고 화답했다. 


<일요시사>와 만난 여야 관계자들은 이날 대화를 두고 양쪽이 모두 합의한 상황에서 ‘공개한 대화’라는 점에 동의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미 논란이 되고 있던 상황이라 빨리 그걸(강아지들 거취 문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께서 강아지들을 데려가길 원했고, 문 전 대통령도 이를 승낙했다”고 알렸다.

문 전 대통령과 가까운 민주당의 한 의원도 “당시 문 전 대통령이 정든 강아지들을 그냥 두고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인수위 측에서 먼저(강아지 위탁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 법적인 문제는 그 후에 시행령 개정을 통해 해결해준다고 약속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즉, 당시 형식상으로는 문 전 대통령이 강아지들을 ‘위탁’받아 키우는 형태가 됐다. 애견 전문가들은 첫 번째 문제가 여기서 출발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을 개들의 ‘주인’으로 인식하는 반면, 문 전 대통령은 강아지들을 ‘부탁받아 키우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9일 문 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사룟값과 양육에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 모두를 그동안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왔다”며 “지난 6개월 간 대통령 기록물인 반려동물들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것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애견 단체 회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강아지 양육에 들어간 비용을 ‘무상’이라고 표현한 점과 사랑을 ‘쏟아준 것’이라고 표현한 점이 의아하다고 했다.

이 회원은 “문 전 대통령이 본인을 ‘주인’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또한 강아지들과 문 전 대통령이 함께 있는 영상에서 둘의 교감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랑은 ‘쏟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의 의지였느냐가 첫 번째 쟁점이었다면 두 번째 쟁점은 대통령실이 ‘시행령 개정을 일부러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 민주당 측은 현재로선 문 전 대통령이 ‘불법으로’ 대통령기록물을 가져와 위탁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시행령 개정이 계속 늦어진다면 문 전 대통령이 점점 부담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갑론을박
누구 말이?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 1항에는 ‘대통령기록물이란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관련해 다음 각목의 기관이 생산·접수한 기록물 및 물품’이라고 적혀 있고, 3항에는 ‘대통령기록물의 소유권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는 대통령기록물을 이 법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법으로 정하는 바가 없는 상황에서 공직을 내려놓은 퇴임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을 반년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도 위탁을 제안할 당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한 우려를 해소해주겠다고 문 전 대통령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두 번에 걸쳐서 입법 예고 시행령 개정 시도가 있었던 건데 6월에 한 번 있었던 건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취소됐다”며 “입법 예고까지 온 것은 관련 부처가 다 사실상 합의된 사항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처 간에 다 합의를 이뤄놓고 취소된 게 6월에 있었던 1차 취소고,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시행령을 만들었는데 지지부진하면서 몇 개월을 끌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당 건은 우리(대통령실) 소관도 아니고 우리는 반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행안부와 법제처 실무자들이 전향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고 <일요시사>에 알려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존 6월의 입법 예고를 반대했던 행안부와 법제처는 다시금 전향적인 합의를 진행했고 오는 12월에 공포를 목표로 지난달 말까지 문 전 대통령 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일요시사>의 취재 결과와도 일치한다. 행안부와 법제처에 문의해 확인한 결과, 문서로 남아 있는 공식 논의는 지난달 13일까지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수차례 문 전 대통령 측과 비공식적으로 의견을 조율해왔다.

“10월 말까지 긍정적 합의 있었다”
“윤 대통령, 시행령 개정 반대했다”

해당 논의는 곰이와 송강이의 지원금 242만원이 포함된 것이었고, 부처 직원들은 하나같이 전향적인 논조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시행령 개정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서도 한 행안부 직원은 “법률을 공포하는 데까지 걸리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보통 입법계획을 수립하고 공포까지 적어도 150일 이상 걸린다. 최소가 그 정도고 까다롭게 진행되면 반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시행령의 개정 절차는 ▲입법계획 수립 ▲법령안의 입안 ▲관계기관과의 협의 및 당정 협의 ▲입법예고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차관화의 및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 ▲공포까지 총 9단계로 진행된다. 

그중에서 ‘법령안의 입안’과 ‘관계기관과의 협의 및 당정 협의’을 거쳐 ‘입법예고’까지 걸리는 시간은 100일에서 150일가량이고, 그 이후에도 규제 심사와 법제처 심사를 거치는 단계에서 평균 30일~40일이 더 소요된다. 

물론 예외적으로 짧은 시간이 걸린 시행령 개정 사례가 더러 있지만, 절차를 정식적으로 밟아 진행한다면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3월 논의 필요성이 시작된 이후 6월에 한 차례 협상이 결렬됐다. 

지난 5개월간 다시 협상을 진행한 끝에 입법예고를 눈앞에 뒀지만, 문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파양 통보’로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들은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12월 중 공포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12월 공포 예정이었다”는 주장에 대해 “그것은 저자들(윤석열정부)이 하는 거짓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1차 협상 취소 때와 마찬가지로 국무회의에 올리지도 않고 (12월 공포가)흐지부지 됐을 것이라고 본다. 그것을 문 전 대통령 또한 믿지 못한 것”이라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그는 윤석열정부가 주장하는 ‘전향적인’ 협의에 강한 불신을 나타냈으며 그 이면에는 윤 대통령의 반대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아시다시피 (지난 6월에)입법예고 단계까지 갔던 것은 관련 부처가 다 사실상 합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국무회의까지 당연히 상정돼야 하는 단계였다”며 “그런데 이게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멈춰버렸다. 실무자들이 이 단계에서 본인들의 판단만으로 취소시킬 힘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며 “비공식적으로 확인한 바로는 대통령실의 반대가 있었다. 자료를 직접 공개할 수 는 없지만 이는 내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이 파양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윤 대통령의 시행령 개정에 대한 반대 때문이었고, 그 결정을 지난 몇 개월간 고심하다가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로?

정리하자면, 문 전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위탁’받아 풍산개를 키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곰이와 송강이에 대한 주인 의식이 부족했다. 윤정부도 시행령 개정을 한 차례 무산시키는 등 해당 논란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전·현직 대통령들의 정치싸움에 애꿎은 곰이와 송강이만 안락했던 보금자리를 잃은 셈이다. 양측 모두 자료 공개를 꺼리는 상황에서 풍산개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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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